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766)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767화(766/768)
767.
사박- 사박-
“이놈의 날씨는 참.”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며 셀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왜인지 모를 이상 기후 탓에 본의 아니게 데비앙은 한겨울이었다.
‘레오 녀석은 뭔가 낌새를 아는 느낌인 것 같던데.’
사촌을 떠올리며 셀리아가 입술을 살짝 삐죽 내밀었다.
얄미운 자신의 사촌은 묻는다고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셀리아는 수도인 데앙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불렀어? 가린?’
‘셀리아. 오늘 오후에 할 일이 있어?’
‘딱히 없는데?’
‘그럼 나와 데앙에 가지 않겠어?’
‘응? 알았어.’
‘저, 정말인가? 나, 나중에 데앙 입구에서 만나도록 하지!’
점심 무렵.
자신을 불러내 약속을 잡았던 가린을 떠올리며 셀리아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엘프들도 참 이상해. 전에는 그렇게 인간 문화에 관심 없어 하더니 지금은 배우고 싶어 안달이라니.”
셀리아는 가린이 관광 가이드가 필요해 자신을 불렀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세전 때부터 셀리아는 가린과 안면을 터 왔다.
2학년 초창기 때는 세이룬 자체가 순혈회 때문에 혼란스러웠기에 서먹했지만 영웅의 제전 당시에는 꽤 친해졌다.
선의의 경쟁을 하는 다른 학교의 친구.
그렇기에 단순히 자신에게 데앙의 안내를 부탁했다고 생각했다.
가린에 대해 떠올리던 셀리아의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한 엘프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가린의 쌍둥이 여동생 아리스였다.
가린은 마법보다 검술에 더욱 특화되었고 아리스는 마법에 특화되었다.
그녀 역시 검술이 약하지는 않았지만 루메른의 기사학과생들보다는 마법학과생들과 더욱 깊게 교류했다.
그런 만큼 셀리아에게 있어 아리스는 가린의 여동생이라는 것 이외에 큰 접점은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요즘 셀리아는 묘하게 아리스가 신경 쓰였다.
‘그 애는 아바드가 좋은 건가?’
최근 유독 아바드와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고 순순히 인정해요. 셀리아 양. 아바드 군에게 마음 있다고.’
순간 며칠 전 첸 시아가 했던 말을 떠올린 셀리아가 본능적으로 발끈했다.
‘그 버터에게 누가 마음이 있다는 거야 누가……!’
하지만 이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애초에 난 아바드랑 무슨 사이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
셀리아와 아바드의 관계는 이렇게 정의될 수 있었다.
기억이란 게 있을 때부터 아바드와는 알고 지낸 관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르딩거와 르왈린은 서로를 꺾으려 하는 관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로드렌 황가를 따르는 가문.
제국 내 기사와 마법사의 정점으로서 최고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지 철천지원수는 아니다.
실제로 셀리아와 아바드 역시 끝없이 경쟁해 온 사이였다.
‘뭐, 정확하게는 항상 그 쥐방울이랑만 경쟁해 온 것 같지만.’
아바드와는 첼시처럼 싸운 적이 없다.
타오를 듯한 경쟁심을 불태운 건 어디까지나 셀리아 쪽이었다.
‘뭐, 아바드도 나한테 안 지려고 노력을 엄청했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좋은 라이벌이다.
아바드는 언젠가 르왈린 가문의 수장이 될 것이고 자신은 오빠인 리스를 도와 제르딩거를 더욱더 대단한 가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 자극을 주며 나아갈 친구.
‘분명 그랬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어울리는 시간이 늘었다.
3학년 중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이들을 꼽으라면 셀리아와 아바드였다.
셀리아의 화염의 오러는 아바드의 바람의 마법과 함께할 때 더욱 강해지고 더욱 날카로워졌다.
어릴 때부터 서로에게 이기기 위해 상대방의 연구를 많이 한 결과였다.
전혀 합의 맞지 않는 첼시와는 대조적이었다.
아바드와 달리 첼시와는 성격부터가 맞지 않았다.
‘애초에 나나 첼시가 서로에게 맞춰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
아바드와 이렇게까지 호흡이 맞을 수 있다는 걸 안 입학시험 당시부터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레오가 알려준 사실이다.
1등을 노리며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던 그 시기는 셀리아와 아바드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바드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셀리아는 데앙으로 향했다.
“셀리아!”
“먼저 와 있었구나? 오래 기다렸어?”
“전혀! 나도 방금 막 왔어. 그런데…….”
가린이 셀리아를 살폈다.
평소의 교복 차림이 아니었다.
셀리아가 평상시에 입는 제르딩거 가문의 하얀 제복이었다.
셀리아가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바르게 섰다.
“나도 데앙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인간의 도시니까 내가 잘 에스코트 해줄게.”
“뭐? 아, 아니. 내가 에스코트를…….”
“아니야. 모르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봐.”
셀리아가 생긋 웃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 모습은 언뜻 보기에 호위기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린이 당황하며 셀리아의 뒤를 따랐다.
***
샥-
데앙의 대로를 걷는 셀리아와 가린.
그런 두 사람이 보이는 골목에 첸 시아와 클로에가 얼굴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만났네요.”
“쟨 데이트 복장이 왜 저래?”
“본인은 데이트라고 생각 안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두 사람의 대화에 에이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몰래 따라가는 건 실례 아닐까요? 그리고 이렇게 보는 이유가 뭔가요?”
“재미있잖아.”
“재, 재미요? 이건 훔쳐보는 거잖아요.”
루니아의 대답에 에이란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골목에서 아리스가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어 가린의 얼굴을 보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풉! 저 멍청한 얼굴로 저렇게 멋있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 보니 진짜 웃기네! 푸크흐흐흐흡!”
엘프는 기본적으로 미형의 종족이라 가린 또한 척 보기에 굉장히 멋진 미남이었다.
하지만 아리스의 눈에는 그저 원수 덩어리 그 자체였기에 웃길 뿐이었다.
“넌 왜 따라온 거야?”
“저 바보가 데이트한다고 하잖아! 게다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셀리아 제르딩거고! 100% 차일 텐데 이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것 같아?”
아리스가 생각만 해도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리스를 보며 에이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가린이 100% 차인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거 아니야? 아바드가 셀리아 제르딩거에게 마음이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우리 바보 오빠에게 승산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바드가 셀리아에게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를 듣던 클로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바드에게 직접 들었어?”
루니아가 팔짱을 끼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아리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그냥 척 보면 알잖아?”
“그래요. 척 보면 알죠.”
첸 시아도 동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셀리아와 가장 친한 클로에는 당황했다.
“난 왜 몰랐던 거야?”
“음……. 클로에 양이 연애 바보라서?”
그 말에 클로에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첸 시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독서 취향을 좀 넓혀 봐요.”
“어떤 걸 읽어야 하는데.”
“에이란 양이 읽는 외설스러운 책 같은 거?”
그 말을 듣고 이번에는 에이란이 첸 시아의 옆구리를 마구 찔렀다.
그 모습을 보던 루니아가 말했다.
“그런데 아리스. 너도 아바드에게 마음이 있는 거 아니었어? 최근에 진짜 노골적으로 접근했잖아.”
“응? 딱히 연애 감정은 없는데. 끌리는 상대가 있는 사람에게 들이댈 정도로 난 파렴치한이 아니야.”
“그럼 왜 가까이 지낸 거야?”
“그야! 미남이니까!”
아리스가 당당히 말했다.
“엘프들 사이에서는 볼 수 없는 미남이라고! 루메른의 듀란도 마찬가지고! 친해지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지극히 사심 가득한 말을 당당하게 하는 아리스를 보며 루니아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런 게 세이룬 최우등생 중 하나라니.”
“깡패인 너나 독서 취향이 이상한 에이란보다는 내가 더 멀쩡하다고 생각하거든?”
“뭐? 너 뭐라고 했냐?”
“우으으으으!”
“켁켁켁!”
루니아는 희번덕거리며 아리스의 멱살을 잡았고 에이란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뒤에서 아리스의 목을 졸랐다.
그 모습을 보며 클로에가 중얼거렸다.
“보고 있으면 세이룬 애들도 참 특이해.”
“우리만큼 이상하긴 하죠. 그나저나 이러다 놓치겠어요. 다들 움직여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딱 잘라 말한 첸 시아가 황급히 말했다.
한편.
아바드와 함께 데앙에 온 레오는 입구 주변 카페에 앉아 그 모습을 보며 턱을 괴었다.
루니아 일행을 본 건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다들 한가한가? 훈련량을 좀 늘려야 하나?”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레오를 보며 맞은 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아바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서 훈련 강도를 더 늘리면 진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몰라.”
다른 누구도 아닌 루메른과 세이룬 최우등생들의 폭동이다.
작은 규모의 왕국이면 국가 전복도 가능할 수준의 대전력인 셈이다.
“일으켜 보라지.”
물론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레오였다.
폭동을 일으키면 정말 무참하게 진압할 남자.
“다 잘되라고 하는 건데 그 마음을 못 알아준다면 혼나야지.”
“……가끔 보면 네가 진짜 내 또래가 맞는지 의심이 될 때가 있어.”
가소롭다는 듯 웃는 레오를 보며 아바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진 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각이 묘하게 참견 좋아하는 어른이다.
아바드의 말에 피식 웃은 레오가 물었다.
“그래서? 날 따로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레오의 말에 아바드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레오와 시선을 마주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레오, 네가 보기에 나는 셀리아에게 어울리는 남자인가?”
“흠.”
레오가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셀리아가 예전에 그랬거든. 자기 이상형이 너라고.”
“걘 왜 그런 말을 했데?”
-그러게. 너 같은 등신이 뭐가 멋있다고?
‘그 등신에게 반한 넌?’
영령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던 리시나스가 한마디 하자 레오가 바로 받아쳤다.
“어울리고 자시고가 어딨어?”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너희끼리 좋으면 사귀는 거지.”
“가볍게 만날 생각은 없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걸 계기로 오랜 세월 경쟁해온 르왈린과 제르딩거도 더욱 화합했으면 하고.”
르왈린의 후계자로서 아바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두 가문이 혈연으로 묶이게 되면 지금보다 더 힘을 합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시대가 혼란해. 너도 알겠지만……. 불의 오러와 바람의 마법을 다루는 제르딩거와 르왈린이 힘을 합치면 더욱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어.”
모든 제르딩거와 르왈린이 셀리아나 아바드처럼 제르딩거의 불과 르왈린의 바람을 융합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평상시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어렵다.
“그렇게 되면 로드렌 제국은 더 굳건해질 거야.”
“그게 목표라면 셀리아에게 고백하면 되잖아.”
“할 거야. 하지만 네 도움이 필요해.”
“내 도움이 왜?”
“너도 알겠지만 르왈린의 직계와 제르딩거의 직계가 혼인을 하는 건 상상도 하긴 힘든 일이야.”
확실히 그랬다.
젊은 세대라면 모를까?
가문의 요직에 앉아 있는 이들은 서로를 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반드시 꺾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로드렌이 위기에 빠지지 않으면 힘을 합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당장에 겨울 방학 때도 그랬지.’
유산 상속 문제로 장로회와 대립 할 때 레이나는 레오를 첼시와 결혼시키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장로회를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건 르왈린 역시 다르진 않을 것이다.
후계자인 아바드가 셀리아와 혼인할 거라고 하면 당장에 뒤집어질게 뻔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을 것 같은데.”
이미 제르딩거 장로회는 레오가 뒤집어 놨다.
하지만 르왈린 쪽까지는 레오의 능력 밖이다.
“만약 셀리아가 날 받아들여 줬을 때. 가문의 반발을 누그러트리는 방법이 있어.”
“그게 뭔데?”
레오의 물음에 아바드가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은 레오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한 번 비슷한 일이 있으면 돼. 그러니 레오. 첼시와 결혼해 줘.”
“푸웁!”
느닷없는 말에 레오가 커피를 내뿜었다.
***
“추악하군요.”
세 번째 성녀, 퓌리가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 도시는 추악해요. 플레게톤. 저런 보잘 것 없는 것들은 모두 정화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닉스께서 영웅 후보생들에게 흥미를 가졌다는 걸 잊지마라, 퓌리여.”
“천박한 신들의 인정을 구걸하는 이들이 과연 여신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아름다운 자는 없다는 걸 명심해라, 그리고 이번 우리의 목표는 모든 걸 불태우는 게 아니야.”
플레게톤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주인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여신의 재림을 알리는 경사스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