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23
3부 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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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과 하인들은 일단 인천도호부 객사에 놓아두고 나와 가족들, 그리고 견서사를 비롯한 내 측근들만 마차 5대에 분승했다. 우리 일행을 위한 경호는 인천도호부에 주둔하는 포도청 소속 기병 20기가 나와서 맡았다.
“점심때까지는 노량진에 닿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전하.”
“수고를 부탁하겠네.”
옛날에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우마차로 12시간은 족히 걸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왕래에 필요한 시간이 거의 ⅓로 줄었으니, 어찌 발전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마차를 달리며 창밖을 보니, 인천 시가지는 아직 다 깨어나지 않았다. 지난밤에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던 가로등도 죄다 꺼져 있어서 밤보다 더 조용한 아침이었다.
“도성 이외에 가로등이 있는 고을은 개성과 군산, 여기 인천밖에 없습니다. 가로등에 쓰는 고래기름값도 싸지는 않으니 말이지요.”
내 측근 참모 중 가장 최근까지 본국에 있었던 사람이 권훤이다. 나와 같은 마차에 타고 본국 사정에 관해 설명하는 그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제…게, 소인에게 함께 귀국하자고 명하신 겁니까, 전하?”
“명령이 아니라 권유일세.”
내가 돌아오라는 칙명을 받은 줄 모르고 건의안을 쥐고 달려왔던 권훤은 닭 쫓던 개 같은 표정이 되어있었다. 권훤은 틈만 나면 원미주 원정 계획을 다듬어 들고 오는 게 일이었다.
받아서 읽어 보니 구상은 괜찮았다. 먼저 남대하 상류에서 배를 만들고, 그 배를 이용해 미주대하 본류로 들어간다. 두 강이 만나는 합류점에다 성채를 건설하여 중계점으로 삼고, 바다로 내려가 하구에 두 번째 거점을 만들자고 했다. 그러면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다.
여기서 남대하(南大河, 아칸소강)는 서쪽에서 미시시피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주요한 두 지류 중에서 남쪽의 큰 지류를 뜻한다. 북쪽에 있는 큰 지류는 북대하(北大河, 미주리강)다. 우리 탐미군이 탐사해 보지는 않았어도 존재는 확인한 동쪽 지류는 동대하(東大河, 오하이오강)라고 일단 명명했다.
“귀관이 세운 계획은 장기적으로 실천해볼 만한 구상이긴 하네. 하지만 아쉽게도 본왕은 폐하의 어명을 받아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게 되었어. 그래서 그대를 더 지원해줄 수가 없으니, 함께 돌아갔으면 하네. 자식도 생겼는데, 노부모께 손자 구경을 시켜드려야지?”
권훤은 선뜻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6품 정위를 받았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정식 관직이 아닌 향품(鄕品), 본국으로 돌아가면 제대로 관직 취급을 받지 못한다. 현조부 권율 수준으로 출세하기를 바라는 권훤으로서는 아직 더 큰 공적이 필요했다.
“권 정위 그대의 심경을 모르는 바는 아니네만, 그대도 미주에 온 지 벌써 4년이 아닌가? 한 번쯤 본국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본국 사정도 살피는 게 어떤가. 조보만 가지고 본국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으니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내 후임 동변관리사로 누가 건너올지는 모르지만, 친왕인 내가 가진 것만큼 큰 권위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원미주 탐사나 아파치 토벌 같은 정말 큰 사업은 그저 권한만 있다고 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내 후임이 충분한 권한을 가지고 온다고 해도, 권훤이 내 후임 눈에 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권훤이 기안한 원미주 원정 기획안을 채택하면서, 정작 권훤은 기용하지 않고 걷어차 버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알겠습니다, 전하. 전하와 함께 귀국하겠습니다.”
“고맙네. 내 그대가 섭섭하지 않을 만큼은 보상하지. 그리고 큰 공을 세울 다른 기회를 또 노려보세. 분명히 기회가 있을 걸세.”
사실 권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눈을 감고 미주에 놓고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젊은 놈을 거기 놓고 오면 공명심 때문에 무슨 사고를 낼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크게 들었다. 권율의 후손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고래는 서해보다는 동해에서 훨씬 많이 잡습니다만, 그 기름을 자기네가 직접 태우지는 않습니다. 팔아서 돈을 버는 편이 더 낫지요.”
권훤의 설명을 들으며 창밖을 보니, 시가지 풍경도 90년 전과는 정말 달랐다. 어젯밤에는 어둠 때문에 잘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보도와 차도가 전부 벽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차도에는 궤도마차가 달리는 레일도 설치되어 있었다.
“시내에 궤도마차가 다니는 고을도 도성을 빼면 평양, 개성, 그리고 여기 인천뿐입니다.”
“일상적으로 운반할 사람과 물화가 없다면 설치할 필요 없는 물건이지.”
시내에 궤도마차가 다닌다는 건 노선을 따라 움직이는 화물과 승객의 수요가 꾸준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여기 인천은 그저 경기도에서 가장 큰 항구가 아니라 도성을 거쳐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모든 운송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평양은 관서 지방의 중심이면서 북방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거점 중 하나다. 또한, 사동에서 생산한 석탄을 운반하느라 무종 때부터 궤도마차를 설치한, 조선에서 가장 먼저 궤도를 깐 도시이기도 하다. 가로등은 없어도 말이다.
‘물동량이 그 정도라면, 아예 운하를 파서 인천에서 바로 서울로 들어가는 수로를 열어도 될 것 같은데….’
경인운하 계획이 꽤 현대까지 있지 않았던가. 현대에야 육상교통이 너무 발달해버려서 그 효용이 낮지만, 자동차가 대량으로 보급되기 전이라면 당연히 운하의 가치가 크다. 운하를 파고 증기선을 정기적으로 운항하면, 인천과 도성 사이가 훨씬 긴밀하게 연결된다.
‘아니, 기차 쪽이 더 나을까?’
경인선 철도를 부설한다고 하면 공사비는 운하 굴착보다 싸게 먹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철로 까는 기술은 백지상태인 데다, 결정적으로 그 철로 위를 달릴 기차가 없다.
‘열기창을 족쳐서 기관차에 얹을 만한 소형 고출력 엔진 개발을…프랑스 고문단을 따라온 학자들이 물리학이나 공학 같은 거 전수했을 거고, 수학은 원래 우리도 제법 하니까 이제는 상당한 경지 아닌가? 아, 한강을 건너는 철교를 못 지으니까 어차피 배를 타야 하겠네.’
생각하다가 문득 헛웃음이 났다. 나 벌써 정권 잡고 이런저런 사업 할 생각에 빠진 건가? 아직 국정에 영향력이라곤 없는 친왕 신분인데?
김칫국도 이만저만이다. 아직 형황이 누구를 자기 후계자로 정했는지도 모르는데 헛꿈만 꾸고 있다. 국정 방향에 대한 고민 같은 거 잔뜩 쌓아뒀다가 예왕이나 현왕 좋은 일만 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양식 가옥도 많이 늘었구려. 모두 최근에 들어선 거요?”
정호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시가지에 한옥만 들어선 게 아니다. 제법 많은 석조나 벽돌조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저건 네덜란드식, 저건 프랑스식…건축인가?
“예, 영감. 도래인 출신 가문 중에 인천에 분가를 두고 사업을 영위하는 자가 적잖고, 그 외에 서양 각국에서 온 주재원들이 터를 잡고 사는 이들도 있어서 그런 이들이 여기에 집을 짓고 삽니다.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북쪽에는 중국인들만 몰려서 사는 동리도 있습니다.”
이쪽 세계의 인천 차이나타운은 70년 전 중원대란 시기에 배를 타고 건너온 피난민들이 만들었다. 현재 인구는 약 2만. 대구에 있는 대명동에 이은 두 번째 중국인 집단 거주지로 ‘소명동(小明洞)’으로 불린다고 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사천 출신인 대명동 백성들과 달리 저들은 죄다 산동 출신이라 만나도 서로 말이 안 통합니다. 게다가 대명 말기의 혼란이 뼈에 사무친 이들이라, 대명묘에 가서 절하라면 코웃음을 치지요. 소명동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권훤은 미주로 건너오기 전에 뭐 단박에 출세할 건수 없나 하고 사방으로 쏘다닌 전력이 있었다. 그랬던 덕분에 젊은이치고는 상당히 박학다식한 편이었다. 마차가 인천을 벗어나 경인가도로 완전히 접어든 뒤에도 권훤의 설명은 끝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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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가도는 훌륭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중요하면서 길이가 짧기도 해서 돈을 들이기 훨씬 쉬워서 그렇다. 하지만 다른 주요 도로들은 구간에 따라 포장 상태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고 했다. 여전히 도로 유지 책임이 도로가 지나는 각 고을 수령에게 있는 탓이다.
권훤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노량진에 도착하니, 출발할 때 들은 대로 거의 정오가 되었다. 중간에 한 번 휴식과 용변을 위해 역에 들러 멈췄는데도 이 정도라니, 정말 빠른 속도다.
노량진에 도착해서 본 나룻배는 내 기억 속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장조 시절만 해도 이 나루를 오가는 나룻배는 사공 두세 명이 젓는 것으로, 승선할 수 있는 사람 숫자도 서른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달랑 한 척만 영업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게 노량진 나룻배라고? 허어, 그새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내 눈앞에 나타난 ‘나룻배’는 판옥선만큼 큰 선체에 물레방아보다 큰 외륜 두 개를 양쪽 측면에 단 증기선이었다. 그런 커다란 놈이 반 시진(1시간) 마다 반대편 기슭으로 움직이며 짐과 사람을 날랐다. 사람만 태우면 3백 명까지 태운다고 했다.
“증기선이 많이 늘기는 늘었군요. 우리가 떠날 때만 해도 한강 나룻배로까지 증기선을 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정호찬이 나룻배를 쳐다보면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정호찬도 벌써 만으로 마흔일곱, 머리에 새치가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갑자기 더 미안하군, 이거.
이건 권훤도 자기는 못 본 물건이라면서 입을 다물었다. 대신 노량진 나루터 관리를 맡은 포도청 군관이 나서서 설명해주었다. 김진식이라고 하는 정위였다.
“여기만이 아닙니다. 마포진과 한강진에도 이것과 같은 큰 증기선이 나룻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포진에 있는 증기선은 운항하지 않고 세워두는 때가 많고, 그래서 거기는 나머지 나루터 십여 곳처럼 노를 젓는 목선이 주로 오갑니다만.”
물론 나룻배가 모든 교통을 감당하는 건 아니다. 태황이 순행을 나간다거나 할 때는 예전 사례에 따라 노량진이나 한강진 방면에 임시로 배다리를 가설하기도 한다고 했다. 과거에도 그런 다리를 종종 놓았었다. 경인왜란 때라던가.
“세 곳뿐이라 해도 그게 어디인가.”
강을 건널 뿐이니 기관이 고출력일 필요도 없다. 석탄을 많이 실을 필요도 없다. 조선소 업무를 당장 인계할 사람이 없어서 캘리포니아에 놓고 온 알렉상드르가 이걸 봤으면 눈물을 흘렸겠군. 아니, 당장 제물포에 있는 증기 예인선을 봤을 때부터 정신이 나갔으려나.
“강 건너편에도 사람이 수백 명쯤 모인 것 같습니다.”
홍상훈이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다들 나이가 제법 되다 보니, 시력이 옛날 같지 않다. 홍상훈도 벌써 쉰넷이다.
“나룻배를 기다리는 선객들이겠지. 별로 신경 쓸 것 없네.”
설마 형황이 광화문이나 남대문 앞도 아니고 나루터까지 사람을 보내 나를 환영해줄 리는 없다. 괜한 기대를 해봤자 실망만 커질 터, 아예 어떤 기대도 품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마포나루에 있다는 증기선은 황실 식구들 도피용이겠군.’
여기서도 마포에 들어선 마포 대성당의 위용이 보인다. 짓는 데 60년 걸려서 30년 전에 비로소 완공한 성당 겸 요새. 한강을 따라 올라오는 적을 막는 역할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피해 강화도로 탈출하는 황실의 퇴로를 엄호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강력한 성채다.
아마도 마포나루에 있다는 증기선은 한강 이남 육로도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 섰을 때, 태황을 태우고 수로를 통해 곧바로 강화도로 직행하는 임무를 띠고 있겠지 싶다. 평소에도 나룻배로 굴리기보다는 비상시를 위한 예비선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겠지.
“타십시오~!”
나룻배 사공의 우렁찬 외침 소리가 들렸다. 우리 일행을 위해 나루터를 특별히 싹 비워둔 상태라, 사두마차 5량이 한 번에 모두 올라타고도 공간이 좀 남았다.
나룻배가 강중으로 나가자 시야가 더 트이면서 좌우 강변이 눈에 들어왔다. 툭 튀어나온 용산 쪽 강기슭에 가려서 한강진 쪽은 볼 수 없었지만, 마포진 아래에 정박해 있는 증기선 나룻배는 확실히 보였다. 언뜻 봐도 이 배보다 세 배는 크고, 선체도 훨씬 튼튼해 보였다.
“탈출선 맞는구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무기고도 갖추고 있을 것 같다. 강변으로 추격해오는 추격대와 교전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함포가 없어 보이는 걸 보면 분명 수전은 상정하지 않았겠지. 적선이 한강을 따라 올라올 정도면 수로로 탈출하는 전망은 이미 망한 거니까.
이미 말했듯 배가 빠르지는 않아서, 한강을 건너는 데만 한 20분 정도 걸렸다. 나룻배에 동승한 김진식에게 설명을 들으며 강을 건너는데 건너편에 사람 무리가 보였다. 아까 잠깐 보고 나룻배를 기다리는 승객들인 줄 알았던 그 무리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저것…백성들이 아니지 않으냐?!”
적어도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군사, 관원들이 제복을 차려입고 늘어서 있었다. 나룻배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더니 그 관원들이 눕혀들고 있던 깃대를 일제히 곧추세웠다. 수백 개나 되어 보이는 오색영롱한 깃발들이 일제히 바람을 받아 나부꼈다.
“태…태황께서 전하를 마중하러 보내신 행렬인 듯합니다.”
“허,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나만 놀란 게 아니다. 이형준과 정호찬도, 홍상훈도, 권훤도, 상희와 올렝카도 모두 저쪽 기슭에 펼쳐진 환영 대열을 보고 놀라 할 말을 잊었다.
“…꼭 옛날에 칙사를 맞이하던 모습 같군.”
이제 조선에 올 ‘칙사’는 없다. 하지만 옛날 장조 시절까지만 해도 명나라에서 꽤 여러 번 칙사가 왔었다. 통보가 올 때마다 매번 영접하러 나가야 했던 만큼, 칙사를 맞이하는 우리 행렬이 얼마나 화려했고 준비에 힘이 들었는지는 명확히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행렬이 내 귀환을 맞아 펼쳐진다고…?’
내 주변에서 놀라지 않은 사람은 딱 하나뿐이었다.
“아빠! 저 사람들 저기서 뭐 하는 거예요? 왜 저렇게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깃발을 들고 있어요?”
‘연기가 나고 쿵쿵거리는 배’를 탔다고 신기해하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은이가 어느새 뱃머리 쪽으로 달려오더니 폴짝거리고 뛰면서 뱃전 너머를 보려고 했다. 안아 들어서 저쪽 기슭을 보여주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저건, 네 큰아버지이신 태황 폐하께서 우리 은이를 환영하려고 보내신 사람들이란다.”
“큰아버지 폐하는 모두의 아버지시죠? 그래서 큰아버지죠?”
태황을 인디언들한테 ‘위대한 아버지’로 소개하는데, 이 녀석도 그 영향을 받았나 보다.
“태황 폐하는 이 아빠의 진짜 형이란다. 아빠의 형을 큰아버지, 백부라고 부르지. 그러니 태황 폐하는 만백성의 아버지시면서 네 백부님이시기도 한 거야.”
“네, 아빠!”
은이는 아직 만으로 5살밖에 안 된 지라, 내 설명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황이 아빠 형이라는 사실 자체는 납득한 모양이다. 자기도 준이의 형이니까.
잠시 후 배가 나루에 닿았다. 은이를 하인 양소목(楊小木, 작은 나무의 조선 이름)에게 맡긴 다음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억제하면서 배에서 내리니 이형준과 비슷한 연배인 듯한 문관 한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성친왕 전하, 그간 노고가 크셨습니다. 소인은 예부 협판 김만중으로, 폐하께서 소인으로 하여금 나루에서 전하를 맞아 예를 갖추어 창덕궁으로 모시라고 명하시었습니다. 이제부터 소인이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