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09
3부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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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에서 온 부하들이 확인해주었듯이, 내게 이종덕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어도 조언 정도는 건넬 수 있다. 그래서 권훤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작성한 조사보고서와 피해를 본 신착민들의 진술서 보따리를 총관부 관아로 들고 가 내려놓았다.
“본왕이 총관께 이런 문서를 들고 오는 일이 예가 아님은 알고 있소. 하지만 곤경에 빠진 숱한 백성들이 그 한을 토하여 뼈가 시리고 여름에 서리가 내릴 지경이니 어찌 외면하겠소. 부디 총관께서 공정한 심판으로 이들을 구원해주시기를 바라오.”
쟁반 위에 수북하게 쌓인 두루마리 문서를 보고, 이종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뜩이나 일이 많아 격무에 시달리던 참에 고민거리가 더해졌으니 그럴 수밖에.
헌데 옆에 동석하고 있던 총관부 형부 부장 김성권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쪽은 올해 봄에 본국에서 새로 파견된 관리인데, 나하고는 좀 껄끄러운 상대다. 얼굴을 오래 익히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 외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본국에 계시는 예왕 전하께서는 권한 밖에 있는 일에 감히 손을 대지 않으심으로서 가히 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시는데, 전하께서는 다소 겸양이 부족하신 듯합니다. 경험을 얻어 옛날보다 좀 유능해지셨는지는 몰라도, 태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으시군요.”
김성권은 대놓고 예왕과의 친분을 드러내어 과시하는 예왕파였다. 물론 예왕에 대한 평은 고하를 막론하고 칭송 일색이지만, 내 앞에서 김성권처럼 노골적으로 예왕을 좋게 평가하는 자는 처음 만났다.
물론 나도 친왕이니까 나를 대놓고 막 모욕하거나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묘하게 예왕을 치켜세우면서 상대적으로 나를 비하하는 언행은 가끔만 저질렀다. 여기에 법을 주로 다루는 형부 관리들 특유의 깐깐함이 더해지니, 아주 골 아픈 상대가 되었다.
“전하께서 동변관리사의 직책을 받으셨다 하나, 본래 황친에게는 벼슬을 주지 않는 것이 우리 대한의 법도입니다. 그러니 벼슬을 받으셨다 해도 앞에 나서서 무턱대고 설치기보다는 은인자중하며 황친으로서 지켜야 할 본연의 자세를 따르심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김성권은 월권을 일삼는 내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겸손과 겸양 그 자체인 예왕의 태도를 칭찬했다. 휴우, 저런 놈이 내 밑에 들어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아니, 그만하시오, 김 부장. 전하께서 하시는 말씀은 분명 옳으신 말씀이오.”
이종덕이 급히 끼어들어 상황을 진정시켰다. 우리 둘 사이는 그전부터 무척 좋았고, 누구 입에서 나왔건 정론은 정론이니 말이다.
“총관부 형부 소속 감관들을 시켜 선대꾼을 배정받은 지주들을 조사하게 하고, 일꾼들을 부당하게 대우한 이들이 있으면 판관들에게 맡겨서 합당하게 처벌하겠습니다. 전하, 소관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종덕은 신착민들에 대한 관리가 좀 소홀했다며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렇게 나오면 나도 더 할 말은 없다. 자기 관할도 아닌데 왜 자꾸 끼어드느냐고 대거리를 하고 나서면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이종덕은 그런 성품이 아니니 말이다.
“부탁드리오. 그대나 나나 폐하의 명을 받아 폐하의 백성을 돌보는 처지인데, 저들이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되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종덕은 계속 눈빛을 번들거리며 불만을 드러내는 김성권을 밖으로 내보냈다. 분명 내가 돌아가고 나면 저놈이 이종덕을 들들 볶겠지만, 그건 이종덕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짐이다. 이종덕이 김성권의 언행에 관해 이야기하며 한숨을 쉬었다.
“예왕 전하께서 참으로 훌륭한 인품을 지니시긴 했습니다만, 전하와는 위치가 다르시니까 그대로 비교하면 안 된다고 제가 몇 번이나 일렀습니다만…별로 통하지 않습니다.”
조정에서 예왕을 좋게 보는 신하들이 워낙 많은 탓이라고 했다. 요 몇 년 동안 내 평판도 무척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게 예왕을 끌어내리며 평판을 올린 게 아니라 이미 높은 위치에 있는 예왕과 별개로 좋아진 거라 말이다.
“예왕께서는 한참 전부터 군자로 이름을 떨치셨잖소. 허나 내가 품행을 바로잡은 지는 몇 년 안 되었으니, 비교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이형준에게 익히 들었지만, 예왕은 거의 20여 년 전부터 자기 품행 관리를 했다. 나하고 비교가 안 될 수밖에 없다. 나도 평판으로 예왕을 뛰어넘기는 애초에 포기했으니까 말이다. 돈과 명성, 두 가지 모두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 그냥 편하게 살아야지.
“그 문제는 이쯤에서 덮어둡시다. 그보다, 일전에 서한으로 설명한 중미주 개척 문제를 좀 의논하고 싶은데 말이오.”
이종덕은 엄태원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내가 지도를 펼치고 하는 설명을 주의 깊게 들은 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결정하려면 다른 부장들과도 의논해 봐야겠지만, 저는 찬성입니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이종덕은 작년에 건너온 6만 명을 정착시키는 일로 골머리를 실컷 앓았다. 내가 옆에서 조언하며 돕는다고 해도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이종덕의 몫이었다. 그 힘든 짐을 내가 조금이나마 덜어주겠다는데 꺼릴 이유가 없다.
지금은 병자년 12월, 양력으로는 벌써 해를 넘긴 1697년 1월 24일이다. 이종덕은 무진년(1688)부터 미주대총관 직책에 앉아 있었고, 이미 만으로 8년을 넘게 재임했다. 형황은 꼭 옛날 장조 시절의 나만큼이나 지방 수령들을 한 자리에 오래 두고서 부려먹었다.
이종덕은 직책이 직책이다 보니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본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나와 달리 처자도 데려오지 않아서, 홀로 객지 생활을 하느라 지칠 만큼 지쳐 있다.
사실 본국에서 파견하는 고위 관리들은 대부분 처자를 동반하지 않는다. 즉, 죄다 기러기 아빠들인 셈이다. 이유는 생각만큼 단순하다. 편안하고 화려한 도성을 떠나 본국보다 모든 게 뒤떨어지는 미주로 가고 싶어 하는 부인네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명분은 있다. 바깥주인이 바다 건너 땅에 갔는데 안주인까지 따라가 버리면 집안은 누가 관리하겠는가? 재산과 가솔과 친족들은?
자식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주에 가서 좋은 일이라면 속오군 훈련을 빠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니, 굳이 부친을 따라 건너올 필요가 없다. 과거 준비를 하든, 놀아나든 미주보다는 본국에서 지내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다고 본처 대신 첩을 동반하고 오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 셀린을 데리고 함께 벵골 상관에 부임한 이기빈의 전례가 있지만, 그때도 그건 엄청난 특혜였다. 형황은 누구에게도 그런 예외를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현지에서 적당히 상대를 구해 현지처로 삼는 건 관습적으로 묵인한다. 그래서 본국 출신 관리 상당수는 미주 현지에서 첩을 들이고, 본국으로 귀임할 때 생활 밑천으로 몇 푼 쥐여주고 남편을 구해 혼인까지 시켜준 뒤 홀가분하게 두고 가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 보니, 이때 선호되는 상대는 뒤탈이 날 염려가 없는 묘녀가 많다. 현지 세력가 딸 따위를 잘못 받아먹었다가 재수 없이 이권 거래 같은 데 얽히기라도 하면 신세 망치는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가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종덕은 그런 주변도 없는 사람이라, 쭉 홀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지쳤다.
“전하께서 중미주라 하신 그 지역은, 미억산령 서쪽이기는 하나 일단 동변으로 취급해도 되리라 봅니다. 남미주에도, 북미주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임이 분명하니까요. 관리하는 구역 밖이라는 게 중요하지, 산령 이편이라는 게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종덕은 내년에 본국에서 건너올 난민 전원을 중미주로 보내도 좋다는 태도였다. 선대금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사람을 받아먹으려는 지주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는 그도 싫었던 모양이다.
“소관도 같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전하께 큰 도움을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엄태원이 장부를 펼쳤다.
“본국에 보낼 양곡을 마련하느라, 총관부 재정에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북미주에서 거둔 감저나 담저, 옥수수와 어물 정도라면 웬만큼 나눠드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 도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하오.”
이주민들이 텃밭을 갈고, 감자나 고구마를 심어 첫 수확을 얻을 때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된다. 딱 그만큼을 지낼 식량만 있으면 그 이상은 필요 없다.
그전에도 이렇게 간단히 주민들을 정착시키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아에서 재원을 얻고,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삼느라 이주민들에게 땅을 주는 조건으로 5년씩 머슴 노릇을 시키고 선대금을 받았을 뿐이다.
“신착민들이 내야 하는 운임과 지대는 기록해두었다가 자리가 잡힌 뒤에 현물로 정산해도 충분하리라 생각되오.”
“그야 동변 땅에서 처분하실 사안이니, 저희가 뭐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엄태원도 이주민들을 나한테 떠넘기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이구, 그래 좋다. 내가 세운 계획이니까 뒷감당도 당연히 내가 맡아야겠지.
그나저나 예왕을 지지하는 예왕파 신료들이 은근히 여기저기 많이 박혀 있구나. 이놈들이 그저 예왕을 군자로 보고 좋아하기만 하는 건지, 만약의 사태가 터질 때 예왕을 위해 활을 잡을 정도까지 충성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발 후자는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 자칫하면 진짜 내전 나는 상황 아니겠나 말이다.
– 8 –
이미 바다를 건너온 난민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또 내년에 새로 건너올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이제 양력으로는 1697년, 조선식으로는 정축년이다. 내가 미주에 온 지도 7년을 다 채워 간다.
“올해는 부디 좀 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설날은 설날이다. 동변관리사 관원들은 집에서 쉬게 하고, 나는 저택에서 가솔들과 함께 설날을 맞아 특별히 마련한 음식을 들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호화판 잔칫상을 차리지는 않았다. 사냥에서 잡은 사슴고기로 만두를 빚고, 역시 사냥에서 잡은 기러기로 국물을 내서 떡국을 끓인 정도다. 사슴은 내가, 기러기는 상희가 잡았다.
하인들은 행랑에서, 우리 안식구들은 안채에서 함께 음식을 들었다. 시기가 시기다 보니 음식은 모두 같지만, 술에는 조금 차이를 두었다. 하인들에게는 보통 포도주, 가족들이 마실 술은 예수회 신부들이 특별히 보내준 최고급 포도주다.
“올해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그대는 충장공의 후손이라, 내 형제와 같은 사람이네. 어찌 똑같이 대우하지 않겠나?”
안식구라고 해서 정말 나와 상희, 올렝카, 은이, 준이, 루시아만 앉은 건 아니다. 견서사 일행과 그 가족 ? 서방 없는 사이에 혹시 바람나지 말라고 달랠 겸, 정호찬의 스페인인 첩 이사벨라도 불러다 앉혔다 ? , 내 처남 민지상, 그리고 권훤 부부까지 불렀다.
사실 권훤의 부인 이씨는 미주에 처음 와서는 한동안 내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권훤이 아파치 원정에서 돌아온 뒤에 자기네 집을 따로 마련해서 독립해 나갔다.
“장 병마사도 왔으면 좋았을 터인데.”
“본인이 임지를 떠날 수 없다 하니…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장희재는 유타성에 머무르면서 주변 지역을 살피고 있다. 동변병마사로서 거느리는 군사 1만 중 5천은 남미주 북부 중심지인 평원성에 두었고, 나머지 절반은 변경의 여러 성채에다 분산해서 배치했다. 각 성채 주둔군은 1년마다 평원성에 있는 예비대와 교대하게 된다.
아파치 토벌전이 끝난 게 벌써 2년 전이다. 그동안 장희재는 동변 각지를 돌면서 성채 37개를 세우고 병력을 주둔시켰다. 아직 관군 시절 버릇이 남았는지, 다들 순순히 명령받은 대로 배정받은 성채에서 별 불만 없이 생활하고들 있다.
“둔전을 갈고, 짐승을 사냥하며 잘들 지내고 있습니다. 녹봉 모이는 재미로요.”
동변에 보내진 본국 출신 군사들은 5년 동안 본국에서와 같은 액수의 봉급을 받으면서 복무한 후, 1인당 2결씩 토지를 받고 제대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미주에 오는 보통 백성이 받는 땅은 2인당 1결이니, 4배를 주는 셈이다.
더구나 벽지에 자리한 성채 안에는 딱히 돈 쓸 곳도 없으니, 5년 동안 봉급을 잘 모으면 토지를 몇 배로 늘릴 수 있다. 일반 백성들처럼 미주에 건너온 운임을 갚을 필요도 없으니, 훨씬 여유 있는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거다.
본래는 남미주에 있는 땅을 이들에게 주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들도 중미주에 보낸다. 그러면 중미주에는 제대로 편제된, 전력을 갖춘 수만 단위 속오군 병력이 존재하게 된다. 게다가 충성심에서는 남북 미주와 비교가 안 된다.
앞으로도 본국에서는 퇴역병들이 계속 건너올 거다. 이들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중미주에 정착지를 제공하면, 중미주는 조선령 미주 전체를 좌우하는 군사적 중심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 대한을 위해 평화와 번영을 주시기를 비옵니다.”
“아멘.”
식탁 한쪽에서는 라틴어로 드리는 식사 기도가 한참이다. 아라미츠는 미주 로열패밀리(?)에 신자가 늘어나서 기쁜 모양이다. 프랑스인들 외에 가톨릭 신자는 올렝카 한 사람뿐이던 것이, 정호찬의 첩 이사벨라에 권훤의 부인 이씨까지 추가됐으니 말이다.
권훤의 부인 이씨는 롤리타가 낳은 이덕형의 자손이다. 그 인연으로 그 집안 여자들은 대대로 천주교 신자지만 남편인 권훤은 신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양쪽 가문 사이에 선대부터 인연이 있고, 결정적으로 당사자 두 사람이 눈이 맞는 바람에 혼인했다고 했다.
“소인의 처는 제가 제 손으로 성호를 긋게 하겠다는 목표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권훤이 너스레를 떨자 이씨가 옆에서 방긋 웃었다. 와, 정말 머리카락 색깔만 빼면 옛날 롤리타랑 똑같이 닮았군.
“주님께서는 인내심이 강하시니까요. 콘스탄티누스 대제께서 그러셨듯이, 저희 낭군께서 마지막 순간에라도 회개하고 주님을 받아들인다면 기꺼이 품에 안아주실 겁니다.”
“흥, 부인은 내가 우리 권씨 가문의 조상님들을 그리 쉽게 포기할 것 같소?”
“교회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제사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사당도 유지할 수 있고요. ‘신위(神位)’라는 글자만 안 쓰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잖아요?”
아무리 교황청이 제사 풍습을 인정한다고 해도, ‘신(神)’이라는 글자까지 허용하기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거야 뭐 각 가문이 알아서 ‘피휘’하면 되는 일이니까 별로 풀기 어려운 문제도 아니지만.
“두 사람이 보이는 모습이 무척 다정해 보입니다.”
“그렇구려, 왕비.”
그건 별개로, 젊은 두 사람이 농담처럼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니 귀엽기만 하다. 내가 저렇게 지내본 시절이 언제쯤이던가. 무종 때 아직 의원이던 상희하고 놀던 시절? 그 뒤는 다시는 그만큼 마음 편히 지내본 세월이 없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설날이니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조금 마음 편히 보내보자. 좀 있으면 또 다른 골칫거리가 날아들 테니.
설날 행사를 잘 치르고 며칠 후, 이번엔 멕시코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작년 12월에 새로 부임한 신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 목테주마 백작이 보낸 ‘서로의 친선을 다지고 싶다’라는 서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