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906)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906화(907/909)
906.
방에 온 첸 시아는 곧바로 책상 위에 작은 수정구를 올렸다.
루메른은 허락받은 수단이 아니면 마법 통신이 불가능한 마법 결계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첸 시아가 가지고 있는 건 대대로 샨의 황족들에게 내려온 보물 중 하나.
오래전 선조 중 한 사람이었던 선대 황제가 만든 물건으로 방해 마법 자체가 통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바늘로 검지 끝을 살짝 찌른 첸 시아는 손가락 끝에 맺힌 작은 핏방울을 수정구에 묻혔다.
곧 수정구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웅-!
잠시 후, 건장한 체격의 미중년이 수정구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시아야! 이 아비에게 이렇게 연락하는 건 처음이구나!]“아바마마. 이 신문 내용은 대체 무엇인가요?”
신문 기사를 수정구 앞에 들어 보이며 묻는 첸 시아를 보며 샤우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시아야, 슬프구나. 모처럼 얼굴을 보는 이 아비에게 인사도 없이 대뜸 본론부터 묻다니 말이다.]“방학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요.”
[너무 까칠한 거 아니냐? 사춘기가 늦게 온 것이냐?]“제 사춘기는 제가 루메른에 입학할 때 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첸 시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런 딸의 반응에 샤우는 주변에 있던 신하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내 딸이. 이 아비라면 껌뻑 죽던 내 딸이 반항기가 심한 불량 학생이 되어버렸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폐하.] [오오. 좋은 방법이 있는가?]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신하의 말에 샤우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에잉! 고얀 것. 내가 곧 황제의 자리를 내려놓는다고 이리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예.] […….] [줄을 잘 타야죠.]단칼에 대답하는 신하를 보며 샤우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주변에 있던 몇몇 신하들이 그 모습을 보며 숨죽여 웃는다.
그러다가 샤우가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첸 시아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나라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요.”
샨 제국.
그림자의 나라로 불리며 역사상 무수히 많은 나라를 지도에서 지워 온 공포의 제국이다.
샨 제국의 목표는 배신자의 말살.
독선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집행되는 그들의 정의가 틀렸던 적은 없었다.
그게 무수히 많은 외교적 마찰을 겪었음에도 샨 제국이 강대국으로써 존속할 수 있는 이유였다.
또한 영웅이 탄생하지 않는 나라로도 유명했다.
그림자로서 영웅을 탄생시키는 것이 제국의 목표였던 만큼 [그림자의 서]가 발견되면서 내부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여전히 샨은 공포의 대상이며 황실 역시 비밀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대중은 여전히 그림자를 두려워했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이런 한심한 꼴을 보여줄 수는 없지.]샤우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림자의 왕.
가장 공포스러운 그림자인 샤우를 보며 첸 시아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어둠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비정하고 무시무시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 앞에서는 팔불출이었다.
물론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건 대체 뭐죠?”
첸 시아가 신문 기사를 보며 미간을 좁히자 샤우가 권좌 위에 나른하게 앉았다.
[거기 적힌 그대로지. 너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올겨울 방학 때 샨의 황제가 되거라.]“갑자기요?”
[갑자기가 아니지.]샤우는 피식 웃었다.
[네가 영웅이 되었잖느냐.]샤우의 말대로였다.
첸 시아는 그림자로서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
그림자의 서를 통해 그림자들 역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래의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는 건 역시나 특별했다.
“…….”
[그림자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아니.]샤우의 눈에 자랑스러움이 깃들었다.
[그림자와 영웅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네가 증명한 것이다.]샤우가 눈을 감았다.
그의 가슴이 떨리고 있다.
‘시작의 왕으로 인해 그림자들은 구원받았지.’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뒀던 어리석었던 나날.
영웅의 위업과 그림자의 위업은 다르지 않다.
그 누구보다 영웅다웠던 태초의 그림자가 해준 말.
그리고 그런 레오의 뒤를 따르듯 첸 시아는 그림자 역사상 최초로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
[이건 곧 광명이니라.]세계에 증명한 것이다.
그림자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님을.
그림자들 스스로가 바뀌는 계기를 준 것이 레오라면.
그림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꾼 건 첸 시아다.
누구보다 강력한 그림자의 혈통.
수천 년을 세계의 어둠 속에서 살아온 샨의 핏줄이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렸다는 상징성.
[나와 이 궁궐의 신하들은 이제 구시대의 사람이다.]권좌에 앉은 샤우의 말에 부정하는 신하들은 없었다.
이들 역시 어둠 속에서 신념과 사명을 가슴에 품고 어둠 속에서 세계를 지탱해 온 기둥들.
그렇기에 알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이제 새로운 물결이……. 새로운 파도가 몰아칠 것이다.]그림자 후보생들도 더 이상 스스로를 감추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도, 올해도.
그림자 후보생들은 루메른에 입학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샨의 황제 역시 달라져야 한다.]“아바마마…….”
첸 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평생 세계의 어둠을 짊어져 온 그림자 왕.
첸 시아로서는 그 사실이 안타까웠다.
자신의 꿈을 가로막았을 때도 야속했을지언정 원망한 적 없는 아바마마.
그런 그가 지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당당한 그였지만 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그런 얼굴 하지 말거라. 딸아.]샤우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사옵니다. 황녀 전하. 황제께서 황녀께 선위하시고 선제로 물러나신다고 해서 국정을 놓으시는 건 아니옵니다.]“정말인가요? 다행이다!”
활짝 웃는 딸을 보며 샤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설마하니 이 아비가 무력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줄 알았더냐?]“네.”
[허허. 아비가 그 정도로 늙지는 않았느니라.]“아바마마께서 선제가 되셔도 은퇴하지 않고 국정을 전부 담당하시는 거죠?”
[그래.]첸 시아가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 모습을 본 샤우의 얼굴이 흐뭇하게 변했다.
‘역시 딸이 최고야.’
아비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찌 저리 고울 수 있단 말인가?
“다행이다. 무책임하게 물러나지 않으셔서.”
‘응?’
진심으로 안도하는 딸의 모습에 샤우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딸아. 이 아비가 걱정돼서 안도하는 것이 맞느냐?]“쌩쌩하신 아바마마를 제가 왜 걱정하나요.”
[…….]“솔직히 국정을 제게 맡기면 어쩌나, 걱정했었거든요.”
[…….]“내년에 루메른 부학생회장이 돼서 레오 도령을 보필해야 하는데 샨의 국정을 일부라도 맡으면 불가능해지잖아요.”
샨은 거대한 제국이다.
그런 만큼 황제가 짊어지는 내정 업무량도 상당히 많다.
유능한 신하들이 있더라도 제국을 오롯이 담당하는 건 황제다.
그렇기에 샤우는 애초에 자신이 건재할 동안에는 국정을 자신이 맡을 생각이었다.
첸 시아는 샨의 새로운 황제로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할 계획이었다.
[이 배은망덕한 녀석이 자기 아비 생각은 눈곱만큼 안 하고 남자 생각만 해?!]샤우가 버럭 호통치자 첸 시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바마마께서 방학 끝나기 전에 레오 도령을 잘 보필하라고 하셨잖아요.”
[딸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어! 남자에게 홀려서 칠렐레 팔렐레 하기나 하고!]역정을 내는 샤우.
거대 제국 황제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첸 시아는 듣지 않았다.
그 모습에 샤우는 권좌 위에 드러누우며 개탄했다.
[어허! 이 불효막심한 것 같으니라고! 여봐라! 저 못된 녀석을 당장 내 앞으로 끌고 와라! 내 친히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야겠느니라!]하지만 샤우의 말에도 불구하고 궁궐의 신하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이것들이! 황제의 명을 따르지 못할까!] [전하.]그때 샤우의 측근이 고개를 조아렸다.
[황녀께서는 이제 황위에 오를 분이신데 함부로 대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 이 역적 놈들이……!]샤우가 뒷목을 잡았다.
섣부르게 선위를 하겠다고 한 어제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대외적으로 신문으로 기사까지 냈으니 물릴 수도 없는 노릇.
물려봤자 세간의 비웃음만 살 게 뻔했다.
이전 같았으면 그런 눈치를 안 봤겠지만 이제 샨 제국도 변화해야 하는 시기.
뒷목을 잡고 권좌에 누운 황제를 보며 첸 시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잠시 축 늘어져 있던 샤우가 몸을 일으켰다.
[시아야.]“네.”
[미안하구나.]“…….”
진지한 얼굴로 갑작스럽게 사과하는 샤우를 보며 첸 시아의 눈이 가라앉았다.
“알고 있어요. 제가 황제가 된다는 의미를.”
첸 시아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샨이 어둠이 아닌 빛으로 나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림자의 나라로써 샨은 어둠 속에서 세계를 수호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은원 관계를 만들었다.
샨의 황족이 대대로 비밀스럽게 살아온 이유 역시 이것 때문이다.
샨의 황제는 궁궐에만 있지 않는다.
전 세계를 누빈다.
그런 만큼 비밀스러울 필요가 있었다.
원한은 무섭다.
그것이 설령 배신자를 말살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일지라도.
세계 곳곳에는 샨의 황제를 향한 진득한 원망을 품은 자들이 많다.
첸 시아가 대외적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는 건 이 모든 원한을 짊어진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각오했던 일이에요.”
[…….]당당하게 말하는 딸의 모습을 샤우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영웅이 되었구나.]그림자로서 지켜봐 온 무수히 많은 영웅과 첸 시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새로운 시대의 영웅이 된 딸을 바라보며 샤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시아야.]“네.”
[내가 너에게 선위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다.]“무엇인가요?”
[포장이지.]“포장이요?”
[그래. 황제쯤 되면 꽤 괜찮은 포장지 아니더냐? 시작의 왕도 널 대하는 무게감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야.]“…….”
[바보같이 칠렐레 팔렐레만 하지 말고 생산적인 일을 하란 말이다! 생산적인 일을!]“무슨 생산적인 일을 해요?”
[미인계를 쓰든 약을 먹이든 뭐가 됐든 기정사실로 만들란 말이다! 이 아비는 손주가 보고 싶단 말이다! 손주가!]“지금 그게 딸한테 할 말이에요?”
첸 시아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미인계든 약이든 통할 인간이 아니에요.”
[에잉. 쯧쯧. 저렇게 패기가 없어야. 그러니까 연애 사업에 진척이 없지.]“끌게요.”
[이 아비가 레오 플로브를 꼬실 수 있는 비장의 방법을 알려 줄까?]이 망할 영감탱이가 헛소리를 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지만 첸 시아는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뭔데요.”
[마음이 넓다는 걸 강조해.]“천박해.”
[어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그런 뜻이 아니야!]“그럼요?”
[네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이 아비가 후궁을 거느리지 못하게 했잖느냐. 물론 이 아비는 일편단심이라 독수공방을 하고 있지만.]“끊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첸 시아는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왕이랑 황제라…….”
나직이 자신의 직위를 되뇌던 첸 시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보통은 황제가 더 높은 거 아니야?”
어이없는 관계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황제가 되면 몇 순위쯤 되려나?”
“순위가 뭐?”
“꺄악?!”
옷장 문이 열리며 방으로 들어온 레오를 보며 첸 시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입을 뻐끔거리는 첸 시아를 보며 레오가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뭐야? 왜 그렇게 놀래? 이상한 짓이라도 하고 있었어?”
“갑자기 들어오니까 놀라죠! 나가요! 숙녀 방에 왜 함부로 들어오는 거예요!”
“언제는 편할 때 오라더니.”
“몰라요! 몰라! 나가요!”
첸 시아는 툴툴거리는 레오의 등을 억지로 밀어 옷장 속으로 집어넣고는 문을 쾅-! 닫았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보니 레오는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첸 시아가 쪼그려 앉으며 한탄했다.
‘……괜히 쫓아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