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49
3부 167화
– 3 –
담장 밖에서 일제사격의 총성과 칼 부딪는 소리, 비명이 연달아 들렸다. 내 저택 경호를 맡은 외금위 군사들이 적과 교전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화재 수습 때문에 도성 안에 들어와 있는 병력만 2만이니, 반군이 내 집 코앞까지 다가와도 아무도 몰랐을 게 무리가 아니다.
“성친왕이 모반했다! 역도 이현을 죽여라!”
사면초가라더니, 사방에서 반군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예왕이 포섭한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집을 포위하고 형황이 있는 창덕궁으로 가는 길을 봉쇄할 규모는 될 거다. 금화군, 한성부, 수어청이 붙었다지 않는가. 여기에 더 추가될 수도 있다.
“어서 서둘러라!”
외금위 군사들이 아무리 용맹하게 싸워도 중과부적 상태로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저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내가 몸을 빼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했다. 서둘러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다. 다행히 살이 쪄서 갑옷이 몸에 안 맞는 촌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하, 화재 때 입었던 피갑(皮甲)을 다시 입으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 폴란드제 갑옷은 너무 눈에 잘 띕니다.”
옆에서 갑옷 입기를 돕던 보리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도 생각한 바가 있기에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눈에 띄어야 다른 이들이 조금이라도 해를 덜 입는다.”
반군은 나를 확인하면 나부터 죽이려고 들겠지. 하지만 내가 안 보이면 그냥 닥치는 대로 죽일 거다. 내 가족, 가솔들을 조금이라도 덜 위험하게 하려면 내가 놈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어차피 잡병 따위가 날 해치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불화살이 날아듭니다!”
“놈들이 귀찮은 수고를 생략할 모양이로구나!”
밖에서 횃불과 불화살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외금위 경비병력을 전멸시킨 반군이 저택을 뒤져 나를 찾아내는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통째로 구워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개새끼들! 지금 여기에는 내 가솔들만이 아니라 화재 때문에 피난한 이재민들도 있는데!
다만 놈들이 주춤한 덕분에 탈출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불 끄기는 포기하고 사람들을 저택 동문 쪽으로 모았다. 상희와 올렝카, 아이들도 모두 나왔다. 옷은 입었지만 다들 무척 놀라고 당황한 상태였다.
“대체 무슨 일인가요, 전하? 누가 쳐들어온 거죠?”
잠이 많은 올렝카는 일찍 잠들었다가 급히 일어나 나오는 바람에 자리옷 위에다 외투만 걸쳤다. 다행히 다른 이들은 낮에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예왕이오. 긴말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몸을 빼내 도망쳐야 하오. 지난달 말에 미주에서 돌아온 왕비의 둘째 오라비가 훈련도감 중군으로 있으니, 당장 그쪽으로 피합시다.”
미주에서 돌아온 장희재는 도성 서쪽을 담당한 호위청 총관에 취임했고, 민지원은 도감군 중군(中軍), 즉 부사령관이 되었다. 오군영 휘하 4개 군영은 모두 도성 밖에 본영이 있지만, 훈련도감만은 동대문 앞에 있는 훈련원에 본영을 두고 있다.
장희재가 어느 편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민지원은 확실히 내 편일 거다.
“전하, 선인문(宣仁門)이나 홍화문(弘化門)으로 창경궁에 들어가 태후마마를 뵙고 도움을 청하고 창덕궁에 계시는 폐하께 반군을 진압하라는 칙명을 내려달라고 청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서기 조경신의 제안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웠다.
“저들도 그 생각은 했을 터, 창경궁으로 가는 길목은 이미 막았을 거다. 동대문으로 가는 편이 훨씬 뚫기 쉽다. 게다가 창경궁에 역도와 내통한 자가 없으라는 법도 없다.”
서쪽에 있는 종묘도 창덕궁과 이어지지만, 종묘 담장도 궁성과 같은 수준이다. 추격대를 뒤에 달고 아녀자를 데리고 넘어갈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종묘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수어청이 예왕에게 붙었다지 않는가. 궁성 쪽으로 가는 길은 그냥 막힌 거다. 동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여차하면 동대문을 빠져나가 성 밖으로 탈출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할지도….’
그 상황까지 가면 북한산성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북한산성에는 총융청 본영이 있고, 북한산성을 손에 넣으면 다른 4개 군영이 모조리 예왕 편에 붙어도 버틸 수 있다. 총융청 총관 이민호는 내게 호감을 품고 있다. 그리고 총융청에는 정호찬이 있다.
“자, 이제 문을 열고 뚫고 나간다. 나와 카자크 형제들이 선두에서 뚫고 나갈 테니, 다른 이들은 놈들이 나를 쫓아 저택을 떠나기를 기다려서 도망쳐라. 불이 무섭다고 너무 급하게 따라나서다가는 반군에게 해를 당할지 모르니, 잠시만 참아라!”
하인들과 이재민들 틈에 숨어 빠져나가면 훨씬 안전하게 반군의 눈에 안 띄고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정하고 난을 일으킨 반군이 과연 하인들이라고 해치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모험은 피하자.
“준비됐나?”
“예, 전하!”
집에 있는 말은 고작 13필이다. 여기서 나와 여섯 카자크가 타고 남은 말에는 내 피갑을 입은 상희, 서기 조경신, 그리고 내 소중한 증인들인 김희권, 김종건, 이진원이 탔다. 마지막 한 마리는 마침 다리를 절고 있어서 아무도 타지 못했다.
기마술이 서툰 올렝카는 따로 말을 타는 대신 바실리의 안장 앞에 타고 그 품에 안겼다. 안드레이는 은이를, 탈라스는 준이를, 이반은 루시아를 품에 단단히 안았다. 마치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아두를 품에 안았듯이 말이다.
“미안하다. 내 처자만 피신시키고, 너희 처자를 태울 말이 없어서….”
“아닙니다, 전하. 주군은 부모와 같으니 머리와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보리스가 씩 웃었다. 다른 다섯 명 역시 마찬가지 태도였다. 그 충심이 너무도 고마워서 내 눈가가 잠시 촉촉해졌다.
“너희의 충성에는 내 기필코 보답하리라. 동문 밖에 있는 적진을 돌파하면 우리는 곧바로 동대문으로 간다. 보리스, 이고르! 너희는 따로 떨어져서 원각사 터로 달려가 거기 주둔하고 있을 정 서장관에게 구원을 청하라! 반군의 뒤를 쳐야 한다!”
“예, 전하!”
카자크 여섯 형제 중에도 가장 용력이 뛰어난 두 사람이다. 이들을 빈 몸으로 한 건 따로 움직여서 구원을 청하러 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라면 어둠 속에서 앞길을 가로막는 일반 병사 수백 정도라면 간단히 뚫고 나갈 수 있으리라.
“그런데 전하, 장 병마사한테도 가서 구원을 청합니까?”
“그쪽은 너희가 갈 것 없다. 정 서장관이 결정하도록 해라.”
“예!”
미주에서 경험한 바로는, 장희재는 생각이 제대로 박힌 올곧은 무관이었다. 내가 형황을 암살하려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을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장희재의 친동생이 예왕이 세상 누구보다 아끼는 애첩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예왕이 장옥정을 통해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알 수 없으니,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자, 가자!”
동문 앞에 있던 하인들이 문을 활짝 열자마자 예상대로 총탄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 차례 사격이 지나가자 그대로 박차를 가해서 달려 나갔다. 탄환과 화약을 재장전하느라 소총을 곧추세운 반군 병사들이 코앞에 있었다.
– 4 –
기병의 핵심은 속도다. 충격력도 속도가 있어야 발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싸움이 벌어진 장소는 복잡한 동촌 한가운데고, 남촌보다는 길이 넓다고 해도 속도가 붙고 자시고 할 공간은 여기도 없다.
하지만 이건 반군에게도 불리했다. 충분한 공간을 두고 포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마를 타고 탈출한 우리 일행은 곧바로 반군 대열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마음껏 창칼을 휘두를 수 있었다.
“역괴가 번쩍이는 갑옷을 입었다! 저놈을 잡아라!”
“닥쳐라, 역적은 너다!”
내가 내지른 기창은 나를 가리키며 고함을 지르던 반군 군관 한 명의 가슴을 찔러 꿰뚫고 그대로 창대가 부러졌다. 속도가 안 붙으니 한 명이 한계였다.
“뚫어라, 뚫고 나가라!”
빈에서 썼던 장검을 뽑아 휘두르자 내 앞을 막으려던 반군 군사들이 연달아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차라리 장조 때 군대였으면 장창병이 많아서 뚫고 나가기가 어려웠을 텐데, 죄다 소총수라 짓밟고 나가기는 도리어 쉬웠다.
“놈들은 기병이 없다! 뚫고 나가기만 하면 동대문까지 일사천리야! 그대로 밟아버려라!”
수어청 기병은 전원 본영이 있는 남한산성에 있다. 다른 군영도 마찬가지라, 지금 도성에 있는 기병은 금군인 겸사복과 포도청 기마대, 족친위뿐이다. 금군이 반군 편에 붙어 나왔을 리는 없고, 김희준이 붙었다니 족친위는 좀 위험하지만 대신 현왕 아들들도 족친위다.
‘족친위에서는 지금 내분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구나.’
화재 때문에 모두 평소와 달리 퇴근도 못하고 영내에 대기하는 중이다. 치안 유지 때문에 분산된 포도청 병력은 그렇다 치고, 한데 모여 있는 족친위는 이미 패를 갈라 한판 벌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대치하고만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그건 나중에 알아볼 일이다.
“순순히 길을 열면 죽지 않으리라! 비켜라!”
“무슨 망언이냐! 얘들아! 역적을 잡아라! 역괴를 잡는 공적을 용호청에 넘길 수는 없다!”
반군 장졸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계속 달려들었다. 나 혼자 눈에 띄는 갑옷을 입고 있으니 당연히 공격도 집중되었다. 하지만 내 갑옷은 보병이 휘두르는 총창이나 환도 정도로는 별 타격도 입지 않았다. 화살도, 빗맞은 탄환도 모조리 튕겨냈다.
화재 때 사용하던 피갑을 착용한 카자크들도 내 옆에서 함께 장검을 휘둘러 베고 찌르고 짓밟았다. 제대로 대열을 형성하지 못한 반군 보병들은 우리한테 파죽지세로 짓밟혔다.
뒤쪽에 있는 김종건과 조경신은 침착하게 연달아 화살을 날려 반군 군관과 이쪽을 겨누는 사수들을 저격했다. 원래 서생인 조경신도 뜻밖에 활 솜씨가 꽤 좋았다. 애초에 비전투원인 이진원과 김희권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용케 말고삐는 놓치지 않고 따라왔다.
“왕비, 조심하시오!”
“염려 놓으시옵소서.”
다른 이들을 가장 놀라게 한 사람은 상희였다. 자기 평상복 위에 내 피갑 상의만 껴입은 상희는 달려드는 반군을 거침없이 총으로 쏘았다. 멀리 있는 적을 저격할 정도의 명사수는 아니었지만, 내게 달려드는 반군을 단발에 쏘아 맞힐 정도 솜씨는 되었다.
상희가 탄 말안장에는 수석식 권총이 여러 정 꽂혀 있었다. 상희는 굳어진 표정으로 적을 쏘아 맞힌 뒤에 빈총을 그대로 적군 무리 속에 던졌다. 권총이라고 해도 기본 중량이 4kg이 넘는 쇳덩이다 보니, 재수가 없어 맞은 놈은 그대로 안면이나 머리가 깨져나간다.
원남이 시절의 상희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상희는 지금 자식과 남편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이다. 지킬 것이 있는 여자만큼 강한 존재를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 5 –
“전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동촌 일대에서 울리는 함성과 불길, 총성을 동대문에서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다. 우리가 포위를 뚫고 동대문에 도착했을 때, 마침 오늘도 수문장을 맡고 있던 권훤이 성문에서 굴러 내려오다시피 하면서 내 마중을 나왔다.
권훤 역시 예왕이 돌린 격문을 받았다고 했다. 예왕은 도성 안에 있는 모든 군영에 내가 시역을 획책한다는 문서를 돌렸다. 권훤은 당연히 그 내용을 믿지 않았고, 예왕의 이름을 팔아서 누군가가 못된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따위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 주어 고맙네. 그럼 동대문은 내 편인가?”
“물론입니다! 꼴이 말이 아니십니다. 역도 이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신지!”
우리가 뚫고 나온 반군 숫자는 적어도 3백에서 4백 명은 되었다. 그 포위를 뚫느라 나와 카자크들의 갑옷은 모두 피투성이다. 김종건과 조경신의 시복은 모조리 텅 비었고, 말들도 온통 상처투성이에 다리를 저는 등 모두 살아서 도착한 게 기적일 지경이었다.
“전하께서는 어서 민 중군이 계시는 훈련원으로 가십시오. 역도들을 상대하려면 도감군을 꼭 장악하셔야 합니다. 저희 용호청으로는 부족합니다. 게다가 윤 총관은 전하를 별로….”
도성 동쪽을 담당하는 용호청은 본영이 아차산에 있다. 도성에 들어와 있는 용호청 군사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도감은 전체 병력 규모가 1만 6천 명이고 그중 5천 명이 지금 도성에 들어와 있다. 명실상부한 도성 내 최대 군사력이다.
“수문장 나리! 역도들이 몰려옵니다!”
“소관은 저 역도들을 막겠습니다! 어서 훈련원으로 가십시오.”
파수병이 적이 온다고 외치자 권훤이 어서 가라고 나를 재촉했다. 자기 휘하에 있는 1개 중대로 내 뒤를 쫓아오는 놈들을 막고, 주변에 있는 용호청 부대들을 불러올 테니까 일단은 피하라고 말이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총관도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왕비 전하와 왕자님들도 안전한 곳에 두셔야 할 게 아닙니까. 서두르십시오!”
“고맙네. 잠시만 견디면 내 바로 원군을 보내겠네.”
동대문에서 훈련원까지는 걸어서도 5분이면 족하다. 이미 저쪽에서도 군영 전체에 불을 켜고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확연했다. 어서 내가 건너가서 지휘권을 장악하고 권훤을 도울 병력을 보내면 된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동대문에서 훈련원에 도착한 건 진짜 눈 깜박할 사이였다. 내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훈련대장 ? 오군영 예하 군영 중 훈련도감에서만 지휘관을 총관이 아니라 대장이라고 한다 ? 김용상과 중군 민지상이 구르듯이 달려 나왔다.
“역도 이환이 얼토당토않은 참서(讒書)를 보냈사온데, 소인들로서는 이 무슨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가 하였으나 칙명도 없고 전하의 안위도 알 수 없어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어서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환영을 받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아직 정식 황태제는 아니지만, 대리청정을 명받아 일부 군권을 행사하는 상태이므로 합당한 군령권이 있다. 비록 병부(兵符)는 가지고 있지 않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시국이 아니다.
“훈련원에 있는 군사들을 정비하여 동대문 쪽으로 다가오는 반적들을 용호청과 합세하여 격파하고, 남쪽으로 또 일군을 보내 광희문을 장악하라!”
“예, 전하!”
광희문은 남소문으로, 수어청이 담당하는 문이다. 혹시 수어청이 그쪽으로 들어와 우리를 뒤에서 공격하려들 위험이 있으니 당장 확보할 필요가 있다.
도감군을 성공적으로 장악했으니 승부를 결정할 확실한 패가 내 손에 들어왔다. 상희와 올렝카, 아이들을 내실로 들여보내 쉬게 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예왕 이놈, 지옥에 떨어진 뒤에도 이 반란을 결행한 일은 후회하게 해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