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800)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799화(800/844)
799.
화염의 마녀라는 이명답게 레이나가 입에 불을 뿜을 기세로 레오에게 달려들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물론 레오는 그런 레이나를 가뿐히 피해 다녔지만 말이다.
“허억……. 허억……!”
무릎에 손을 짚은 레이나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한 대……. 꿀밤 한 대만 때리게 해줘어어어……!”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간절히 염원하는 레이나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레오가 레이나 앞으로 다가갔다.
“한 대만 때리세요.”
그 말에 눈을 번뜩인 레이나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콩-!
레오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당장에라도 온몸에서 불을 뿜을 듯한 기세로 달려들던 모습과는 대조적인 응징이었다.
“꼬맹이가 까불고 있어.”
가볍게 손바닥을 털며 툴툴거리는 레이나와 그런 레이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레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던 룬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녀석이 누구에게 순순히 맞아줄 리 없는데?’
물론 레오의 언사는 초면에 다소 무례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맞아 줄 정도로 좋은 성격은 아니다.
‘그리고 화염의 마녀도 의외네.’
화염의 마녀 레이나 제르딩거.
압도적인 실력과 실적을 보유한 기사 클래스 영웅.
세이룬의 학생으로서 레이나와 몇 번 정도 만난 적이 있었다.
특히나 세이룬에서 선생을 하고 있는 루니아의 아버지이자 룬드아 가문의 수장 엘런 룬드아와도 인연이 깊기에 함께 영웅의 세계를 공략한 적도 있다.
그랬기에 레이나와는 친분이 꽤나 있는 룬이었다.
호쾌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멋있고 호감형이긴 하지만 한 번 분노하면 강렬한 불꽃 같은 분노를 표출하는 레이나다.
그런 레이나가 충분히 분노할만한 말을 들었음에도 가벼운 꿀밤 정도로 넘어간 건 놀라운 일이었다.
‘지쳐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꽤 집요한 성격의 소유자란 걸 알기에 레오를 봐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볍게 꿀밤으로 끝내다니. 레이나답지 않네요.”
룬이 걸어가면서 말하자 레이나가 팔짱을 끼고 빙긋 웃었다.
“룬 학생회장의 남자친구잖아? 막대할 수야 없지.”
“그래도 지나치게 관대한 것 같은데요? 그리고 이 자식. 엄청 얄밉거든요. 면상에 스트레이트로 한 대 꽂으셔도 되는데요.”
룬이 진담 반, 농담 반을 섞어서 말했다.
“그럴까도 생각했지만.”
레이나가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씩- 웃으며 레오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얄밉기는 한데 이상하게 밉지가 않다고 할까? 눈빛이 건방지긴 하지만 그것도 꽤 귀엽고.”
레오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레이나를 보며 덤덤히 말했다.
“그냥 아들뻘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아들 같아서.”
“너 진짜 죽는 수가 있다? 그게 남자 손도 안 잡아본 처녀에게 할 말이니?”
레이나가 레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자 레오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눈에 차는 남자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묘하게 날 잘 아는 것 같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니?”
“그럴지도 모르죠.”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레오를 레이나가 턱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얼굴로 빤히 바라보았다.
레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던 레이나가 말했다.
“너, 여자 많이 홀리고 다니겠다?”
“자자. 둘이 떨어지시고.”
그때 룬이 레오와 레이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나가 빙긋 웃었다.
“걱정마, 룬 학생회장. 얘는 내 취향도 아닐뿐더러 나이 차이도 너무 많이 나니까.”
팔짱을 낀 레이나가 말했다.
“결정적으로 네 남자친구이기도 하고.”
“남자친구는 아니에요.”
룬의 말에 레이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무슨 관계?”
“이제부터 꼬실 거예요.”
“…….”
레이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도 나이가 먹었나. 요즘 애들은 너무 대담하네.”
‘우리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아.’
룬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레이나가 말했다.
“난 지금 플로브 후작을 만나러 가는 길이야. 너희도 그렇지? 같이 가자.”
“네.”
룬이 고개를 끄덕이고 레이나와 함께 걸었다.
“그러고 보니 루니아와 에이란, 칼은 왜 안 따라오지?”
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레오가 말했다.
“우리 대신 델라드 귀족들을 상대하고 있겠지. 네가 귀찮은 일에 안 휘말리도록.”
“하긴.”
룬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도착했을 때 다소 소란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정식으로 델라드를 방문한 상황인 이상.
그들의 호의를 계속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룬을 귀찮게 하지 않도록 대외적으로 룬의 오른팔과 왼팔인 루니아와 에이란이 귀족들을 적당히 상해주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면 구색은 맞출 수 있을 테니까.
“큰일이네. 검은 불꽃 기둥이라고 하면 태초의 악과 연관이 있을 텐데. 그런 사건이 발생한 나라의 귀족들이 출세에 눈이 먼 머저리들이라니.”
레이나가 혀를 찼다.
그녀 역시 도착하자마자 귀찮을 정도로 달려드는 델라드 귀족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다.
성격 같아서는 다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제르딩거의 대표이자 로드렌의 대표로 사건 조사를 위해 이 나라에 왔다.
‘예전처럼 하고 싶은 대로 사고치고 다닐 나이도 지났고.’
레이나가 입맛을 다셨다.
‘어디 좋은 남자 없나?’
거기까지 생각한 레이나가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얘 눈……. 날 조금 닮았네?’
친근한 느낌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그 때문인 모양이다.
‘흠……. 내가 조금 일찍 결혼을 했으면 얘나 셀리아만 한 자식이 있었겠지?’
실없는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은 레이나가 말했다.
“어쨌든 플로브 영토에 온 이상…… 그 주인을 만나야 하기는 한데……. 델라드 귀족들의 모습을 보니 크게 기대가 안 되네.”
“그거라면 걱정마세요. 플로브 후작은 제대로 된 사람일 테니까요.”
“잘 아는 모양이네?”
“영지민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다고 들었어요. 대표로 인사를 나오지 않은 것도 영지의 소란을 수습하느라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들었고요.”
“흐응? 그나마 멀쩡한 사람인가 보네.”
레이나가 빙긋 웃었다.
잠시 후.
레오는 익숙한 플로브 후작의 집무실 입구에 도착했다.
집무실 앞을 지키던 기사 한 사람이 레이나에게 물었다.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로드렌 제국에서 파견 온 레이나 제르딩거예요. 여긴 세이룬의 학생회장, 룬 오르웨니고요.”
“헙?!”
거물의 등장에 기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현세대 영웅 중에서 발군의 명성을 지닌 레이나 제르딩거와 차세대……. 아니, 현 최강의 대마법사라고까지 칭송받는 세이룬의 학생회장이라니.
평생 동안 감히 만나 볼 수 없는 두 거물의 등장에 굳어 있던 기사가 허둥지둥 말했다.
“여, 영주님께 방문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까지 말한 기사가 노크를 하고 방문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을 잘 받았네.”
“그것도 있지만 영주에 대한 존경심도 느껴지네요.”
레이나와 룬이 기사의 태도를 보고 중얼거렸다.
세상에 강한 기사는 많다.
하지만 진심으로 주군을 따르고 위하는 기사는 드물다.
그건 주군이 진심으로 기사를 대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세계선이 달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지.’
레오가 레이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데이드와 레이나가 결혼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이유.
그건 아마도 레이나가 힘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착실하게 영웅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데이드와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영웅으로서 전장에 서게 되면서 남자를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레오의 세계선에서도 레이나는 올곧고 바른 사람이었다.
힘은 잃었을지언정 자신이 정한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
그런 레이나가 훨씬 좋은 가문의 안주인이 될 수 있었음에도 데이드를 선택한 이유.
그건 데이드의 인품이 누구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다.
영주로서 언제나 영지민들을 생각하는 것.
쉬운 것 같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러기 쉽지 않다.
‘더더욱 아버지는 평범한 분이시니까.’
영웅의 자질을 타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선량하고 올곧은 사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성격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레이나 기준에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레오가 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렸다.
그와 함께 보인 것은 수수한 집무실 내부였다.
레오에게는 익숙한 풍경.
그런 가운데 데이드가 서서 세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로드렌의 위대한 영웅과 세이룬의 학생회장을 뵙습니다. 부족하나마 플로브 영주직을 맡고 있는 데이드 플로브라고 합니다.”
데이드의 인사에 연장자인 레이나가 대표로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플로브 후작님. 이번 사건의 조사를 위해 로드렌을 대표해 파견된 레이나 제르딩거라고 합니다.”
“아. 굉장히 늠름하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여리여리하고 아름다우신 분이라니 깜짝 놀랐습니다”
“오호호호. 제가 아름답긴 하죠.”
데이드의 말에 레이나가 입을 막고 우아하게 웃었다.
데이드의 말이 아부나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인 걸 느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나쁜 귀족이 많다.
하지만 나쁜 귀족만큼은 아니더라도 좋은 귀족도 제법 많다.
레이나는 그런 좋은 귀족들을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데이드의 첫 모습은 꽤 인상 깊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
따뜻한 분위기.
‘산들바람 같은 사람이네.’
데이드의 첫인상에 묘한 호감을 느낀 레이나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영지민들의 목격담 하나하나를 잘 기록해두셨군요.”
“예.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데이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거라면 걱정마세요.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온 거니까요.”
데이드의 말에 룬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믿음직스럽네요”
데이드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룬은 그런 데이드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좋은 사람이네. 이런 사람이 아버지라는 거지?’
이미 레오 플로브라는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들은 룬은 찬찬히 데이드를 살폈다
사람을 평가하는 눈은 대영웅 중에서 리시나스를 따를 이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멸망하는 세계를 구해낸 안목이니까.
하지만 무수히 많은 경험을 하면서 룬 역시 리시나스 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얻었다.
그런 룬의 눈에 데이드는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
룬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구나.’
룬이 데이드를 멍하니 바라볼 때.
레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리시나스는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모든 걸 걸었었지.’
선량하고 착한 사람.
평범한 삶을 살지만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는 없지만 작게라도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
레오가 손님용으로 나온 차를 홀짝였다.
‘사람들은 강력한 영웅들이 세계를 이끈다고 생각하지만.’
찻잔을 내려 놓은 레오가 데이드를 바라보았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지.’
과거, 레오는 최후의 대영웅으로서 세계의 희망을 짊어졌다.
자신이 원한 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친구들의 염원과 비원을 떠안았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최후의 결전에서 ‘이길 수 없다’ 라는 생각이 든 순간.
떠오른 건 동료들과의 추억만이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고 이별했던 많은 사람.’
재앙의 시대라는 시궁창 속에서도 인연을 나누었던 많은 이들.
특별했던 일들이 떠오른 게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게 이어져 온 일상에서 자신에게 베풀어졌던 친절과 따뜻한 마음.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때 왜인지 그 생각들 때문에 힘이 났지.’
이 세상에 좀 더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다시 환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왜 그 생각이 났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레오는 데이드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리시나스가 대가 없이 세상을 구하려 했던 이유였기도 했어.’
알게 모르게 인생에 영향을 끼친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베푼 친절에 보답하고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
‘아버지를 보고 리시나스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지.’
영웅이란 평범하지만 선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자.
‘나조차도 영향을 받아 세상을 구했으니까.’
가깝게는 대영웅들과 나눈 인연에…….
멀게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에…….
데이드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레오는 전생에 했던 고생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룬을 데리고 곧바로 에레보스가 부활한 장소로 가지 않은 이유 역시 이것 때문이다.
‘루나 녀석을 아버지를 만나게 하고 싶었거든.’
레오가 보기에 루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루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르온도……. 리시나스도…….’
처음 와서 만난 아르온.
루메른의 학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난 리시나스.
‘어쩌면 드웨노도.’
레오가 눈을 감았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각자가 죽은 시간……. 자신에게 짐을 떠넘긴 시절에 시간이 멈춰 있을지 몰랐다.
‘……죄책감일 테니까.’
짐과 고통을 떠넘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탓했을 것이다.
가족 같은 사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지만…….
자신들도 결국에는 살과 피로 이루어진 생물이다.
‘아르온과 루나…… 리시나스 녀석을 보면 알 수 있어.’
당장에 찬란하게 빛나는 원석인 영웅 후보생들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자신들이 구한 세계를 제대로 봤을 리 만무했다.
레오가 힐끗 룬을 바라보았다.
룬은 어딘지 모르게 넋이 나간 사람처럼 데이드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를 위해서 세상을 구하느니 마느니 하는 그딴 생각은 버려. 나도 이제는 너희를 위해 세상을 구할 생각 따윈 없으니까.’
레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난 나를 위해 세상을 구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