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38
3부 156화
– 15 –
“그대들이 하는 말은 모두 잘 들었다.”
태황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토의가 진행되는 동안 태황은 단 한 번도 용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이 의견을 내지는 않았지만, 신하들이 주고받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빼지 않고 모두 들었다.
“성친왕의 장자를 태자로 들이라는 그대들의 의견은 잘 들었다. 또한, 살아있는 대원왕이 이 나라의 장래에 해악이 될 수 있다고 그대들이 걱정하고 있음도 잘 알았다. 직접 드러내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말은 다 통하는 법이다.”
요즘 태황과 성친왕 사이는 상당히 좋다. 대궐로 불러들여 여러 현안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성친왕에게 의견을 듣기도 했다. 유구에 저탄소를 두는 문제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하교가 며칠 전 내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 보니 신하들은 거북한 표현을 두루뭉술하게 넘겨야 했다. 다음 태황의 친부가 된 성친왕이 언제 발작하여 옛날처럼 패악질을 부릴지 알 수 없다는 둥 지금 하는 양태는 전부 가면일 수 있다는 둥 하며 뒤에서 주고받던 노골적인 말은 일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지난 반년 동안 민성윤이 성친왕을 위해 애써 구축한 우호세력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성친왕 쪽이 정통성 면에서 앞선다는 건 인정했지만, 성친왕의 과거 전력 때문에 아무래도 본인보다는 아들 이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발언을 삼갔다.
“허면, 그 문제를 어찌 해결함이 좋다고 보는가.”
잠시 편전에 침묵이 흘렀다. 답변을 재촉하는 태황의 표정에는 아무 동요도 없었지만, 그 앞에 앉은 신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좋지 않은 예감이 신하들을 엄습했다.
“말해 보라. 옛날 성종께서 하셨듯, 태자의 친아버지에게 사약이라도 내리란 말인가? 나쁜 영향을 없애려면 그게 최선 아닌가?”
아무도 선뜻 ‘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제헌왕후(齊獻王后) 윤씨는 성정이 포악해 투기를 일삼았고, 감히 지존인 임금에게 사지를 자르고 눈알을 뽑겠다느니 하는 폭언을 퍼부었다. 이런 사람을 중전 자리에 놓아둘 수도, 장차 대비 자리에 오르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성종은 윤씨를 폐비하고 절차를 거쳐 사사했다. 나중에 즉위한 뒤에야 그 내막을 알게 된 무종은 윤씨를 다시 왕비로 복위시키고 묘역을 단장하기는 했으나 어머니의 복수를 하겠다며 날뛰지는 않았다. 부왕이 왜 윤씨를 사사했는지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만 민간에서는 무종 연간에 벌어진 사화가 무종의 복수 때문이었다고 인식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야사(野史)일 뿐, 조정 고관쯤 되면 당시 무종이 복수보다는 사림 세력 억제를 통한 왕권 강화에 더 신경을 쏟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어서 말들을 해보라. 그대들이 말하듯 성친왕의 아들을 잘 가르쳐 훌륭한 임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친부를 사사한 것쯤은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게 아닌가?”
엎드린 신하들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무종은 겨우 3살 때 윤씨와 헤어졌고, 그나마도 어릴 때는 유모인 봉보부인(奉保夫人)이 키우다시피 한데다 몸이 약하다고 강희맹의 집에서 피접(避接)까지 한지라 모자간의 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보복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이은은 이미 사리 판단이 되는 나이인 8살이고, 친부 성친왕과 사이가 가깝기가 그지없다. 그런 관계를 무시하고 장래의 화근을 막는다는 이유로 성친왕을 죽인다면, 없던 화근을 만들어내어 조정을 피보라로 뒤덮는 결과를 가져올 게 불을 보듯 뻔했다.
“폐하, 부디 과도한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폐하의 친아우이시자 장차 태자의 생부가 되실 귀한 분을 어찌 신들이 감히 벌하라 말라 하겠사옵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얼어붙은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예부대신 남지원이 나섰다. 바로 전에까지 과거에 좋지 않은 전력이 있는 성친왕이 대원왕이 되면 곤란하다고 가장 앞장서서 열변을 토하던 양반이 진땀을 흘리며 애걸하는 모습은 볼만한 광경이었다.
“그대들이 말하지 않기에 내가 말했을 뿐이다. 그대들은 문제점을 지적한 뒤에는 마땅히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은가? 해법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성친왕이 대원왕이 되면 곤란하다고만 하면 짐에게 어쩌라는 말인가?”
태황은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도, 음성의 고저도 변하지 않은 그 평온하게 보이기만 하는 그 평정심이야말로 태황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구휼곡을 빼돌린 죄인 4백 명을 한꺼번에 저자에서 자자형(刺字刑)에 처하라고 명령했을 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폐하,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신들은 성친왕께서 무슨 큰 죄를 지었으니 당장 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살아있는 대원왕을 맞이한다는 이제까지 없었던 상황을 치를 일이 다소 걱정이 되어….”
대사헌 유진승이 급히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도리어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유진승의 말을 들은 태황이 이렇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대원왕을 맞이할 게 두렵다고? 그 말은 내가 곧 죽으리라는 의미인가?”
“그, 그것이 아니옵니다!”
낯빛이 흙빛이 된 유진승이 고개를 바닥에다 처박았다. 그 위로 태황의 느릿한 목소리가 천천히 떨어졌다.
“후계자를 정함은 오로지 짐의 권리지만, 태자의 자리가 빈 문제를 놓고 그대들의 걱정이 심하여 특별히 이 사안에 관한 논의를 허락하였다. 그런데 짐이 금방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만 십여 차례나 듣고 있으려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구나.”
“신들을 죽여 주시옵소서!”
김세룡 이하 중신 전원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다음번 임금을 정하는 문제는 언제든 이런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었다. 임금의 생사를 함부로 거론하는 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명백한 반역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하, 어찌 신들이 폐하의 안위를 가지고 감히 망령된 말을 내뱉겠습니까? 그저 사직을 걱정하다 실언을 하였사오니, 넓으신 아량으로 부디 용서하소서.”
김세룡이 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내각승상이라는 지위상 지금 그가 나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태황은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성친왕이 옛날에 저지른 과오가 죽거나 귀양을 가야 할 만큼 크지는 않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옵니다, 폐하.”
신하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태황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성친왕을 어찌 처우함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들어보겠다.”
“성친왕 전하를 미주왕에 봉하시면 좋으리라고 사료되옵니다.”
좌승상 강기석이 일어섰다. 태황이 가시 돋친 태도를 보이기 전에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사전에 한 약속대로 일어서 주었으니 다행이었다. 다른 신하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전하께서는 지난 7년 동안 미주에 계시면서 훌륭한 성과를 내셨습니다. 동변관리사라는 중책을 맡아 야인을 토벌하여 변경을 안정시키시고 수많은 난민이 미주에 정착하도록 돕는 과업을 이루셨으며 미주에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셨습니다.”
성친왕은 미주에서 광업과 조선업이 일어서게 하는데 심대한 공적을 세웠다. 성친왕 밑에 있는 수배국 출신 광꾼들은 거대한 은광에 이어 상당한 납과 철이 묻힌 광맥까지 찾아냈다. 납은 동변에서, 철은 중미주에서 찾아냈다는 보고가 최근에 들어왔다.
납은 탄환을 비롯한 온갖 일용품을 제조하는 데 쓰임은 물론이고 은을 제련하는 데도 꼭 필요한 원료다. 철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미주에 거주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금, 미주에서 철을 자급할 필요는 컸다.
무기나 갑옷을 제작하는 데 사용할 고급 강철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미주에서는 솥을 주조하고 농기구를 부어 만들 무쇠만 생산해도 충분하다.
여기서 성친왕이 더 칭찬을 받은 부분은, 처음에 찾은 은광 이외에 다른 광산은 사유하지 않고 모두 본국 호부에다 그 권리를 넘겼다는 사실이었다. 조정 중신들도 놀랐고 태황도 이 일을 보고받고 매우 기꺼워하며 칭찬한 바 있었다.
“미주에 거주하는 우리 백성들만 성친왕 전하를 그리워하는 게 아닙니다. 미주 야인들은 폐하를 큰아버지, 성친왕 전하를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하였다 하니, 다시 돌아가시면 환호하며 반길 것입니다. 원미주 경략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리라 보옵니다.”
성친왕은 미주에 있는 동안에는 원미주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멀고 넓은 미주 땅에 흩어진 조선 백성들에게는 관의 통제가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고, 결국 장래에는 임금의 은혜를 잊고 떨어져 나갈 것이라면서 말이다.
“허나 귀국하신 뒤에는 미주 경략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으며, 유주인들이 미주를 통째로 차지하지 못하도록 토인들을 번호로 받아들이고 우리 백성을 사민케 해서 개간해야 한다고 태도를 바꾸셨습니다.”
“군자가 되어 일구이언했다, 그 말인가?”
“아니옵니다. 신은 성친왕께서 말씀하신 바가 옳다고 생각하며, 성친왕 전하 본인이야말로 그 과업을 가장 충실히 이를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소신 혼자서만 그리 여기는 게 아니고, 조정 신하 다수가 그리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태황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강기석 역시 아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설명을 계속했다.
“동변관리사는 중책이기는 하나 성친왕께서 역량을 발휘하시기에는 권한이 부족했습니다. 이번에 크게 용단을 내리시어 전하를 미주왕에 봉하신다면, 전하께서는 폐하께서 신뢰하고 대업을 맡기심에 감읍하여 미주 경략에 전력을 다하시리라 사료되옵니다.”
수년 안에 미주 인구는 백만에 도달할 게 확실시된다. 게다가 그 넓고 풍요함은 천하에서 비길 곳이 없으니, 이를 든든한 조선의 강역으로 굳히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그 땅에 사는 야인들에게 올바른 예의와 도리를 전파하는 것도 유자로서 꼭 해야 할 책무입니다. 성친왕께서는 지난 7년 동안 그 중요한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으니, 앞으로도 잘해나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대원왕으로서의 격에도 어울리는 지위입니다.”
사실상 미주를 성친왕에게 분봉하는 셈이다. 하지만 성친왕이 미주를 기반으로 해서 감히 반역을 시도할 위험성은 낮다. 가만히 있으면 아들의 영토가 될 땅을 가지고서 반기를 들면 뭐 하겠는가. 어차피 미주에서 모은 군사로는 제위를 뺏을 수도 없는데.
“폐하, 부디 용단을 내려주시옵소서.”
여기서 태황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성친왕은 미주로 떠나야 한다. 발제자인 강기석은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다른 신하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태황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태황은 전혀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짐이 꼭 태자를 들여야겠는가? 태제를 들인다 해도 안 될 게 없지 않은가?”
“태, 태제 말씀이시옵니까?!”
삽시간에 편전 안을 채운 신하들이 술렁거렸다. 태황이 후계자로 태제를 들일 가능성에 대해 이들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전례가 없고, 태황이 일언반구도 없으니 그런 생각이 없는 모양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다들 태자 책봉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폐하, 태제라 하시면…누구를….”
대사헌 유진승이 떨리는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태황은 그에게 입을 열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그대들도 들은 바가 있을 텐데. 태후께서 짐에게 이제라도 자식을 하나 더 낳아 원자로 책봉하기를 바라고 계심을 말이다.”
“푸, 풍문을 드, 들은 적은 이, 있사옵니다.”
김세룡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태황이 이렇게 나오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 목소리가 떨릴 수밖에 없다.
“내, 태후께 효도하려면 어떻게든 자식을 하나 더 낳으려는 노력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후계를 정함은 옳지 않겠다.”
“하오나 폐하, 태자 자리가….”
예부대신 남지원이 머뭇거리며 어떻게든 태황의 결단을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태황은 여전히 표정도 바꾸지 않은 채 이렇게 답했다.
“양자를 들여 태자로 봉했는데, 내가 후사를 얻는다면 그때는 그 사태를 어찌 수습하라는 말인가? 황실의 체면이 있는데 파양을 할까? 아니면 내 친자를 놓아두고 조카에게 제위를 물려줄까? 공연히 후사를 만들어서 논란을 낳지 않게 짐이 불도에 귀의하여 머리를 깎거나, 남만도에 귀의하여 흑의를 입어야겠는가? 아, 짐은 금방 죽을 테니 그런 고려를 할 필요도 없었던가?”
남만도(南蠻道)는 천주교를 낮춰 부르는 명칭이다. 조정에서는 그리 부르는 이가 많다.
“폐, 폐하! 어찌 신들이 그런 불충한 뜻을 올리겠사옵니까!”
신하들은 또 일제히 편전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태황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게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추후에 짐이 다시 논하라 명할 때까지 이 문제에 관해 묘당에서 논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만 다들 물러가라.”
결국, 태자 책봉 문제는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속셈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좌중의 의견이 기껏 하나로 모였는데 태황이 그대로 깨버렸으니 말이다.
편전에서 물러난 중신들은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심각한 얼굴을 하고 태황의 진의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고 수군거렸다. 지난 1년여, 후계자 문제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던 태황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는가.
“경평공이나 경창공을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럼 굳이 성친왕 전하 이야기를 계속하실 리가 없지 않소.”
“그야, 경평공께서 보위에 오르실 때를 생각한다면 성친왕께서 무사하시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않소이까. 그러니 안전한 터전을 확보해 주시고 싶으신 게 아닐까요.”
경평공이 태자가 되더라도 본래 출신이 방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적손인 성친왕 일가는 그 존재 자체로 위협이 된다.
“조카가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 폐하께서는 영특한 준재인 경평공을 태자로 하시고, 성친왕 전하는 미주에 분봉하실 생각이실 수도 있습니다.”
이제껏 대한에서 황족에게 봉지를 내려 통치권을 나눠준 전례는 없다. 전조인 고려에서도 단순히 봉호를 내리는 것을 벗어나 실제로 다스릴 영지를 내린 전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대한의 강역은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던 만큼 넓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옛 주나라의 선례를 따라 봉건을 일부 시행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배로 미주까지 왕복하려면 8개월은 잡아야 한다. 원미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해안까지 움직이는 시간도 필요하니 조정에 지시를 청하고 회신을 받는 데 1년은 걸린다. 원활하게 미주를 통치하려면 미주왕을 분봉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어쨌든, 성친왕의 장자를 태자로 봉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는 확실히 표명하신 듯합니다.”
그럼 태자, 혹은 태제는 누가 될 것인가. 여러 중신들의 머리가 다시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목숨과 출세가 달린 중요한 문제였다.
민성윤은 다른 이와는 말을 섞지 않고 혼자 조용히 걸었다. 태황의 의도를 파악하고 혼자 속으로만 감탄, 또 감탄하고 있었다.
‘필시 승상도, 좌승상도 폐하의 뜻을 깨달았겠지….’
둘 다 조정에 한두 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강기석은 태황이 똑같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도 부채와 붓과 활 중에서 무엇을 대령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다. 물론 내관이나 할 그런 일을 실제로 한다는 게 아니고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설픈 신하들이야 입 밖에 나온 태황의 말 한두 마디에 희희낙락하겠지만, 그 뒤에 있는 진의를 깨달은 자들은 아마 지금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민성윤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