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03)
603.
레오는 2인 1조가 된 이들을 보며 말했다.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결정된 거니 이의 있는 사람은 없지?”
“레오 도련님! 이의 있습니다! 이 비실비실한 남자와 같은 조라니! 납득할 수 없어요!”
“저도 이번만큼은 이 선머슴 같은 여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발하는 남녀.
니엘과 마첼을 보며 레오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비뽑기는 총 세 번이 이루어졌다.
첫 번째 제비뽑기에서 같은 조가 된 니엘과 마첼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어진 제비뽑기에서 또다시 한 조가 되었고 세 번째에도 기어이 같은 조가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두 사람 때문에 다시 조를 짜는 것도 무안해진다.
“첫 번째는 우연, 두 번째는 필연, 세 번째는 운명이라는 말이 있지?”
“첼시 아가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첼시가 키득거리며 중얼거리자 마첼이 굉장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건 니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오 도련님! 제발 바꿔주세요! 아니면 한 번만 더 해요!”
울상을 지으며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마첼과 니엘을 보며 첼시가 말했다.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
첼시의 경우에는 세 번의 뽑기 끝에 레오와 같은 조가 되었다.
레오에게 통하지 않자 니엘이 셀리아를 바라보았다.
셀리아는 못마땅한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아바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바드와 같은 조가 된 셀리아에게 니엘이 말했다.
“셀리아 아가씨! 아가씨도 조를 바꾸시고 싶으시죠?”
자신을 끌어들이는 니엘을 보며 셀리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니엘 언니, 벌써 세 번이나 뽑았잖아. 그리고 난 괜찮아.”
2학년이 된 이후로 아바드와는 제법 친해진 셀리아였다.
함께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었고 그 과정에서 매번 힘을 합쳐왔기에 친분이 안 쌓일 수 없었다.
셀리아를 끌어들이는 것에 실패한 니엘이 어떻게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할 때였다.
“거 참 찡찡거리네.”
“레, 레오 도련님?”
나직이 중얼거리는 레오를 보며 니엘이 흠칫 몸을 떨었다.
“너희 둘.”
“넵!”
“옙!”
레오의 서늘한 시선에 니엘과 마첼이 자신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취했다.
학교 선배인 만큼 두 사람을 대우해 줬던 레오지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집안끼리 원수 집안이야?”
“로다 가문은 제르딩거의 가신 가문인 만큼 당연히 르왈린의 가신 가문과는…….”
“제르딩거와 르왈린이 불구대천의 원수야?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야?”
“그건…… 아니죠.”
“로다 가문이랑 루지아 가문이 조상님들끼리 서로 죽이기라도 했어?”
“……아니요…….”
“그런데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뭐? 타르타로스의 마족 놈들 앞에서도 이렇게 싸울 거야? 어? 아니라고 해봐. 해보라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이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려? 뭐? 너희 진짜 원수 만나 봤어? 어? 만나 봤냐고?!”
심상치 않은 레오의 기세에 주변 이들이 슬금슬금 레오를 피했다.
니엘과 마첼은 레오 앞에서 찍소리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비록 학교 후배이지만 레오의 실력이 자신들의 실력을 진즉에 추월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모든 면에서 자신들보다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며 지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추태를 보이며 주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으니 혼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니엘과 마첼은 이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레오 도련님은 분명 우리보다 어리신데.’
‘왜 까마득하게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혼나는 것 같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겁에 질려가는 둘에게 레오가 말했다.
“나 때는 말이야!”
“레오 오빠.”
그때 첼시가 조심스럽게 레오를 불렀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레오가 니엘과 마첼을 보고 빙긋 웃었다.
“기왕 같은 조가 된 거 이 기회에 친해져 보세요.”
조금 전까지 무시무시했던 분위기가 싹 사라지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레오를 보며 니엘과 마첼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성인식을 치른 어른이니까 더 이상 어린애 같은 사고들 치지 말고요.”
일순간 가늘어진 레오의 눈을 본 두 사람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레오가 다른 수행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들 즐겁게 시간 보내고 내일 만나죠.”
그 말에 제르딩거의 기사들과 르왈린의 마법사들은 복잡 미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레오와 첼시가 거리를 걸었다.
레오의 뒤를 따르던 첼시는 문득 보폭의 차이를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입학할 때는 키 차이가 이렇게까지는 안 난 것 같은데 지금은 제법 많이 나네.’
첼시 역시 성장기인 만큼 입학 당시와 비교해서 키가 제법 많이 자랐다.
하지만 첼시보다도 훨씬 커버린 레오였기에 확연한 차이가 났다.
첼시는 레오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걷는 속도를 높였다.
보폭에 신경 쓰지 않는 레오가 조금 야속할 법도 했지만, 첼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안다.
‘지난 2년 동안 함께 루메른을 다니면서 레오 오빠는 계속해서 날 신경 써 줬어.’
첼시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마치 달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처럼.’
언제까지고 그렇게 배려받을 수는 없다.
‘레오 오빠의 발목을 잡는 건 싫어.’
이제 첼시가 원하는 건 동경하는 사람의 등 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함께 서서 동경하는 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함께 보는 것.
인파를 헤치며 걷던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레오보다 살짝 뒤에 선 첼시가 빤히 레오의 뒤를 올려다보았다.
‘레오 오빠가 바라보는 풍경은 어떨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첼시가 까치발을 들어 최대한 레오가 바라보는 시선까지 높이를 키워보려했다.
잠시 낑낑거리던 첼시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나도 참 바보 같네. 이런 식으로 키가 비슷해진다고 레오 오빠가 바라보는 걸 이해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조금은 동경하는 사람에게 가까워져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뭐해?”
“아무것도 아니야.”
의아한 얼굴로 묻는 레오에게 도리질 친 첼시가 까치발을 내렸다.
“그나저나 숙소는 어디로 정하지?”
“글쎄, 일단 무일푼 신세이니 돈부터 구해야 하지 않을까?”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굳이 제르딩거의 사람들이랑 르왈린의 사람을 2인 1조로 묶어서 무일푼 관광을 하자고 한 거야?”
레오가 제시한 건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무작위로 앙숙인 가문의 사람끼리 제비뽑기로 묶어 돈 없이 하루를 보내라고 한 것이다.
“레오 오빠가 제르딩거와 르왈린이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려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사이가 별로인 사람끼리 친해지려면 힘든 일을 겪어야 하거든.”
“그게 무일푼 여행?”
“단순히 무일푼이 아니잖아?”
레오가 피식 웃었다.
각자 흩어지기 전.
레오는 이번 하루 동안의 규칙을 정했다.
첫 번째. 소지금을 한 푼도 가지지 않고 관광을 시작한다.
두 번째. 오러와 마법의 사용을 금지한다.
세 번째. 절대 노숙하지 않는다.
네 번째. 싸우지 않는다.
이 지시 사항 중 하나라도 어기면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줄 거라는 레오의 말에 두 가문의 수행원들은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첼시로서는 이런 일이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조금 의문이었다.
“의외로 효과가 좋아. 리시나스가 써먹었던 방식이기도 하고.”
“리시나스님이?”
레오의 말에 첼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그렇다는 건 대영웅님들도 처음에는 사이가 안 좋았다는 거네? 얼마나 안 좋았길래 이런 특단의 조치를 취한 거야?”
흥미진진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나랑 루나.”
“엑? 레오 오빠랑 루나님?”
첼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 루나가 루메른에 있었을 때.
레오와 루나는 척하면 척이었다.
눈빛으로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만 같았다.
그런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던 두 사람이 서로 사이가 나빴다고 하니 첼시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랑 루나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성향이 극과 극으로 갈렸었으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며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던 그 시절의 루나와 무엇이든 삐딱하게 바라보았던 카일의 관계는 처음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의 카일은 굉장히 시니컬한 구석이 있었다.
그랬기에 루나에게 독설을 날리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리시나스는 참았다 터트리는 성격이지만 루나 녀석은 거기에 대고 바로 들이받곤 했지.’
카일이 성격이 배배 꼬였다면 루나는 괴팍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부딪히는 두 사람을 보며 결국 보다 못한 리시나스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뭐랄까. 레오 오빠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 같아.”
첼시가 키득키득 웃었다.
“나랑 셀리아 같은 레오 오빠랑 루나님이라. 상상이 안 가네.”
‘너랑 셀리아랑은 비교가 안 됐지.’
레오가 속으로 실소를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신과 루나의 명예를 위해 그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 우리처럼 루나님과 무일푼으로 도시를 배회했던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응?”
“리시나스 녀석은 나랑 루나의 마나를 봉인해 버린 채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숲 한복 판으로 던져 버렸어.”
레오의 말에 첼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리시나스님이라도 그게 가능해?”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와 그에 비견되는 힘을 지닌 자를 동시에 봉인하다니.
“리시나스는 소환술이 주특기인 만큼 사기 계약서도 잘 썼거든.”
“사, 사기 계약서?”
뜨악한 표정을 짓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 그 도마뱀의 주특기가 사기를 치는 거거든. 나한테 결혼 사기 친 거 봤지?”
“…….”
레오의 말에 첼시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해졌다.
“뭐 하여튼. 고생들 좀 하다 보면 협동심이란 게 생기겠지.”
“고생을 할까?”
여전히 첼시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수행원들은 모두 세상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러와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제르딩거와 르왈린을 보필하는 수행원들이다.
다들 어릴 때부터 우수한 인재라 평가받아 온 자들.
첼시는 그런 자들이 고생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외로 고생을 많이 할 걸?”
“응? 왜?”
“귀한 집에서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녀석들이야. 오러와 마법을 사용하는 게 숨 쉬는 것보다 당연하지. 그런 상황에서 신분도, 재력도, 능력도 모두 제약을 받는 상황이야. 개고생할걸?”
비록 가신의 신분이지만 모두 귀족 가문.
막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까?”
레오의 말에도 첼시는 연신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첼시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지금부터 해보면 알겠네.”
“응?”
“우선 오늘 하루 묵을 만한 곳부터 구해보는 게 어때?”
“나 혼자?”
손으로 자신을 가리킨 첼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나서면 간단하게 해결될 테니까. 그럼 고생을 하는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 혼자서 열심히 해 봐.”
“왠지 내가 레오 오빠를 부양하는 것 같네.”
“싫어?”
“아니, 재미있을 것 같아.”
첼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런 일들은 늘 칼이 간단하게 해냈던 일들이잖아?”
에헴! 첼시가 가슴을 활짝 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두고 봐, 오늘 내가 레오 오빠에게 호화 관광을 시켜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