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06)
606.
방 끝과 끝에 니엘과 마첼이 앉아 있었다.
서로 고개를 획 돌린 채 쳐다보지도 않았다.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끈따끈한 열기 때문에 몸이 절로 더워졌다.
니엘은 괜히 목이 타는 걸 느끼며 방 한 곳에 있는 물병으로 손을 뻗었다.
물을 컵에 따르고 입에 댄 순간.
“푸학! 뭐, 뭐야? 이거 술이야?”
입에 머금었던 술을 내뿜은 니엘이 입가를 닦으며 황급히 다른 물병들을 확인했다.
“전부 술이잖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은 니엘이 다급히 방에 딸린 온천으로 향했다.
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온천을 한 컵 떠 식힌 니엘이 입에 온천물을 머금었다.
“쿠헥?!”
순간 입안 전체를 감싸는 알싸한 맛에 니엘이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물을 뱉었다.
“뭐, 뭐야? 이거?”
다급히 옆을 보았다.
“피부 건강 및 피로회복에 좋습니다. 인체에는 무해 하나 맛이 이상하니 마시지는 마세요.”
니엘은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결국 목이 마르면 마실 수 있는 게 술뿐이란 소리다.
‘미치겠네, 진짜.’
“호들갑 떨지 마라, 니엘 로다.”
그때 마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말에 코웃음을 친 니엘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렇게 다시 기묘한 적막이 흐르기 시작할 때였다.
꼬르르르륵-!
마첼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그에 마첼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런 마첼을 보며 니엘이 비웃음을 날렸다.
“역시 골방에 앉아서 책만 읽는 마법사 답군. 의지박약이야. 하루 굶었다고 그런 한심한 소리를 내는…….”
꼬르르르륵-!
“…….”
니엘의 배에서 똑같은 소리가 났다.
이런 소리가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니엘과 마첼.
두 사람은 하루 종일 굶었다.
거기에다가 낮에는 오러와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육체노동을 했다.
또 지금 방 안에 차려진 온갖 맛있는 음식이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몸이 솔직하게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획 돌리는 니엘을 힐끗 바라보는 마첼.
‘아, 진짜 쪽팔리네!’
니엘은 눈치 없이 소리를 낸 배를 꾹 누르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괜히 비웃었다가 더 한 비웃음을 사게 생겼다.
“풉.”
그때 마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넌 여전하군. 니엘 로다.”
“뭐가?”
“쓸데없이 고지식한 부분. 자신에게까지 엄격하지. 주군과 관련 된 일이라면 한 없이 팔불출이 되는 모습까지.”
“흥! 그러는 넌 안 그런 줄 알아? 쓸데없이 자유분방하잖아? 게다가 팔불출인 건 너도 만만치 않거든?”
톡 쏘아붙인 니엘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 니엘을 보며 마첼이 말했다.
“일단 먹을까?”
“……그래.”
니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고픈데 음식 앞에서 계속 굶는 것도 이상했다.
음식이 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마첼이 고기 요리 하나를 먹고는 감탄했다.
“이거 굉장히 맛있군.”
“먹지마.”
“왜 시비지?”
“내가 만든 거야. 그러니까 먹지 마.”
“…….”
마첼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레오 도련님께는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것 같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하지 않는 건데.”
“쓸데없는 얘기?”
“그런 게 있다.”
“…….”
마첼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던 니엘이 물었다.
“그거 혹시 나랑 관련 된 얘기야?”
마첼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쩐지. 첼시 르왈린도 나한테 이상한 걸 물었는데…… 그거 때문이었어.’
니엘 역시 아까 전 대화를 떠올렸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 흘렀다.
음식을 먹다가 목이 맨 니엘이 가슴을 퍽퍽 쳤다.
그 모습을 보며 마첼이 인상을 썼다.
“추태 그만 부리고 이거라도 마셔라.”
“웃기지…… 마! 꿀꺽! 허억! 허억!”
니엘이 가까스로 음식을 삼키며 말했다.
“난 술 같은 거 절대 안 먹어! 너나 마셔!”
“나도 술은 먹지 않는다.”
“얼씨구? 교칙 위반을 가장 잘 할 것 같으면서 술을 안 마신다고?”
“술을 마시고 실수 한 적이 있거든. 그때 이후로 마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말에 니엘이 얼굴을 팍 썼다.
‘짜증 나네. 나랑 안 먹는 이유가 어쩜 저렇게 똑같지?’
그렇게 무거운 정막이 흐를 때였다.
‘레오 도련님은…… 제르딩거와 르왈린의 화합을 위해 이런 자리를 준비하신 거겠지?’
어쩌면 자신과 마첼의 관계는 레오에게 걸림돌일지도 몰랐다.
‘아가씨도 아바드와 친분을 쌓고 계시고.’
주군이라 할 수 있는 제르딩거의 직계들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옛날 일로 마첼과 벽을 쌓고 있었다.
충직한 기사인 니엘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첼이 입을 열었다.
“니엘 로다.”
“왜?”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너에게 미련이 있다.”
“뭐?”
순간 니엘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잠시 후.
픽- 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그런 사람치고 스캔들이 꽤 크게 나지 않았던가? 너 2학년 때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오열했다며 난리가 났었지? 기숙사에서 술 먹은 걸 걸려서 징계당한 건 덤이고.”
니엘의 말에 마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지. 그게 내가 술을 먹지 않는 이유다.”
“뭐?”
마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때 네가 먼저 남자를 사귄다고 소문이 나지 않았나? 그거 때문에 진탕 마시고 실수를 하게 된 거다. 다행스럽게도 네 이름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었지.”
니엘이 입을 뻐끔거렸다.
니엘이 1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을 때 처음 술을 먹고 맛이 간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남자랑 사귄 적이 있다고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 남자가 다름 아닌 마첼이었다.
그 덕분에 전교에 소문이 다 났었다.
“날 쉽게 잊은 것 같은 네가 원망스러웠지. 그래서 더욱 너에게 사납게 대했던 거다.”
이미 잊혀진 오래전의 스캔들이다.
“그래도 미련 때문에 난 학교를 다니면서 누군가와 사귄 적이 없다.”
마첼의 말을 듣고 니엘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랑 똑같네.”
“뭐?”
“그 소문. 나도 너 때문에 술 마시고 난 거거든.”
니엘과 마첼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누가 할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음을 터트리던 니엘은 배가 아픈이 히끅- 히끅- 거리며 눈에 맺인 눈물을 닦았다.
“정말. 너나 나나 참 한심하다.”
“그래. 꼴불견이지.”
마첼도 동의하며 니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늦었어.”
“응. 늦었어.”
니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니엘 로다. 도련님과 아가씨께서는 가문끼리의 앙금을 청산하고 싶어 하신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래. 어려운 일이지. 그래도 나는 그분들의 뜻을 따르고 싶어. 나는 제르딩거의 기사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르왈린의 마법사니까.”
니엘과 마첼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주군의 걸림돌이 될 순 없지.”
“그래. 그러니 관계를 새로 하고 싶어.”
두 사람이 동시에 미소 지었다.
“이전의 마음은 잊고. 친구가 되자.”
“동의하는 바이다.”
니엘이 손을 뻗자 마첼은 그 손을 잡았다.
무려 5년 만의 화해였다.
“와! 뭔가 속이 후련하네!”
니엘이 바닥에 대자로 누우며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
“마실 건가?”
“응. 나라고 안 마시고 싶어서 안 마신 건 아니니까. 이제는 성인이 됐는데. 억울 하잖아?”
니엘이 술을 자기 잔에 따르며 말했다.
“너도 한 잔 줄까?”
“훗. 이제는 그날의 실수를 곱씹을 필요가 없으니. 나도 금주를 풀도록할까?”
“그래. 이제 실수할 일도 없으니까.”
니엘이 후련하다는 둣 마첼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잔을 부딪히며 술을 입에 머금었다.
입에서 퍼지는 주향에 니엘이 인상을 쓰며 괴로워했다.
“어우. 난 앞으로도 그다지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아.”
그 모습을 보며 마첼이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하아. 그나저나 어느덧 너도 나도 성인이네.”
“그래. 그때는 이때쯤 되면 서로 혼인을 하게 될 거라며 이야기를 하곤 했지.”
“둘 다 꼬맹이었던 주제에 참 겁도 없었어?”
“그래. 그래도 좋았었지.”
“응. 그렇긴 했어.”
옛날 일을 떠올리며 두 사람은 다시 술잔을 부딪혔다.
***
“웃! 추워! 추워!”
첼시와 니엘 쪽 방으로 온 레오는 오자마자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첼시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춥지는 않은데?”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첼시가 멈칫하더니 얼굴만 쏙 내밀었다.
“응, 사실 춥진 않아.”
의미심장하게 웃은 첼시가 이불을 몸에 두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을 꽁꽁 싸맨 첼시를 보며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터벅- 터벅-
첼시가 레오에게 다가왔다.
질질 끌리는 이불 아래로 바닥에 널브러진 무언가가 보였다.
다름 아닌 조금전까지 첼시가 입고 있던 옷가지였다.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레오 앞으로 온 첼시가 슬쩍 어깨춤의 이불을 살짝 내려보았다.
목선을 타고 내려오는 하늘색 머리카락과 가녀리고 하얀 어깨가 드러났다.
“요염하지?”
첼시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레오는 첼시가 두르고 있는 이불을 쥐었다.
“에?”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잡아당겼다.
화악-!
“요염하기보다는 귀엽네.”
수영복을 입고 있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런 레오의 반응에 첼시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재미없게. 당황이라도 하면 어디 덧나나?”
“어른을 놀리면 못 써.”
레오는 고양이를 잡듯 첼시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올렸다.
그리고 당황하는 첼시를 데리고 방에 딸린 온천으로 데려가 집어 던졌다.
“꺄아아악?!”
풍덩-!
“푸학! 너무해!”
첼시의 볼멘 소리를 무시한 레오는 문을 닫고 비치된 수영복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
온천에 들어가 팔다리를 쭉 편 레오가 등을 젖히며 중얼거렸다.
“시원하구만.”
“와, 진짜 아저씨 같아. 몸은 소년인데 어쩜 저렇게 아저씨 같지?”
첼시가 작게 야유했지만 레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일 청사에 가면 뭐부터 할 거야?”
의아한 얼굴로 묻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정화의 정령부터 만나볼 생각이야.”
“계약하려고?”
“응.”
마치 아주 간단한 이야기처럼 말하는 레오.
“하긴, 아무리 대정령이라도 레오 오빠와의 계약을 거절하기는 힘들겠지.”
“거절해도 상관없어.”
“응?”
의아한 표정을 짓는 첼시 앞에 목욕물을 푸는 바가지가 둥둥 뜬 채로 지나갔다.
그 속에는 온천물이 채워져 있었다.
-받아랏!
삐약! 삐약!
-피오라와 키르안. 그만하세요.
-야! 피닉스! 요정! 엘시님이 그만하시라잖아! 날개를 뜯어줄까?!
삐이익!
-히익!
그 속에 물장난을 치며 엘시에게 물을 튀기던 피오라와 키르안은 살벌한 라르엘의 외침에 겁에 질렸다.
“…….”
첼시는 그 모습에 침묵했다.
레오는 라르엘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절하면 얘가 목을 꺾어 버릴 테니까.”
‘어째 레오 오빠 소환수 중에는 정상적인 애들이 없네.’
첼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첼이랑 니엘 선배. 화해 했으면 좋겠다.”
“꼭 그럴 거야.”
레오의 대답에 첼시가 배시시 웃었다.
***
“끄응.”
니엘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대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이 방에 있던 술을 다 마신 것만은 분명했다.
‘아, 다시는 술 안 마셔.’
오래전.
처음으로 술을 마셨을 때 했던 다짐을 수년 만에 다시 하며 니엘은 몸을 뒤척거렸다.
그러다 옆에 있는 따뜻한 무언가를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그 품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살결이 스치는 느낌이 기분이 좋았다.
“우으…….”
니엘의 옆에 있던 마첼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니엘을 품으로 잡아당겼다.
니엘은 순순히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
“…….”
다시 잠을 자려던 두 사람은 순간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이불 속에서 서로 부등켜 안고 있던 두 사람은 순간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사고가 정지한 두 사람.
잠시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숙여 이불 속을 바라보았다.
다시 고개를 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입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벌컥-
“마첼, 미안해. 두 사람을…… 꺄아아아악?!”
방 안으로 들어온 첼시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방 밖으로 나갔다.
뒤따라 들어오던 레오는 잠시 침묵하더니 빙긋 웃었다.
“좋은 시간 방해했나 보네요.”
“레, 레오 도련님!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이건! 이건! 가지 말고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니엘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악을 쓰듯 말했다.
하지만 레오는 바로 방을 빠져나왔다.
붉어진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것들은 애들 같은 사고를 치지 말라고 했더니 어른 같은 사고를 쳐 버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