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13)
613.
늦은 밤.
첼시는 불안한 눈으로 텅컨의 왕궁을 바라보았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레오와 셀리아는 소식조차 없었다.
‘정령의 영역은 시간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지.’
레오가 왕궁으로 들어간 지 이제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첼시는 초조함을 느꼈다.
레오가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누가 뭐라해도 시작의 영웅 카일.
아무리 정령의 영역에 침입했다고 해도 레오라면 충분히 헤쳐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로드렌에서 전해진 소식이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첼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의식을 잃었다는 토루아와 레이나의 납치 소식까지.
이 소식을 들으면 레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첼시는 걱정되었다.
‘어떻게 제르딩거의 영역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토루아가 있던 곳이야 반란군이 있는 전장.
하지만 레이나가 있는 곳은 다르다.
제국의 수도에 버금가는 치안을 자랑하는 도시.
페이온에서 일어난 대사건.
게다가 노려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레이나다.
이제 제르딩거의 직계도 아니며 그렇다고 주요 인사도 아니다.
그저 변방 왕국 귀족 가문의 안주인.
그런 레이나에게 특별한 건 단 하나.
바로 레오의 어머니라는 점이었다.
누구를 노리고 레이나를 납치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배신자들인가.’
첼시는 히어로 헌터들을 떠올렸다.
‘아니면 내부의 또 다른 적?’
첼시가 주먹을 꾹 쥘 때였다.
사아아아아-
겨울 바람이 불어 왔다.
그 순간, 첼시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화악-!
지팡이를 뽑아 든 첼시가 뒤돌아서며 마법을 영창했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첼시에게 다가오는 이를 휘감았다.
“와, 클로에도 그렇고. 당신들 정말 이제 3학년이 되는 학생들이 맞나요?”
상대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냐스 베그스?”
친분은 없지만 일전에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북부 마탑주의 딸.
하프 엘프 아냐스를 보며 첼시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있을 리 없는 인물이다.
그런 첼시를 보며 아냐스가 말했다.
“레오님께 전할 말이 있어 찾아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부재중이시니 당신에게 말할게요.”
“왜 나한테 이야기 하는 건가요?”
“레오님께서 만약 자신이 부재중이라면 르왈린양에게 전해 두라고 말하셨거든요.”
아냐스의 눈이 휘었다.
그런 아냐스의 모습을 보며 첼시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고모님?’
황궁 마도서고의 서고장이자 현 르왈린 가주의 여동생.
체르나 르왈린.
물론 그것은 대외적인 신분이고 실상을 르왈린 가문의 그림자를 이끄는 자.
즉, 르왈린의 그림자였다.
첼시는 그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아냐스에서 고모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느꼈다.
잠시 체르나를 떠올리던 첼시가 잡념을 떨치며 물었다.
“전할 이야기가 뭐죠?”
“레이나님을 납치한 자와 그 사건에 연루된 자들의 정체입니다.”
“그게 누구죠?”
첼시의 얼굴이 확- 굳었다.
그런 첼시를 보며 아냐스가 말했다.
“히어로 슬레이어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협력자들로 의심되는 자들은…….”
아냐스가 말 끝을 흐리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제르딩거의 장로회입니다.”
그 말에 첼시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때였다.
구구구구구-
왕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첼시와 아냐스, 두 사람은 놀란 눈으로 왕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화르르륵-!
레오는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푸른색 불꽃을 피했다.
‘정화의 정령의 힘이라.’
확실히 셀리아는 모든 면에서 강화되어 있었다.
불꽃의 화력은 물론이고 힘과 스피드.
콰앙-!
셀리아가 검으로 바닥을 치자 거대한 화염의 해일이 덮쳤다.
레오는 그걸 피해낸 후 말했다.
“하지만 힘만 세졌군.”
오히려 검술은 퇴보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정령이 검술을 연마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저 단순히 검을 휘두를 뿐.
“오히려 원래에 셀리아에게 한참 못 미쳐.”
화르르륵-
레오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베려는 셀리아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콱-!
“커헉?!”
셀리아의 배에 어퍼컷을 작렬시켰다.
휘이이잉! 콰가가가강-!
셀리아가 그대로 날아가 왕궁 벽에 처박혔다.
하지만 스피릿 아머드에 보호 받고 있는 셀리아는 별 타격이 없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려한 붉은색 드레스가 더욱 강력한 불꽃을 내뿜었다.
아까보다 더욱 강력한 불꽃을 내뿜으며 달려드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셀리아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콰가가가강!
바닥에 처박히는 셀리아.
레오는 그런 셀리아의 등을 발로 밟았다.
콰앙-!
셀리아의 몸이 그대로 바닥을 뚫고 아래층으로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보며 라르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레, 레오님. 아무리 그래도 정신을 잃은 셀리아를 너무 과하게 공격하시는 거 아닌가요?
라르엘의 말에 레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서 과하게 공격하는 건데?”
-네?
“난 몸의 주도권을 쉽게 빼앗기라고 가르쳐준 적이 없어.”
레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셀리아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난 이후 셀리아는 레오와 함께 훈련을 했다.
물론 검술을 가르치거나 오러 운영법을 가르친 건 아니다.
하지만 전투 노하우는 물론이고 체력이나 정신력 등.
어느 한 곳 부족하지 않도록 옆에서 지도해 주었다.
그런 셀리아가 아무리 대정령이라고는 해도 의식을 잃고 육체를 내 준 것은 레오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앙? 근성이 부족하잖아!”
-그, 그건 근성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라르엘이 레오를 말리기도 전에 뛰어내린 레오는 아래층에 있는 셀리아 앞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셀리아를 보며 인상을 썼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너무 봐주면서 훈련시킨 것 같아.”
그 말에 검을 들려던 셀리아의 몸이 움찔 멈추었다.
“앞으로는 더 철저하게 굴려야겠는걸?”
셀리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웃기…… 지…… 마아아아아아!”
셀리아의 몸에서 오러의 불꽃이 치솟았다.
진홍색 제르딩거의 불꽃이 푸른 불꽃을 몰아낸다.
화악-!
최상급 정령인 검과 드레스도 셀리아의 불꽃에 밀려났다.
“네가 언제 봐주면서 훈련했는데! 만날 악랄하게 괴롭혔잖아! 그리고 뭐? 앞으로 더 철저하게 굴린다고?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셀리아가 레오에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악악- 소리를 질렀다.
“겨우 정신 차렸군.”
팔짱을 낀 레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몸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족하다는 증거야. 근성을 키우려면 역시 굴리는 게 최고지.”
“너 진짜 가끔 보면 꼰대처럼 보이는 거 알아?!”
셀리아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발까지 굴러가며 소리쳤다.
그런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런데 너 말이야.”
“뭐!”
“뭐 좀 입어라.”
“……?”
그 말에 셀리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하얀 피부에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이, 이거 뭐야아아아!”
몸을 감싸 쥐고 자리에 쪼그려 앉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 드레스가 네 옷을 모두 태운 모양이군.”
“그 변태 정령! 죽여 버릴 거야!”
눈을 번뜩이며 살기를 풀풀 풍기는 셀리아를 보며 고개를 저은 레오가 아공간에서 옷을 꺼내 셀리아에게 건네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옷을 황급히 입은 셀리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저나. 정화의 정령은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응?”
셀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궁-
갑자기 왕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셀리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정령의 영역이 붕괴하는 거야.”
이곳은 단순한 왕궁이 아닌 정화의 정령 이스타와 이어져 있는 공간.
그런 이스타가 이곳의 지배력을 갑작스럽게 상실하면 무너진다.
“어, 어떻게 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정령의 영역이라 탈출하려면 오히려 힘들어. 그냥 있으면 돼.”
“그냥 있다니! 붕괴에 휘말리면 어떻게 해!”
“겨우 건물이 무너지는 것뿐이잖아.”
“이 큰 왕궁이 무너지는데 겨우라고?!”
레오는 문제 있냐는 듯 방 한쪽에 있는 의자에 태연하게 앉았다.
“이 정도로는 안 죽어.”
“아니! 그래도 크게 다치거나 하면 어떻게 해!”
“내가 널 어떻게 수련시켰는데? 고작 이 정도로 붕괴에 휘말려서 크게 다친다고? 그러면 수련이 부족한 건데?”
“야! 너 진짜!”
쿠가가가가가강-!
하얗게 질린 셀리아가 소리쳤다.
이윽고 텅컨의 왕궁이 무너졌다.
***
“무슨 일이지?!”
다급하게 달려온 아바드는 무너진 왕궁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대한 왕궁이 무너졌음에도 주변에 피해는 없었다.
말 그대로 깔끔하게 왕궁만 무너졌다.
후두둑- 후둑-
그렇게 왕궁의 폐허 속에서 무언가 들썩였다.
쿠가가가각-!
“진짜!”
폐허 더미를 뚫고 나온 셀리아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궁이 무너지면 탈출할 생각을 해야지! 죽지 않는다고 깔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셀리아! 괜찮아?”
“난 괜찮…….”
황급히 달려와 어깨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피는 아바드를 보며 셀리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바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사하구나.”
오랫동안 봐 온 사이였지만 처음보는 아바드의 모습에 셀리아가 무안한 듯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당연하지. 난 멀쩡해.”
“레오 오빠는?”
첼시가 다급히 다가왔다.
“레오라면…….”
“저기 있네요.”
대답을 대신한 건 다름 아닌 아냐스였다.
“누구?”
“아냐스 베그스?”
갑작스러운 하프 엘프의 등장에 셀리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아바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둘 에게 빙긋 웃은 아냐스는 폐허 더미의 가장 높은 곳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레오를 발견하고는 중얼거렸다.
“마치 왕좌 같네요.”
태연한 얼굴로 앉은 레오의 모습에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느껴졌다.
한편, 레오의 눈에는 불의 최상급 정령들에게 제압되어 바닥에 폐허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이스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 엘시가 서 있었다.
알시아는 그런 엘시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우리의 새로운 주인이시여.
-주인이시여.
이스타의 영역에 있는 모든 불의 정령은 엘시에게 무릎 꿇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라르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어둠의 대정령이 불의 정령을 지배하다니…….
이게 가능키나 한 말인가?
그 전율스러운 광경을 바라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까마득한 고대에는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걸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가장 고고한 정령.
모든 정령을 지배하는 전설적인 존재.
지금 시대에는 잊혀진 이름.
“정령왕.”
달빛 아래에 비친 엘시의 모습에 5000년 전의 과거가 떠오른다.
‘사령왕의 군대를 지배하여 결국 불가능했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
하지만 너무 강한 힘을 쓴 대가로 엘시 역시 소멸했다.
엘시를 바라보던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레오 오빠!”
첼시가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레이나님이! 레이나님이 납치 당하셨데!”
그 말에 레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고오오오오오-
털썩-
레오에게 다가가던 첼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첼시 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을 들이켰다.
솨아아아-
달빛 아래 불어온 바람이 백발을 흩날린다.
레오의 붉은색 눈동자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