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716)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716화(716/768)
716.
기사학과의 존과 마법학과의 일레사.
마지막으로 소환학과의 레딘.
대략 2000년 전쯤.
루메른 학생회장으로서 명성 높았으며 세계적으로 주목 받던 앞날이 창창했던 최고의 인재들.
하지만 첼시는 그런 까마득한 선배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존과 일레사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피투성이에 속이 텅텅 빈 갑옷을 입은 기사와 머리가 없는 빨간 망토를 두른 마법사가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은 상당히 섬뜩해 보였다.
하지만 공포심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한 없이 작은 존재감.
그들 앞에 의자에 앉은 채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있는 레오 때문이었다.
존과 일레사 옆에 레딘은 널브러져 있었다.
레오에게 잡아당겨지던 팔은 이상한 각도로 덜렁거리고 있다.
셋 다 선배라고 으스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레오 앞에서 한 없이 쭈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일리아나를 간호해 주던 첼시는 조심스럽게 레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섬뜩한 외모의 선배들을 향해 물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레오 오빠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는 건가요?”
첼시는 영령들에게 레오의 정체를 밝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딱히 그 사실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살아있던 시절에도 카일의 기록은 이미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물론 레오가 막 환생했을 때처럼 완전히 가상의 인물.
혹은 대영웅의 공적을 가로챈 사기꾼 취급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학계에서도 시작의 영웅이 실존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의견은 대립했었다.
실존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대영웅.
그랬던 상황이니 환생이라는 말을 쉽게 믿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세 영령은 레오 앞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
레오가 레딘의 팔 각도를 기이한 각도로 틀어 버려서?
‘그건 아닐 것 같고.’
아무리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지만 명색이 루메른의 졸업생이 아닌가?
폭력에 굴복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거야 이 사람이 우리를 소환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일레사가 살짝 꿍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없는데 목소리가 들리니 기괴하다.
“이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우릴 돌려보낼 수 있거든.”
“아.”
즉, 그들이 영령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건 레오의 영력 때문이기에 고분고분하다는 뜻이다.
레오의 심기를 거스르면 그대로 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마나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첼시가 또 다른 궁금점에
“그러면 세 분은 왜 그런…… 그…… 무서운 모습을 하고 계세요?”
“이건 우리의 살아생전 마지막 모습이야. 후배.”
첼시의 물음에 일레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더니 존을 가리켰다.
“여기 고귀한 기사 양반은 전쟁에서 육신을 잃었거든. 그래서 달랑 갑옷만 소환된 거고.”
그다음으로는 레딘을 가리켰다.
“여기 소환사는 하반신을 잃었어.”
마지막으로 일레사는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위대한 견습 대마법사인 나 일레사 뤼앙은 안타깝게도 콱-! 마수에게 목이 물어 뜯겼지.”
거기까지 말한 일레사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우릴 소환 해준 저 양반의 영령술이 서툴러서 그런지 우릴 온전한 모습으로 소환하지 못했어.”
일레사는 불만을 드러냈다.
“예쁜 얼굴이셨는데 아깝네요.”
“어머, 어머. 내가 한 미모 하기는 하지. 학창 시절에는 한 떨기 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단다.”
“한 떨기 꽃은 개뿔. 머리에 꽃 꽂은 광녀였지.”
존이 비웃었다.
“뭐래요. 평생 연애편지 한 번 못 받아 본 작자가.”
‘학과끼리 사이 안 좋은 건 지금이나 2000년 전이나 똑같네.’
아마 루메른이 막 설립된 그때도 똑같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첼시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게 제일 궁금한 건데요. 우리를 왜 놀라게 하신 거예요?”
처음에는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이들은 외관만 무서울 뿐.
루메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이런 사람들을 평범하다고 한 시점에서 나도 정상이 아닌가?’
확실히 루메른에 와서 상식선이 많이 바뀌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비치나?’
잠시 잡념에 빠졌던 첼시가 고개를 휙휙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러는 사이 일레사가 시치미를 뚝 뗐다.
“응? 그게 무슨 소리? 난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일레사의 반응에 첼시가 슬쩍 레오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린지 알게 해줘?”
살벌하게 웃는 레오를 보며 일레사가 목을 움츠렸다.
‘와, 깡패 같다. 레오 오빠는 협박도 잘하네.’
역시 못 하는 게 없다고 첼시가 속으로 감탄할 때였다.
일레사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 막 소환되었을 때는 이성이 거의 상실되었거든. 그래서 본능에 따라 움직이다가.”
“움직이다가?”
“우릴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는 애들을 보니…… 뭔가 재미있는 거 있지?”
일레사가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있잖아? 막 술래잡기 하는 것 같고!”
주먹을 쥔 양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일레사가 환하게 웃었다.
“학창 시절에는 힘들게 공부랑 전투 훈련만 했었거든! 그래서 막 소리 지르고 도망치는 애들을 보니까 진짜 재미있었어!”
일레사의 말에 첼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존과 레딘을 보니 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 사람들 확실히 우리 선배들이구나.’
고작 그걸로 죽일 듯 쫓아오며 악령 행세를 하다니.
왠지 지금 선배들도 그럴 것 같다.
위화감이 전혀 없는 셋을 보며 첼시가 깊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때 레오가 입을 열었다.
“왜 너만 대답하냐?”
레오가 발끝으로 일레사를 가리켰다.
그 말대로 첼시의 물음에 대답하는 건 일레사 뿐이었다.
레오의 물음에 일레사가 대답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해?”
“응. 얜 마법학과생이잖아.”
“그게 뭐?”
“이 양반들한테 물은 건 아닐 거 아니야?”
당연하다는 듯 선을 긋는 일레사를 보며 첼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선배님에게도 물은 거 맞는…….”
“저 작자들이 왜 선배야? 여기서 네 선배는 오직 나 하나뿐이라고!”
일레사가 첼시의 어깨를 붙잡더니 마구 흔들었다.
목 없는 마법사가 자신을 흔들어 재끼자 첼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을 선배 취급하지 말라는 말에도 존과 레딘은 태연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첼시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왜?”
“그러고 보니 2000년 전에 클래스 전쟁이 있었어.”
“그건 또 뭐야?”
“역시 레오 오빠는 모르는구나.”
레오가 크게 역사에 관심 없다는 걸 아는 첼시는 클래스 전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루메른 교과 과목에도 없는 만큼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
클래스 전쟁.
말 그대로 기사와 마법사, 소환사끼리 세력을 형성해 싸웠던 대전쟁이었다.
인간 종족 사이의 내전으로 영웅의 역사에서도 몇 없을 정도의 큰 규모의 전쟁이었다.
루메른은 3000년 전부터 중립 지대였기에 루메른 내에서도 전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역시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 시기에 루메른을 다녔던 세 영령은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었다.
“클래스 전쟁은 타르타로스의 침공이 있은 후에야 가까스로 멈췄어.”
첼시의 설명에 레오가 얼굴을 팍 구겼다.
“이것들이 진짜 몸이 편하니까 별 개짓거리를 다하네?”
5000년 전 재앙의 시대 당시 세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아는 레오로서는 이런 내전 이야기를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니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라고 세상 구한 줄 알아?!”
“저, 저희가 시작한 전쟁 아, 아닌데요.”
“우, 우리는 전쟁에 휘말렸을 뿐이오.”
“마, 맞습니다!”
눈앞에 스스로를 시작의 영웅이라 주장하는 이의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은근슬쩍 말을 놓던 세 영령은 다시 레오에게 말을 높였다.
잘못했다가는 눈앞의 인간이 정말로 자신의 사지 육신을 뽑아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서운 광경에 첼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지. 레오 오빠는 죽다 살아난 사람이지.’
레오 앞에서 꼼짝도 못 하는 영령들을 보며 첼시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내 앞에서 학과끼리 척지는 소리 하면 진짜로 분해시켜 버릴 줄 알아.”
“무, 물론이죠.”
“지금은 화합의 시대인가 보군!”
“영웅이란 화합을 중시해야 하는 법!”
“근데 레오 오빠는 학과끼리 싸우게 만들었잖아.”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첼시는 자신을 보며 웃는 레오를 보며 냉큼 고개를 저었다.
레오가 자신을 귀엽게 여기는 건 사실이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험한 꼴 당한다는 걸 잘 아는 첼시다.
“그래서? 너희의 미련은 뭐지?”
영령이 되었다면 미련이란 게 있다는 뜻이다.
레오의 물음에 첼시는 세 영령의 미련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초상화 복도에 있었던 분들이니까…… 자신들의 가능성을 끝내 꽃피우지 못했다는 거겠지.’
첼시는 안타까운 얼굴로 세 영령을 바라보았다.
전직 학생회장 출신들이다.
자신의 뜻을 끝내 펼치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던 젊은 영령들.
그게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기사 선배님은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싶으셨을 거야. 마법사 선배님은 대마법사로 칭송받는 게 꿈이셨을 거고…… 소환사 선배님은 강력한 소환수와 교류해 보고 싶지 않으셨을까?’
각 클래스의 대표적인 꿈과 로망을 떠올리며 첼시가 살짝 아련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존이 기세 좋게 소리쳤다.
“여자들에게 인기 있고 싶소! 난 살아생전에 냄새나는 남자들에게만 인기 있었어!”
“…….”
원대하고도 소박한 꿈에 첼시의 얼굴이 일순간 참혹하게 변했다.
“그……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네. 소싯적에 인기는 있었지만, 쓸데없이 점잔 떤다고 연인을 만들어 본 적 없거든.”
레딘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남자친구 사귀어 보고 싶어요! 죽기 전에는 연애를 비웃었는데! 죽고 나니까 억울한 거 있죠!”
일레사도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첼시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런 것들도 선배라고.’
마음을 추스른 후 첼시가 말했다.
“그런데 어차피 세 분은 죽으셨잖아요. 연인을 만들 수 없을 텐데요? 아니면 세 분이서 사귀어보는 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존이 가차 없이 말했다.
“이미 죽으셨잖아요.”
“한 번 더 죽지.”
레딘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양반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다줘도 내가 사양이야.”
일레사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세 분 연애를 못 할 텐데요?”
그 말에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말했다.
“그럼 연애 하는거 훼방 놓을래.”
“왜 결론이 그렇게 나는 거죠?”
“우리도 못 했는데 후배들이 하면 부러우니까.”
“…….”
‘뭐 이딴 인간들이.’
첼시가 관자놀이를 누를 때였다.
“합격.”
“……?”
뒤에서 들려온 레오의 불길한 목소리에 첼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레오가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아.’
첼시는 저 웃음이 몰고 올 게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재앙이네.’
***
다음 날 아침.
첼시는 피곤하다는 얼굴로 아침 식당에 왔다.
“첼시. 어제 늦게 들어왔어?”
“네, 오라버니.”
“너무 밤늦게까지 다니는 거 아니니?”
걱정스럽다는 듯 묻는 아바드를 보며 첼시가 빙긋 웃었다.
“전 괜찮아요.”
‘……대체 그 선배님들을 레오 오빠는 어떻게 쓸 생각인 걸까?’
척 보기에도 학생들을 괴롭히는 게 즐거운 영령들이다.
최근 학생들을 괴롭히는 레오의 성향을 본다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 학생들 앞에 등장할지 깊게 고민하고 싶지 않은 첼시였다.
한숨을 쉬며 앙- 샌드위치를 먹던 첼시는 옆에서 아바드가 보고 있는 신문 내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륙 동부에 이상 기온에 의한 폭설?”
“최근 내전이 발생한 데비앙 왕국이야.”
“제2왕자와 제1공주사이에 발생한 내전이라고 했죠?”
“그래.”
“그런데 여름이 다가오는데 폭설이라니.”
“대마법사의 소행이라는 말이 있어.”
“참 할 짓 없는 마법사네요.”
첼시가 툴툴거리며 샌드위치를 씹었다.
그에 아바드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