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33
3부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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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앞에는 신하들이 법도에 따라 죽 늘어서 있었다. 신분은 높으나 조정에서 맡아서 하는 일이 없는 종친들은 뒤쪽에 따로 모여 있었다. 친분을 쌓은 여러 종친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으려니 ? 성친왕의 기억 덕분에 얼굴 정도는 다 알아보았다 ? 예왕이 다가왔다.
“성친왕께서 오셨군요. 못된 집사 때문에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시절에 제가 너무 어려서 믿을 만한 집사를 알아보지 못한 탓이니, 어찌 남을 원망하겠습니까.”
“허허, 성친왕께서 참으로 군자가 되셨습니다. 저라도 가끔 들여다보고 전하 댁의 살림을 살펴드렸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만시지탄입니다.”
예왕은 나를 볼 때마다 사과했다. 내가 나랏일 때문에 집을 비웠는데, 형제가 된 몸으로 내 집 살림을 돌봐주지 않아 정말 미안하다면서 말이다.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닙니까. 마땅히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며 어려울 때 도와야 했는데 그만 제가 태만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만 바랍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예왕 전하께서는 제 형님이신데 어찌 그런 사소한 일로 계속 폐를 끼치겠습니까.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가식과 위선으로 점철된 대화가 오갔다. 지난번에 내 환영연 때 딱 한 번만 날 선 태도를 드러낸 뒤로, 예왕은 나를 만날 때면 늘 웃으면서 대했고 절대 예의를 잃지 않았다. 얼마나 친근하게 대하는지 친형제 같다는 소리가 주변에서 나올 정도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왕이 내게 경계심을 덜 품도록, 예왕을 대할 때 황형(皇兄)이라고 불러볼까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 내가 예왕보다 격이 높다는 법도도 법도지만, 예왕은 날 죽이려고 자객을 둘이나 심은 놈 아닌가.
아무리 나한테 원한이 많고 보위에 욕심이 나도 그렇지, 두 번이나 나를 죽이려고 했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화해도 좋지만, 최소한 진심 어린 사과 정도는 받아야 한다. 사과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내가 나서서 형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하긴 암살 시도를 인정하면 자기 목이 떨어질 테니 사과하려야 할 수가 없기는 하겠다만, 그렇다고 내가 그걸 다 이해하고 참아줄 수도 없잖은가. 언제 예왕이 미쳐서 세 번째 암살 시도를 벌일지 모르는데.
혹시나 모를 위험 때문에 지금도 외출할 때마다 경호원으로 카자크 둘 이상은 꼭 데리고 다닌다. 어제 반촌에 놀러 가서도 보리스와 이고르가 문 앞을 지켰었고, 아래층에는 이반과 탈라스를 두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게 했다.
일가족 나들이를 나갈 때는 물론이고 상희가 혜민서에 봉사하러 갈 때도 마부 겸 호위로 카자크 둘은 꼬박꼬박 붙인다. 도성에서 공공연히 무기를 휴대할 수는 없어서, 무기는 품에 권총 두 자루를 넣고 손에 든든한 박달나무 몽둥이를 지팡이 삼아 드는 정도지만 말이다.
엄중한 경계 덕분인지, 예왕이 무력으로 수작을 부리기를 포기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위험한 일은 없었다. 하기야 무력을 썼다가는 형황한테 ‘날 죽여 주십사’라고 비는 꼴이니까 예왕도 그런 식으로 나오지는 않은 듯하다.
김세룡을 필두로 한 예왕 지지파는 올해 들어 계속 나를 치켜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무슨 의도인지 의심스러운데, 아마 상희가 걱정하듯이 미주로 쫓아 버릴 심산인 게 아닐까 싶다.
은이의 정서를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우리가 도성에 있고 원하면 볼 수 있다고 해도 분리 불안에 빠져 난리가 날 텐데, 미주에 간다고 하면…상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행여 형황이 가라고 하면 석고대죄를 해서라도 버텨야 할 판이다.
“그 집사는 결국 북변으로 내치셨다면서요?”
“황실의 재산을 훔쳤으니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뿐입니다.”
집사 놈이 해 먹어도 너무 크게 해 먹은지라,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마침 새로 고용한 박수원이 말하길, 포도청에 지인이 있다고 하기에 그쪽으로 바로 넘겼다. 그 죄상이 워낙 명확하다 보니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바로 북변으로 전가사변 판결을 받았다.
“성친왕께서도 정말 많이 유해지셨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저도 철이 들었는데 어찌 철모르던 어릴 때처럼 굴겠습니까, 허허. 엄존하는 법과 질서를 따라야지요.”
옆에서 보기엔 그저 화기애애한 형제간의 대화였으리라.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상대의 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온갖 궁리를 꾸미는 중이었다. 둘만 계속 놓아두기에는 좀 불안했는지 현왕이 허허 웃으며 다가와 끼어들려는 참이었다.
“태황 폐하 납시오~!”
유구 세자가 궐문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오자 비로소 형황이 인정전으로 나왔다. 벼슬이 없는 황족들은 태황에게 인사만 올리고 연회장 쪽으로 가서 기다리는 게 법도지만, 현왕과 함께 가려는 나를 동부승지가 와서 붙들었다.
“폐하께서 전하께 물어볼 것이 있으니 옆으로 오라 명하셨습니다. 소관을 따라오시지요.”
“폐하께서? 알겠소.”
슬쩍 살펴보니 예왕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찌그러졌다가 곧바로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놈, 형이 나만 부르니까 약 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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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황은 내가 귀국했을 때에 비하면 몸이 좀 나아졌다.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자기가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에너지를 끌어내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기력을 회복한 건 아니다. 조회를 취소할 때도 많고, 경연은 올해 내내 거의 열리지 않았다. 정사를 논할 때도 의정부에서 일차 논의를 마치고 자기에게 들고 오면 최종결정만 내릴 때가 늘었다. 예전에는 대부분 주요 사안을 처음부터 살폈다는데 말이다.
“아우는 요즘 어떻게 지냈는가? 조카들과는 많이 놀아주고?”
“예, 폐하. 함께할 시간을 주신 덕분에, 아이들도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복숭아꽃이 다 지기 전에 무릉에도 다녀왔습니다.”
장조 때 코끼리 타고 무릉 가던 생각이 났지만, 지금은 마차로 갔다. 도성에서 코끼리를 소유한 사람은 태황밖에 없으니까. 사복시 외양간에는 지금도 코끼리 여덟 마리가 있으면서 태황이 타는 수레를 끌거나 사역에 종사하고 있다.
형황의 질문에 따라 애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행사 준비가 모두 마무리됐다. 선전관이 와서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리자 형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라 이르라.”
“유구국 상절사, 유구국 세자 상순 듭시오!”
유구국 세자 상순(?純)은 경자년(1660) 생으로, 나보다 2살 위다. 또래라서 그런지 내가 슈리성에 초대를 받았을 때도 무척 친절하게 맞이했었다. 쉰이 넘은 국왕 상정보다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상순 쪽이 나도 대하기 편했고.
그날 만난 상순은 한국어도 능숙했다. 아니, 상순뿐 아니라 국왕 상정을 비롯하여 만찬에 참석한 유구 왕족과 고관 전원이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아마 한국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만 자리에 불렀을 수도 있겠다만. 그때 생각이 문득 났다.
유구식 전통 요리에다 조선, 일본, 중국, 스페인식 요리와 술까지 줄줄이 나오는 만찬은 정말 화려했다. 온갖 방식으로 요리된 고기와 생선과 채소를 보니 이쪽 세상 유구가 확실히 번영하기는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드라마에서 지역 협력사 간부들이 그룹 기획실장을 맡아 본사에서 시찰 나온 회장님 동생 접대하는 것 같군.’
술과 음식도 그렇지만, 악단이 하는 연주에 맞춰서 춤을 추는 어여쁜 무희들에 양쪽 옆에 바짝 붙어서 시중을 드는 미모의 시녀들까지 있으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요구하기만 하면 여자를 끼고 들어갈 방까지 당장에 대령할 기세였다.
“저희 유구는 오직 대한국 태황 폐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덕분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쌀과 설탕, 면화를 사주시고 교역로를 열어주셨으며 군사를 두어서 지켜주기까지 하시니, 어찌 그 은혜를 저희가 모르겠습니까?”
“유구는 우리의 오랜 인방(隣邦)이잖소. 마땅히 베풀어야 할 배려이니 어찌 아끼겠소.”
아버지뻘인 유구왕이 내게 고개를 숙여 가면서 ? 그래도 체면이 있는지, 허리까지 숙이진 않았다 ? 내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보려니 왠지 좀 불쌍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사쓰마에 정복당해 더 불쌍한 처지가 되었지만, 이 양반들은 당연히 그걸 모르니까.
상정은 계속 내 눈치를 살피며 오직 조선의 자비 덕분에 연명하는 가련한 자기들 상황을 슬며시 호소했다. 명목상으로 유지되는 독립국 지위 하나만 남았을 뿐이라며, 어느새 대화 분위기를 슬쩍 정치적인 쪽으로 몰아가려는 기색이 보였다.
“아참, 여기 내가 미주에서 기념으로 가져온 토인들의 장신구가 있소. 약소하지만 선물로 드릴까 하니 받아주시면 고맙겠소.”
하지만 그때 나는 태자가 죽어서 본국에서 후계자 문제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막 접한 참이었다. 식사 정도는 대접받아도 괜찮지만,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접대나 정치적 논란에 얽혀들어 나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대화 주제를 돌렸다.
유구왕은 두어 차례 더 자기들 처지를 호소하며 내게 동정을 사려 했지만, 매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바꿨다. 결국, 유구왕은 내게 뭔가 구체적으로 청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날 유구왕이 연회에서 남은 음식을 하인들을 시켜 보내준 덕분에, 유구첨사 이하 우리 장졸들이 잘 먹기는 하였습니다.”
“들었다. 기특한 일이지. 역시 은혜를 아는 충실한 이웃이로다.”
속삭이며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 상순이 형황 앞까지 왔다. 황제에게 올리는 예에 따라서 사배(四拜)를 올리고, 유창한 한국어로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유구국 세자 상순이 대한국 태황 폐하를 뵙습니다. 천하 백성이 편안함이 모두 폐하의 성덕에서 비롯되오니, 그 고마움을 어찌 겨우 두 번 인사로 다 표할 수 있겠사옵니까.”
– 6 –
유구에서는 매년 2차례 조선에 사신을 보낸다. 봄에 오는 사신이 상절사(上節使), 가을에 오는 사신이 하절사(下節使)다. 국왕이 직접 오지는 않지만, 왕자 또는 왕의 형제가 사신을 맡아 건너오는 게 보통이다.
“사신은 두 번이면 충분하다. 평소 필요한 용건이 있으면 아래에 있는 관원들이 자유로이 연락을 주고받으니, 굳이 따로 오가는 사신을 늘릴 필요는 없다.”
“알겠사옵니다. 하오나 저희 소방(小邦)으로서는 폐하의 성덕을 더 많이 칭송하고자 했을 뿐이지, 대국에 폐를 끼치고자 함이 아님을 알아주시옵소서.”
전에 형황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유구가 1년 2공을 유지하고 있는 건 조선군이 언제라도 수도를 들이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공물을 더 바치려고 하는 것도 유구가 얼마나 조선을 충실히 받드는지 보여주려는 의도고 말이다.
여기서 유구가 바치는 공물이 ‘조공’이라면 조선에서는 하와이에 있는 마우이에게 해주듯 답례품을 내려야만 한다. 그게 법도다. 비록 조선이 명나라의 법통을 계승한 건 아니지만, 천하의 중심으로서 권위를 세우고 질서를 잡는 그 형태는 본뜨지 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구가 조선에 바치는 공물은 조공이 아니라 ‘선공(膳貢)’이라 칭한다. 공물이기는 하나 정식 조공이 아닌 주는 이가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내놓는 선물이라는 뜻이고, 조선은 이에 대해 답례품을 따로 내리지 않는다. 왜 답례품을 주지 않느냐고?
그건 이 ‘선공’이 조선이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조선군이 유구에 주둔하면서 유구를 지켜주는 데 대한 보답’으로 내는 선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유구에 두는 수군 유지비로만 매년 약 5만 냥에 달하는 은을 쓰고 있다. 상당한 액수다.
그러니 유구는 선공이라는 형태로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다. 자발적인 것으로 되어있으니 선공으로 보내는 물품의 종류와 수량도 정해져 있지 않다. 말 그대로 보내는 쪽에서 알아서 골라 보내는 거다.
“올해는 천축산 코끼리 2두를 가져왔습니다. 지금 서대문 밖에 있사오니, 부디 사복시에 두시어 긴요하게 쓰소서. 기근도 진정되었다 하니, 큰 부담은 없으실 것이옵니다.”
지금 사복시에 있는 코끼리 절반이 유구에서 바친 거라고 했다. 옛날에 장조가 코끼리를 좋아했다고 해서 가끔 바친다고 한다.
“고맙게 받겠다. 헌데, 그대의 부왕은 여전히 칭신만은 피하고 싶다 하는가?”
“예, 폐하. 말씀드리기가 무척 송구하오나, 저희 소방으로서는 옛날에 천자께 입은 은혜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발 마지막 의리만큼은 지키도록 허락해주소서.”
조선이 정식으로 명나라의 법통을 계승했다면야 유구에 대놓고 신속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명나라의 법통은 누구도 이어받지 않았다. 조선과 건주는 중원의 질서가 사라졌으니 ‘어쩔 수 없이’ 각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새로이 천명을 받았다.
물론 자기가 명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후송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조선은 후송의 그런 주장을 개뼈다귀만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명나라 황족이 세웠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소금 장수, 도둑놈이 세운 나라 아닌가.
조선과 후송이 한때 치열하게 싸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명나라 계승권을 놓고 두 나라가 다퉜기 때문이 아니었다. 후송이 조선을 도망친 종놈 취급하면서 ‘건방지게 태황 칭호를 쓰지 말고, 신종하라’고 대뜸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소리를 들어줘야겠는가?
조선은 명나라가 무너진 김에 중원과의 은원의 고리를 끊고 따로 서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있었다. 태황이나 조정 중신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분을 중시하는 산림 중에서는 친명파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이들도 후송의 신하가 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후송이 속으로는 정신승리를 하든 말든, 겉으로는 조선을 외방으로 인정하고 동등한 교류 상대로 삼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다. 그런데 건주군을 몰아냈다고 기가 살아서는 조선, 일본, 유구에다 죄다 신종하라고 국서를 뿌려댔으니 가만히 둘 수 있을 리가 없다.
“대명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여 칭신할 수는 없으나, 대신 다른 것을 드리고자 하옵니다.”
“무엇을 내놓으려 하는가?”
태황이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구의 칭신 거부는 사신이 올 때마다 치르는 일인지라, 형황은 딱히 놀라지도 않고 화를 내거나 기분 상해하지도 않았다. 주변에 늘어선 신하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일전에 말씀드린 저탄소 건이옵니다. 부디 올해는 나하에 저탄소를 설치하여 주시옵소서. 나하에다 저탄소를 두시면 대남까지 증기선을 쉽게 보내실 수가 있을 터, 대한의 수군이 그 위용을 한층 더 멀리까지 떨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탄소는 증기선이 움직이려면 꼭 필요한 시설이다. 하지만 형황은 이런 중요한 제안에도 딱히 큰 흥미를 보이지 않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 저탄소 말인가.”
사실 유구가 저탄소를 놓아달라고 제안한 건 이미 수년 전부터였다. 형황과 우리 조정이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이유는 단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