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22
3부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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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온돌방에서 등을 지지고 자니까 확실히 조선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난다. 지선성에 있는 내 저택에도 온돌방이 있기는 했지만, 평소에 거의 안 쓰다 보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쩌다 불을 때 보면 연기가 제대로 빠지지도 않고 아궁이 앞만 지저분해지기 일쑤였다.
지선성이 겨울에 그다지 춥지 않기도 해서, 결국 온돌은 거의 안 쓰고 살았다. 겨울에도 대개는 화로와 두꺼운 옷으로 버텼다. 그러다가 15년 만에 절절 끓는 구들 위에서 잤으니까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애들은 방바닥이 뜨겁다고 난리였어. 그래서 덮으라고 준 솜이불을 몽땅 바닥에 깔고 그 위에다가 재웠지.”
“그것도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는데.”
애들이야 어리니까 금방 습관이 되겠지. 그래도 올렝카에게는 좀 어렵겠다. 저택에 가면 올렝카가 쓸 방에는 꼭 침대를 넣어줘야겠군.
“그래도 무사히 조선에 돌아오긴 돌아왔구나. 중간에 별일도 없었고.”
별일이 없었다는 내 말에 상희가 갑자기 웃음을 참았다.
“하와이 왕국에 들렀을 때, 난 네가 한바탕 뒤집어놓을 줄 알았는데 용케 참더라?”
“속은 내가 바보였는데 뭘 어쩌겠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주변이 아직 어둑어둑하기도 해서 웃음을 참던 상희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죽여 쿡쿡거리며 웃었다.
귀로에 길을 약간 돌아서 하와이에 들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공적으로는 진주만 수군영에 보급물자도 전달할 겸, 내가 직접 하와이 원정을 치른 지 5년이 지났으니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직접 살필 겸 해서였다.
사적으로는 진주만과 그 앞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잠시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미주에서 기근 대책 때문에 거의 1년 반 동안 제대로 된 휴가 한번 없이 보냈으니, 귀로에 잠시 짬을 내서 한나절 정도 휴양을 즐긴다고 큰 죄는 아니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앙갚음을 하고 싶은 생각도 아주 약간 있었다. 날 멋지게 속여먹은 마우이, 카우이 부자를 만나 따귀라도 한 대씩 후려갈겨 주고 싶었다. 그놈이 이미 왕으로 책봉도 받았지만, 그 정도 보복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서 오십시오, 전하! 전하께서 우리 일족에게 베푸신 은혜, 어찌 저희가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헌데 막상 이 빌어먹을 놈의 부자가 눈앞에 나타나니 그 욕망을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이렇게 착 달라붙으면서 납작 엎드리는 놈을 어떻게 후려 패냐. 잠시 망설이는 사이 카우이가 유창한 한국어로 낭랑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하늘의 뜻이 있었다고 해도 전하께서 힘을 빌려주시지 않았다면 저희 하씨 일족이 어찌 이곳 하와이를 지배하는 왕이 되었겠습니까? 더구나 본국에 계신 폐하께서 저희를 하와이에 봉하신 것도 전부 전하께서 베푸신 은덕 덕분이니, 이 은혜 만 번 죽어도 갚지 못합니다!”
카우이는 본국 유학까지 다녀오더니 한국어가 얼마나 늘었는지, 갖다 붙이는 미사여구가 웬만한 유생 찜쪄먹을 수준이었다. 마치 기름이라도 바른 듯이 혓바닥이 매끄러웠다.
말만 유창한 게 아니다. 몸에 걸친 복색도 완전한 조선 복색이었다. 카우이는 형황에게서 직접 하사받았다는 조복을 입었고, 그 아비인 마우이는 사조룡을 수놓은 흉배를 붙인 녹색 곤룡포를 입었다. 뒤에 늘어선 다른 하와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되었다, 모두 일어나라.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지, 어찌 본왕이 한 일이라 하겠느냐.”
분한 마음을 억누르고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우이 부자는 나를 속여넘긴 일에 대해서 어떤 응징도 받지 않은 셈이다.
“어쩌겠어, 내가 통 크게 덮고 넘어가야지. 마우이 부자는 자기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움직인 것뿐인데.”
내가 마우이의 처지에 있었어도 아마 똑같은 짓을 했을 거다. 어수룩한 외부인을 속여서 뜯어낼 수 있는 건 뭐든 뜯어내고, 내 입지를 다지는 데 활용한다. 그리고 값싸게 만들어낼 수 있는 찬사로 대가를 치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만력제를 그렇게 똑같이 뜯어먹었으니까. 마우이랑 비교해 보면 스케일만 달랐을 뿐이야.”
무종 때 홍치제나 정덕제를 상대하면서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뜯어먹지는 못했다. 그때는 우리가 도저히 명나라에 덤빌 실력이 없었으니까, 칙서가 날아들 때마다 긴장감으로 오금이 저렸었다. 뭔가 무리한 걸 내놓으라고 하거나 북경에 와서 뭘 해명하라고 할까 봐.
그러나 만력제는 호구 그 자체였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20년 더 재위했다면 우리가 얼마나 기근이 심하고 주상순이 얼마나 개새끼고 씨발놈이든지 간에 명나라가 망할 때 양심상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내가 받아먹은 게 너무 많아서.
하지만 내가 일찍 죽은 덕분으로 우리 조선이 중원이 뒤집히는 혼란 속에 발을 들이밀지 않았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중원에서는 평화가 정착되려면 멀었으니 말이다. 조보에 실린 외신을 통해 상황을 막연하게 접하고는 있지만, 그쪽도 참….
“전하, 조반이 준비되었사옵니다. 가실 길이 바쁘오니, 어서 와서 드시지요.”
“알겠다.”
내 상념을 끊은 건 밥을 먹으러 오라는 박종선의 재촉이었다. 지난 15년 동안 내 주변의 모든 일을 살펴 온 박종선은 당연히 나와 함께 귀국해야 할 사람이다.
사실 지선성에 두고 오는 저택과 그림을 박종선에게 부탁할까 하는 생각도 아예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주변을 보살피는, 달리 생각하면 내 목숨줄을 쥐는 자리를 맡길 정말 신뢰하는 집사감을 본국에서 구할 자신이 없었다.
“객사 주방에서 준 어제 저녁밥은 맛이 영 별로였는데, 오늘 아침은 좀 괜찮은가? 기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간소한 음식만 상에 올리는 거야 당연하겠으나, 그게 맛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소찬(素饌)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맛있게 요리할 수 있다. 하지만 어제 객사에 들어와서 받아든 저녁 밥상은 정말 맛이 없었다. 15년 만에 조선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먹는 밥이라는 추억 보정으로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소인이 이미 맛을 보았사온데, 주방에서 준비한 조개를 넣은 된장국과 싱싱한 생선구이 모두 제법 먹을만하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드시지요. 속을 든든히 채워야 도성에 들어가서 폐하를 뵙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옳다. 왕비, 어서 식사합시다.”
상희의 손을 잡고 식당을 향했다. 내 방으로 밥을 가져오라고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밥상을 받고 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식당에 가서 식탁에 앉아 후딱 먹고 일어서는 게 더 편하다. 얼른 먹고 형황한테 인사하러 도성으로 가자.
– 5 –
도성 한복판에 있는 예왕저에서는 지난 밤에 대소동이 벌어졌었다. 그야 당연히 인천에서 급하게 달려온 파발이 전한 소식이 창덕궁에서 흘러나와 여기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성친왕이 돌아왔다고? 성친왕이?!”
간만에 왕비와 함께 안채에서 잠이 들었던 예왕은 큰일이 났다면서 최신원이 직접 방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역정을 내면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최신원이 전한 소식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닫는 순간 잠기운이 몽땅 달아나 버렸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아까 신시정(16시) 즈음해서 성친왕 전하의 사선(私船)이 미주에서 건너와 제물포 항구에 도착했고, 성친왕께서 상륙하시어 인천도호부 관아에 드셨고 객사에서 하루 쉰 다음 도성으로 오신다고 인천도호부사가 파발을 보내 알렸습니다.”
이미 밤이 늦었긴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파발은 보통 낮에만 달리지만, 정말 급한 소식을 전할 때는 밤에도 달리곤 한다. 경인가도는 전국에서 가장 정비가 잘 된 도로인지라 어두운 밤에 말을 달려도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다.
“이 자식들이, 이 자식들이!”
일이 실패할 수도 있겠다 싶어 두 명을 매수했다. 외유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혹시 마음을 달리 먹지 않을까 해서 돈도 계속 추가로 쥐여주었다. 가족의 안위를 놓고 계속해서 협박도 가했다. 그러면 당연히 계약대로 실행하는 게 정상이었다.
“전하,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안에서 예왕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 역시 예왕의 품에 안겨서 푹 잠들어 있었지만, 밖에서 들리는 소리로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빠르게 파악한 참이었다.
“전하, 안으로 들어와서 논하십시오. 밖에서 아랫것들이 다 듣게 하실 참입니까?”
왕비의 목소리를 들은 예왕은 일단 진정했다. 장인 김세룡이 경고했듯, 아무리 가솔들을 철저히 손에 쥐고 있다고 해도 내밀한 이야기는 아예 들려주지 않는 편이 당연히 좋았다.
“자네도 들어오게.”
“예, 전하.”
허리를 숙여 보인 최신원이 예왕의 뒤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성친왕께서 돌아오셨다고요. 확실한 겁니까?”
최신원이 아무리 20년 가까이 예왕을 모신 사람이라 하나, 그도 외간남자임은 분명하다. 예왕이 밖에서 최신원을 상대하는 사이 예왕비 김씨는 혼자 겉옷을 걸쳐 몸을 가렸다. 밖에 있는 사내들을 불러들였을 때, 김씨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궁궐에 있는 연줄이 알려왔습니다. 세간의 소문도 아니고 도호부사가 보낸 정식 파발이 알린 소식이니, 틀림없습니다.”
“내 황금을 3백 냥이나 받아먹은 놈들이….”
예왕이 이를 갈았다. 처음에 선금 50냥씩을 지불하고, 그 뒤에는 중도금 겸 약속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한 고리로 50냥씩, 50냥씩 두 번이나 더 돈을 보냈다.
“바다 위에서 사람 하나 죽이고, 그 흔적을 없애는 게 얼마나 쉬운데 그것 하나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인가! 서생도 아니고 무관에 의관이라는 자들이!”
“전하. 의관은 본래 사람을 살리는 자이지 죽이는 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왕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알고 있소! 하지만 어떻게 해야 사람이 죽는지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의관 아니오?”
예왕이 역정을 냈다. 태자가 죽은 이후로는 드러내지 않던 격한 태도를 본 예왕비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다 된 죽에 코를 푼 격이니, 화가 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화만 낸다고 상황이 풀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예왕비가 최신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 생원, 그대가 일을 맡긴 두 수행원은 어찌 되었소? 그자들도 성친왕 전하를 수행하여 함께 하선하였소?”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자들의 얼굴을 아는 하수인이 둘 있기는 하나, 두 명 모두 도성에 있습니다. 하지만 성친왕께서 내일 도성에 들어오실 때 그 행렬을 관찰한다면 아마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근 20년이 지났다고 하나, 사람의 얼굴이란 그 틀까지 바뀌진 않으니까요.”
암살을 시도했을 김종건과 이진원의 얼굴을 둘 다 아는 사람은 최신원 자신밖에 없다. 두 사람과 직접 만나 교섭한 하수인들은 자기가 담당한 한 명씩의 얼굴밖에 모른다.
“당장 놈들의 집에 불을 질러서 일가족과 함께 태워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미리 경고한 대로 말이다.”
역정이 난 예왕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험한 말을 내뱉었다. 이제 황위를 손에 넣는 목표는 다 이룬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마음 푹 놓고 있던 참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자 참을성도 사라진 것 같았다.
“전하, 진정하시옵소서. 저들이 아예 배반한 것인지, 아니면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것인지 확인한 뒤에 불을 질러도 늦지 않습니다.”
왕비가 예왕을 제지했다. 예왕이 명령만 내리면 당장에 하인들이 변복하고 뛰쳐나갈 걸 알고 있으니 더더욱 말려야 했다.
“왕비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두 명이 성친왕 전하 암살에 실패하고 죽었다면 남은 가족을 불태워 봐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살아서 성친왕 전하 편에 붙었다 하더라도 역시 가족을 불태우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원한만 더할 뿐입니다.”
가족이 아직 살아있고, 언제든 위해를 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그 두 놈도 입을 조심할 거다. 하지만 이미 죽었다면 그때는 더 이상 그 두 놈의 입을 다물게 할 수단이 없다. 고로 아직은 두 놈의 집을 손대지 않고 놓아두어야 한다.
“내일 아침 파루(罷漏)가 울리고 사대문이 열릴 때, 바로 수하 둘을 내보내 인천에 가서 성친왕 전하께서 데려오신 수하들 중 그 둘이 있는지 살피게 하겠습니다. 혹시 길이 엇갈릴 수 있으니 황궁 앞에는 제가 가지요. 거기서 전하가 데려오신 이들을 확인하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성친왕이 인천도호부 객사에서 잔다지만, 내일은 태황에게 귀국 인사를 하러 도성으로 올라올 게 분명하다. 짐과 하인들을 실은 수레를 뒤에 줄줄이 거느리고 느긋하게 이동할지, 파발마를 타고 성친왕 혼자 후딱 달려올지는 알 수 없다.
느긋하게 이동한다면 도성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보낸 수하들이 확인할 수 있다. 마차나 말을 타고 빨리 움직인다고 해도 궁궐 문 앞에서 기다리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말을 타건 마차를 타건 궁궐 문 앞에서는 모두 내려야 하니까.
“현이 그놈이 옛날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자랑한답시고 온갖 신기한 물건과 짐승, 사람 따위를 잔뜩 싣고 와서 그 수레를 줄줄이 끌고 오느라 오는 데만 이틀은 걸릴 텐데.”
“기근이 몇 년째 이어지는 참이니 그러시지는 않겠지요, 전하. 벌써 서른울 더 넘겼는데 성친왕께서도 그 정도 철은 들지 않으셨겠습니까.”
만약 성친왕이 그 두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암살 시도에 실패하고 처리되었다는 말일 테니, 그 가족들에게도 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살아서 성친왕을 수행하고 있다면 배반했다는 뜻이니 당장 가족들을 잡아두고 더 이상 입을 놀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놈들에게는 전하께서 암살을 사주하셨다는 어떤 물적 증거도 없고, 증거가 없는 이상 고발이 있다 해도 태황께서 귀를 기울이실 리가 없습니다.”
저들에게 증거가 있다면 발신자 불명의 편지뿐이다. 그 발신자를 찾아내겠다고 대한 백성 전체를 대상으로 필적 검사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편히 주무십시오. 내일 성친왕 전하가 궐에 도착하시면 분명 환영연이 있을 것인데, 그 자리에 평온한 태도로 나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예왕이 수그러진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비와 최신원이 양쪽에서 달랜 덕분에 격분한 성정이 좀 가라앉았다.
“최 생원도 어서 가보시게. 수하들도 움직여야 하니.”
“예, 왕비 전하.”
최신원을 내보낸 예왕비 김씨는 남편을 달래 잠자리에 눕게 하고 자신도 껴입었던 겉옷을 다시 벗었다. 그리고 남편 옆에 누워 남편이 깊게 잠이 들 때까지 한참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다녀오겠소. 잠시 돌아다니다 시간 맞춰 입궐하리다.”
“침착하시옵소서. 절대 당황하거나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오. 그대는 역시 황후감이오.”
남편을 배웅한 예왕비 김씨는 방으로 돌아와 한숨을 쉬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까짓거 태황이 안 되면 그냥 종친으로 살면 된다고 하면서 느긋하게 굴던 남편이 지금처럼 된 게 아무래도 좀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눈앞에까지 다가온 제위를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 의자 하나만 차지하면 모든 일족의 운명이 바뀌니 말이다.
아직 기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꼭 두 아들 중에 하나를 제위에 올려서 황통을 손에 넣고, 친정인 안동 김문을 대한 제일의 가문으로 만들고 말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