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2
1부 102화
– 5 –
조선군이 뭍에 오른 다음날. 이즈하라 거리에는 사람의 움직임이 가득했다. 다만 조선군 뿐, 대마도 원주민인 일본인들은 거의 없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 숫자는 모두 합쳐서 5백여 명 정도입니다. 젊은이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거의 도망쳤고,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노인들입니다.”
군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극균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마도 왜인들을 학살하는 게 아니라 다스려 이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목적이건만, 모조리 도망쳤다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집집을 뒤져서 아무리 늙었더라도 남자들은 모두 끌어내 가두어라. 혹시 저들 중에 산으로 도망친 도주 일당과 내통하여 우리 진영에 해를 끼치려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늙어서 거동이 힘들다 하나, 가장(假裝)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느냐.”
“예, 대감.”
“그리고 통변을 시켜서 남은 여자들에게 알리게 하라. 엿새에 한 번씩 식량을 나눠줄 테니 다른 날은 농사 때문이건, 바닷일 때문이건 절대 사립문 밖에 나오지 말라고 말이다. 저들이 동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하면 도주 일당과 내통하게 될 수도 있으니, 절대 엄금한다.”
“알겠사옵니다.”
이극균은 군관을 내보내고 난 뒤 군막 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과연 태풍이 닥쳐 고립되기 전에 이 섬을 평정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좀 되었다.
“우군이 봉쇄를 잘 해주어야 할 텐데. 일정대로라면 내일은 목책을 만들겠지.”
대마도는 허리가 아주 잘록한 섬이다. 우군은 대마도 서쪽 해안에서 동쪽으로 깊이 파고든 만을 따라 들어와서는 지협에 진을 칠 예정이다. 그리고 목책으로 지협을 차단할 것이다.
과거 기해동정 때도 지협에 이중으로 목책을 쳐서 적을 남북으로 분리시킨 바 있었다. 다만 그 때는 단지 적의 이동을 방해할 목적에서였다면, 이번에는 적을 분리시키고 그 일파를 완전히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지협에 목책을 설치한 우군은 지협 봉쇄 임무만 철저히 수행한다. 좌군은 두지포를 거점으로 해서 남쪽으로 내려오며 각 마을을 평정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티는 왜적들을 잡아낸다. 중군은 이즈하라를 거점으로 하여 똑같은 작전을 실시한다. 관건은 보급이었다.
“목책이야 쉽게 만들어 지킬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다만 대마도는 산이 깊은데 길을 전혀 모르니 걱정이 큽니다. 섣불리 적을 쫓아 산으로 들어갔다가, 박실의 예를 쫓지는 않을까요.”
기해동정 때 좌군절제사였던 박실은 적을 쫓아 산속으로 들어가다가 매복에 걸렸다. 그 결과 단 한 번의 싸움으로 180명에 달하는 군사가 전사하거나 추락사했다. 이는 당시에 원정을 빨리 중단한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유순정이 걱정하는 바도 무리가 아니었다.
“전하께서 그리 명하시기는 하였지만, 모든 군사들을 산중으로 들여보내는 건 옳은 방책이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군사들은 해안을 돌면서 각 마을을 불태우고 왜구들이 사용할 만한 큰 배를 골라 파괴하게 하며, 우리나라나 대국에서 잡혀온 이들을 찾아 구하게 하소서.”
처음 세운 계획으로는 산속으로 도망친 대마도주를 쫓는데 가능한 많은 병력을 투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헌데 지금 유순정은 다른 안을 내놓은 것이다. 당연히 이극균이 반문했다.
“그럼 산속으로 들어가 도주 일당을 추포하는 일은 누구에게 맡긴단 말인가? 도주를 잡아 항복을 받아야 원정이 끝나는데 말일세.”
“그야 산에서 짐승을 쫓는데 도가 튼 이들이 있지 않사옵니까. 포수군으로 하여금 산으로 들어가 놈들의 발자취를 찾게 하시지요.”
“흐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극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임금이 조정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포수군을 설치한 이유가 그거였으니 말이다.
“역시 늙으면 머리가 둔해지는 모양일세. 그대 생각대로 하세.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이, 왜인들의 집과 배를 불태우면 훗날 상감께서 진노하시지 않겠는가? 가능한 인의로 저들을 대하라는 분부가 계셨는데 정면으로 이를 어겨도 되겠는가.”
“소관이 생각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하께서는 저들이 용서를 구하면 온정을 베풀라 하셨습니다. 항복을 거부하고 산으로 도망쳤다면, 이는 그 자가 반적이란 뜻이니 그 집을 불태워서 안 될 이유가 없겠지요.”
이극균이 한숨을 쉬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적을 진압하자니 어쩔 수 없군. 그러면 당장 절제사 한 사람씩을 보내서 군사들을 이끌고 남북으로 진군하며 바닷가에 있는 마을들을 소탕케 하도록 하세. 조운선 두어 척으로 하여금 군량과 화살을 싣고 병진토록 하면 되겠군.”
조선군에는 육지에서 군량을 나르는데 쓸 말과 소가 충분하지 않았다. 등에 메고 걸어가지 않으려면 배를 동원해서 해안을 따라 가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경우 해안 지형이 배를 대기에 적절하지 않을 경우 보급이 곤란해지는 문제가 있다.
“조운선은 너무 크니, 소맹선 여러 척에 치중을 실어 바쁘게 오가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자칫 배를 대지 못해 군사들이 굶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세. 이 수사에게 지시를 내리겠네.”
– 6 –
박원종이 거느린 중군 본영 1천 명은 산줄기 사이에 펼쳐진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치중대는 따로 없었고, 각자가 사흘 분 식량을 소지하고 있었다. 추가 보급은 섬 남쪽 끝에 있는 포구에서 선편으로 받기로 했다.
“잘 살피면서 가라.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른다!”
박원종은 이미 무인지경이 된 항구 바로 남쪽 마을을 통과하자마자 휘하 군사 2천을 다시 둘로 나누었다. 직접 지휘하는 본대는 산속에 있는 길을 따라 섬 남쪽까지 가도록 했고, 다른 장수에게 지휘를 맡긴 별군 1천은 그대로 해안선을 따라 진격하도록 했다.
해안을 따라가며 보이는 마을들을 파괴하라는 지시를 말 그대로 따르지 않고 굳이 군사를 나누어 내륙으로 진입한 이유는 간단했다. 해변을 따라가는 길 자체가 아예 없어서 절벽 위에 있는 숲속을 헤치고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군이 지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대감! 선봉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길이 돌과 나무로 막혀 있다 합니다!”
지금 박원종이 직접 지휘하는 중군 좌영 본대는 1개 여(旅), 125명씩 대열을 나누어 백 보 간격으로 서서 진격 중이었다. 산길도 좁기는 마찬가지여서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소규모로 움직이고 있을 왜적들에게 대처하려면 이쪽도 소규모로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주변에 적이 매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의하여 비탈 위쪽을 경계하라.”
군사들은 시위에 화살을 메기고, 창을 치켜들고 기다렸다. 뒤쪽에 있는 병력에게도 준비를 갖추라는 명령이 전해졌다. 하지만 한 식경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박원종이 2여 군사들을 비탈 위로 올려 보내 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놈들이 우리에게 겁을 먹었구나! 길만 막았을 뿐, 복병도 두지 않다니!”
후속하는 3여부터 8여까지는 계속 대기시켜 두고, 선발대인 1여 군사들을 시켜 장애물을 제거했다. 도끼와 곡괭이 같은 도구가 충분하지 못했던 탓에 통나무와 바위를 모두 치우는 데 반 시진(1시간) 정도 걸렸다.
“다 끝났습니다, 대감.”
“멍청한 놈들이군. 이 험지에 기껏 방책을 설치해 놓고 군사를 배치하지 않다니.”
박원종은 내심 장애물을 치우는 도중에는 기습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휘하 군사들이 마지막 바윗덩이를 길 밖으로 밀어낼 때까지도 화살 하나, 조약돌 하나가 날아오지 않았다. 길에 함정이 파여 있지도 않았다.
“본관이었으면 적이 장애물을 치우는 그 순간에 화살을 퍼부어 적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매복시켜 두었던 군사들로 적 대열 중간을 들이쳐 분단시켰을 것이다. 그 뒤에 대열이 조각나 혼란에 빠진 적은 간단히 섬멸할 수 있는데, 역시 이 작은 섬에는 제대로 된 장수가 없구나.”
한참 적을 비웃던 박원종이 지시를 내렸다.
“적이 세운 방책을 부수느라 수고한 1여는 잠시 옆으로 빠져 쉬도록 하라. 2여가 선봉으로 나서서 계속 진군하라!”
“예이!”
1여가 장애물을 해체하는 동안 2여는 비탈 위에서 주변 경계를 하고 있었다. 다시 비탈을 내려온 2여 군사들이 장애물이 있던 곳 너머에서 대열을 맞추고, 척후병을 앞으로 내보내는 동안 그 뒤에 있는 나머지 군사들은 휴식을 취하며 기다렸다.
마침내 진군 준비가 완료되었다. 대열을 갖추어 선 2여 군사들을 향해 박원종이 호령했다.
“진군하라!”
군사들이 막 발걸음을 떼려는 참이었다. 갑자기 양편 비탈 위에서 사람 그림자 십여 개가 불쑥 솟아올랐다. 방금 전까지도 2여 군사들이 머물러 있었지만, 땅 위건 나무 위건 사람이 남긴 자취라곤 발견하지 못한 장소였다.
“뭐, 뭐냐?”
박원종뿐만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 장졸들 모두가 놀랐다. 분명히 없었던 사람이 나타나다니? 더구나, 그 그림자들은 하나같이 화살을 메긴 활시위를 한껏 당기고 있었다!
“적이다!”
몇몇 군사들이 고함을 지르는 순간 화살 십여 개가 곧바로 날아들었다. 군사 서너 명이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자 다른 군사들이 급히 방패를 들어 몸을 가렸다. 박원종이 급히 호령했다.
“응사하라! 놈들을 잡아라!”
급히 활을 꼬나든 궁수들이 반격을 퍼부었지만 몇 명 되지 않는 적병, 그것도 숲속에 숨어서 하반신은 땅 속에 감추고 있는 적들을 맞히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제대로 겨냥할 틈도 없이 급하게 쏘니 한층 더 어려웠다.
“저 고얀 놈들이!”
이쪽에서 숲속에 있는 왜적들을 향해 쏜 화살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놈들은 이를 비웃듯이 또다시 화살을 날렸다. 두 명이 더 맞아 쓰러졌다.
“당장 달려가라! 뛰어가서 놈들을 잡아라!”
불호령이 떨어지자 보병 50여 명이 비탈을 달음질쳐 올라갔다. 가능한 날쌔게 뛰었지만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적이 사라진 뒤였다. 올라간 군사들은 복병이 숨어 있던 구덩이와 그 위를 덮고 있던 판자뚜껑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이런 교활한 놈들이 다 있나.”
군관 한 사람이 들고 내려온 뚜껑을 본 박원종이 혀를 내둘렀다. 판자 위에 흙과 풀을 두껍게 덮어놓아서, 그 위를 밟아도 밑에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굴을 파고 들어앉아 이런 걸 머리 위에 이고 숨어 있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 비열한 왜놈들!”
군관에게 보고를 받은 박원종이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렇게 공을 들여 매복해 놓았으면서 정작 인원은 거의 놔두지 않았다. 게다가 있던 놈들도 고작 화살 두어 개만 날리고 도망치는 꼴을 보니 대마도 놈들은 이쪽과 제대로 싸울 의사가 없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을 뒤쫓아 봐야 붙잡을 수는 없다. 이대로 계속 진격하라!”
어차피 이곳 산속은 저들의 터전이다. 길도 제대로 모르는 입장에서, 고작 열 명 남짓한 적을 잡겠다고 행군로를 벗어나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저들도 우리가 겨우 상륙 다음날에 이리 깊이 들어올 줄은 몰랐으리라. 그래서 제대로 된 축성도 하지 못하고, 군사를 모아 당당히 맞서지도 못한 것이다. 고작 십여 명이 매복해서 우리 군사들을 얼마나 저지할 수 있겠느냐!”
기해동정 때 이종무가 군사를 어찌 움직였는지 박원종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포구를 들이쳐서 마을과 배를 불태우고, 포로로 잡혀온 이들을 구출했다. 그리고 대마도주 측에서 항복할 기색이 보이지 않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내륙으로 추가공세를 벌이다 실패했다.
필시 대마도 측에서도 과거 조선군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기억하고 그에 따라 대처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조선군이 내륙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태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을 게다. 그때도 상륙한지 겨우 하루 만에 내륙으로 진격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작은 섬이다. 마을을 모두 점령하고 식량을 빼앗으면 산으로 들어간 놈들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기어 내려올 것이다. 저놈들은 이렇게 귀찮게 굴면 우리가 물러갈 줄 아는 모양인데 어림없다! 모두 진군하라!”
사소한 습격은 모두 합쳐 부상자 여섯 명을 내고 끝났다. 박원종 휘하 군사들은 보잘것없는 저항밖에 하지 못한 적에게 비웃음을 던지며 장애물이 있던 곳을 넘었다. 진격을 재개하라는 명령은 곧 후방으로도 전해졌다.
“서두르라고 전해라! 빨리 내려가서 모든 부락을 불태워야 하니까!”
“예!”
선두 병력이 서둘러 행군을 시작하고, 사자가 후방으로 달렸다. 그 광경을 숲속에서 유심히 살피던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일어섰다. 그림자는 풀과 나뭇가지로 자기 몸을 철저히 가리고 있었다.
누구도 자기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음을 확인한 그림자가 슬며시 사라졌다. 방향은 조선군 행군 대열이 늘어진 뒤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