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907)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 907화(908/909)
907.
혹한의 바람이 몰아치는 대륙 최북부.
그 혹한의 중심에 자리 잡은 새하얀 고성, 세이룬 아카데미.
교복 위에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세이룬 학생들이 품속에 교과서를 꼭- 안고 옹기종기 이동하고 있었다.
혹독한 북부를 살아가는 엘프들이지만 체질적으로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있는데.
세이룬의 학생회장, 루니아 엘 룬드아가 바로 그러했다.
“헤-취!”
재채기를 하며 몸을 부르르 떤 루니아가 말했다.
“가을이 되니까 더 추워진 것 같아.”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가을이 찾아오는 만큼 세이룬은 더더욱 추워졌다.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세이룬이지만 여름 추위와 겨울의 추위는 체감 온도 자체가 다르다.
자기 몸을 껴안고 푹푹- 꺼지는 눈길을 걷던 루니아가 인상을 썼다.
“아니! 입학 때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왜 건물을 이동하는 바깥에는 마법을 걸지 않는 거야? 우리는 마법의 종족인데! 왜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이 혹한을 뚫고 가야 하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투덜거리는 루니아를 보며 곁을 걷던 세이룬 3학년이자 하프 엘프 루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법의 종족인 만큼 모든 걸 마법으로 해결하면 나태해지잖아. 또한 이것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잖아?”
“헤르디움 선생님이 한 잔소리를 네가 하니?”
꾸밈없이 감정을 드러내며 눈을 흘기는 루니아를 보며 루카가 웃음을 터트렸다.
“보기 좋네.”
“뭐가?”
“눈치 안 보고 너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루카가 빙긋 웃었다.
“다른 학생들도 네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참 보기 좋은 것 같아.”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루카의 말에 루니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네가 차별받지 않아서 좋아.”
세이룬 3학년 부동의 석차 3등.
하지만 루카는 오랫동안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세이룬, 아니.
엘프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순혈주의 때문이다.
하지만 루나가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순혈주의는 뿌리 뽑혔다.
루나에 대한 엘프들의 존경과 믿음이 너무도 신실하였기에 순혈주의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결과 엘프들은 엘프다움이 아닌 자신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세이룬의 교풍 역시 이전에 딱딱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도서관에 도착했다.
조용한 도서관 내부.
루카와 같이 책을 찾던 루니아는 학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어떤 장면을 발견하고는 눈을 치켜떴다.
“거기, 잠깐만요.”
도서관 으슥한 곳에 두 학생이 입을 맞추려 하고 있었다.
“선배들! 공공장소에 뭐 하는 짓이에요!”
둘 다 루니아가 아는 얼굴이다.
올해 졸업하는 5학년들.
루니아의 말에 연인으로 보이는 남학생에게 찰싹 붙어 있던 여학생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 어때? 애정행각 좀 할 수 있지.”
“풍기 문란이에요. 교칙 위반이라고요.”
“아아. 따분해. 교칙이래.”
여학생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루니아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루니아가 1학년 때부터 유명했던 세이룬 학생회의 선도부였다.
“선배. 제가 1학년 때 복도에서 조금 빠르게 걸었다고 벌점 먹이지 않았어요?”
“그랬던 적이 있었지.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화사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자유를 추구한다. 그게 요즘 세이룬의 유행이잖아?”
“자유가 방종이 되어서는 안 될 텐데요?”
“얘, 루니아. 너 너무 꼰대가 된 거 아니니?”
그 뻔뻔한 반응에 루니아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애초에 루메른은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연애를 할 수 있는 분위기라던데?”
“걔들도 공공장소에서는 이러지 않아요.”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엄청 자유롭고 개방적이래.”
“…….”
그 말에 루니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세이룬 학생들은 오랜 세월 지나칠 정도로 딱딱한 교칙에 억눌러져 있었다.
특히나 세이룬은 학생들 간의 연애에 관해서 더욱 엄격하게 금지해 왔던 학교였다.
‘물론 몰래 사귀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하지만 최근 들어서 연애와 관련된 교칙이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이룬.
아니, 엘프 사회 전체를 강타하고 있는 성운의 시조 루나와 시작의 영웅 카일의 사랑 이야기 때문이었다.
루나가 강림에서 세계를 향해 했던 선언.
카일에 대한 사랑.
그걸 계기로 엘프 사회에서는 루나와 카일의 가슴 절절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대유행했다.
거기에 몇 달 전에는 지혜의 왕, 리시나스 역시 카일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루나와 카일에 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버렸다.
왜? 그렇지 않은가?
원래 남의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고 그게 삼각관계가 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덕분에 대영웅들의 사랑 이야기에 관한 소설과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 같았으면 불경이라며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금서가 되었을 온갖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루니아는 자기 종족이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종족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덕분에 에이란은 최근 즐거워하는 것 같지만.’
뭐가 됐든 현재 엘프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게 바로 ‘사랑’이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억눌러 왔던 반발심 때문일까?
세이룬 내에서 연애하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선을 넘는 학생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연애 금지 교칙이 사라졌던 거지 미풍양속과 관련된 교칙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말이다.
‘아니, 대체 엘프는 적당이란 게 없어!’
이전에는 답답할 정도로 교칙을 지키더니 이제는 방종에 가까울 정도로 교칙을 어긴다.
지금 눈앞에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선배 역시 마찬가지다.
한숨을 쉰 루니아가 품에서 수갑을 꺼냈다.
“지금부터 교칙 위반으로 두 사람을 구금할게요. 두 사람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세이룬에서 교칙을 어기면 구금이었다.
이전에 구금이라 하면 세이룬 학생들은 새하얗게 질리곤 했지만 이제는 잡혀가든 말든 심드렁하다.
‘어쩌다 우리 학교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새로운 교칙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루니아가 말했다.
“루카, 나중에 봐.”
“응.”
두 선배를 끌고 도서관을 빠져나가던 루니아가 멈칫했다.
역시나 으슥한 곳.
익숙한 여학생이 침을 꼴깍 삼키며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하우웅!”
책에서 시선을 뗀 여학생은 새빨개진 얼굴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더니 손가락 사이로 눈을 뜨고 펼쳐진 책을 곁눈질하며 다시 책을 들고 집중해서 읽는다.
그 모습을 본 루니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터벅- 터벅-
여학생은 루니아가 코앞에까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책장을 넘겼다.
“너 뭐 읽어?”
“히이이익?!”
세이룬 2학년 대표, 레아가 기겁하듯 펄쩍 뛰었다.
루니아는 그런 레아에게서 책을 빼앗았다.
“루, 루니아 선배! 이, 이건 말이죠! 그……!”
책을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는 레아를 밀어내며 책 내용을 확인한 루니아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레아를 바라보았다.
“너도 이런 거 읽니?”
“루, 루니아 선배도 읽나요?”
“그럴 리가.”
정색한 루니아가 말했다.
“이건 압수. 그리고 넌 반성문 제출해.”
“……네.”
레아가 어깨와 귀를 축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
“어, 어디 있지? 분명 이 책상 서랍에 넣어 놨었는데?”
세이룬 학생회 회의실.
에이란은 울상을 지으며 회의실 책상을 뒤지고 있었다.
오늘 아침 실수로 회의 자료와 착각해서 가져왔던 책을 급히 책상 서랍에 넣어 뒀는데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다.
“대체 어디 간 거야!”
에이란이 발을 동동 굴렀다.
시선이 많아서 책상 서랍에 넣어둔 게 실수였다.
설마하니 사라질 줄이야!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에이란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루니아가 들어왔다.
“아. 진짜 단속하는 것도 힘드네.”
툴툴거리던 루니아는 화들짝 놀라는 에이란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놀래?”
“아, 아니요. 그냥 뭘 좀 찾느라…….”
에이란이 어색하게 웃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오늘도 많이 심했나요?”
“그래. 아무리 구닥다리 교칙이라도 교칙은 교칙인데. 너무 어겨.”
털썩-
학생회장 자리에 앉은 루니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세이룬의 제법 많은 수의 학생이 자유를 넘어 방종을 누리고 있었다.
선생들이 본다면 노발대발했겠지만 교묘하게 선생들의 눈을 피했다.
애초에 세이룬 학생의 교칙이 까다로웠던 이유 자체가 학생 전체가 절대적으로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경향도 강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 같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니 단속할 인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정말. 이제 곧 다른 학교 학생회장들이 올 텐데 창피해서 이 꼴을 어떻게 보여주냐고!”
루니아가 벅벅- 머리를 긁었다.
당장에 내일 루메른과 아조니아, 데미안 학생회장들이 온다.
이런 꼴을 보인다면 아르나 드리아나가 놀려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학교의 명예가 달린 일이라고! 아! 진짜!”
“그래도 다른 학교 분들이 올 때는 조심하겠죠.”
“안 그럴 것 같다는 게 문제지!”
“하하.”
“요즘 진짜 장난 아니야. 레아 녀석이 도서관 구석에서 뭘 읽고 있었는지 알아?”
루니아가 책상 위에 책 한 권을 올려놓았다.
제목도 저자도 없는 책이다.
팔짱을 낀 루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망측한 걸 읽고 있었다니까?”
책을 본 에이란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이 책은……?”
“에이란. 네가 준 건 아니지?”
“아, 아닌데요! 절대 아닌데요!”
“흐음? 그으래?”
의심스럽다는 듯 에이란을 바라본 루니아였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소설을 즐겨 읽어도 창피해하는 에이란이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남에게 공유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특히 수위가 과격해.”
루니아가 혀를 찼다.
“웬 인간이 엘프 둘을 가지고 노는 내용 같던데……. 어휴.”
“그, 그런 망측한 소설은 얼른 태워버려야죠! 제가 처분할게요!”
“……네가 읽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에효. 선생님들에게 일러바칠 수도 없고.”
“레, 레아 양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러면 안 되죠! 어서 처분해요!”
“일단 증거품으로 남겨 둘래. 나중에 레아 녀석 불러서 이걸 어디서 놨는지 물어봐야겠어.”
그렇게 말한 루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오늘 하루 일과도 끝났으니.”
끄응-! 기지개를 켠 루니아가 빙긋 웃었다.
“밥 먹으러 가자, 에이란.”
“네, 넵.”
에이란이 목을 움츠리며 루니아의 뒤를 따랐다.
‘내, 내가 쓴 거란 걸 들키면 안 되는데…….’
힐끔힐끔 루니아의 손에 잡힌 책을 보며 에이란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애초에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루니아양이란 걸 들키는 날에는…….’
에이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에이란,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은데?”
“괘, 괜찮아요!”
황급히 웃은 에이란이 속으로 다짐했다.
‘어, 어떻게든 되찾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