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97)
697.
밝은 빛이 온 세상을 비추었다.
마치 태양이라도 뜬 것 같은 모습.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빛으로 향했다.
그 중심에는 레오가 서 있었다.
레오의 검 끝에서 쏟아진 빛이 기아스를 덮쳤다.
레오의 고유 마법, 제로(Zero)에 직격당한 기아스가 눈을 부릅떴다.
‘내 존재가……!’
기아스의 존재가 사라져간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강력한 마법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악한 것을 부정하는 힘.
강인한 방어력도 압도적인 재생력도 소용없다.
존재 자체를 지우는 마법이었다.
“그아아아아아아아!”
기아스가 암흑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어떻게든 이 힘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게 기아스가 발버둥 칠 때.
“이번에는 살아가지 못할 걸세.”
드웨노가 점프했다.
그 순간.
드웨노가 쥔 망치가 기아스의 머리통만큼 커졌다.
“흐랴아아아아압!”
화르르륵-
황금의 불꽃이 타오른다.
거대한 망치가 자기 안면을 덮치려는 순간.
기아스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위대한 에레보스께! 무한한 영광을! 그분의 뜻에 따라! 승리하……!”
퍼걱-!
드웨노의 망치가 기아스의 머리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화악-!
기아스가 빛과 함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가 생존했습니다.] [거인왕 기아스를 토벌하였습니다.]아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와!”
양손을 치켜들고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휘오오오오오오!
전장을 가득 메운 거인왕의 군단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세에서 침입한 거인왕의 군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한 거인왕의 군단을 향해 이발디의 전사들이 공세로 전환하여 토벌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겼다! 이겼어! 검은 토끼!”
아르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탑처럼 남아있는 성벽의 잔해 위로 고개를 돌렸다.
성벽 위에 휘청거리던 레오가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아르가 기겁하며 그런 레오를 향해 달려가 양손으로 가까스로 받았다.
텁-!
“괜찮아?!”
“괜찮을 리가. 마나 고갈인데.”
레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아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드웨노 역시 하늘에서 추락했다.
그런 드웨노를 받으려고 달려가려던 아르였지만 어느새 달려온 엔니하가 그런 드웨노를 안전하게 받는 데 성공했다.
그걸 보고 아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굉장했어! 대체 무슨 마법이야?!”
“새로 만든 고유 마법이야. 미완성이지만.”
아직 완벽한 마법은 아니었다.
카일 시절에는 에레보스에게 결정적 한 방을 가하지 못해 봉인으로 끝이 났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에레보스를 토벌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해 온 마법으로 최근에서야 구현할 수 있게 된 마법이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러는 사이 이발디의 전사들은 군단의 잔당을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이발디의 전사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걸 보고 레오가 중얼거렸다.
“이겼네.”
“응, 이겼어. 검은 토끼.”
“이제 내려 줘.”
“응? 마나 고갈이면 좀 더 편히 쉬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이렇게 순순히 품에 안겨 있으니 꽤 귀여운데?”
아르가 푸른 눈을 빛내며 레오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자신을 놀리는 하얀 고양이를 삐딱한 눈으로 올려다보던 레오가 손을 뻗어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꽉 움켜쥐었다.
“아악!”
“어디서 어른을 놀려.”
“그러니까! 꼬리는!”
붉어진 얼굴로 아르가 악을 지르며 레오의 손에서 가까스로 꼬리를 빼냈다.
그러는 사이 엔니하의 부축을 받고 다가온 드웨노가 웃음을 터트렸다.
“꼴이 가관이구먼.”
“너야말로.”
아르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선 레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웨노 역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벽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다.
“엔니하.”
“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
엔니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축제를 시작하세.”
드웨노가 빙긋 웃었다.
“최대한 화려하게.”
“……응.”
엔니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전사들에게 달려갔다.
“약속대로 한잔 하도록 하세.”
“그래.”
***
“승리의 잔을 들자!”
“축제다!”
거인왕의 토벌 소식은 곧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기쁜 얼굴로 대피소에서 나왔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늦은 새벽이었지만 어린아이들 역시 공터로 나와 축제를 준비했다.
그 가운데에서 레오와 드웨노가 대작을 하고 있었다.
“레오 오빠!”
멀리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겼구나!”
히어로 레코드 기아스의 토벌 메시지를 봤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이 아르히 파티가 중심부에 도달해 히어로 레코드를 되찾는 데 성공한 시기였다.
공략 목표가 달성되자 아르히 파티는 히어로 레코드 파괴를 중단하고 곧바로 돌아왔다.
“이겼지. 그런데 좋은 신발을 신고 있다?”
“아, 이거?”
첼시가 발 한 쪽을 들어 보였다.
날개 장식이 되어 있는 신발을 자랑하듯 보여준 첼시가 밝게 웃었다.
“드웨노님의 선물!”
첼시 뿐만이 아니었다.
루크는 검.
하비든은 창.
아이나는 손목 보호구.
일리아나는 기동성을 살릴 수 있는 경갑옷.
엘리자의 경우에는 귀걸이.
칼은 팔찌를 들고 있었고 아르티안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만든 게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짬을 내어 만들어 봤네.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물건들이지.”
신기라 불려도 손색없는 수준의 아이템들임에도 불구하고 드웨노는 덤덤히 말했다.
“잘도 시간을 냈군.”
“무구 수리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니까.”
확실히 드웨노의 실력이면 어렵지 않게 의뢰받은 무구들을 고치고도 시간이 남았을 것이다.
“레오 학생.”
그때 아르티안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을린 히어로 레코드 조각이었다.
히어로 레코드 조각 끝에 살짝 불씨가 남아있다.
타오르고 있다.
이 세계의 수명 자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언제 이 세계가 끝을 맺을지 알 수 없다.
그것 받아 든 레오가 침묵할 때였다.
“자네들. 승리의 축배를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드웨노의 말에 아르히 파티가 머뭇거렸다.
“자, 다들 어서 한잔들 받게!”
대영웅의 술을 거부할 수는 없다.
자리를 잡고 앉은 아르히 파티가 술잔을 들었다.
“고맙네! 우리를 위해 싸워 줘서!”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르티안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웨노는 그런 아르티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무것도 아닐세.”
빙긋 웃은 드웨노가 다른 학생들에게도 술을 따라 주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드웨노는 껄껄 웃으며 영웅 후보생들에게 끝없이 술을 들이부었다.
이윽고 인연이 생긴 이들끼리 모여 신나게 떠들었다.
“드웨노님!”
드리아나가 진지한 얼굴로 드웨노 앞에서 말했다.
“이번에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이후로 쭉 드웨노님의 유지를 잇는 스미스가 되기 위해 정진해 왔어요!”
“훌륭하군. 자네에게도 선물이 있네.”
드웨노는 작은 망치 하나를 꺼냈다.
그건 아까 전 기아스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무구였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만든 망치, 에테르누스일세. 전투에서도 스미스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될 걸세.”
“아아! 이걸로 조각상을 만들어도 되겠군요!”
“조각……?”
“네! 예술가로서도 전 정진을 해왔거든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드리아나를 보며 드웨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러고 보니 자네를 다시 만났을 때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
“뭔가요?”
그 모습을 본 레오가 말했다.
“일어나.”
“응? 왜?”
옆에서 술을 마시던 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해.”
그 말을 남긴 레오는 덤덤히 술을 홀짝였다.
영문을 몰라 하는 일행들 가운데 위기감지 능력이 뛰어난 칼은 냉큼 도망쳤다.
“내가 예술은 때려치우라고 했을 텐데! 왜 사람 말을 귓등으로 안 듣는 거지! 반항하는 건가! 아주 그냥 머리통을 박살 내버릴라!”
“히이이이이익!”
드웨노가 에테르누스를 드리아나의 머리를 향해 살벌하게 휘둘렀다.
“예술은 때려쳐! 때려치우라고! 예술을 모독하지 말란 말이다!”
주변에 있는 온갖 것들이 드웨노의 손에 파괴되어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행이 그 소란에 휩쓸려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레오는 태연하게 술을 마시며 고개를 획- 획- 꺾거나 몸을 젖히는 것으로 파편들을 피했다.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드웨노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에테르누스를 드리아나에게 건넸다.
드리아나가 희희낙락한 얼굴을 했다.
일행이 각자 흩어진 가운데.
모닥불 앞에는 레오와 드웨노, 엔니하만이 앉아 있었다.
그때.
“저기…….”
디트가 레오에게 다가왔다.
레오는 그런 디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도 너희 아버지와 같아.”
“네?”
“네 아버지가 만든 무구가 이름 모를 내 목숨을 구했던 것처럼. 네가 만든 무구는 분명 전장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를 구했을 거야.”
이발디 장인들의 무구는 그러했다.
이발디가 멸망한 이후에도 가드스론으로 흘러들어와.
세계를 구하는 기나긴 여정에 힘을 보탰다.
제작자는 물론이고 만들어진 무구도 역사에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지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무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선과 선이 연결되어 종국에는 세계의 구원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누군가가 나아가는 걸 멈추지 않는다면 의지가 끊기는 일은 없겠지.’
“자랑스러워해.”
레오의 말에 디트가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찬 대답을 남기고 디트가 떠났다.
“말이 많이 늘었군. 리시나스를 보는 것 같았네.”
“그런가?”
“부부도 아니면서 잘도 닮는군.”
드웨노가 피식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찬 레오도 남은 술을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오크통에 술잔을 넣어 떴다.
벌써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기에 굉장히 취해 있었다.
“부부였더라.”
“무슨 소린가?”
“나랑 리시나스.”
“푸흡!”
드웨노가 마시던 술을 뿜었다.
“뭐라고?!”
“그 망할 도마뱀이 결혼 사기를 나한테 쳤더라고. 나도 최근에 알게 되었어.”
“자네. 혹시 리시나스가 자네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아나?”
“그 망할 귀쟁이의 마음도 안다.”
“놀랍군. 일부러 모른 척했었던 건가?”
“환생한 후 알았어.”
“다행이군. 변함없는 등신이라.”
“이 변태 영감이.”
레오가 드웨노의 목을 졸랐다.
그러나 드웨노는 태연하게 술을 마실 뿐이었다.
한편.
“어우, 너무 마셨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칼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너무 마신 탓인지 정신이 알딸딸했다.
“흥. 무식하긴. 주량을 넘어서서 마시다니.”
엘리자가 픽- 웃으며 말하자 칼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럴 때 마셔줘야지!”
“옳소!”
옆에 있던 카네아가 마주 술잔을 들었다.
짠! 하고 부딪힌 두 사람이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며 엘리자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술기운에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카네아가 엘리자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엘리자를 살짝 들었다.
“……?”
“에잇!”
카네아가 엘리자를 칼의 품 쪽으로 떠밀었다.
본의 아니게 칼에게 안겨 버린 엘리자가 입을 뻐끔거렸다.
“잘 어울리네.”
“무슨!”
새빨개진 얼굴로 키득키득거리는 카네아를 노려보는 엘리자.
“그래도 뿌리치지는 않네?”
카네아의 말에 인상을 쓴 엘리자가 칼의 품을 떨치고 나왔다.
“응? 뭐야?”
잠에서 깬 칼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축제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어스름한 새벽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엔니하.”
“응?”
드웨노와 함께 웃고 떠들던 엔니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델이 되어준다던 약속. 지키게.”
“응. 그럴게.”
“그럼 벗게.”
“이 미친 드워프가 뭐라는 거야!”
“모델이라면 당연히 누드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웃기지 마! 누가 그딴 생각을 해.”
“자네한테 배웠다만?”
“내가 언제 그랬어!”
엔니하가 드웨노의 머리를 팔꿈치로 찍어 버렸다.
하지만 드웨노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완전 천생연분이군.’
레오는 혀를 찼다.
그런 가운데 가까스로 누드모델이 되는 걸 면한 엔니하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어떤 포즈를 취할까?”
“그림을 그려주게.”
“그림?”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캔버스와 받침대를 가져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생각난 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드웨노도 캔버스와 받침대 앞에 앉아 그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잠시 정신을 집중해 그림을 그리던 드웨노가 곰방대를 물었다.
다름아닌 엔니하의 곰방대였다.
“어? 드웨노? 당신 담배 안 피우잖아?”
“미래에는.”
레오가 기억하기로 드웨노는 첫 만남부터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 순간까지 같은 곰방대를 물었다.
‘엔니하의 것이었군.’
드웨노의 옆에서 그림이 완성되는 걸 지켜보았다.
‘시간이 모자라.’
레오는 직감했다.
그림을 완성할 시간이 모자라다는 걸.
손에 쥐어진 히어로 레코드 조각을 바라보았다.
점점 타오른다.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은 조각을 보며 레오가 입을 열었다.
“드웨노.”
“신력을 이용해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늘린다는 멍청한 소리를 하겠다고 한다면 자네의 면상을 당장 후려쳐 주지.”
브레이브를 통해 아르온의 기억을 읽은 드웨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힘은 아껴두게.”
“…….”
레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예술 작품은 손을 댄 그 순간부터 아름다움 그 자체이네. 완성이고 뭐고가 없네.”
“……그러네.”
“아름답지 않은가?”
캔버스 속에 고심하며 그림을 그리는 엘프의 모습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아름답네.”
“그래. 내 말대로 루나와 비교하는 건 실례지.”
“성격은 몰라도 얼굴은 루나가 더 예쁜 것 같은데?”
“자네, 유부남 주제에 다른 여자에게 수작을 부리는 건가?”
“사기당한 거라니까. 그리고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야.”
“보는 눈이 없구먼.”
드웨노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저기, 어때?”
그때 엔니하가 못 참겠다는 듯 물어왔다.
“보겠나?”
빙긋 웃는 드웨노의 얼굴을 본 엔니하가 드웨노 곁으로 다가왔다.
“와.”
엔니하가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게 나라고?”
“그래.”
“예쁘다. 그런데 너무 미화된 거 아니야?”
“미학자인 내 눈은 그 누구보다 확실하네. 엔니하. 자네는 이렇게 아름다워.”
드웨노가 빙긋 웃었다.
“분명 자네가 나에게 알려준 아름다움 덕분에 나는 최후까지 꺾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겠지.”
“…….”
“고맙네, 엔니하.”
화르르르륵-!
히어로 레코드 조각이 모두 타올랐다.
새카만 재가 되어 흩날려 사라지는 걸 보고 레오가 손을 움켜쥐는 순간.
[이발디의 사람들이 구원되었습니다.] [드웨노의 세계: 서장-이발디 전투가 공략되었습니다.]영웅의 세계가 공략되었다.
그와 함께 환한 빛이 세계를 감쌌다.
모두가 눈을 감았다.
영웅 던전이 사라졌다.
영웅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에 있던 이 공간은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었다.
눈을 감은 레오가 깊은숨을 들이쉰 순간.
“아.”
여기저기서 놀라움에 찬 탄성이 들려왔다.
레오를 포함해 눈을 감고 있던 아르히 파티가 황급히 눈을 떴다.
이발디의 사람들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
여명이 떠오른다.
찬란한 빛이 이발디의 사람들을 비추었다.
태어나서 태양을 처음 본 이들도.
수십 년 만에 이 광경을 되찾은 이들도.
모두가 감격한 얼굴로 구원된 세계를 바라보았다.
태양을 바라보던 엔니하가 터벅터벅- 자신의 캔버스를 가져왔다.
“잘 그렸지?”
그리고 드웨노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그림을 받아 든 드웨노가 중얼거렸다.
“잘 그렸군.”
“그치?”
“내가 더 잘 그렸지만.”
그 말에 엔니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말했다.
“먼저 갈게.”
일찍이 드웨노에게 남겼던 그 말을 다시 남긴 엔니하가 빛의 알갱이가 되어 사라졌다.
엔니하뿐만 아니다.
모든 이발디의 사람들이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침묵하던 드웨노가 레오에게 그림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고맙…….”
드웨노가 말을 멈추었다.
자신의 시간은 끝이 났지만 레오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침묵하던 드웨노가 입을 열었다.
“부탁하네.”
아직 더 나아가야 하는 동료에게.
파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이는 남겨진 이에게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격려를 담은 한마디를 전했다.
그림을 받은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둬.”
그 말에 드웨노가 웃으며 빛의 알갱이가 되어 사라졌다.
“…….”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레오는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남기고 싶다.’
드웨노는 자신의 예술 작품이 후대에 남기를 원했다.
원래라면 드웨노가 남긴 이 그림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공략 보상: 그림]레오의 바람에 의해 공략 보상이 정해졌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레오는 드웨노의 그림 옆에 엔니하의 그림을 조심스럽게 놔두었다.
여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림을 그리는 엔니하의 모습과 그림을 그리는 드웨노의 모습이 나란히 전시되었다.
아르히 파티가 모여들었다.
“와, 예쁘다.”
“굉장한 그림들이네요.”
감탄을 터트리는 일행을 보며 레오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겠지.”
왜냐하면.
“이 시대를 살았던 최후의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