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764)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765화(764/768)
765.
그곳은 얼음으로 지어진 신전이었다.
마치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신전은 차가운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은 숨을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차가움.
그 신전 안에 새하얀 로브를 입은 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아름다운 미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창백한 푸른색의 피부는 그들이 지상의 생물이 아니라 마족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 있는 이들이 바로 죽음의 빙결이라 불리는 닉스의 심복인 성자와 성녀였다.
가장 상석에 앉은 첫 번째 성자, 비통의 아케론을 향해 세 번째 성녀, 퓌리가 입을 열었다.
“아케론이시여. 여신께서는 또 깊은 잠에 드셨나이까?”
퓌리의 물음에 아케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성자, 플레게톤이 자신이 앉은 의자의 손잡이를 내리쳤다.
쾅-!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재앙의 불꽃은 잠이 든 게 아니었소?”
그리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음의 빙결 닉스가 재앙의 불꽃 에레보스의 조각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가진 악신으로 부활한 이후.
닉스가 깨어난 걸 깨닫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스틱스의 마족들은 단번에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세상에 재앙의 불꽃 에레보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달은 스틱스의 성자와 성녀들은 타르타로스의 멸망을 확신하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유를 알 순 없으나 타르타로스의 악신인 에레보스가 없다면 닉스를 막아낼 존재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타르타로스와 스틱스였으나 두 세력은 탄생한 순간부터 서로를 멸망시키기 위해 싸워 온 원수 관계였다.
타르타로스와 스틱스가 서로를 증오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시는 악신들의 염원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자신조차 사라지길 원하는 에레보스.
세상 모든 것을 얼려 영원히 멈춰버린 세계로 만들고 자신조차 변치 않는 모습으로 죽음을 바라는 닉스.
두 악신의 사상은 절대 함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악신의 염원을 이루려 하는 휘하 마족들인 타르타로스와 스틱스 역시 결코 섞일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그 흉물들을 모조리 불태워 정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세 번째 성녀 퓌리가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퓌리의 창백한 푸른 피부가 일순간 주황색으로 변하더니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틱스의 성자와 성녀는 타르타로스의 군단장과 같다.
성자와 성녀는 각각 네 명씩 존재하며 그들은 서로 짝을 이뤄 네 개의 기사단을 이끈다.
둘 중 한 명은 기사단을 이끌고 지휘하며 다른 한 명은 압도적인 힘으로 적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스틱스의 세 번째 성자와 성녀는 조금 특별했다.
불의 성녀 퓌리와 피의 성자 플레게톤.
이들은 정화의 기사단을 이끌었는데 그들의 무력을 대변하는 자는 다름 아닌 불의 성녀였다.
자신의 주인과 반대되는 힘을 가진 퓌리의 임무는 세상의 흉물스러운 것을 불태워 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잿더미들을 피의 강을 만들어 정화의 기사단과 함께 흘려내는 것이 피의 성자 플레게톤의 임무였다.
죽음의 빙결 닉스는 영원히 멈춰 버린 죽음의 세계를 원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변치 않는 세계를 자신의 작품이라 여겼다.
그런 만큼 세계를 빙결시키기 전 자신의 기준에서 아름답지 못한 건 불태우길 원했고.
그 희망에 따라 탄생한 것이 바로 세 번째 성자와 성녀였다.
그런 만큼 흉물스러움 그 자체인 타르타로스를 가장 증오하는 기사단이 정화의 기사단이었다.
플레게톤과 퓌리의 분노에 비통의 아케론이 대답했다.
“재앙의 불꽃은 봉인되었다. 하지만 사령왕이란 군단장이 자신의 주인의 힘을 다루더군.”
“하. 고작 봉인 당해 피조물에 힘을 빌려주는 신세라니.”
“흉측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만든 악신답군요. 품격이란 게 존재하지 않아요.”
플레게톤과 퓌리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네 번째 성자, 망각의 레테가 입을 열었다.
“아케론이시여. 두 번째 성자…… 시름의 코퀴토스는 눈을 떴습니까?”
“뜨지 않았다.”
첫 번째 성녀와 네 번째 성녀는 스틱스가 지하에 잠들기 전 타르타로스와의 전쟁에서 소멸했다.
그런 만큼 현재는 공석으로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 번째 성녀까지 사라졌다.
특히나 두 번째 성녀와 같은 운명으로 엮인 안식의 기사단은 영원히 소멸하고 말았다.
레테가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그 히어로 레코드라는 것과 영웅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죠?”
퓌리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흉측한 것들을 불태운다.
그런 만큼 성자와 성녀 중 퓌리는 가장 파괴적인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적을 불태워 왔고 그런 만큼 자신의 힘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지닌 마족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스틱스의 수장, 아케론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봤자 노예 종족일 뿐이지.’
퓌리가 비웃음을 드러낼 때였다.
“히어로 레코드라는 것도 결국 천상의 신들이 사용하던 레코드 시스템일 뿐이잖소?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오.”
플레게톤이 미간을 좁혔다.
“두 번째 성녀가 인간에게 죽었다.”
“두 번째 성녀는 비극적이게도 약했소. 노예 종족에가 당한 건 놀랍지만……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라는 법은 없지 않소?”
“두 번째 성녀는 잠들기 전 여신께 은총을 받았었다.”
아케론의 말에 분위기가 돌변했다.
“그녀는 잠시나마 ‘불멸’ 의 존재가 될 수 있는 허락을 누린 것이다. 그런데도 소멸했지.”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레테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인간 따위가 불멸의 권능을 가진 자를 쓰러트리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결국 에레보스에게 집어삼켜진 닉스는 오랜 세월이 흘러 부활했다.
그것만 보더라도 불멸의 권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역사란 걸 찾아봤지.”
다른 성자와 성녀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등한 종족의 역사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모든 악신을 집어삼킨 재앙의 불꽃과 타르타로스는 5000년 전, 끝내 이 세계를 불태우려 했었다.”
“끝내 그 흉물이 그런 신성 모독을 했단 말이오?!”
플레게톤이 엄청난 분노를 드러냈다.
레테가 플레게톤의 어깨를 잡았다.
분노가 일순간 사라졌다.
분노를 망각한 것이다.
“그래서? 여섯 악신의 집어삼킨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왜 이 세계는 존속하고 있는 겁니까? 힘을 제어하지 못해 자멸이라도 한 겁니까?”
차분하게 묻는 레테를 보며 아케론이 말했다.
“아니, 세계는 끝내 멸망 직전까지 갔지. 그런 상황에서 대영웅이란 자들이 등장했다고 하더군.”
“대영웅?”
“지상의 다섯 종족을 대표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그 대영웅이란 것들이 뭘 했다는 거죠? 다섯이서 재앙의 불꽃을 토벌했다는 재미없는 농담을 하려는 건 아니죠?”
“아케론. 당신은 농담에 소질이 없는 줄 알았더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오.”
퓌리와 플레게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가 농담이나 하자고 그대들을 모은 것 같나?”
싸늘한 아케론의 말에 퓌리와 플레게톤이 눈을 부릅떴다,
레테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아케론을 바라보았다.
“그게 말이 됩니까? 지상의 종족들은 망각의 축복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들이 허황된 이야기를 지어낸 건 아닐는지요?”
레테의 물음에 아케론이 히어로 레코드 조각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대영웅들이란 자들의 행적은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되었다.
지상의 이들은 망각했을지 모르지. 그러나 레코드 시스템은 진실이다.”
그 말은 스틱스의 마족들에게 있어 충격적인 말이었다.
신의 시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온 그들에게 지상의 종족들이 악신을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놀라워할 필요 없다. 그 대영웅이란 자들은 5000년 전 사라졌다.”
덤덤하게 말한 아케론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신들조차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지. 자신들의 모든 힘을 쏟아낸 이 ‘히어로 레코드’란 걸 남겨 놓고.”
“그건 정확하게 어떤 물건입니까?”
“일종의 영웅 육성 시스템이더군. 레코드에 기록된 선대의 힘과 경험을 계승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위업을 이루어 다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지금에 와서는 망가진 모양이지만…… 그래도 작동 자체는 문제없는 모양이더군.”
아케론이 히어로 레코드를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아마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중 5000년 전 에레보스를 쓰러트린 인간의 능력을 계승한 자가 있겠지. 두 번째 성녀가 소멸한 건 그 인간에게 당했기 때문일 거다.”
“능력을 계승한다라.”
“그래서 지금은 영웅의 시대라 불리는 모양이야.”
“영웅의 시대?”
“그래. 우리가 잠들고 난 이후의 시대를 신의 시대. 재앙의 불꽃이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은 시대를 재앙의 시대, 5000년 전 재앙의 불꽃을 토벌한 이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를 영웅들이 세상을 이끄는 영웅의 시대라 부르는 모양이군.”
“하!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필멸자들이 세계를 이끈다고요? 말도 안 되네요.”
퓌리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군요.”
레테도 황당해하자 플레게톤이 코웃음을 쳤다.
“천상의 것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는 의무조차 다하지 않는 무지렁이들이 아니오?”
그 말에 아케론이 입을 열었다.
“우리로서는 잘된 이야기지.”
성자와 성녀가 아케론을 바라보았다.
“지상의 종족에게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진정한 주인이 되돌아 왔다는 걸.”
모든 걸 불태웠던 에레보스와 달리 닉스는 한때 여신으로서 군림했던 악신이다.
변치 않는 영원을 약속하며 지상의 종족들을 유혹했다.
그 결과 신의 시대 이전, 스틱스가 강대한 세력을 떨칠 때 모든 인간은 닉스를 섬기던 시절도 있었다.
“어떻게 알리는 게 좋겠습니까? 저들은 우리의 존재를 망각했을 텐데요.”
레테의 말에 아케론이 말했다.
“영웅의 시대니, 뭐니 떠들어도 결국 천상의 신에 의해 선별된 가짜 영웅들일 뿐이지.”
아케론이 신전 안쪽을 바라보았다.
“우리에게는 과거 여신께서 선별한 진짜 영웅들이 있지 않나?”
“아아.”
레테가 탄성을 내질렀다.
“영웅을 영웅으로 꺾는다라. 옳으신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