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24
3부 142화
얼굴만 보고는 도무지 누군지를 모르겠는걸 보면, 17년 전 아직 어린애였던 성친왕과는 전혀 접점이 없었던 사람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름을 들으니 단박에 이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 그대가 서포로군. 만나서 참으로 기쁘네. 그대가 쓴 글은 재미있게 읽었네.”
서포 김만중은 이쪽 세계에서도 구운몽의 작가로 유명하다. 다만 임금이 숙종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씨남정기는 쓰지 않았다. 혹시 지금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구운몽은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손으로 베낀 필사본이 미주에서 돌고 있을 정도다. 나는 정식 인쇄본을 구해서 읽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다만 설정과 줄거리에는 내가 있던 원래 세계 구운몽과 차이가 있었다.
먼저 주인공 양소유는 당나라 사람이 아니라 남송 사람이다. 그리고 여덟 명의 여주인공 역시 출신이 제각각이다. 남송 출신은 기본이고, 금나라?거란?일본?달단?천축?고려인에 서역인 여성 캐릭터까지 있다. 정말 다채로운 하렘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만일세. 그동안 잘 지냈는가?”
“물론일세. 그 긴 세월을 무사히 버티고 돌아와서 정말 기쁘네.”
이형준과 김만중도 내 옆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 두 사람, 그리고 내 장인인 민성윤까지 모두 송시열의 제자로 아주 친한 사이였다고 했다. 송시열은 분명 산림(山林)의 영수였지만, 송시열의 제자들이라고 성균관과 집현전에 들어가지 않는 건 또 아니었다.
“마차에 다시 오르시지요. 여기서 돈화문까지 걸어가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알겠소이다. 아, 내 개인적으로 그대에게 묻고 싶은 바가 하나 있소.”
구운몽을 읽다가 한 가지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작가를 직접 만난 김에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인공이 대명의 부활을 원한다 해도 됐을 텐데, 왜 대송을 부활시키게 하였소?”
“대명이 되살아나면 우리 쪽에서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군.”
이쪽 구운몽에서 양소유는 남송 출신으로서 대송의 부활을 지상목표로 삼는다. 동아시아 전체를 누비고 다닌 끝에 그 꿈을 이루고 자신은 중원을 회복한 송나라 승상이 된다. 모든 꿈을 이루고 2처 6첩을 거느리고 인생의 절정을 누리다가 꿈에서 깨는 건 원작(?)과 같다.
그런데 명나라 부활을 목표로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청나라나 서나라 출신이면 우리 우호국에 반기를 드는 게 되고, 후송 출신이면 대의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으나 후송 출신이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 껄끄럽다. 게다가 조선은 사라졌던 상국을 다시 모시게 된다.
“알려주어 고맙소. 내 나중에 소장본을 들고 갈 터이니, 낙관(落款) 하나만 찍어주겠소?”
“보잘것없는 글을 보아주신다니 소인이 영광이옵니다.”
김만중이 직접 서명한 사인본이 생기는 건데 내가 고맙지. 수백 년 뒤에는 그 가치가….
사인본 하니 상희가 가지고 있던 셰익스피어 친필 증정본 원고 생각이 난다. 지금은 전부 집현전에 있다고 했었지.
4백 년 뒤에는 집현전이 세계 최고의 문학적 보물창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내 손이 닿는 한 여러 중요한 책의 희귀한 판본들을 모아둬야겠다.
– 8 –
“도성 백성이 이렇게 많았소?”
마차 주변을 둘러싸고 이동하는 군사들이 쳐든 깃발 사이로 빽빽하게 모여든 구경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 마차에 동승한 김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근 때문입니다. 구호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도성으로 많은 피난민이 몰리면서 지금은 한성부 관할인 성저십리 내에 사는 백성의 숫자가 거의 70만에 달합니다.”
성저십리(城底十里)는 도성 성벽에서 10리 이내 지역을 가리킨다. 칼로 자르듯이 10리를 자로 재서 구획하는 건 아니고, 한강, 우이천, 중랑천, 홍제천으로 둘러싸인 구역이 현재의 성저십리에 해당한다.
“도성은 우리 대한의 심장입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 기근 동안 외부에서 들어오는 양곡이 가장 원활하게 공급되는 곳이었지요. 사방에서 난민이 밀려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국에서 건너오는 인편으로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들으니 한결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난민으로 도성 인구가 그렇게 급팽창하다니. 지금 미주 전체 인구가 새로 이주한 난민까지 합쳐서 대략 70만인데, 도성 하나 인구가 70만이라니.
하기야 현대 한국에서도 비슷했다. 서울 인구 1천만 명이면 웬만한 중소국가 인구 규모랑 맞먹는 숫자였으니 말이다. 역시 이놈의 한반도는 손바닥만 한 넓이에 비하면 사람 하나는 정말 남아도는 땅이다.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본래 성저십리는 벌목과 매장이 모두 금지되고 상주하는 인구도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근 때문에 몰려든 난민들이 워낙 많다 보니 사대문 안쪽에 다 수용할 수가 없어 성저십리 일대까지 움막이 잔뜩 들어서 있습니다.”
김만중이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밀려든 난민들 탓에 사대문 안쪽에서 공지(空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라 했다. 화장실 같은 것도 제대로 법에 따라 만들지 않은 곳이 많아 전염병이 퍼질 우려도 있었다.
“다행히 올여름은 무사히 넘겼고, 이미 10월이니 겨울 동안은 괜찮겠군. 하지만 내년에는 운이 없으면 설사병이나 이질이 퍼질 수 있겠소. 혜민서에서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소?”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도성에 너무 많은 난민이 모여들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기근이 끝나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위생적인 주거지를 만들어 저들이 정착할 수 있게 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를 달성하지 못하는 한 무슨 수를 쓰건 임시 대책일 뿐이다. 과연 형황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려고 하고 있을까.
남대문을 통과하자 도로 연변을 메운 군중의 행색도 바뀌었다. 성문 바깥에서 눈에 띄던 구경꾼들보다 좀 더 깔끔하고 번듯하게 차려입은 자들의 수가 늘었다. 살림에 좀 더 여유가 있는 원래 도성 주민과 초라한 난민들이 언뜻 보기에도 확연하게 구분된다.
“환호성 같은 건 없군.”
다섯 대의 마차 중 어디에 내가 탔는지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 조선의 승용마차는 전부 안쪽이 보이지 않는 상자형이다 ? 길가에 늘어선 구경꾼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는 해도 이쪽을 보고 환호를 보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북하시겠지만, 지금 전하의 대열은 백성들이 환호할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알고 있소. 포로를 줄줄이 끌고 오거나 막대한 재물을 수레에 쌓아서 선보이지도 않는데 다들 시큰둥할 수밖에 없겠지. 내가 옛날에 워낙 좋은 이름을 남기지 못하기도 했고.”
서울 토박이들은 내게 대한 좋은 기억이 없어서 흥미가 없겠지. 난민들은 내가 누군지 잘 몰라서 흥미가 없겠고. 고로 내 귀환에 관심이 있을 이들은 나와 예왕 중에 누가 형황에게 후계자 또는 후계자의 부친으로 낙점받느냐에 따라 처지가 달라질 양반들뿐이다.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에 마차가 멈췄다. 드디어 돈화문 앞, 이제 내려서 내 발로 형황을 만나러 가야 할 순간이었다.
– 9 –
돈화문 앞에는 수백은 족히 될 외금위 군사들과 조정 관리들이 격식을 갖추어 늘어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도 꼭 명나라 칙사라도 맞이할 때 같았다.
“공을 세운 신하가 외지에서 돌아올 때 맞이하는 법도에 따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런 대우를 받기에 합당한 공을 세우셨으니, 염려 말고 안으로 드십시오.”
“고맙소, 협판.”
지금 형황을 알현하는 건 공식적인 ‘보고’다. 그래서 나, 이형준, 정호찬, 홍상훈, 권훤까지 겨우 다섯 명만 형황이 있는 인정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카자크들은 하인으로 분류됐다.
돈화문을 지난 뒤에 나머지 일행과 갈라졌다. 상희를 비롯한 아녀자들에게는 태후 처소인 만수전으로 들어오라는 지시가 있었다. 만수전으로 가려면 여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선문으로 들어가는 대신 앞으로 쭉 가야 한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사옵니다.”
올렝카와 권훤의 부인 이씨 ? 이름이 ‘마리(瑪利)’였던가 ? 를 뒤에 거느린 상희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은이는 엄마 옆에, 아직 어린 두 아이는 유모가 안고 뒤에 서 있다.
“태후전에 중전마마도 계실 텐데, 아직 심기가 편찮다 하시니 잘 위로해 드리시오.”
상희나 이씨나, 둘 다 워낙 명문가 출신이라 태후는 물론 중전과도 안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도리어 ‘친형’을 만나는 나보다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참에 올렝카도 잘 소개해주면 더 좋고.
“잠깐, 은이는 엄마 말고 아빠랑 같이 가자.”
“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커다란 궁궐이다. 은이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강한지 선뜻 내 곁에 와서 섰다. 은이에게 꼭 내 옆에 붙어 있을 것, 그리고 혹시 태황께서 말을 거시면 나한테 대답할 때처럼 하면 안 되고 배운 대로 최대한으로 예절 바르게 대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자가 죽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전술을 쓰기는 좀 미안하지만, 어린아이를 보면 형황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풀어지겠지.’
계승자가 될지도 모르는 조카다. 성시균이 말한 것처럼 형황이 속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목석처럼 굴지는 않으리라.
“전하께 주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고맙네, 다라미츠.”
진선문을 지난 뒤에는 내 개인적인 손님인 셈인 아라미츠, 다토스, 드 포르토와 헤어졌다. 이들은 조금 더 가서 태자의 공부방인 성정각(誠正閣)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나중에 후원에 있는 연못인 부용지(芙蓉池) 옆 영화당(暎花堂)에서 연회가 있을 테니 그때 합류하라나.
카자크들도 그편에 보내고, 짧은 인사를 끝내고 몸을 돌렸다. 활짝 열린 인정문 저편에 의자를 높이 하고 앉아 있는 형황과 품계에 맞춰 죽 늘어선 조정 중신들이 보였다. 내가 늘 저 옥좌에 앉아서 사람을 내려다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처지가 바뀌었구나.
은이의 손을 굳게 잡고, 정호찬을 비롯한 네 사람을 뒤에 거느리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제 들어가자. 언젠가 부딪혀야 할 일이었으니까.
김만중이 나루에서 미리 언질을 준 대로, 행사는 원방(遠邦)에서 용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신하를 환영하면서 그 노고를 위로하는 형태였다. 나도 예전에 많이 ‘주최’해 본 그 행사다.
하나 걱정되는 점이라면 내가 선 자리가 달라진 데다 90년이 지나는 사이 예법이 바뀌어 실수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건 뜻밖에 간단하게 해결됐다.
“전하, 이쪽으로 서셔야 합니다.”
형황 역시 내가 예법을 제대로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 따위는 전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이 지긋한 내관 한 명이 내 뒤를 따라다니며 행사에 관한 모든 절차를 귓가에 속삭였다. 여기서 멈추고, 저기서 절을 하고, 이번에는 서서 태황에게 바치는 인사말을 읊는다.
“훌륭하십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이 정도를 가지고 칭찬을 들을 정도라니, 과연 이 내관이 기억하는 17년 전의 성친왕은 도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이형준이나 정호찬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멍청한 바보까지는 절대 아니었다. 역시 손을 쓸 수 없는 개구쟁이 쪽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앞으로 가까이 오라.”
마침내 예를 갖추어서 행해야 하는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의례적으로 치하하는 말까지 다 끝나자 형황이 나를 앞으로 불렀다. 드디어 ‘형’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고개를 똑바로 들어라. 얼굴을 좀 보자.”
아무리 황명으로 고개를 든다고 해도 임금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는 없다. 눈을 내리깔아 시선이 마주치는 건 피하면서도 살짝 눈을 움직여 태황의 얼굴을 살폈다.
‘정말 내 형 맞네.’
천녀가 어둠 속에서 약속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에 관한 기억이 살아나도록 해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견서사 일동을 제외하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내 기억을 되살린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 망할 년이 약속을 제대로 안 지킨 게 아닌가 미심쩍었다.
하지만 지금 형황을 보니 머릿속에 형황과 관련된 어려서부터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죽 떠오른다. 천녀는 확실히 약속을 지켰다.
“그동안 네가 보낸 보고는 다 잘 받아보았다.”
17년 동안, 내 일거수일투족은 모조리 보고서가 되어 형황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견서사 공식 보고서는 이형준이 썼고, 미주에서 동변관리사로 취임한 뒤에는 내가 직접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써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금위사 보고서가 있었으리라.
견서사 인원 중 누가 금위사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미주에서 먼저 귀국한 세 사람 중 하나였는지, 아니면 홍상훈과 박종선 중 하나인지 ? 김종건과 이진원은 아닐 테니 ? 말이다. 전자라면 아마 미주 주재 요원하고 교대했겠지. 아니면 본국에서 새로 보냈거나.
어느 쪽이건 형황은 내 주변 정황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행동이 불안한 동생을 둔 태황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부끄럽습니다, 폐하.”
형황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내가 지난번에 죽기 직전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흐린 안색인 걸 보니, 그다지 오래 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네가 저지른 일 중에서 한 가지는 크게 나무라야겠다. 너는 어찌하여 목숨을 그리 쉽게 버리려고 들었느냐?”
형황의 꾸지람이 빈 포위전에 뛰어든 일을 놓고 나왔다는 걸 알아채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벌써 14년이나 지난 일인지라, 나로서도 이미 상당히 잊어버린 옛 추억에 해당하는 사건이 되어버린 탓이다.
“선대의 치욕을 갚은 일은 분명 공적이라고 하겠으나, 상의 한마디 없이 네 멋대로 사전(私戰)을 벌인 것은 잘못이다. 더구나 네가 멋대로 벌인 행동으로 인해 태후께서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하였고, 친왕비도 결국 명을 달리하지 않았느냐.”
“신의 부주의는 만 번 죽더라도 갚을 수 없나이다. 부디 어리석은 아우가 미숙하여 벌인 철없는 행동을 용서하소서.”
우리 형님 정말로 가차 없구나. 여섯 살밖에 안 된 조카가 옆에서 보고 있든 말든 동생이 잘못한 점을 들어서 까다니. 아, 정말 53년 만에 누구 앞에서 꿇어 엎드려 보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는 이 나라의 친왕이며, 사직을 수호하고 또 황통을 이어나가야 할 중한 존재다. 일개 창수(槍手)가 되어 적진에 뛰어들어도 될 신분이 아니란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다행스러운 건 내게 대한 질책은 이 한 마디로 끝내겠다는 분위기가 풍겼다는 점이다. 이 정도라면야 나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사실 미주에서의 월권 문제만 해도 형황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파제낄 수 있는데 굳이 14년 전 일을 꺼내지 않았는가.
“그 아이가 네 장자인가? 똑똑하게 생겼구나.”
휴우, 화제가 은이로 옮겨갔다. 데리고 들어온 보람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