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16
3부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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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에는 늘 탕약 냄새가 감돌았다. 심한 기근 때문에 상심한 태자가 약 먹기를 거절해도 내의원에서는 꼬박꼬박 온갖 좋은 약을 지어 올렸다. 당연히 태자의 건강을 염려한 황후가 내린 엄명에 따른 것이다.
황후는 어떻게든 국내외에서 귀한 약재를 구해다가 태자에게 먹였다. 효성 지극한 태자는 모후가 보내주는 약을 마지못해 먹기는 먹었으나 별 효험은 없었다. 몸에 살이 붙지도 않고 후사를 얻지도 못했다. 태자비에게서도, 혹시나 하고 들인 두 후궁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황태손을 얻지 못한 태황은 말없이 태자의 침상 옆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둘째 경친왕이 마진(홍역)으로 요절한 지 12년, 이제 장남인 태자까지 부황의 곁을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아바마마, 미주에 계시는 황숙께는 사절을 보내셨습니까?”
“물론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너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만 생각하여라.”
태황은 두 손으로 자리에 누운 태자의 오른손을 꼭 잡았다. 태황 자신도 살집이라곤 거의 없는 몸이었지만, 손아귀 안에 들어온 태자의 손은 사실상 뼈에 가죽을 씌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소자의 불효를 용서하소서. 소자가 조금만 더 건강하고, 조금만 더 현명하였다면 이렇게 큰 불효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인데….”
“아니다. 너는 참으로 나라와 백성을 아끼는 훌륭한 태자였느니라. 네가 해야 할 일은 다 하였으니, 미련을 가지고 죄스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죽어가는 아들을 앞에 두고도 태황은 목소리를 떨지 않았다. 손을 뻗어 아들의 양쪽 뺨을 천천히 어루만졌을 뿐이다. 부황의 손길을 느낀 태자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바마마의 손이 참으로 따뜻하옵니다. 벌써 4월 보름이라 바깥에는 이미 봄이 왔는데, 소자는 어찌 이리 춥기만 한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가에도 주름이 졌다. 태황이 잔잔하게 웃으며 아들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네가 따뜻하다고 느낄 동안 계속 이렇게 만져 주마. 할 수만 있다면 내 피를 네 몸에다 흘려 넣어서라도 네 몸을 데워주고 싶구나.”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자식이 어버이를 살리기 위해 피를 흘린다면 이는 효를 행함이니 마땅히 옳은 일이라 하겠으나, 어찌 자식을 위해 어버이가 피를 흘리겠사옵니까.”
“옛 성현의 글에서 어버이에게 자식을 위해 피를 흘리라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버이로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지 않을 이가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하지만 부모를 위해 피를 흘릴 자식은 많지 않으니 애써 가르치는 것이다.”
뒤에서 태황의 담담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중전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양쪽에 매달린 상궁들이 급히 중전을 부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하지만 태황은 아들의 얼굴만 고이 바라볼 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오래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소자도 아바마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부드럽게 미소를 짓던 태자가 오한을 느꼈는지 몸을 떨었다. 태황이 조용히 아들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볼을 마주 댄 채 오래, 아주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벌써 두 달 전입니다, 오라버니.”
태후가 한숨을 쉬었다. 태자가 죽던 날, 태후도 동궁에 있으면서 손자의 죽음을 보았다.
“금상은 정말로 대단한 분이십니다. 태자를 잃고도 그 영구를 꼭 부여안았을 뿐,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않았지요.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오장육부가 모조리 타들어 갔을 겁니다. 어찌 이 어미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태후의 오라비인 이원기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무과에 응시, 강무관을 졸업한 뒤로 여러 벼슬을 두루 역임한 무관이다. 남도수군통제사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지금은 중추원에 적을 두고 있는 예순여덟의 노신이다.
“저도 명색이 외숙인데 폐하께서 범상치 않은 분이심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국가 대사를 무엇보다 우선하는 분임도 알고 있지요. 세간에서는 너무 엄하시다고 혹평하는 자들도 간혹 있으나, 본래부터 그리 엄한 성정이 아니심도 잘 압니다.”
태황의 성격은 태자를 명군으로 키워내겠다고 작정한 선황과 태후의 엄한 교육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이원기는 훈육을 받아 바뀌기 전에 태황이 어떤 성품이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고통을 동요 없이 참아낸다는 건 실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잘 견디고 계시지만, 중전께서는 좀 어떠십니까?”
“지난 두 달 동안 중궁전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두 장공주와 공주도 중궁을 자주 찾아와 중전을 위로하지만, 예왕비는 아예 매일 궁을 찾아와 중전을 위안하고 있지요. 그 태도가 참으로 갸륵합니다.”
태후가 한숨을 쉬었다. 이원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왕비께서는 참으로 모범적인 현모양처시지요. 부창부수라, 이 사람은 예왕께서 그토록 훌륭한 군자가 되신 것도 다 예왕비께서 내조를 잘하신 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왕은 올해도 자기 토지에서 지조를 반만 받고, 나머지 절반도 모두 선혜청에다 헌납할 예정이라고 일찌감치 공언했다. 여기에 자잘하게 내놓은 돈과 물품을 합치면 지난 3년 동안 예왕이 푼 재물은 40만 냥에 달한다. 아무리 예왕이 부자라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맞습니다. 예왕은 참으로 훌륭한 군자라고 할 수 있지요. 미주에 있는 성친왕이 예왕처럼 일찌감치 철이 들어 바른길을 걸었다면, 지난 17년에 걸친 고생도 안 했을 텐데….”
성친왕이 견서사로 뽑혀서 유주로 떠난 해가 경신년(1680)이다. 올해가 정축년이니 어언 17년 동안 고국을 떠나 있었다. 태후는 그동안 귀여운 막내아들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초상화는 몇 번 왔다. 내달국에 머무를 때 내달국 화가에게 그리게 한 초상화가 성시균이 귀국할 때 처음 태후에게 보내졌다. 그 뒤에는 미주에서 가족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새로 그린 초상화가 바다를 건너왔다. 태후는 5장이나 되는 그림을 모두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마침내 금상이 아우를 불러들이기로 하였으니, 실로 다행한 일입니다. 태자가 마지막으로 드린 청을 받아들여 불러들이기로 하셨으니 태자의 공이 크지요.”
“태자께서 청하지 않으셨다 해도 불러들이셨을 겁니다. 태자께서 돌아가셨으니, 폐하께는 성친왕 전하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친혈육이 아니십니까.”
동복 누이인 두 장공주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자는 출가외인이고, 태황과 두 장공주는 딱히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데면데면한 사이다. 더구나 대를 이을 자격은 오직 남자한테만 있다. 누이가 아무리 많아도 본가의 대를 이어줄 수는 없다.
“태자께서 흉한 일을 당하신지 이제 겨우 두 달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폐하께서도 후사를 생각하셔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태후마마.”
적자인 태자와 경친왕이 모두 죽었으니 태황에게는 딸 셋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귀비 박씨 소생 옹주는 재작년에 출산하다 죽었으니, 남은 자녀는 공주, 옹주 하나씩밖에 없다.
“금상은 아직 젊으십니다. 노력하면 분명히 새로 후사를 얻으실 겁니다. 중전이 나이가 좀 있으니 적자는 어렵겠지만, 서자면 어떻습니까.”
태후가 어떻게든 대를 잇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이원기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태후마마,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태황은 아우를 견서사로 보낸 경신년(1680) 이후 소생을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 시중에 도는 소문 중에는 태황이 자기 아우의 후사를 끊으려고 한 때문에 하늘이 분노해서 자기도 후사가 끊겼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다. 물론 그걸 크게 떠드는 정신 나간 놈은 없지만.
하늘이 노했건 말았건, 17년 동안 없었던 아이다. 지금 후궁을 새로 들이더라도 후계자를 얻을 가망은 거의 없었다. 태황이 아들을 더 낳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오직 모후만이 기대를 품었을 뿐이다.
“설사 소생을 얻으시더라도 무난히 즉위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보령이 너무….”
“오라버니, 인조께서 6세에 즉위하신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태황은 아직 마흔셋이다. 몸이 약하다지만, 지금까지처럼 섭생을 잘 조절하면 10년 정도 더 사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다. 그럼 새 태자에게 충분한 기반을 다져줄 수 있다. 태후는 이쪽에 기대를 걸었다.
“무종께서 붕어하신 뒤 조정 중신들은 똘똘 뭉쳐 인조께 힘을 실었고, 자순대비께서도 그 뜻을 무시하지 못하고 장성한 진성대군 대신 어린 세자를 즉위하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시지 않았나요. 이번에도 가능할 겁니다.”
태후는 과거 12세로 즉위한 단종이 숙부에게 찬탈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사례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단종에게는 뒤를 살펴줄 어머니나 할머니가 없었다. 지금은 황태후가 멀쩡하게 살아있지 않은가. 태후만 결심한다면 어린 태자도 충분히 즉위할 수 있다.
“성친왕도 숙부로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겁니다. 세상을 떠돌다 태자 덕분에 귀국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생각하면 이 어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리가 없지요. 지난 세월 동안 경험과 실력을 충분히 쌓았으니, 얼마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습니까.”
“마마, 소인으로서는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셔야 할 듯합니다만….”
성친왕 그 자체를 황태제(皇太弟)로 삼아야 할 수도 있다. 이원기로서는 금상과 성친왕, 두 사람 모두 이씨 가문의 조카다. 그러므로 성친왕이 황태제가 되어 최대한 빨리 정국을 안정시키는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모후 앞에서 대놓고 꺼낼 이야기는 아니지만, 17년이나 귀국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떠돌아야 했던 성친왕이 마음속 깊이 한을 품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어린 조카를 충실히 보좌하는 대신 쫓아내거나 제거한 뒤에 자기가 제위에 오르려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럴 거라면 차라리 성친왕을 처음부터 황태제로 책봉하는 것만 못하다. 설사 한을 품고 있더라도, 황태제 자리를 보장해 준다면 태황이 될 날을 기다리면서 순순히 있을 거다.
“그 아이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철이 없고 호기심이 강한 탓에 생각이 모자란 면은 있었으나, 못된 성품은 전혀 없었습니다. 더구나 세상 반대편에 가 있으면서도 원망을 품지 않고 정성껏 편지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나뿐만 아니라 주상께도요.”
이원기가 걱정하듯이 한을 품었다면, 이토록 성의껏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챙길 리 없다. 모후야 그렇다 치고, 중전에게도 꼬박꼬박 귀한 선물들을 보내며 극진히 굴지 않는가. 한을 품고 복수할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렇게까지 하진 않을 것이다.
“마마, 유주 각국의 왕실에서 보위를 놓고서 벌어지는 혈투는 우리 동방의 그것과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10여 년 이상 유주에서 지낸 성친왕이 어찌 영향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이원기도 유주에 직접 가보았다. 루스국과 국경을 정하러 가는 7차 견서사 때, 사절단의 호위를 맡은 무관단의 일원으로 배에 올랐다. 아직 젊은 청년이던 시절이다. 그리고 유주가 어떤 세상인지 충분히 보고 듣고 읽었다.
“유주에서는 지금도 부자간, 형제간에 보위를 다투어 칼을 휘두르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꼭 옛날 춘추전국시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친왕께서는 그런 곳에서 자란 셈이고, 유주 왕후(王侯)들과도 많은 친분을 쌓았습니다. 유주 습속을 배우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원기가 성친왕을 제거하자고 주장한 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성친왕을, 혹은 성친왕 소생 두 왕자 중에 하나를 금상의 후계자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피력했을 뿐이다. 애초에 성친왕도 그에게는 똑같은 조카가 아닌가.
하지만 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의 감으로, 태후는 막내아들을 믿었다.
“현이 그 아이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늙은 어미의 가슴을 찢고 어린 조카의 등을 찌를 아이가 아니에요. 그 아이는 꼭 형의 기대에 부응하여 어린 조카를 지켜줄 겁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마마.”
이원기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설득을 포기했다. 역시 성친왕이 귀국하고, 금상이 후사를 더 얻을 수 없음이 명확해진 뒤에나 이 문제를 거론해야 할 것 같았다. 설마 성친왕도 아직 형황이 살아있는데 정면으로 반기를 들지는 않을 테니까.
– 2 –
풍악을 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풍악이 없는 대신 술이라도 실컷 마시면 좋겠구나!”
“전하, 태자께서 돌아가신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조금 지났는데 술을 드시렵니까?”
깜짝 놀란 장옥정이 예왕의 팔을 붙들었다. 예왕이 너털웃음을 웃더니 아무렴 그럴 리가 있겠냐는 표정으로 장옥정을 다독였다.
“나도 최소한의 예의는 아는 사람이다. 맏조카가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는데 내 어찌 술을 마시며 기쁨을 누리고자 하겠느냐? 그것은 패륜아나 할 짓이니라.”
장옥정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예왕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술을 마시며 축하하고 싶은 건, 태자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는 귀비가 되고 왕비는 중전이 되겠기에, 이를 축하하고자 함이지! 이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라, 축배를 들며 기뻐해도 될 일이니라. 이미 발인도 다 끝나지 않았느냐.”
5개월 동안 국상을 치르는 대상은 나라에서 단 두 사람뿐이다. 태황과 중전이다. 태황이 먼저 죽으면 뒤에 남는 태후도 죽었을 때 국상을 치르게 된다.
국상 기간에는 제사에 쓰는 음복주 외에는 전국에 금주령이 내리고, 주점에서도 술을 팔 수 없다. 국상 기간에 술을 마시다가 잡힌다면 장형 60대를 맞고 전가사변에 처해진다.
태자가 죽었을 때는 발인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2달로 짧다. 게다가 금주령이 내리지도 않는다. 물론 지금은 기근 때문에 곡가가 워낙 비싸서 굳이 금주령이 내리지 않더라도 술을 마시기 어렵다. 일반 백성이라면 말이다.
“전하, 내각승상께서 오셨사옵니다. 어이하올는지요?”
밖에서 집사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예왕이 반갑게 외쳤다.
“안으로 모셔라! 그리고 최 생원도 들라 하여라!”
“예, 전하.”
집사가 멀어져가자 예왕이 웃으며 장옥정을 돌아보았다.
“그것 보아라. 좋은 일이 있으니까 손님이 자꾸 오지 않느냐? 어서 가서 적당히 상을 봐 오도록 하여라. 너는 상을 들인 뒤에 별당에 가 있도록 하고. 이제 몸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느냐.”
지금 오는 손님인 내각승상 김세룡은 예왕비 김씨의 친아버지다. 그러니만큼 시첩(侍妾)으로서 아이를 가진 장옥정이 동석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예, 전하.”
장옥정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주방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