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37
3부 155화
– 13 –
“그렇게 여론을 모으고 있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조만간 성친왕 전하의 장자를 황태자로 하시라고 조정의 총의가 올라갈 것이고, 대신 성친왕 전하는 미주로 보내시라고 청을 드릴 것입니다.”
너무 자주 모이다가는 어디서 틈이 생길지 모른다. 김세룡은 비밀히 사위 예왕을 찾아와 밀담을 나누는 횟수를 줄였다.
“그러고 보니 성친왕저에 다녀오신 게 벌써 사흘 전이군요. 어떠셨습니까?”
“음…숙수가 무척 솜씨가 좋더이다.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라면 월봉을 2백 냥쯤 주어도 좋으니 데려오고 싶을 정도였소.”
사위의 대답에 김세룡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왕이 자기도 안다는 듯 슬며시 쓴웃음을 지으며 뒷말을 이어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 알고 있소. 그리고 자칫하면 내 집에 내 손으로 자객을 들이는 일이 될 터인데 내가 그럴 리 있겠소? 단지 그 솜씨가 무척이나 아까울 뿐이오.”
예왕이 성친왕의 집을 찾은 건 이쪽으로 부른다고 성친왕이 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이쪽에서 먼저 성친왕의 집을 찾아 자신이 성친왕에게 적대감이 없고 또한 상대를 신뢰하고 있음을 입증했으니, 이제 성친왕은 다음번에 예왕이 초대했을 때 거절하지 못할 거다.
“다만 그렇게 해서 수를 쓰는 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오. 결행했다가는 우리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여기는 조선이지 중원이 아니다. 중원에서야 황족이나 세력가들끼리 잔치에서 독을 먹여 상대를 독살하거나 미리 숨겨둔 도부수를 동원해 연석에서 상대를 참살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하지만 대한에서는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대한에서 그런 짓을 시도하면 당장에 금부도사가 나장들을 거느리고 들이닥칠 거다. 그리고 종범들은 한강 백사장에서 줄줄이 목이 떨어지고, 주범은 기둥에 묶여 바짝 말라서 건포가 되거나 한강에 던져져 고기밥이 되리라.
“아직 실제로 그렇게 된 자는 없었지만.”
“그런 짓을 시도할 일도 없었지요.”
중원과 대한은 아예 풍속이 다르다. 그러니 다른 하늘을 받들고 사는 것 아닌가. 예왕은 옛날부터 명나라 황제들이 가진 강력한 황권을 부러워하기는 했으나, 대한의 태황이 명나라 황제와 같을 수 없다는 현실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는 대비해야 하는 법이지요. 어떻습니까. 성친왕저에는 무력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던가요?”
최악의 가정이지만, 계유정난 때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조정 여론이 성친왕을 미주로 내보내는 쪽으로 기울었을 때, 분격한 성친왕이 예왕과 김세룡을 비롯한 주요 인사를 습격해서 결정을 뒤집으려고 할 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럴 때 저들이 치고 나올 상황을 대비하려면 알아두어야 합니다.”
“역으로 우리가 쳐야 할 수도 있겠고.”
그건 금상이 정식으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급사했을 경우다. 그런 상황이 초래된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이쪽에서 먼저 쳐서 성친왕을 쓰러트려야만 한다. 꼭 죽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혐의를 씌워서 북변으로 귀양이라도 보내야 한다.
두 사람은 그 조사를 맡았던 최신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신원이 문서를 펼쳤다.
“집에 두는 사내 하인이 대략 서른 명 정도 되는 듯했는데, 그 유명한 루스인 장사 여섯 명 이외에는 크게 힘을 쓸 만한 놈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자들은 옛날 양무공과 비교해도 용력이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 거사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하인들이 쓰는 행랑채 규모와 섬돌 크기, 부엌에 있는 밥그릇 숫자만 살펴도 사람 숫자는 간단히 셀 수 있다. 최신원은 슬쩍슬쩍 주변을 드나들며 성친왕의 저택 내에 거주하는 사람 숫자를 확인했다. 양무공(襄武公)은 과거 임꺽정이 받은 시호다.
“앞에 나설 장사가 6명, 뒤를 따를 장정이 서른이라….”
김세룡이 숫자를 곱씹었다. 계유정난 때 세조가 움직인 병력도 그보다 별로 많지 않았다. 모아두었던 장정들이 역모라고 두려워하며 도망가는 바람에 겨우 5명으로 거사를 시작해야 했다. 성친왕도 지금 거느린 사람만으로 일을 벌이려고 작정하면 충분히 저지를 수 있다.
“무고(武庫)가 따로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맨주먹은 아닐 겁니다. 대갓집들에서 사냥이나 활쏘기 수련에 쓸 활 십여 장 정도는 갖춰두는 게 보통이고, 창칼 수십 점 정도는 간단하게 숨겨둘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총포도 분명히 몇 자루는 있을 겁니다.”
성친왕의 사랑방에는 갑주와 검밖에 없기는 했다. 하지만 성친왕 자신이 미주에서 총으로 사냥을 즐겼다고 토로한 바 있으니, 어딘가 넣어둔 총이 따로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한 자루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예왕저에도 조총 열 자루 정도는 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
예왕의 질문을 받은 최신원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서 집에 두신 장정 숫자가 여든 명이니, 정면으로 격돌한다면 우리가 딱히 불리할 게 없습니다. 양쪽이 갖춘 병장기 수준도 비슷할 것이고요. 말은 우리한테 30필이 있으니, 10여 필밖에 없는 저쪽보다 유리합니다.”
장조 때 이후로 군사들이 쓰는 모든 무기를 나라에서 지급하면서 일반 백성들은 일부러 무기를 구할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사냥에 쓰는 창이나 활, 조총은 민간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흔하진 않지만 전문 도검장을 찾아 주문하면 질 좋은 환도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예왕 측은 연줄을 통해 병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국내에 기반이 없는 성친왕은 그게 불가능하다. 예왕이 집안에 확보해둬야 할 전력은 성친왕 측의 일격을 받아낼 수 있을 정도면 된다. 김세룡이 물었다.
“물론 싸우지 않고 성친왕 전하께서 순순히 미주로 떠나신다면야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시도하신 설득은 효과가 있었는지요?”
“없었소. 미주에 있는 자기 사업을 그리 진지하게 걱정하지 않는 모양이야.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멍청해서 그런지 대리인들을 아주 푹 믿고 있더이다.”
성친왕과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본 건 예왕에게도 처음이었다. 지금 정국에서 성친왕의 속내를 알아볼 필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을 거다.
“헌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성친왕의 사람됨이나 생각하는 양상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고 진중하였소. 세월 덕분인지 확실히 경륜도 생겼고, 언행도 전혀 가볍지 않고 진중하여 품격이 느껴졌소. 옛 고사는 물론이고 작금의 세상 정세에 대해서도 훤히 꿰고 있고.”
“유주 체류 8년에 동변관리사로 보낸 세월 7년이 있으니 사람이 아예 안 바뀌면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옛날 성친왕께서도 성품에 문제가 있으신 것이었지, 타고난 머리가 우둔한 분은 아니지 않으셨습니까.”
예왕이 얼른 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주저하던 예왕이 말문을 열었다.
“사실…성친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이런 생각이 들었소. 옛날하고 달라진 지금의 이 성친왕이라면 대원왕이 된다고 해도 나한테 큰 핍박은 가하지 않고 그냥 의좋게 살려고 할 수 있겠다 싶더란 말이오.”
성친왕이 그날 보인 모습은 그동안 황궁에서 열리는 행사 자리에서 보던 것과도 달랐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사적인 자리라 그런지, 훨씬 밝고 부드러웠다. 예왕비나 장옥정에게는 정중했고 조카들에게도 자상하고 친절했다. 하지만 최신원이 옆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하. 사람 고쳐서 쓰는 거 아니라고 했습니다. 외양은 바뀔 수 있어도,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주상 폐하의 눈치를 보아야 하니 얌전히 계시지만, 훗날 대원왕이 된 뒤에도 성친왕 전하가 오늘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신원은 힘겨운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약해지려는 예왕의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까지 와 놓고 체념하다니, 그게 될 말인가? 최신원이 예왕을 받든 지도 20년이다. 예왕이 성친왕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우수한 왕재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왕비께서도 성친왕저에 분란의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성친왕비께서 정실이라 하나 사실상의 본처는 유주부인이니, 그동안 맺힌 한이 적지 않을 겁니다. 유주부인과 성친왕비 전하 사이에서 분란이 심하게 일어나면 더더욱 성친왕께서 도성에 머무르기 어렵겠지요.”
아직은 상황을 뒤집을 여지가 있다. 김세룡은 지금 예왕의 후손이 지존의 자리를 대대로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나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알겠소. 미리 의논한 대로 최선을 다해 봅시다. 그놈을 다시 미주로 보낼 수 있도록.”
성친왕을 일단 미주로 쫓아낼 수만 있다면, 미주를 쥐고 반기를 들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미주는 군사적으로 본국을 위협할 수 없고, 바다 건너에서 자기 혼자 임금놀음을 하게 될 뿐이다. 미주를 버려도 예왕에게는 본국이 고스란히 남으니 전혀 손해가 아니다.
– 14 –
이제까지 대한의 역사에서 친아들이 임금 자리를 계승하지 않은 사례는 많다. 오랜 옛날 삼국시대에는 형제나 조카가 계승한 적도 많았고, 그 과정에서 유혈이 동반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보위를 놓고 칼을 맞대는 비극은 예전보다 줄었다. 그리고 왕의 자리는 대부분 왕의 아들, 또는 동생에게 순조롭게 넘어갔다. 고로 살아있는 왕의 친부로 인한 문제 같은 건 존재할 일이 없었다.
다만 예외사례로 고려의 현종과 숙종, 공민왕, 그리고 세조와 장조가 있었다. 현종은 선왕 목종의 조카 ? 자세한 설명은 고려 왕실 계보가 환상적으로 꼬인 관계로 생략한다 ? 였으며 숙종은 헌종의, 공민왕은 충정왕의, 세조는 단종의 숙부였다. 장조는 명종의 5촌 조카였다.
하지만 여기서 숙종의 친부 문종과 공민왕의 친부 충숙왕, 세조의 친부 세종은 이미 승하한 선대 왕이었으며 현종의 친부인 왕건의 8째 왕자 왕욱과 장조의 생부 은성군도 아들이 보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성친왕께서는 명백히 살아계십니다. 이런 전례는 우리 역사에는 없었고, 중국이나 유주에서는 몇 차례 있었으나 매번 큰 혼란의 원인이었습니다. 대명에서만 해도 ‘대례의 의’로 인하여 상당한 혼란이 초래되었습니다. 예종께서 이미 죽고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대례의 의(大禮議)’란 사촌형 정덕제에게 선택되어 황제가 된 가정제를 누구의 후손으로 규정해야 하는가를 놓고 벌어진 논란이다. 당시 명나라 조정 중신 대부분은 백부 홍치제의 아들로 입적하자고 했으나, 가정제 본인이 생부 주우원의 아들로 남기를 고집했다.
3년에 걸친 논란 끝에 결국 황제가 이겼고, 주우원은 예종 헌황제로 추존되었으며 가정제 본인은 법적으로 방계 출신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 조야에서는 지금도 이를 매우 좋지 않게 본다. 황통의 정통성을 해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였던 장조가 만약 자기 친부인 은성군이 은성대원군 ? 당시는 아직 칭제하기 전이었으므로, 대원군이다 ? 으로 봉해진 데 만족하지 않고 시호까지 바치려고 했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즉위 직후였다면 어려웠겠지만 세 차례 전쟁에서 연승하고 그 권위로 추존을 시도했다면 중신들도 쉽게 반발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장조는 그따위 일은 하지 않았다.
“대명에서의 사례야 모두가 아는 것이고, 유주에서도 군주의 생부가 따로 존재하는 탓에 곤란해지는 일이 근래에도 흔하였소?”
김세룡이 헛기침을 하며 질문을 던졌다. 옥좌에 몸을 뒤로 기댄 태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전임자인 송시열이 조정에서 발언할 때면 늘 그랬듯이, 예부대신 남지원이 하는 말을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을 뿐이다.
“유주 각국은 법도가 우리와 다른지라, 모계를 통해 외가가 가지고 있던 왕위를 계승했을 때 그런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140여 년쯤 전에 잉글국에서, 부친에 의해서 억지로 옹립된 여왕이 선왕의 공주가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되고 역괴로서 처형된 일이 있습니다.”
남지원이 예로 든 사례는 ‘9일 간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제인 그레이다. 그녀는 헨리 8세의 조카손녀였고, 헨리의 외아들이었던 에드워드 6세가 죽자 그녀의 부모는 제인을 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헨리의 장녀였던 메리가 군대를 모아 정권을 탈환했다.
“공녀 제인은 부모의 욕심 때문에 억지로 왕위에 올랐으나 처형될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 대한에서도 살아있는 대원왕이 나타나 욕심을 부린다면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병부대신 이완이 고요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 문제는 경평공께서 태자가 되신다고 해도 똑같이 나타나지 않소?”
“경우가 다르지요. 경평공께서는 이미 성인이시니만큼, 주변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조정에서 힘을 모아 지켜드리기도 쉽고요. 하지만 10세도 안 된 태자라면, 어찌 주변의 영향이 적겠습니까? 그렇다고 경평공이 태자가 되셔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주변’이라고 돌려서 말했지만, 남지원이 지칭하는 대상이 성친왕이라는 사실은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알았다. 어린 태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이가 어려서부터 품행이 나쁘기로 유명했던 친아버지 외에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누구를 태자로 할 것인지에 관한 조정과 중추원의 의견은 이제 거의 일치했다. 이 문제에 관해 자유롭게 논해도 좋다고 태황이 허락했음에도, 그동안 유력한 황태자 후보였던 경평공이나 경창공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과거에 예왕을 두고 차기 태황의 자리에 오를 만한 왕재라고 여긴 이들은 많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왕이 나이가 너무 많아지자 이들은 지지하는 상대를 경평공이나 경창공 쪽으로 바꿨다. 하지만 지난 반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 이들의 태도를 변하게 했다.
성친왕은 분명 망나니였지만, 태황과 가장 가까운 적통 계승자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예전보다 품행이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제대로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똑똑한 아들도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룡이 성친왕의 아들을 태자로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김세룡은 내각승상이면서 예왕의 장인, 경평군의 외조부였다. 아직 태자위를 놓고 싸워볼 여지가 있는데도 김세룡이 태도를 바꿨다는 건 예왕을 지지하던 이들에게 한 가지 신호가 되었다. 계속 권력을 누리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지지하는 편을 바꾸라고 말이다.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폐하, 성친왕 전하의 장자를 태자로 삼으소서.”
열 살도 안 되는 어린아이 정도는 옆에서 가르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꿔놓을 수 있다. 성친왕이 언제 옛 망나니 기질을 다시 드러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신들은 대부분 이쪽 편에 섰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태황의 의중을 모르니 선뜻 반대하지 못했다.
“전하, 성친왕 전하의 장자, 이은 공을 태자로 봉하시어 나라의 대통을 이으소서. 저희가 미천한 뜻을 모아 생각하여 얻은 일치된 의견이옵니다.”
김세룡이 1시진 가까이 이어진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고하자 태황이 반쯤 감은 눈으로 김세룡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미 20여 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보던 눈이지만 내각승상 김세룡은 지금도 그 눈길이 자신을 향하기만 하면 진땀이 났다.
그래도 하기로 작심한 말은 마저 해야 했다. 김세룡이 결연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비록 아직 나이가 어리셔서 학문은 얕으시다 하나, 부족한 학문은 앞으로 채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강원을 열어 좋은 스승을 두고 제왕의 도리를 가르치신다면 장래 분명 훌륭한 태자가 되실 것입니다.”
태황은 지난 1년 동안 자신의 후계자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확실한 말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중신들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태황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