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709)
709.
그날 저녁.
시계탑 기숙사의 분위기는 아침에 서먹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여기 넘어오지 마! 경고했다?”
“너희야말로 넘어오기만 해 봐!”
공용 정원에서 1학년들이 줄을 그어 놓고 으르렁거렸다.
소환학과와 마법학과 학생들이었다.
공용 정원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이 혀를 찼다.
“진짜 하루 만에 완전히 적이 되어 버렸네.”
칼이 혀를 차자 앞에서 차를 홀짝이던 엘리자가 대답했다.
“레오 플로브가 이런 걸 원했으니까.”
“유라 교수님 수업은 어땠냐?”
칼의 물음에 엘리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날 통해서 소환학과 동향을 파악할 속셈?”
“정보는 중요하니까. 될 수 있으면 난 다른 학과 애들이랑도 계속 적극적으로 교류할 생각이거든.”
“그래? 잘 해봐.”
“그래서? 유라 교수님 수업은 어땠는데.”
“흐응? 맨입으로?”
엘리자가 눈을 흘기자, 칼이 품에서 작은 꾸러미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내용물을 확인하니 유리 알갱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이 담겨 있었다.
“크리스탈 프루트?”
엘리자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환수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환수와의 친밀도를 높일 수 있어 소환사들 사이에서는 아주 선호도가 높은 과일이었다.
대신 자연이 기운이 뭉쳐 있는 깊은 숲속에서만 구할 수 있는 굉장히 귀한 물건이기에 헤르긴 가문의 후계자인 엘리자도 쉽사리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루메리아 시티에서 구해왔어.”
“정보의 대가치고는 많이 비싼 것 같은데?”
엘리자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뭐?”
느닷없는 말에 엘리자가 당황했다.
그런 엘리자를 보며 칼이 웃었다.
“다음 달이면 우리 가게 오픈하거든. 그때 내 부탁 들어줘야 하잖아.”
“…….”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끝나고 나서 열받은 네가 때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칼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작년에 3학년으로 진학하면 할 수 있는 한도 내로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칼과 약속했던 엘리자다.
그런 엘리자에게 칼이 부탁한 것은 하나.
칼의 가게.
그러니까 루메리아 시티에 오픈하는 칼 만물상의 점원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학생 중에는 주말에 루메리아 시티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
루메른을 다니다 보면 이래저래 돈 나갈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아르바이트 중 하나가 개인 과외였다.
루메른은 매년 입학을 원하는 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쏟아진다.
그런 만큼 이미 루메른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싶어 하는 자들도 많다.
물론 끝없이 자신을 개발하며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루메른의 학풍 특성상 다른 이를 가르치는 걸로 주말 시간을 보낼 학생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많은 돈을 얻을 수 있기에 선호되는 아르바이트였다.
그 외에 루메른 아카데미에 흘러들어오지 않은 의뢰 해결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기사학과 학생은 토벌이나 호위 의뢰.
마법학과 학생들은 유명 마법사의 보조 의뢰.
소환학과 학생들은 분노하여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정령이나 환수들의 화를 진정시키는 의뢰 등.
분야는 다양하다.
하지만 가게 점원 일을 하는 학생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
침묵하는 엘리자를 보며 칼이 예쁘게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이거.”
“뭔데?”
“우리 가게 점원 복장. 내가 직접 디자인했지.”
“넌 대체 헤르긴 가문의 후계자인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훗. 내가 앞으로 상전으로 모셔야 할 아르바이트생?”
칼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네가 점원으로 일해주면 가게 홍보 효과가 엄청날 게 분명하거든.”
“네가 가게 주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이미 칼도 세계적으로 유명 인사다.
“에이. 한 명이랑 둘이 같아? 그리고 넌 예쁘잖아? 그거 때문에라도 가게 단골 되는 손님이 굉장히 많을 걸?”
“……내가 어쩌자고 그런 바보 같은 약속을 했는지.”
엘리자가 투덜거렸다.
“그럼 볼 일도 끝났으니 일어날게.”
“가겠다고?”
“학과 전쟁 중이니까 계속 나랑 이야기하면 애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볼 거야.”
“고작 용건 하나 딸랑 전달하자고 날 부른 거야? 편지로 했으면 됐잖아. 내가 그렇게 한가한 인간으로 보여?”
“응.”
“너한테 할애할 시간은 없거든? 보상을 해줘야겠는데?”
“그럼 어떻게 보상해 줄까?”
엘리자가 손가락으로 중앙 정원 한곳에 있는 식당을 가리켰다.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너무 비싸 학생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곳이다.
“봐주라.”
칼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엘리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너 돈 많은 거 다 알아.”
그 말에 칼이 한숨을 쉬고 엘리자를 데리고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역시나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점원이 두 사람을 안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엘리자가 메뉴판을 봤다.
칼은 말없이 정원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엘리자.”
“왜?”
“너도 정원에 있는 저 미로 가봤지?”
“응.”
정원 나무로 이루어진 미로.
학생들 사이에서 나무 미로라 불리는 곳은 내부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미로 내부에는 마나도 쓰지 못하게 되어 있기에 탈출하기가 매우 힘들다.
“미로는 갑자기 왜?”
“너 저 미로 중앙으로 가본 적 있어?”
“난 안 가봤는데.”
“가봤다는 학생은? 내가 아는 한 없거든?”
“…….”
엘리자가 침묵했다.
칼은 학생들 사이에서 정보통이다.
온갖 사소한 정보를 다 꿰뚫고 있다.
그런 칼이 들어 본 적 없다면 아직 학생 중에는 미로의 중앙에 도달한 학생이 없다는 뜻이 된다.
“아무래도 우리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칼이 씩- 웃자 엘리자가 메뉴판으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내일부터 저 미로를 공략하겠다고 난리겠네.”
“우리 둘이 공략하자.”
“뭐?”
엘리자가 다시 칼을 바라보았다.
“곧 알아차리는 학생들이 나오겠지. 그 전에 공략하자.”
“왜 내가 너랑 둘이 공략해야 해? 소환학과 애들이랑 하면 되는데.”
“여러 사람이 알게 되면 엄청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잖아. 견제도 엄청나게 받을 거고.”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게 되면 기사학과 애들도 알아차릴 거야.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고 생각해 봐. 제대로 할 수 있겠냐? 차라리 임시 동맹을 해서 너랑 나랑만 공략하자. 어때?”
칼의 물음에 엘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그럼 오늘 밤 중앙 홀 점수판 아래에서 새벽 1시에 만나자.”
“알았어.”
***
기숙사에 밤이 내려앉았다.
통금 시간이 된 기숙사 내부는 고요했다.
또각- 또각-
그런 가운데 복도에서 누군가 걷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 앞에 도달한 이는 심호흡을 한 후 아르티안이 문을 열었다.
달칵-
“레오 학생. 나왔어요.”
아르티안이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레오의 방이었다.
야심한 시각.
아르티안이 레오의 방을 찾아온 이유는 일전에 약속한 영령술 과외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늦은 밤에 학생이랑 같이 있으니까 기분이 새롭네요.”
“잘 부탁드려요.”
“네. 내가 이것저것 잘 알려줄게요.”
까르르 웃은 아르티안이 손뼉을 짝- 쳤다.
“자, 그럼 우선.”
“우선?”
“벗으세요.”
“…….”
레오가 아르티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아르티안이 자신의 상의를 가리키며 말했다.
“상의 벗으세요. 레오 학생.”
“왜요?”
“영령술에 관한 이론은 레오 학생도 꿰뚫고 있을 거 아니에요? 바로 실전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아서요.”
실전 수업을 하는데 상의를 벗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레오는 영령술에 관해서는 깊게 아는 것이 없었다.
레오가 순순히 상의를 벗자 아르티안은 빤히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감탄하며 레오의 복근을 콕 찔러 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레오 학생은 참 몸이 좋네요.”
“단련하니까요.”
“그렇죠. 그래도 남성분들의 몸을 제법 많이 봤는데 레오 학생만큼 몸이 좋은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볼 일이 많았어요?”
“네. 영령술 때문에 경험이 많은 편이거든요.”
빙긋 웃은 아르티안이 가져온 가방에서 붓과 단검, 그리고 접시를 꺼냈다.
“레오 학생. 바닥에 앉아 볼래요?”
그 말에 레오가 바닥에 앉았다.
레오의 뒤에 앉은 아르티안이 단검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베어 상처를 냈다.
그리고 흐르는 피를 접시에 담았다.
잠시 후.
지혈한 아르티안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접시에 담긴 자신의 피를 붓에 찍었다.
“조금 간지러울 거예요.”
아르티안은 레오의 등에 원형의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루메른에 들어오기 전에도 전 소환술을 가르쳤어요. 그중 영령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거든요.”
아르티안은 소환진을 그리며 말했다.
“그때도 이렇게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렇군요.”
레오의 등 뒤에 소환진을 모두 그린 아르티안이 이동했다.
등 뒤에 소환진은 완성했지만 몸 곳곳에는 아직 그려야 할 게 많았다.
레오의 가슴팍에 붓들 대며 아르티안이 키득키득 웃었다.
“레오 학생, 이상한 생각했죠?”
“말을 이상하게 하셨잖아요.”
“아직 살면서 연애도 한 번 안 해봤어요. 다들 내가 무섭대요.”
‘무섭긴 하지.’
상처받을까 봐 굳이 말을 하진 않았다.
레오의 몸에 소환진을 완성 시킨 아르티안이 레오 앞에 앉으며 말했다.
“영령술은 사실 굉장히 간단해요.”
“간단하다고요?”
“네. 그냥 눈감고 소환하면 되니까요.”
‘아르티안 교수도 아르온 과였군.’
재능을 타고나도 자신의 능력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다루는 이는 드물다.
말 그대로 이걸 왜 못해? 의 천재 유형.
입맛을 다신 아르티안이 말했다.
“뭐. 영령술 재능이 있다고 해도 저처럼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많은 연구를 했어요.”
다행이도 타인은 자신처럼 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교수님께 배워서 영령술을 쓸 수 있게 된 사람이 있나요?”
“애석하게도 내가 가르쳤던 사람들은 모두 영령술 재능이 없었어요. 대신 제가 연구한 방식을 다른 영령술사에게 알려줬는데 그 방식으로 훈련해 영령 소환에 성공한 사람은 있었어요.”
최소한 아르티안의 훈련 방식은 효과가 있다는 소리였다.
“오늘 레오 학생에게 가르쳐 줄 건 그 입문 단계입니다.”
“입문 단계라면?”
“초혼술.”
아르티안이 레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영령을 무의식 상태로 소환하는 기술을 가르쳐줄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