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798)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797화(798/844)
797.
솨아아아아-!
비가 내렸다.
시간이란 얄궂다.
기쁘고 행복한 것.
슬프고 불행한 것.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퇴색되어 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정과 기억이 존재한다.
레아에게 있어서는 지금 내리고 있는 비가 그러한 것이었다.
지혜의 왕 리시나스로서 눈을 감기 직전.
하늘에서는 지금처럼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쾌해.”
레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지금 모든 것이 불쾌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생명을 갉아 먹는 검은 비도.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거인왕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카일의 모습을 한 에레보스의 사념이 가장 불쾌했다.
“레아! 기아스가 또 나타났어! 어떻게 해야 해?!”
“설마 거인왕을 죽여도 계속 되살아나는 건가?!”
카르와 발하르가 다급하게 물었다.
무한하게 나타나는 거인왕.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카르와 발하르는 그 불가능한 일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태초의 악이라 불리는 재앙의 불꽃.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장본인이다.
말 그대로 세계가 존재한 이래에 최흉의 적.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재앙을 선사하는 존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두 사람이다.
그 재앙에 짓눌려 자신들은 결국 친우에게 짐을 떠넘기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두 사람의 물음에 레아가 말했다.
“기아스의 상태를 본다면……. 저건 가드스론 공방전 당시의 기아스야.”
레아의 말에 카르와 발하르가 얼굴을 찡그렸다.
가드스론 공방전.
당시 지혜의 왕과 성운의 시조, 시작의 영웅이 가드스론을 비운 사이 거인왕 기아스가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대대적으로 쳐들어왔던 사건이다.
당시에 가드스론을 지키고 있었던 드웨노와 아르온이 거인왕의 군단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가드스론 역시 만만찮은 피해를 입었지만, 당시 전력을 봤을 때 가드스론의 승리는 기적에 가까웠다.
“그 시절의 기아스라면 쓰러트리는 건 어렵지 않겠군.”
발하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군단장은 완성된 존재다.
순수한 힘으로만 본다면 권능을 가진 그 당시의 기아스가 지금보다 더욱 강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투력은 순수한 힘으로만 좌지우지되지 않지.’
대영웅들이 재앙의 시대를 거치며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 그걸 자신의 힘으로 승화시켰듯.
군단장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재앙의 시대는 물론이고 이후 영웅의 시대까지 두려운 재앙으로 존재하며 무수히 많은 경험을 했을 터.
과거의 존재는 과거의 존재일 뿐.
이미 쓰러트린 적이 있는 과거의 기아스에 대한 공략법 자체를 알고 있는 대영웅들이다.
그랬기에 한 번 쓰러트렸던 적을 다시 쓰러트리는 건 대영웅들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지금은 군단을 이끌지도 않고 이쪽은 셋이나 있으니까.’
하지만…….
“아까 분명 쓰러트렸는데 다시 살아 난건 뭐야?”
카르의 물음에 레아가 말했다.
“히어로 레코드.”
“뭐?”
“에레보스 사념이 히어로 레코드에서 과거의 거인왕을 불러낸 것 같아.”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거겠지. 여기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는 저놈이 쥐고 있는 히어로 레코드뿐이니까.”
그건 지혜의 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이의 혜안이었다.
“태초의 악이라 불리지만 에레보스는 악신이야. 본질적으로는 신이나 다름없지.”
레아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히어로 레코드는 신들이 만든 물건이니, 히어로 레코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야.”
“그럼 에레보스가 히어로 레코드를 변형시켜 과거의 부하를 불러내고 있다는 건가?”
“그건 알 수 없지. 히어로 레코드를 변형시킨 건지……. 아니면 원래 히어로 레코드의 능력인 건지.”
레아가 손을 쥐락펴락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저 거인왕을 쓰러트리면 에레보스의 사념은 더 이상 기아스를 소환할 수 없어.”
“어째서지?”
“기아스를 소환하기 전보다 놈의 힘이 약해졌어.”
“호오?”
“히어로 레코드에서 과거의 군단장을 꺼내오는 건 막대한 힘을 소비하는 게 분명해.”
냉철하고 정확한 상황 파악에 카르가 말했다.
“와……. 방금 옛날 리시나스 같았어.”
레아가 찌릿- 시선을 주었다.
“리시나스가 아니라 레아.”
“합.”
카르가 다급히 입을 막았다.
“확실히 옛날 자네 같구먼. 다소 흐리멍덩하던 모습이 싹 사라졌어.”
발하르가 배틀 엑스를 어깨에 걸쳤다.
“카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가?”
“……난 저걸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자네만 용납할 수 없는 게 아닐세.”
발하르가 카일의 모습을 한 에레보스의 사념을 바라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이 카일을 모욕하는 건 나와 카르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네.”
고오오오오오-
발하르의 몸에서 황금색 화염이 흘러나왔다.
그걸 본 레아가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나 혼자 처리하도록 하지.”
발하르가 지상으로 내려갔다.
그와 함께 발하르가 내뿜는 황금색 화염은 더욱 거세져만 갔다.
“발……하르?”
레아는 그런 발하르의 뒷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상에 내려선 발하르의 몸에서 더욱 강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이전 삶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좋아했던 적이 거의 없지.’
어린 시절에는 감당할 수 없는 힘 때문에.
이후에는 무엇 하나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에는 결국 떠넘기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없는 나약함 때문에.
드웨노라는 드워프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런 나보다도 스스로를 싫어하는 자는 자네가 처음이었네, 카일.’
최소한 드웨노는 이 세계만큼은 사랑했다.
이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아꼈다.
그랬기에 모든 걸 걸고 이 세계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미 삶 자체가 잿빛이 되어버린 카일은 무엇 때문에 고난을 이겨나가며 세계를 지키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나는 자네를 이해할 수 없네. 무엇이 자네를 그렇게 포기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터벅- 터벅-
화르르르륵-
‘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큼 알고 있지.’
지혜의 왕은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구했다.
운명에 선택받은 사람.
위기의 순간에 세상을 구할 구원자 그 자체였다.
성운의 시조는 끝없는 가능성을 꿈꾸며 세상을 구했다.
이 세계는 그녀에게 있어 가능성 그 자체였으니까.
용자는 보지 못한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세상을 구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세상을 구했다.
‘자네가 우리를 위해 세상을 구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구원받은 세상을 자신이 누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좋아해 보기로 했네.’
황금색 불꽃은 드웨노에게 있어 저주였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파괴의 상징.
파괴만을 불러오는 자신의 존재가 싫어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불꽃을 싫어했던 드웨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했기에 이용했을 뿐이었다.
‘절대로 잃지 않을 생각이네.’
화르르르륵-
‘자네가 구한 이 세상을.’
고오오오오-!
드웨노가 내뿜는 불꽃이 이내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네를, 5000년 전 그때를 뒤돌아보지 않을 걸세.’
과거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갔다.
방황 따위는 하지 않는다.
시작의 영웅은 이제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그게 이 세계를 후대에 물려준 자네를 위하는 길일 테니까.’
전생에 닿지 못했던 영역으로 드웨노는 손을 뻗었다.
황금색 불꽃으로 만들어진 거인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 몸은 이내 거인왕보다 더욱 거대해졌다.
치이이이이익-!
마치 어두운 밤에 태양이라도 뜬 것처럼 주변이 환해졌다.
검은 비가 증발하고.
에레보스의 사념이 히어로 레코드에 영향을 끼쳐 불러온 과거의 편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거의 조각 따위로는 더 이상 나를 막을 수 없네.”
발하르가 손을 들었다.
거인이 그에 맞춰 손을 들어 올렸다.
“5000년 전 그대가 나를 불태워 죽였었지.”
드웨노의 눈에서 황금색 안광이 번뜩였다.
“이번 생에서는……. 내가 그대를 불태워 죽여주지.”
콰아아아아앙-!
화염의 거인의 주먹이 철퇴처럼 기아스를 내리쳤다.
흔적도 없이 기아스와 에레보스의 사념이 증발했다.
화르르르륵-
황금색 화염이 흩어진다.
팔짱을 낀 발하르가 놀란 표정을 짓는 친우들을 힐끗 뒤돌아보았다.
‘방황해도 좋네. 그건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발하르가 에르디엔 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진 않겠네.’
발하르가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빨리 따라오게.’
5000년 전, 자신이 뒤에서 친우들을 바쳐주는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5000년 전 리시나스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자신이 이끌 차례다.
발하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게. 그건 자네들과 어울리지 않아.”
***
“오호……. 과연 나야. 이런 마법들을 생각하다니.”
룬은 레오가 알려준 마법을 보고 감탄했다.
책상 위에는 무수히 많은 마법 술식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
룬은 엄청난 속도로 그 마법들을 확인했다.
그런 룬을 바라보던 레오가 말했다.
“너.”
“응?”
“발전이 전혀 없었구나?”
레오의 말에 룬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뭐! 뭐! 뭐!”
“아니. 충격적이잖아. 천하의 루나 루비넌스가 발전이 전혀 없다니.”
레오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니아와 에이란도 우리 쪽 루니아와 에이란과 비교하면 성장이 더디고.”
“흥! 그렇게 네가 지도를 잘하면 네가 지도하면 되잖아? 첼시와 일리아나처럼.”
룬이 코웃음을 치자 레오가 말했다.
“아니. 그건 안 돼.”
“응?”
“그건 내 역할이 아니야. 네 역할이지.”
“…….”
레오의 말에 룬이 마법 술식을 내려놓았다.
“카일.”
“왜?”
“너…… 돌아갈 생…….”
쾅-!
“레오! 속보야! 속보!”
그때 문이 열리고 칼이 들어왔다.
현재 레오와 룬이 머물고 있는 곳은 칼이 운영하는 여관 개인실이었다.
외부인인 레오가 계속해서 루메른 내에서 머무를 수는 없었기에 룬을 만난 다음 날 아침. 루메른을 나온 것이다.
룬은 그런 레오를 따라온 것이었고.
“무슨 일이야?”
룬이 새침한 얼굴로 칼을 바라보았다.
그런 룬의 반응에 칼이 볼을 긁적였다.
“어음……. 혹시 내가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요?”
“이 바람둥이 녀석이랑 그런 일 없어.”
룬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바람둥인데.”
“몰라. 이 여자 저 여자 홀리고 다니는 놈은 일단 여자의 적이야.”
날카로운 룬의 반응에 레오가 혀를 찼다.
“그래서. 속보가 뭔데?”
“응! 대륙 서부의 델란이란 왕국에서 이상 사태가 발생했대!”
“……델란?”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응. 델란의 플로브 후작가의 영토에서 검은 불꽃의 기둥이 목격됐다는 모양이야!”
칼의 말에 룬의 얼굴이 굳었다.
검은 불꽃 기둥.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로브 영토에는 에레보스의 조각이 봉인되어 있었어.’
이 세계선의 역사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이 환생함으로써 세계선이 갈렸지. 일어난 사건들도 틀어졌고.’
마물 여왕과 거인왕이 토벌되지 않았다.
환생한 대영웅이라는 강력한 억제력이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르키아가 사령왕의 손에 농락당하지 않았다.
레오 혼자라면 모를까.
대영웅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사령왕이 베르키아를 망자로 살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베르키아 정도 되는 영웅을 망자로 소환하는 건 사령왕 놈에게도 타격이 클 테니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힘만 허비하게 되는 일을 사령왕이 할 리 없다.
‘그리고 에레보스의 조각이 부활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건 자신이 세계선에 존재하지 않은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자신이 에레보스를 토벌하고 5000년 전.
3000년 전 첫 번째 조각이 부활한 후 레오가 사는 시대에 두 개의 조각이 더 부활했다.
‘……이제 눈을 뜨는 건가.’
레오가 혀를 찼다.
“가자, 룬.”
“바로 준비할게.”
“아니, 지금 당장 가야 해.”
“응?”
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플로브 영지의 검은 불꽃 기둥은 단순히 에레보스 힘의 편린 같은 게 아니야.”
“그럼?”
“에레보스의 두 번째 조각이 부활한 거야.”
“뭐?”
룬과 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