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811)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810화(811/844)
810.
번쩍-
워프 게이트가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와 함께 워프 게이트에서 여러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워프 게이트 주변 정원에서 정원사 복장으로 나무를 관리하던 루메른의 교장, 칼리안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드디어 왔군!”
벌떡 일어난 그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벗어 던졌다.
“레아 학생! 기다리고 있었네!”
오랜만에 찾아온 손주를 본 할아버지처럼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칼리안을 보고 레아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교장님. 지금은 업무 시간이 아니신지……?”
“괜찮네! 우리 루메른에는 아주아주 유능한 교수진이 있지 않나? 그들이 이 늙은이를 대신해 업무를 보고 있네!”
“할린드 교수님과 세드젠 교수님…… 그리고 리이나 교수님은 학생들 관리로 바쁘실 텐데요?”
“내가 학생 때부터 지켜봐 온 친구들일세! 아주아주 유능하지! 그 정도 과로로는 눈 하나 까딱할 친구들이 아닐세!”
“교장님이 업무를 하시면 그분들이 과로에 시달릴 일이 없잖아요!”
“어허? 이게 다 레아 학생 때문이지 않은가?!”
“갑자기 제가 왜요?”
“레아 학생이 너무 유능해서 내 일까지 가져가지 않았나? 일이 없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어. 최근에는 눈도 침침하고 말이야.”
엄살을 부리는 칼리안을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던 레아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할린드 교수님이네요.”
“쳇. 끈질기군.”
혀를 찬 칼리안이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레아가 마법을 이용해 그런 칼리안의 발목을 붙잡았다.
“노인공격이라니! 내가 아는 레아 학생은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는 불량 학생이 아니거늘!”
칼리안이 눈을 부릅뜨며 항의할 때.
텁-
“교장님. 업무 시간입니다.”
“할린드! 이거 놓게! 내 레아 학생에게 설교를 조금 해야……!”
“설교보다 업무가 먼저입니다. 아인, 렌.”
착- 착-
할린드의 부름에 그의 충직한 심복 교수인 아인과 렌이 칼리안의 양팔을 붙잡았다.
“교장실로 모시도록.”
“노인을 혹사시키다니! 자네들은 안 늙을 것 같은가!”
칼리안의 처절한 외침이 울려 퍼졌지만 아인과 렌은 듣지 않았다.
할린드는 힐끗- 레아를 바라보았다.
“돌아왔나 보군.”
“네. 할린드 교수님.”
고개를 끄덕이는 레아를 바라보던 할린드의 시선이 다른 이들에게 향했다.
‘레아와 교류하는 다른 영웅 사관 학교의 학생회장들. 그리고…….’
할린드의 마지막 시선이 레오에게 닿았다.
할린드가 레오에게 다가갔다.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할린드가 말했다.
“이름이?”
“레오입니다.”
“레오라…….”
할린드도 이번 루메른 소란의 원흉이 눈앞의 소년이란 걸 알고 있었다.
잠시 레오를 바라보던 할린드가 말했다.
“루메른에서 교수를 해볼 생각은 없나?”
느닷없는 스카웃 제의에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웃었다.
“아직 누군가를 가르쳐야 할 때는 아닌 것 같아서요.”
“첼시 르왈린과 일리아나 라덴을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던데.”
“길만 살짝 가르쳐 줬을 뿐이에요.”
“그 역시 훌륭한 교육이지.”
“저보다는 이쪽이 더 교육자로서 적합할 거예요.”
레오가 빙긋 웃으며 레아의 양어깨를 잡고 자신 앞으로 끌고 왔다.
눈을 동그랗게 뜬 레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글쎄.”
할린드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훌륭한 리더는 될 수 있어도 교육자로서는 자네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군.”
“흠? 저도 이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길을 보여주고 이끄는 것과 길을 가르쳐주고 뒤에서 떠밀어 주는 건 엄연히 다르지.”
거기까지 말한 할린드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관심이 있다면 말하도록.”
그 말을 남기고 할린드는 칼리안을 따라 떠났다.
“교장 업무까지 네가 하고 있었냐?”
“응, 그게 효율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바쁘거나 부재중일 때는 다시 칼리안 교장이 업무를 보는데…… 최근 은퇴각을 잡네.”
“그럴 만도 하지.”
“저기.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그때 둘 사이로 끼어든 룬이 레아의 양어깨를 잡은 레오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그나저나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저 할린드라는 사내는 굉장히 날카롭군.”
발하르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이 정확해.”
“뭐, 할린드 교수가 그런 면이 있지.”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세계의 칼리안 교장도 이렇게 일을 떠넘기고 도망다녀?”
레아의 물음에 레오가 쓰게 웃었다.
“우리 세계의 칼리안 교장은 혼자서 마물 여왕을 막아내다가 힘을 다해 눈을 감았어.”
“아…….”
“한 시대를 짊어진 사람다운 훌륭한 마지막이었지.”
레아가 말없이 침묵했다.
그런 레아를 보며 룬이 말했다.
“자, 레아. 이제 넌 학생들에게 가야지? 수습할 게 많잖아?”
자신의 등을 떠미는 룬을 보며 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눈치인데?”
“설마? 레오 녀석이 날뛰어서 수습할 게 많을 테고…… 또 아이들에게 각자의 길을 제시해 줘야 하잖아?”
“그러네. 많이 바쁘겠어.”
“그러니 빨리…….”
“레아만 바쁘냐?”
“아야야야야얏! 이게 무슨 짓이야!”
레오가 룬의 귀를 잡아당겼다.
룬이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자 레오는 룬을 워프 게이트로 떠밀었다.
“너도 세이룬에서 수습해야 할 게 있잖아. 순혈회라든가. 네가 미처 돌봐주지 못한 후예들이라든가.”
그 말에 룬이 멈칫했다.
“어떻게 보면 너희 넷 중 네가 제일 나태했어.”
“윽.”
뜨끔한 표정을 지은 룬이 귀를 축 늘어트렸다.
“……그러게. 한심하네.”
학생들에게 카일스러움을 강조했던 레아.
너무 자기중심적인 설명이긴 해도 아조니아 학생들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려 했던 카르.
자신의 기술을 오롯이 전수한 발하르와 달리 룬은 가장 제자리걸음을 한 대영웅이었다.
“나…… 성운의 시조로 실격일지도.”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는 룬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되지.”
“응?”
“넌 천재잖아? 마음만 먹으면 세이룬 애들 보고 영감이 팍팍 떠오를걸?”
그 말에 축 처져 있던 룬의 귀가 조금씩 서더니 이내 쉴 틈 없이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콧김을 흥-! 내뱉었다.
“그렇긴 하지! 마법 역사상 최고의 천재! 루나님이시니까!”
레오의 칭찬 한마디에 기고만장해진 룬이 워프 게이트로 달려갔다.
“얼른 끝내고 돌아올게! 기다리고 있어! 레오!”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세이룬으로 돌아가는 룬을 보며 발하르가 고개를 저었다.
“조만간 엘프 사회 곳곳이 쑥대밭이 되겠군.”
순혈회는 타르타로스와 은밀하게 연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욕 없는 룬은 그렇게까지 엘프 사회가 썩었다고 판단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순식간에 쓸어버리겠지.”
빠른 두뇌 회전과 결단력.
그리고 행동력까지 갖춘 룬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모를까.
레오를 통해 실마리를 찾은 순간 순혈회 청소는 말 그대로 순식간일 것이다.
‘막무가내 같아 보여도 현장에서 판단은 정확하니까.’
“레아. 너도 애들한테 신경 써 줘.”
“응. 레오, 한동안 손님 자격으로 루메른에 머물 거지?”
“그럴 거야. 너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고.”
“부탁?”
카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레오가 손바닥을 쥐락펴락했다.
“내가 계승한 너희 능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 또 더 발전할 수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
***
루메른의 손님에게 제공되는 숙소 건물 앞에 딸린 작은 연무장.
레오와 카르, 발하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싸울 때 살기를 내뿜었다고?”
레오가 놀란 눈으로 카르를 바라보았다.
“그렇네. 그때 카르는 분명 그 닉스라는 악신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었어.”
“겁 많은 녀석이 잘도 그런 생각을 했군.”
재앙의 시대 당시.
카르는 압도적인 무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겁 많고 착한 성격은 카르로 하여금 진심으로 상대에게 살의를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카르가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싸울 수 있었던 건 동료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뿐.
그런 순한 카르가 살기를 내뿜었다니 레오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큰 결심을 했네.”
레오의 말에 카르가 주먹을 쥐었다.
“……전생에 내가 얼마나 너희에게 기댔는지 뼈저리게 느꼈거든.”
“흠. 그런 것도 생각할 줄 알게 되고. 제법인데?”
“응. 전생에 나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으니까.”
“응?”
“레아는 세계를 책임졌고 룬은 마법 기술로 가드스론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언제나 힘썼어. 카일…… 레오 너는 세계의 어둠을 혼자서 처단했고 발하르는 우리를 든든하게 바쳐 주는 조언자였잖아.”
“그렇지.”
“그에 비해…… 난 어리다는 이유로 배려를 받아 왔어.”
“…….”
“너희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다고 말해줬지만……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있었기 때문이었어.”
카르가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나, 이제 혼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어.”
“……훌륭한 다짐을 했군. 카르.”
“헤헤.”
발하르가 부드럽게 웃자 카르가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너도 나아가기로 마음먹었구나.”
“응.”
“그런데 정정해야 할 게 있어.”
“응?”
“넌 딱히 배려받은 것도 아니고 책임을 지지 않은 것도 아니야.”
“응? 아니야. 레오. 날 위로해 주려는 거라면 괜찮아.”
“그러니까 위로를 해주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
텁-!
“컥?!”
발하르가 뒤에서 굵은 팔뚝으로 레오의 목을 휘감았다.
발하르의 압도적인 완력에 숨이 막힌 레오가 발하르의 팔뚝을 탁탁- 쳤다.
“카르. 잠시 레아에게 다녀오게.”
“응? 갑자기 레아에게는 왜?”
“레아에게도 조금 전 우리에게 해줬던 이야기를 해주게나. 제일 기뻐할 테니까.”
“아, 응!”
카르가 순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
카르가 멀리 사라지자 발하르가 레오를 놔주었다.
“허억! 허억! 이 망할 영감이 무슨 짓이야?”
목을 쓰다듬으며 항의하는 레오의 등을 발하르가 뻥! 걷어찼다.
“카르를 기죽일 일 있나? 사실을 말해서 어쩌자는 건가?”
“왜? 그 당시에 딱히 어떤 걸 시켜도 도움이 안 되니까 아무것도 안 시킨 거 맞잖아! 쟤도 이제 알 건 알아도 될 때야!”
“닥치게! 자네는 그냥 순수하게 카르의 성장을 기뻐하기만 하게!”
“그러니까. 알 건 알아야 더 성장할 거 아니야?”
“할린드의 눈이 틀렸어! 자네는 교육자로서 최악일세!”
한편.
“……큰 결심을 했네. 카르…… 그런데. 그 웃음은 뭐니?”
“응? 레오를 따라 해본 거야? 어때? 멋있지? 룬이 가르쳐 줬어!”
‘얜 안 물들었으면 했는데.’
결국, 바보들에게 물들어 버리고만 카르였다.
척 봐도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웃음에 레아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
카일의 모습을 한 에레보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저 푸른 하늘을 검붉은 죽음의 색깔로 물들일 수 있다.
하지만 에레보스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심복인 사령왕이 들고 있는 조각과 부활한 닉스를 집어삼켜 절반의 자신으로 거듭났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에레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차원의 살아남는 영웅이 이곳으로 왔다면…… 분명 입구가 있을 터.’
그 입구를 통해 대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곳을 잿더미로 만들고 그곳에 있는 나의 조각을 집어삼킨다.’
그 후.
‘이곳으로 돌아와 두 세계를 모두 잿더미로 만들 것이야.’
그렇게 된다면.
‘그대는 결코 나를 막을 수 없다, 살아남는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