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752)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753화(752/768)
753.
데비앙 왕국의 왕궁의 가장 높은 첨탑.
그곳에 선 레오는 말없이 폐허가 된 데앙을 내려다보았다.
데앙의 도시 곳곳은 여전히 폐허인 채 남아 있었다.
내전의 상흔.
많은 사람들이 폐허가 된 거리를 오가는 게 보였다.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 같이 수심이 가득했다.
레오의 붉은 눈이 사람들을 살필 때였다.
“아르온이 이런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레오가 힐끗- 리시나스를 바라보았다.
레오 곁으로 온 리시나스가 쪼그려 앉았다.
휘오오오오-
바람이 불어와 리시나스의 흑발을 흩날렸다.
한때 세상을 혼자 짊어졌던 흑룡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세상의 모습이 맺힌다.
그때와 달리 평화로운 세상이다.
하늘은 티 없이 맑으며 빛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도시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리시나스는 안다.
저 어둠은 5000년 전의 사람들의 얼굴에도 가득했다는 걸.
50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먼저 떠나보낸 자들에 대한 탄식.
세상이 평화를 되찾는다고 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리시나스는 그런 것에 좌절하지 않았다.
리시나스는 알고 구한 것이다.
자신이 구할 세상이 이런 곳임을.
나쁜 것 또한 가득한 세상임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좋은 것들이 많다는 걸 알기에 세상을 구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앙의 시대에 태어났던 이들은 어땠을까?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마냥 희망차고 밝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극단적인 어둠만을 봐 왔기에.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다툼 따윈 없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원래라면 어른들이 가르쳐주었어야만 했다.
세상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하고 있음을.
거짓된 환상만을 품게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리시나스는 재앙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심지어 아르온에게 조차도.
때로는 모르는 것이 좋을 때도 있었으니까.
재앙의 시대와는 정반대인 밝기만 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 절망 속에서만 살았던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리시나스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용했을 뿐이지.’
리시나스의 눈이 가라앉았다.
“난 결국 그 시대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사기꾼이었을지도 몰라.”
“새삼스럽게 왜 그래?”
레오가 힐끗 리시나스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리시나스가 무릎을 가슴팍에 모았다.
“에이란에게 베르키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나 보네.”
“…… 응.”
리시나스가 눈을 감았다.
베르키아 에르사르.
카일과 루나, 아르온의 제자.
하지만 리시나스에게도 베르키아는 특별했다.
내심 딸처럼 여겼던 비하르만큼이나 더.
이유는 간단했다.
‘그 아이는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아이였으니까.’
재앙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의 영혼은 어둡다.
제대로 된 빛을 보고 자라지 못한 만큼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베르키아는 달랐다.
‘혼자서 빛날 수 있는 아이.’
비하르가 어둠에 동화되어 걸어 나가는 사람이었다면.
베르키아는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리시나스가 이끌었던 에레보스 토벌대, 아르히의 원정은 결과적으로 성공으로 끝났다.
아르히의 마지막 여정은 분명 도박에 가까운 여정이었지만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리시나스는 원정이 성공한 이후에 자신이 살아 있을 거란 확신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자신의 뒤를 이어 세계를 이끌 지도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베르키아라고 생각했다.
지혜의 왕의 눈은 정확했다.
에레보스가 토벌된 후.
베르키아는 세상을 수습했으니까.
에레보스가 토벌된 후 남은 세력을 규합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타르타로스의 대침공을 막아내고.
세계가 부흥할 기틀을 닦았다.
자신의 기대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베르키아는 훌륭하게 자신들이 없는 세상을 재건했다.
하지만 그 베르키아조차도 결국 세상의 악의에 무너지고 말았다.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비극을 겪지 않았을까?’
“만약 아르온이 살아남아 빛을 되찾은 세상을 보았다면……. 날 원망하지 않았을까?”
아르온은 겁이 많다.
그랬기에 리시나스는 아르온에게 에레보스가 없던 시절에 대한 세상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파란 하늘은 아르온에게 있어 용기의 근간이었으니까.’
아르온은 리시나스에게 많은 이야기를 터놓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리시나스의 말을 잘 따르고 믿었다.
리시나스는 아르온에게 평화로웠던 시절의 세상의 밝은 면만을 이야기해주었다.
추악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르온의 용기가 꺾일까 봐.
“결국 난……. 아르온을 믿지 못했던 걸지도 몰라.”
누구보다 순수하게 자신을 믿었던 이를 속였단 사실이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베르키아의 이야기를 들어 더더욱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래서 나에게 베르키아와 비하르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지?”
리시나스가 씁쓸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쓸데없는 걸로 고민하고 우울해할 녀석이라는 걸 아니까.”
레오가 귀찮다는 어투로 말했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루나는 언제나 의기양양해 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지나칠 정도로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런 루나와 달리 리시나스는 언제나 차분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이 가라앉으면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졌다.
특히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타인과 관련됐을 때 그 정도가 심했다.
레오의 무신경한 말투에 리시나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만약 아르온이 살아서 영웅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꺾이는 일 따윈 없었을 거야.”
“어째서?”
“그 녀석이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으로 강하기도 하니까.”
레오는 아르온을 떠올렸다.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갔겠지.”
“…… 나보다 네가 더 아르온을 믿는구나.”
리시나스가 쓰게 웃자 레오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에게는 좋은 선생이 있었잖아.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걸 끝까지 관철했던 좋은 선생이.”
“그런 선생이 있었어? 창천의 수호자를 말하는 건가?”
리시나스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도마뱀은 가끔 왜 이렇게 얼빵한 거야?’
레오가 리시나스를 쳐다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널 말하는 거거든?”
“응?”
리시나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오가 말했다.
“네가 인도해 준 길은 언제나 옳았어. 그러니 새삼 거짓말 좀 했다고 의기소침해 있지 마.”
“…….”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면 거짓이 아니라면서?”
가끔 자신이 하던 뻔뻔한 말을 내뱉는 친구를 보며 리시나스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내가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이 하나 있지.’
끝내 진짜 거짓으로 남게 된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말.
그 이룰 수 없는 약속을 떠올리며 리시나스가 물었다.
“비하르와 베르키아는 어땠어?”
리시나스는 용기를 내서 소중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그 물음에 레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둘 다 할머니 다 됐네.”
“그렇지.”
리시나스는 웃음을 터트렸고 레오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 마지막은?”
이윽고 리시나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지막은 어땠어?”
그 물음에 레오는 눈을 감았다.
리시나스는 그런 레오를 긴장한 듯 바라보았다.
“그 빌어먹을 것들이 나보고 아빠라더군.”
“뭐?”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각각 달랐겠지만.”
레오가 혀를 찼다.
“이래서 인기 있는 사람은 고달프군.”
“미친 소리 하고 있네.”
리시나스답지 않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응?”
“언제까지 축 늘어져 있을래? 비하르 엄마.”
“그 말 들으니 뭔가 모르는 사이에 부모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한데.”
인상을 구기는 리시나스를 보며 레오가 싸늘하게 말했다.
“졸지에 모르는 사이에 결혼하고 부모가 된 나보다 기분이 이상하겠냐?”
“…….”
그 말에 리시나스가 침묵했다.
“힘내. 애들이 우리가 물려준 세계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그 고생을 했는데……. 의기소침해 있으면 부끄럽잖아.”
“…… 그것도 그러네.”
“앗~ 레오님~”
그때 귓가로 에이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첨탑 아래를 바라보니 에이란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원래라면 목소리가 닿을 리 없었지만 레오와 리시나스는 그 목소리를 듣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 에이란 곁에는 첸 시아가 있었다.
아무래도 레오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리시나스가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리시나스를 발견 한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렇게 보니 진짜 닮았네.”
리시나스는 두 사람에게서 베르키아와 비하르의 모습을 보았다.
잠시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시나스가 말했다.
“카일.”
“왜?”
“만약……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뭐?”
“우리가 다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
리시나스가 말하는 우리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레오는 잘 알았다.
대영웅들.
드웨노의 세계에서 아르티안의 몸을 빌려 드웨노 앞에 섰던 리시나스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강한 의지의 발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도 희미하기만 했다.
리시나스의 물음에 레오가 눈을 감았다.
“…… 아마 힘들겠지.”
“그렇지?”
“하지만 꼭 다 같이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네.”
레오의 말에 리시나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거에 기대하지 않는 편 아니었어?”
“어떤 망할 도마뱀이 거짓된 희망도 힘이 된다는 걸 가르쳐줬거든.”
레오의 빈정거림에 리시나스가 쿡쿡- 웃었다.
“그럼 만약에 다섯이 한자리에 모이면 넌 뭐부터 할 거야?”
“난 꼭 해야 할 일이 있지.”
“뭔데?”
“루나. 그 녀석을 박살 내버릴 거야.”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는 리시나스를 보며 레오는 생각했다.
‘도망치는 게 나으려나. 변태 드워프 뒤에 숨는 게 나으려나.’
뭐가 됐든 그 현장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드래곤의 분노를 지켜보던 레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리시나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
레오의 중얼거림에 리시나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레오와 리시나스가 조사하려 했던 이상 기후 사태다.
“갑자기?”
레오가 인상을 썼다.
레오가 데비앙에 도착했을 때 눈은 모두 그치고 녹아 사라진 후였다.
물어보니 레오 일행이 도착하기 직전 눈이 그쳤고 그 이후로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눈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눈을 바라보던 리시나스가 말했다.
“혹시.”
“응?”
“에레보스의 조각이 한동안 데비앙이 아닌 다른 곳에 있던 건 아닐까?”
“…….”
그 말에 레오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에레보스의 조각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만약 리시나스의 말처럼 잠시 다른 곳으로 갔다가 왔다면 갑자기 그쳤던 눈이 다시 오는 것도 납득이 갔다.
하지만…….
“왜?”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을 하는 건 이해 한다.
타르타로스와 결탁했을 수도 있으니까.
타르타로스는 부활한 에레보스의 조각을 따를 테니.
하지만 그러한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그랬다면 타르타로스를 떠나지 않았겠지. 오히려 그곳에서 힘을 키웠을 거야.”
오히려 떠났던 에레보스의 조각이 돌아온 이 상황이 더 이상했다.
리시나스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한때 세상의 모든 지혜를 통달한 혜안을 가졌다던 지혜의 왕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땅에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필요한 무언가?”
“응.”
리시나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쩌면 에레보스의 조각은 에레보스로서 부활한 게 아닐지 몰라. 만약 에레보스가 과거에 삼켰다던 옛 악신의 형태로 부활한 거라면.”
레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타르타로스 장악에 실패했을 확률이 있어.”
타르타로스는 오직 자신의 창조주만을 따르니까.
“그럼 지금 상황에서 옛 악신에게 필요한 건 뭘까?”
“자신의 군단.”
“맞아.”
리시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 땅에 다시 돌아왔다면……. 어쩌면 이곳에 옛 악신의 군단이 잠들어 있을지도 몰라.”
리시나스의 말에 레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옛 악신의 군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