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42
3부 160화
– 1 –
“예왕께서 장안에서 팥과 큰 솥을 잔뜩 사들이고 계신다고 합니다.”
“동지는 아직 멀었는데, 벌써 백성들에게 나눠줄 동지팥죽이라도 쑨다던가?”
박종선은 집사 겸 시중의 소문을 모아 내게 가져오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저택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들이러 시전에 자주 드나들고, 다른 대갓집 사람들과도 자주 접촉하기 때문이다.
시전은 아직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도성 상인들이 확고하게 잡고 있다. 다만 이들은 조선 최대 도시인 도성과 조정이라는 막대한 소비처를 기반으로 세를 유지하는 터라, 도성에서만 골목대장 노릇을 할 뿐 사대문 밖에서는 송방이나 내강상단에 밀린다.
“예, 전하. 갑자기 많은 양을 사들이면 시전에서 팥 가격이 널뛰기를 뛸까 봐 주의하느라 일찍부터 조금씩 사들이신답니다.”
올해는 흉년 3년 만에 풍년이 든 덕분에 팥뿐만 아니라 쌀이나 보리 가격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갑자기 팥을 수백 석씩 사들인다면 팥 가격이 일시적으로 폭등할 수 있기는 할 거다.
“하, 그래….”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랫것들 앞에서 ‘용을 쓰네, 용을 써….’라고 대놓고 비웃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예왕은 민심을 얻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기근이 물러갈 기미를 보이는데도 지조 감면을 유지하는 게 그 한 예다.
기근이 심한 지난 몇 년 동안, 예왕은 지조를 절반만 받고 그 절반도 선혜청에 기부하여 실질적으로는 지조를 전혀 받지 않았다. 기근이 수그러들자 선혜청에 기부하는 건 올해부터 중단했지만, 소작인들에게는 여전히 절반만 받고 있다.
“아무리 쌓아둔 재산이 많다고 해도 몇 년씩이나 수입이 전혀 없으면 살기 힘들지. 저택 앞에다 솥을 걸고 팥죽을 돌리겠다는 건 지조를 받는 대신 일부나마 백성들에게 돌려주어서 마음의 가책을 덜고자 하는 의도겠구나.”
“그렇다 해도 도성 백성들에게야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예왕 전하는 그동안 많은 재물을 인심 좋게 베푸신 터라, 칭송하는 목소리가 무척 큽니다. 설탕을 잔뜩 넣은 팥죽을 조리해 거리에서 나눠준다면 상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겁니다.”
“그야 그렇겠지.”
본래 조선에서는 팥죽에 소금을 넣었다. 장조 때까지만 해도 이게 당연한 풍속이었던지라 다른 걸 넣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 팥죽에 설탕을 넣는 사람은 아마 조선 전체를 통틀어서 나하고 상희 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반촌다점을 비롯한 여러 음식점에서 설탕을 넣은 단팥죽을 팔고 여러 대갓집에서도 단팥죽을 먹는다. 물론 식사 대용으로 먹는 팥죽은 예전처럼 소금만으로 간을 하기도 하지만, 간식용 단팥죽도 수요가 엄청나게 많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대남도와 유구에서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이 성업하면서 시장에서 설탕을 쉽게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기근으로 열량 섭취가 부족해지면서 설탕 수요는 더욱 늘었고, 쌀 못지않게 설탕 수입도 늘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다소 기복이 있기는 해도, 지금 설탕 가격은 대체로 쌀보다 대여섯 배 비싼 정도밖에 안 된다. 장조 시절 처음 카스텔라를 만들었을 때, 궁궐을 탈탈 털어도 빵에 넣을 설탕이 없어서 대신 꿀을 넣고 만들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동지까지 아직 한참 남기는 했다만, 혹시 모르니 팥 한 섬만 미리 구해둬라. 설탕도.”
“예, 전하.”
박종선을 내보낸 뒤 생각해보았다. 어느덧 11월 중순, 내가 귀국한 지 1년이 다 되었고 창경궁에서 후계 문제를 놓고서 대토론이 벌어진 지도 반년이 지났다. 태후전에 문안드리고 나오는 길에 형황과 관덕정에서 독대한 날도 벌써 한 달 전이다.
그동안 상황을 보니 주변 분위기가 슬슬 내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보였다. 실무 관료들은 애초에 내 편이 많았고, 예왕을 지지하는 인맥은 영감?대감 소리를 듣는 고관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조금씩 편을 바꾸기 시작했다.
“허어, 성친왕께서 이토록 공부를 깊이 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게 다 우리 스승님 덕분 아니겠소, 허허. 십여 년 동안 작심하고 배웠더니 이제 겨우 이만큼인데, 아직 부끄럽기만 하오.”
성균관 동지관사가 된 이형준은 20년 전에도 꽤 이름 있는 학자였다. 그러니까 서연관이 되었던 거고 말이다. 내가 새사람이 된 사연을 고관이나 종친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하려면 역시 스승인 이형준을 파는 게 가장 효과가 좋았다.
올렝카가 날 바꿔놓았다? 그거야 가십으로 다루기 좋은 화제지, 기록으로 남겨 진지하게 다룰 성격은 아니지 않은가. 대개 나이 지긋한 노인네들인 조정 고관들이나 종친들은 남자 성격이 여자 때문에 바뀐다고 공언하는 걸 체통 없는 일로 여겼다.
“자기들도 집에 가면 여편네 눈치를 보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면서….”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내가 개심한 계기는 루이 14세와의 회견이고, 장조가 당했던 모욕을 갚기 위해 돌궐군 진영에 뛰어든 일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형준에게 본격적으로 학문을 배워서 지금처럼 되었다…하는 게 공식적인 사연이다.
파당(派黨)을 만든다는 공격을 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고관들을 만나는 모임도 절대 내가 직접 주선하지는 않았다. 대신 불러주기만 하면 어떤 잔치나 모임도 나갔다. 태후 앞에서 언급했던 민성윤이 여는 시회(詩會)나 이원기가 여는 활쏘기 시합은 기본이었다.
사실 사람 만나는 걸 자제하던 8개월 동안에도 초대장은 꽤 많이 들어왔다. 다만 형황의 의중이 어느 쪽으로 향했는지를 모르는 탓에 눈치를 보느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응하지 않았을 뿐이다.
민성윤이 확보해 준 우호 세력에다 내가 직접 만나면서 끌어들인 이들까지 하면, 적어도 조정과 종친부에 있는 주요 인사 중 20% 정도는 내 편으로 기울어졌다. 절반 정도는 아직 예왕을 지지…한다기보다는 나를 불신하고 있고, 나머지는 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입수한 자료로 만든 조정 중신 목록과 주요 종친 목록을 펼쳐놓고 확실하게 내 편으로 돌아섰다고 판단되는 이들의 이름 위에 파란 먹물로 점을 하나씩 찍었다. 예왕을 지지하는 이들은 까만 먹물로 표시해두었다.
까만 점 옆에 파란 점이 찍힌 자들이 늘어난 것을 보니 지금 예왕이 느끼고 있을 초조한 기분이 나한테도 전해졌다. 예왕이 백성들에게 포목과 쌀 등 온갖 구호품을 나눠주고, 동지 때는 팥죽을 퍼준다고 나오는 것도 그런 초조함과 두려움의 산물이리라.
“최후의 순간에 도성 백성들이 자기 방패가 되어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민심을 크게 얻은 관리의 경우, 죄인으로 몰렸을 때 백성들이 지키려고 드는 사례가 없는 게 아니다. 물론 임금에게 힘으로 맞서는 건 아니다. 용서해 달라고 나서서 비는 거지.
어쩌면 내가 예왕을 죽이려고 할 때 평소 예왕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예왕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며 수천 명씩 무리를 지어 태평로로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먹으면 그런 건 아무 의미 없다. 혹시 증거가 없다면 모를까, 자객 두 사람이 내 손에 있지 않은가.
“세 번째 수작만 없으면 넘어간다. 세 번째 수작만 없으면.”
예왕이 지금 찌그러진다면 지금처럼 편히 살게 놓아둔다. 하지만 판을 뒤집어보겠답시고 세 번째 자객을 보내거나 내 집에 불이라도 지른다면 그때는 정말 모가지 걸고 끝까지 가는 거다.
“하아, 형님이 감투라도 하나 안 주시려나. 뭐라도 좋으니 한자리 주시면 좋겠는데.”
한참 궁리를 하다가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요즘 들어 정치적인 고민만 하고 뭔가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으니 유쾌하지가 않다. 정쟁과 무관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
정말 응방 도제조라도 시켜달라고 해볼까? 그러면 인왕산 밑자락에 옹색하게 들어서 있는 응방을 도성 밖으로 이전해서 충분한 면적과 시설을 갖춘 전문 동물원을 만들 텐데 말이다. 홍제동 정도면 면적도 충분하고, 홍제천이 흐르니까 물도 넉넉하게 구할 수 있다.
“게다가 가까우니까 응방 살림들 이사하기도 쉽고, 도성에서 멀지 않아서 도성 백성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쉽고.”
서대문을 나와 무악재를 넘는 궤도마차 노선을 만들면 일반 관람객들이 찾아오기도 훨씬 편해진다. 관람료도 귀찮게 짐승으로 받는 건 그만두고, 돈으로 받으면 서로 편리하고 좋지 않은가. 먹이 질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 거다.
잠시 머리를 쉴 겸 현대에서 본 서울대공원을 참고로 해서 동물원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지금 있는 동물들 말고 어느 나라에서 어떤 진귀한 동물을 추가로 가져오면 좋을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데 나갔던 박종선이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예왕께서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
“예왕이?”
봉투를 뜯어 보니, 지난번 방문 때 정말 대접을 잘 받았다며 답례로 동짓날에 간단하게 잔치를 열고 싶으니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일그러졌다.
“풋, 지난번에 자기가 방문해준 대가를 치르라는 건가.”
그때 예왕이 내 집을 정탐하고 우리 식구들을 이간질하려고 방문한 일은 내게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내가 예왕과 평화롭게 어울릴 만큼 성품이 바뀌었다는 증거가 되어주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옛날처럼 예왕을 대했다면 그 방문이 이뤄졌겠는가?
실제로 모임이나 잔치에 나를 청하는 초대장은 예왕이 내 집에 와서 집들이를 얻어먹고 간 뒤에 대부분 날아들었다. 그전에 처가에 머무를 때는 내가 따로 초대를 받은 게 아니라 민성윤이 초청을 받았을 때 덤으로 따라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좋아, 가지. 편지를 가져온 종복에게 내가 초대에 응하겠다더라고 일단 구두로 전하라고 하여라. 답장은 나중에 정식으로 써서 보내겠다고 말이다.”
“예, 전하.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박종선은 내 수족 중 하나다. 당연히 지금 예왕과 나 사이의 사정도 잘 알고 있다.
“괜찮다. 설마 예왕이 동짓날 잔치 자리에서 날 독살하기야 하겠느냐?”
먹고 나면 열흘 뒤에 죽는 독 같은 건 조선에 없다. 예왕이 구할 수 있을 만한 독은 죄다 먹으면 즉사하는 종류다. 설사 독을 구한다고 해도, 내가 예왕의 잔치에 다녀와서 죽었다면 범인은 빤한 게 아닌가. 예왕은 그런 자살행위를 할 만큼 바보가 아니다.
“저쪽에서 이미 한번 다녀간 이상, 내가 대뜸 거절할 수는 없다. 일단 수락해 놓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겠다.”
“예, 전하.”
올해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1일, 아직 35일이나 남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혹시 내가 감기라도 걸리면 그 핑계로 안 가면 되는 것이고, 예왕이 사정이 생겨 잔치가 취소될 수도 있는 거다. 공연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하자.
– 2 –
얀 3세를 위한 위령미사는 세 번 올렸다. 가톨릭 측 시각으로는 확실히 위대한 인물이다 보니 아라미츠가 아니라 조선 교구 주교가 직접 미사를 집전했다. 지금 조선 주교는 앙투안 토마스(Antoine Thomas)라는 플랑드르 출신 예수회원으로, 조선에 건너온 지 15년쯤 됐다.
“15년이면, 우리가 처음 만날 때쯤 그 주교가 조선에 왔다는 말이구려.”
“그렇지요, 전하.”
내 팔을 베고 누운 올렝카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우리가 베르사유에서 처음 만난 때가 벌써 16년하고도 6개월 전…지금도 눈앞에 선해요. 멀리 동방에서 건너온 어린 왕자님이, 제가 좋다면서 계속 다가와 추근거리던 그 모습이요. 그 소년이 어느새 이렇게 멋진 사나이가 되셨어요.”
올렝카가 천천히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닿자 문득 장난기가 솟았다. 올렝카의 맨몸에 얼굴을 갖다 대고 천천히 문지르자 올렝카가 까르르 웃으며 몸부림을 쳤다.
“수염, 수염! 간지러워요, 간지럽다고요! 루시아가 깨겠어요.”
“어허, 이 정도 가지고 뭘. 정 걱정이 되거든 부인이 웃음을 참으면 되잖소.”
올렝카는 간지럼에 매우 약한 편이라, 내가 별당에 드는 날이면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방문 밖으로 흘러나가곤 한다. 한참을 웃다가 진이 빠진 올렝카가 축 늘어지자 다시 나란히 누워 꼭 끌어안았다.
“참 오래되기는 했구려. 16년…그동안 여기저기 참 많이 같이 다녔지. 부인. 부인은 나를 따라서 대한에 온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소?”
“후회하지 않아요, 전하. 대한에서 제 지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전하께서는 저 때문에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저를 아끼고 또 사랑해 주신 고마운 분이신걸요.”
유럽에서 미주로 가는 배 위에서 올렝카가 고백한 이야기 중에 내가 기절초풍할 뻔한 게 하나 있었다. 베르사유에서 올렝카가 나와 처음 만나던 시절, 이형준이 올렝카를 따로 만나 ‘대공 전하는 이미 본국에 처가 있고, 넌 노리개일 뿐이다. 그러니 주제를 알고 보석이나 몇 개 받아 챙기고 얼른 네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했었다나.
“그 노인이 그런 소리까지 한 줄은 그때는 전혀 몰랐었지. 알았으면 아무리 내 스승이라 해도 절대로 가만 안 있었을 거요.”
“하지만 전하, 부사께서는 정말로 전하를 걱정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에요. 그때는 저도 좀 야속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 부사께서 얼마나 전하를 아끼셨는지 잘 알겠는걸요. 그리고 전하께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난봉꾼으로 노신 건 사실이었잖아요.”
올렝카는 이형준과 정호찬을 여전히 ‘부사’와 ‘서장관’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고 살던 세월이 워낙 길다 보니 직함이 이름처럼 되어버렸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하룻밤을 보낸 미인들에게 보석 한 알 주고 바로 정리해 버리신 건 사실이잖아요. 부사 영감님이 그것도 다 알려 주신걸요. 아, 변명은 안 하셔도 돼요. 전 전하께서 저한테는 그렇게 안 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거든요.”
내가 몇 시간만 늦게 각성했어도 아마 성친왕은 올렝카한테도 똑같은 짓을 했을걸. 내가 각성한 타이밍은 올렝카에게도 아슬아슬했다. 휴우, 지나간 일은 그만 생각하자.
“자, 이제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밤이 짧아요.”
두 입술이 맞닿았다. 따뜻한 체온이 전신에 느껴졌다. 부드러운 행복감을 느끼는 참인데 문득 밖에서 찢어지는 고함이 들렸다.
“불이다! 불이야!”
“불?”
드디어 예왕이 테러를 벌인 건가! 벌떡 일어나 잡히는 대로 옷을 몸에 꿰었다. 올렝카가 급히 옷을 찾는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면서 방문을 박차고 나갔는데, 뜻밖에도 내 눈앞에는 불길이 없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도 불씨 하나 보이지 않았다. 뭐지? 불났다더니?
“뭐냐, 무슨 일이냐?”
어리둥절해진 내 앞에 바실리가 허둥지둥하면서 나타났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왼팔을 쭉 뻗으며 고함을 질렀다.
“전하, 남쪽! 남쪽입니다!”
“남쪽?”
그제야 근처에 조명도 없는데 주변이 무척 밝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성 남쪽, 남촌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있었다. 미친 듯이 울리는 경종 소리가 그제야 내 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