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04
3부 122화
– 1 –
병자년(1696) 1년 동안 본국에서 건너온 이주자의 수는 무려 6만 명에 육박했다. 내가 미주에 온 경오년(1690)부터 2년간 건너온 이주자가 2만, 본국에 풍년이 들어 형편이 조금 나았던 그 뒤 3년 동안 건너온 이가 1만이었던 데 비하면 정말 폭증했다.
“미주 인구가 60만을 넘기려면 아직 몇 년 더 필요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얼마나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용복은 이번에도 동현에다 난민들을 4천 명이나 태우고 건너왔다. 승무원은 최소한으로 줄여서 백 명밖에 태우지 않았다. 전함으로 활동할 때도 선원과 수졸을 다 합쳐 4백 명밖에 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정 승선 인원의 열 배를 꽉꽉 눌러 담은 셈이다.
동현 한 척만 그러는 게 아니다. 2천 톤짜리 동현에 비하면 정말 꼬마인 3백 톤짜리 소형 상선에도 5백 명씩 타고 건너온다. 심지어 수군에서 쓰는 대형 전선들까지 화포는 육지에 내려놓고 선창을 비운 뒤 난민을 운반하는 데 일부 투입되고 있다.
조선 수군 함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건조 방식인 한선(韓船)과 장조 이후 새롭게 건조하는 서양식 양선(洋船)이다.
한선에 속하는 배는 거북선, 판옥선, 병선 등이다. 각 함종에 따른 임무가 확실히 정해진 분류이고 규격화도 확실하게 되어있어서, 함선 내에서 체급 차이는 없다. 장조 시절에 새로 등장했던 대전선은 양선 전력이 확충되면서 폐기되어 쓰지 않는다.
양선은 크게 대선, 중선, 소선으로 나눈다. 5백 톤 이하는 소선, 5백 톤에서 1천 톤까지가 중선, 1천 톤을 넘으면 대선이다. 대선 중 가장 큰 배는 동현과 같은 2천 톤이다.
증기선은 함종으로는 따로 구분하지 않고, 각 함종 내에서 하위분류로 기선이 있다. 본국 연안을 방어하는 증기 추진 장갑함 같은 경우는 ‘기갑선’이 되는 식이다. 증기기관을 설치한 양선은 소선뿐이고, 원양에서 활동하는 중선이나 대선에는 아직 기관을 단 배가 없다.
가장 강력한 배는 물론 2천 톤급 대선이다. 대소 화포 120문을 탑재하고 있어서 대적한 적선을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울 상대가 주변에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우리는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고 과시하는 용도 이상은 못 되고 있다.
다른 대선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천 톤을 넘는 대형 양선은 몇 척 안 되고, 조선 수군 양식 전선 중 실질적인 주력 전선은 6백 톤급이나 9백 톤급의 중선이다. 서양식으로 상세한 함급 분류까지는 아직 안 되어있다.
양선들은 기본적으로는 전선이지만, 필요에 따라 무장을 탈거한 뒤에 다른 임무에 동원할 수 있다. 지금처럼 기근이 심할 때는 전선이라고 해도 식량이나 난민 운반에 동원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본국과 연해주에 있는 각 조선소에서는 선박이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부안, 동래, 벽란도를 비롯한 민간 조선소는 물론이고, 원산과 연해주에 있는 수군 조선창에서도 계속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고 있으니, 내년에는 더 많은 난민이 미주로 건너올 겁니다.”
국내 연안 운송 및 구주 항로에는 대부분 장거리 이동을 못 하는 한선이 사용되고 있다. 양선은 남만이나 미주로 오는 뱃길에 투입된다.
미주에 오는 양선 선단은 처음에는 20척 가까운 배가 모여서 왔다. 그러다가 이제는 선단 따위는 아예 만들지 않고 마구잡이로 1척씩, 2척씩 건너오는 중이다.
“지금 6만 명이 건너온 것만으로도 미주가 혼란스러운데….”
속이 타는지 이종덕이 수염을 잡아 뜯었다. 지난 1년 동안 건너온 6만 명을 어떻게든 살 곳을 찾아 집어넣느라 그렇게 애를 먹었는데, 내년에는 더 많이 건너온다니까 속이 답답한 모양이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이종덕 대신 내가 질문을 던졌다.
“본국에서는 내년에는 얼마나 많은 백성을 보내려는지 혹시 들었는가?”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사오나, 대략 10만 명 정도는 건너가지 않겠느냐고 호부 관리들이 소관에게 이야기하였사옵니다.”
“10만이라….”
정착시키지 못할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정착시키는 과정이 험난할 건 분명하다. 궁금한 점을 묻는 김에 하나 더 물어보았다.
“올해 미주에는 6만이 왔는데, 대남도에 간 백성은 얼마나 되는가?”
“대남도로 간 이주민의 수는 4만 명 정도입니다.”
안용복의 대답을 들은 이종덕이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대남도가 본국에서 훨씬 가까운데 보낸 백성 숫자는 더 적단 말인가? 그쪽으로 더 많이 보낼 수도 있을 텐데. 미주에 한 번 왕복할 시간에 대남도는 네 번은 왕복할 수 있고, 남만 쪽으로 쌀을 사러 가는 도중에 난민들을 내려놓고 가기도 좋지 않은가.”
“총관께서는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대남과 미주는 엄연히 사정이 다르지 않소.”
내가 점잖게 설명했다.
“대남도는 크고 풍요롭다고 하나, 그래 봐야 섬이오. 하지만 미주는 대륙이고, 동변을 뺀 남북 미주만 해도 대남도의 열 배는 되지 않소? 거리는 좀 멀다 하나, 대남보다 미주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건 분명하고 말이오.”
순 평야인 미주대분지 넓이만 해도 대남도 전체의 두 배쯤 된다. 6만 명이 아니라 6백만 명이 여기 온다고 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부양하면서도 남는 식량을 본국에 보내서 기근을 해소하도록 도울 수 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남북 미주만 보유하고 있어도 충분히 풍요로운 곳이 북아메리카다. 굳이 대평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 2 –
“전하, 병마사 휘하 1만 정예병이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작정만 하신다면 저들을 평정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가능한지는 둘째 치고, 필요가 없는 일을 왜 해야 하는가.”
문제는 내 부하 중에도 이런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자가 적잖다는 점이었다. 본국에서 내 장계를 보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미주에서도 원미주를 정벌해 우리 영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들은 여럿 있었다.
문관 중에서 확장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동변관리사 호부 부장 송영진이다. 광대한 평원, 그것도 한가운데 거대한 대하를 품고 있는 평원을 차지하여 논을 만들고 쌀을 수천만 섬씩 수확할 생각에 눈이 반쯤 뒤집힌 상태다. 지금 기근을 만나 더 기세가 올랐다.
“농사를 지어만 놓으면 하느님이 본국으로 보내주시기라도 하는가?”
미시시피에서 아무리 많은 쌀을 거둬도 본국에 보낼 방법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대서양, 인도양을 거쳐 배로 실어 가져간다면, 과연 운반비로 얼마나 붙여야 할까? 도중에 수송선이 난파하거나 해적에게 당할 위험까지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가격일 게 뻔하다.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하시지 않습니까? 일을 시작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면 언젠가는 답이 나올 것이지만,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찌 답이 나오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전하?”
송영진의 말은 원칙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대륙횡단철도 부설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미시시피의 쌀과 대평원의 소를 미주 서해안으로 실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가져오려고 굳이 원미주를 평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소관이 척후장으로 나가 싸워본 경험으로 말씀드리건대, 원미주 토인들을 평정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은 기껏해야 각 부락에 수백 명 단위로 흩어져 살 뿐이며, 우리 군사들이 급습하면 모래알처럼 흩어져 도망가기만 할 겁니다.”
복잡한 고려 없이 그저 전공을 세울 심산으로 동진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송영진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권훤이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장조께서 북방을 정벌하실 때나 체사르가 갈리아를 평정할 때에 비하면 원미주 야인들을 치는 것은 원정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병력도, 무장도, 사기도 어느 하나 우리가 떨어지는 부분이 없습니다. 어찌 조직도 없는 야인 따위를 정벌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대도 그대의 현조(玄祖, 5대조)처럼 체사르를 참 좋아하는구나.”
권율이 카이사르에게 푹 빠져서 갈리아 전기를 탐독했다는 거야 지금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래서 내 발언을 듣고도 권훤이 별로 수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야 이방인이라 해도 원체 걸출한 무장이자 지도자였으니 말입니다. 또한, 로마 황조의 사실상의 시조이기도 하였으니, 어찌 존중하지 않겠습니까.”
예전 장조 때나 지금이나, 조선 사대부들 사이에서 로마에 대한 평은 여전히 좋다. 작은 고을 하나에서 출발하여 사실상 유럽 전체를 제패한 신화적인 위업과 더불어, 2천 년 동안 존속한 제국의 최후를 장렬하게 장식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죽음이 준 인상 덕분이다.
‘로마 유행은 사실상 정철과 이항복이 만든 거지….’
정철은 『로마제국 낙성기』로 사대부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사전청 도제조 자리에 올라가서는 리비우스의 『로마사』와 타키투스의 『연대기』를 내놓았다. 이항복은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를 번역했고 말이다.
이 책들 덕분에 로마는 지금도 조선 사대부들에게 서방의 한나라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 대유럽 외교 언어가 라틴어인 것도 그 까닭이다. 물론 현지에 가서 주고받는 입말은 방문한 나라 언어 ?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등 ? 로 하지만, 국서는 라틴어다.
더불어서 콘스탄티누스 11세를 죽이고 로마를 완전히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 즉 현돌궐은 여전히 죽일 놈들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로마를 멸망시킨 사건 이외에도 모카 사변, 즉 장조 시절 이기빈을 출세시킨 국서 모욕 사건까지 엄연히 기억되고 있으니 말이다.
“전하, 여기 지도를 잘 보시옵소서. 원미주는 서반아?불랑국?잉글국?도이치 등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는 더 넓은 땅이옵니다. 변미주까지 합친다면 네 배는 될 것입니다. 이 광대한 영토를 평정하고 우리 대한의 깃발을 꽂는다면, 이 어찌 청사에 길이 남지 않겠습니까?”
이 말 외에도 권훤은 온갖 미사여구로 내게 동방으로 원정을 나가자고 부추겼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는 기병의 대군, 우두머리를 맞아 충성의 맹세를 바치는 그 모습을 정말 설득력 있게, 매혹적으로 묘사하는데 참으로 넘어가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권 별장. 그대의 말대로 우리는 병비는 확실히 잘 갖추고 있네. 하지만 그 넓은 강역에서 숫자도 알 수 없는 야인 부락을 토벌하는 건 장조 대의 북방 정벌이나 체사르의 원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지. 아파치 토벌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조직되지 않은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을 하나하나 토벌하고 무릎 꿇리는 건 정말 어렵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평원 한복판에서는 보급로 유지도 어렵다.
“그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과거 성길사한이 서방 원정을 벌일 때 그랬듯이, 우리 군사들도 말을 넉넉히 끌고 말 등에는 건량을 싣고 자루에 육분을 넉넉히 채워서 나간다면 치중이 따라오지 않아도 1년은 충분히 싸울 수 있습니다.”
성길사한(成吉思汗)은 칭기즈칸을 말한다. 그리고 육분(肉粉)은 고기를 말려 빻은 몽골식 보존 식량인 보르츠를 뜻한다. 아니, 1년 동안 그것만 먹고 원정을 하자고?
“그대가 몽고 육분을 직접 먹어보았다면 그런 끔찍한 말은 못 할 걸세.”
“전하께서는 드셔 보셨습니까?”
“한참 전에 그럴 기회가 있었네.”
내가 보르츠를 먹어본 때는 해서부를 때려 부수러 친정했을 때였다. 그 끔찍한 맛이란…정말이지, 나한테 그거만 먹고 1년을 살라고 하면 당장 탈영하고 말겠다. 물론 내가 최고급 궁중요리에 익숙해진 상태였으니 더 맛이 없었을 수는 있겠다만.
“하여간, 지금 당장은 원미주 원정 같은 일은 생각하지 마시오. 여기,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남미주와 북쪽 북미주만으로도 충분하잖소. 여기 미주대분지 하나만 해도 삼남 평야를 다 합친 것보다 넓은데,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이 땅부터 개간할 생각을 하시오.”
미주대분지는 원주민이 많지 않다는 장점도 있다. 이미 두창을 비롯한 전염병이 몇 차례 휩쓸었기 때문이다. 남은 이들 ? 산으로 들어간 미억족 말고도 남은 소부족들이 좀 있다 ? 은 조선인 농장에서 일꾼으로 고용해서 급료를 주고 생활을 안정시켜줄 수도 있다. 이들은 그동안 적응한 덕분에 조선인과의 관계도 꽤 원만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평원에는 그런 거 없다. 북미주, 남미주 원주민들은 우리가 오기 전에도 담배나 옥수수 농사 정도는 지었고, 그만큼 농경에 적응하기도 쉽다. 하지만 사냥과 전투, 채집밖에 모르는 평원 인디언들에게 농사를 권한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그러니 원미주 원정은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해 봐야 지금 국력으로 유지할 수도 없다. 막대한 유지비에 시달리고 끝없는 반란에 허덕이다가 망하기가 십상이다.
무엇보다 싫은 건, 이미 숱하게 강조한 내란이다. 본국보다 크고 강력해진 미주가 반기를 들고 독립한다고 선언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미국에 눌린 영국 신세가 된다.
조선은, 아니 대한은 내 나라다. 나 이재석이 태어나 자란 땅이고, 지금 번영하는 대한은 내가 무종으로서 씨를 뿌리고 장조로서 싹을 돌보아 자라게 했다. 그 대한이 식민지 따위에 밀려서 아랫자리로 떨어지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원미주에 관해 잘 모르오. 동방 토인들을 살피러 동쪽으로 떠난 정 서장관이 일단 돌아와야 하고, 그 보고를 듣고 본국에 계신 폐하께 장계를 올린 이후에라야 우리가 원미주를 원정해야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소.”
형황은 원미주 정복이 필요하지 않다는 내 건의를 이해할 만큼 현명하다. 그러니 동방에 있는 인디언들이 공연히 로키산맥을 넘어와서 우리를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원정군을 원미주로 파견하라는 칙명이 내려올 일도 없을 거다.
“이후에, 태황께서 원정을 벌이라는 칙명을 내리시기 전에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소. 그대들 모두 알아듣겠소?”
“예, 전하.”
휴우, 겨우 이 문제를 더 거론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나나 부하들이나, 같은 이야기 계속 반복하는 것도 지친다. 형황에게 공을 넘기고, 좀 쉬어야지.
정말이지, 원미주 개척은 대륙횡단철도가 부설된 뒤에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인디언들도 인디언 연방국 같은 것을 확실하게 수립할 수 있을 테니까 조선 측에서 간단히 잡아먹을 수도 없을 것이고, 일단 독립은 유지할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된다.
벌써 양력으로 11월 중순, 음력으로는 10월 말이다. 1696년도 다 끝나가니, 어서 올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그동안 난민 재정착 문제에 몰두하느라 팽개쳐야 했던 내 주변 일들도 좀 챙기도록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