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1
1부 101화
– 3 –
“도주가 뭐라 답하던가?”
“도주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신하 되는 자가 나와 지금 도주는 병중인데, 며칠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의식을 찾았다 합니다.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성지를 받도록 하겠으니 제발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대마도인들의 성격대로라면 절대 지금 바로 뛰쳐나올 리가 없다. 조선 지방수령이라면 당장 뛰어나와서 무죄를 호소하겠지만, 대마도인이라면 일단 수그리고 상황을 살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시간을 끌면서 몸을 빼어 도망치리라.
“기운을 차린 기병 20기를 골라 성문 앞으로 데리고 가라. 그리고 계속 소리쳐 위협하라. 진채를 구축할 동안 주의를 좀 끌 필요가 있다. 저들이 섣불리 선제공격을 가해 오지는 못할 테니, 성문 앞에 머물러 있으며 두려움을 주도록 하라.”
육지에 내려서 보니 대마도주의 성은 정말 말이 성이지 정말 그저 좀 큰 저택 수준이었다. 군사 1천 명만 있으면 포위하는데 충분해 보였다. 물론 약해보이긴 해도 성벽도 있고 해자도 있으니 말하는 것처럼 쉽기야 하겠냐마는.
“아예 바로 치면 어떻겠습니까?”
세 중군 절제사 중 한 사람인 김숙이 진언했다. 본래부터 김숙은 과감하고 빠르게 군사를 움직이는 편을 선호했다.
“전하께서 서두르지 말라는 명을 내리시기는 했고, 군사들이 아직 다 회복되지도 않았으나 지금 바로 치는 편이 좋다고 보옵니다. 지금이라도 성을 쳐서 도주를 붙잡으면 원정을 바로 끝낼 수 있습니다.”
“허나 아직 진채가 완성되지 않았소. 적지에서 진채도 완성하지 않고 교전을 시작함은 옳지 않고, 지금 공격을 시작하면 저들은 곧바로 산으로 도주할 테니 싸우는 의미가 없을 거요.”
제대로 진채를 완성하려면 오늘 저녁은 될 터였다. 중군 병력이 사용할 열흘 분량 치중을 싣고 왔는데 이를 다 내려야 하고, 진지 주변에는 삥 둘러 말뚝을 박고 호를 파서 경계선을 구축해야 한다.
멀미에 시달린 병사들을 작업에 투입하려니 아무래도 작업 진행이 느려졌다. 작업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을 바로 전투에 투입하다니, 그건 좀 무리였다.
“너는 가서 왜인들에게 어서 답을 내라고 독촉하여라.”
“예, 대감. 맡겨 주시오소서.”
당당한 몸짓으로 군례를 올린 편장이 몸을 돌려 저쪽으로 뛰어갔다. 그 뒤로 두 번째 중군 절제사 박원종이 다소 거만한 몸짓으로 다가왔다.
“대감, 대마도주가 사자를 보내왔습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는 보고가 들어온 게 방금인데 그새 정신을 차렸단 말인가?”
이극균은 박원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박원종은 임금을 돌보아준 백모(伯母) 월산대군 부인 박씨의 친동생이고, 그 인연 탓이겠지만 임금에게 무척 총애를 받았다. 벼슬을 주어도 가기 싫으면 마음대로 사직하고, 방자하게 굴기도 해서 유능한 무장임에도 평이 좋지 않았다.
“일단 데려와 보게. 분명히 핑계나 둘러대겠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들어봐야지.”
싫더라도 티를 낼 필요는 없다.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임금의 총신이다. 그리고 휘하 장수이기도 하니, 가능하면 그 가진 능력을 잘 활용할 일이다. 박원종이 고개를 숙였다.
“예, 대감.”
“보잘것없는 몸이 조선국 우의정 대감을 뵙나이다. 급하게 채비하느라 미처 예를 다 차리지 못함을 부디 용소하소서.”
의관을 정제한 사자가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어떻게든 상황을 가라앉히려는 시도인지, 사자 스스로는 물론 따라온 부하들도 전혀 무장을 갖추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늘 허리에 차고 다니는 칼 한 자루조차 차지 않았다,
“소인은 대마도주의 신하 성종(盛種)입니다. 도주께서 의식은 회복하였으나 몸이 좋지 않아 직접 환영하지 못함을 용서하소서. 다만 대감께서 성으로 납시신다면 초라하나 정성을 다해 대접하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이 판국에 초대를 받아들인다면 바보가 아니면 미친놈일 것이다. 눈이 뒤집어진 대마도주가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대마도주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직접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대마도주가 이극균 앞에 직접 나타난다면, 당장에 포승줄에 묶여 조선으로 잡혀가리라는 사실을 서로가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너는 낯이 익구나. 3년 전에 사신으로 왔던 자가 아니냐?”
“그러합니다. 대감께서는 그때 판중추부사로 계셨습니다.”
성종은 대마도주의 중신으로 조선의 사정에 밝고 조선어도 능통했다. 여러 차례 사신으로 조선에 왔을 뿐더러, 왜구를 직접 잡아서 조선 측에 인도하기도 했었다.
“저희 대마도는 국왕전하를 받드는 신하로서 이제까지 성의를 다 바쳤습니다. 왜구를 소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해 왔으며, 지난번 서계에 대해서도 성의껏 답했습니다. 어찌하여 이리 군사를 내셨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성종 개인으로서는 충분히 억울할 만하다. 과거에 그 자신이 왜구를 붙잡아 넘겼고, 생포한 왜구의 목을 조선 관헌 앞에서 손수 베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최근 대마도주가 의도적으로 왜구 단속을 게을리 했음은 분명했다. 성종의 개인적 노력과는 별개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본관이 따로 그대와 논할 바가 없다. 다만 주상께서 내린 어명에 따라 군사를 움직일 뿐이니, 어서 도주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성지를 받들게 하라. 예조에서 내린 서한이 아니라 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글이니, 만약 받지 않는다면 벌이 내릴 것이다.”
과거 대마도에서는 임금이 내린 글이라면 마땅히 무릎 꿇고 받겠지만, 고작 예조에서 내린 문서를 받으면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고 거부한 적이 있었다. 결국 예조에서 나가는 문서를 받을 때는 무릎을 꿇지 않아도 좋다고 합의를 보았다.
“신하로서 행해야 할 바가 있는데 어찌 받지 않겠습니까. 다만 도주가 지금 병을 앓아 자리보전하고 누운 관계로 받으러 나올 수가 없습니다. 대감께서 성으로 납시어주신다면 자리에서 억지로라도 일어나서 받겠습니다만….”
“그대라면 지금 상황에서 성으로 들어가겠는가? 좋다. 도주가 나올 수 없다면, 그대가 대신 받도록 하라. 그대는 도주의 중신이니, 대신 받아 그 내용을 전하라!”
성종은 거부하려고 했다. 사실 그로서야 애초에 시간을 끌려고 도주 대신 나왔는데, 서신을 받아 들어가면 목적을 이룰 수가 없어지니까. 하지만 이극균으로서도 임금이 부여한 명분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항복 권고는 하라는.
“내일 해가 뜰 때쯤에 도주가 직접 우리 진채로 와서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뒤 일은 너희들이 감당해야 하리라.”
어차피 진지 축성을 완료하고 군사들이 몸 상태를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지친 병사들을 거느리고 당장 공격에 나서 봐야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 도주는 섬 안으로 도망칠 테고, 제대로 방비되지 않은 진지는 배후에서 기습을 받아 불탈지도 모른다.
“예, 대감.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게 된 성종은 일단 대마도주에게 보내는 임금의 서한을 받아들고 물러갔다. 잠시 생각하던 이극균이 김숙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그대 휘하 군사 2천을 거느리고 도주의 성을 포위하라. 만약 저들이 화살 하나라도 날리면 즉시 반격하여 쳐부수도록 하고, 성을 빠져나가려 하는 자들이 있으면 막아서 나가지 못하게 하라. 군사들이 지쳐 있을 테니 당장 공격에 나설 필요는 없다.”
“멀미에서 회복되지 않은 군사들은 번갈아 쉬게 하며 휴양케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포위만 엄중하게 하면 나머지 군사들은 앉아서 쉬게 해도 좋다. 단 군기는 엄히 유지하여 양민을 약탈하거나 괴롭히지 못하게 하라. 물론 우리 군사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자가 있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잡아 묶어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게 함이 낫지 않겠습니까?”
“군사들에게 임의로 처리하게 하면 필요 없는 살상이 늘어나기 쉽다. 당장 무기를 들고 덤벼드는 경우라면 베어도 무방하나, 아니라면 잡아서 가두었다가 한꺼번에 처결하리라.”
기해동정 때는 닥치고 집을 불태우거나 왜적을 잡아 베었다. 이번에도 저들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리 하게 될 터지만, 가능하면 살상은 줄이는 편이 민심 장악에 좋다. 그리고 사람은 베어 죽이기보다 살려서 일을 시키는 편이 훨씬 쓸모가 있다.
“전하께서도 이번 출병이 단기간에 끝나리라 보지 않으셨다. 필시 산으로 도망칠 도주 이하 우두머리들을 쫓아 잡으려면 대마도 백성들이 우리 편을 들도록 해야 한다. 절대 민심이 우리를 떠나지 않도록 하라. 알겠는가?”
“예, 대감.”
김숙이 군례를 올리고 물러갔다. 고개를 끄덕여 답한 이극균이 주변에 있는 다른 장수들을 향해 어서 진지 축성을 마무리하라고 채근했다.
– 4 –
중군 절제사 김숙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별을 보니 거의 자시였다.
“좋아. 쏘아라!”
호령이 떨어지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관이 곧바로 활을 들어 하늘을 향해 겨누었다. 신기전 한 발이 날아오르더니, 공중에서 약통에 점화되어 불을 뿜으며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그 불꽃과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가까이 있는 누구라도 보고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쏘아라!”
신기전이 날아오르자 총통군 쪽에서도 일제히 호령이 터져 나왔다. 화약과 철환을 재어놓고 기다리고 있던 총통 20여 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날아간 탄환들은 성 안 여기저기에 떨어져 구조물을 부수고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진천뢰를 쏘아라!”
폭음이 울리고, 어른 머리통만한 쇳덩어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잠시 후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어 나무판자 쪼개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굉음이 울리면서 건물 한 채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예 배 위에서 이렇게 포를 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김숙이 아쉬움을 표했다. 아직은 배 위에서 포를 쏘아 성을 맞히기에는 사거리도 짧고 정확도도 떨어졌다. 게다가 대뜸 포부터 쏘았다간 대마도주에게 항복 권고도 해보지 못하고 그저 산속으로 쫓아버리게 될 게 빤하겠기에, 선상 포격은 애초부터 상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더 강하고 정확한 포가 나오면 아예 바다 위에서 항구를 짓부술 수 있겠지. 이번엔 화살이다. 사수들은 활을 쏘아라!”
바람을 가르는 시위소리와 함께 수백 개나 되는 화살이 성 안으로 날아들었다. 간간이 섞인 불화살이 여기저기서 화염을 일으켰다. 성 안에서는 이미 비명과 고함소리가 가득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격하라!”
김숙이 호령하자 천여 명에 달하는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입했다. 민가를 헐어 만든 다리를 해자에 걸치고, 사다리를 성벽에 걸었다. 이미 인근 동리에 사는 왜인들은 모조리 산으로 도망친 뒤라, 집을 부순다고 항의하는 이들은 없었다.
“아침까지 기다려 주신다고 하고 밤에 치다니, 도체찰사 대감도 속내가 꽤 음흉하시구만.”
김숙이 씩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상대를 속이는 건 조선군에서는 예전부터 흔한 일이었다. 야인 추장들을 잔치에 초대하여 거나하게 취했을 때 싹 쓸어버리는 정도는 모략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다.
적을 기만하여 함정에 빠트리고, 그로써 아군이 수고를 줄일 수 있다면 적을 속이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더구나, 적이 그 명분을 제공해 준다면 더더욱 말이다.
“도체찰사 대감이 그러셨지요? 저녁나절에 왜인 서넛이 우리 진채 근처를 어른거리는 것을 잡으셨다고요.”
“그러하네. 필시 대마도주가 보낸 염탐꾼일 것이라, 야밤에 우리 진지를 암습하려는 준비라고 판단하시고 즉시 공격 명령을 내리셨지. 현명하신 판단일세.”
종사관 양진영이 하는 질문을 받은 김숙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대마도주 놈은 이미 저 안에 없을 것이야. 대마도 왜인들이 얼마나 간교한지 생각하면, 필시 담장 밑에 토굴이라도 파 놓았을 걸세. 아무리 늦어도 신기전을 쏠 때쯤엔 이미 그 속으로 도망쳤겠지.”
김숙은 성벽 너머를 천천히 쏘아보았다. 칼 부딪는 소리와 시위 당기는 소리, 비명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지옥에서나 들릴 만한 참상을 만들고 있었다. 다만 대마도 측 군사들은 몇 명 되지 않는 듯, 싸움 소리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저것 보게. 벌써 끝났잖아. 도주와 그 측근, 수하 군사들 대부분은 이미 줄행랑을 쳤네그려. 그렇게 엄중히 지켰는데 도대체 언제 빠져나간 거지.”
김숙이 혀를 차자 양진영이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밝혔다.
“아까 성 근처 민가에 살던 왜인들 한 패거리가 마지막으로 빠져나가지 않았사옵니까. 하도 시끄럽게 울부짖는데다 남녀노유가 뒤섞여 있어서 제대로 수색도 하지 못했는데, 아마 그 속에 섞여서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하옵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김숙이 인상을 찌푸렸다.
“잡힐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만, 역시나 빠져나갔군. 내일부터 좀 벅찰 테니 각오하게. 저 높은 산을 뒤지고 다니며 도주와 그 일당을 추포해야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