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70
3부 1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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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황이 사망한 지 어느덧 반년. 장례식도 끝나고 내년, 내후년에 지낼 제사만 남았다. 각 나라에서 온 조문 사절단도 모두 돌아갔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서 조문하러 온 자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우리 미주인들의 위대하신 아버지신 태황 폐하께서 하늘의 부름을 받아 지상에서 책무를 마치시고 천상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슬프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우리의 작은아버지였던 친왕 전하께서 이으셨으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태평양을 배로 왕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 때문에 미주에서 인디언들이 조문하러 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미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부족에 소식이 전부 전해지고, 거기서 다시 대표단 60명을 구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미주 각 관아에도 빈소가 차려졌으니 거기서 문상을 마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본국까지 찾아와 조문하니 그대들은 실로 충신이다. 그대들이 이토록 정성을 보이니 선황께서도 무척 기뻐하시리라. 짐도 감사를 표하는 바다.”
인디언 대표들을 인솔하는 대표단장은 나도 잘 아는 사람, 김주마였다. 김대송은 생존해 있기는 한데 바다를 건너 조문하러 오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배를 타지 못하고 미주에 남았다고 했다. 그 노인은 이제 다시 못 보겠구나 싶어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대도 오랜만에 보는구나. 북미주는 상황이 괜찮으냐?”
“물론이옵니다, 폐하.”
신욱족 등 북미주 부족 대표들과 동행한 원준을 보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북미주에 갈 때마다 원준은 나를 성대하게 대접했으니 말이다.
“땅을 개간하여 농토를 일구고, 벌목한 목재로 배를 지어 고기를 잡아 예전보다 더 많은 백성이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모두 폐하의 덕입니다.”
대량이주가 이어지면서 지금 미주 인구는 북미주 25만, 중미주 5만, 남미주 70만가량, 총 백만여 명이 된다. 아무래도 기반이 더 충실하고 농사짓기에도 더 좋은 남미주로 인구가 더 몰린다. 물론 요즘도 금이 나오니만큼, 횡재를 찾아 눈이 벌게진 이들도 찾아든다.
그동안 북변에서 캔 금과 미주에서 모은 황금은 대외결제용으로 일부 사용한 것만 빼면 호부 금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대략 200톤 정도 쌓인 것 같은데, 금본위제를 시작하는 밑천으로는 아직 좀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은 더 모을까.
이건 물론 민간에서 유통되는 양은 빼고 계산한 거다. 사채꾼들이 시장에 푼 금이 적어도 호부에 있는 양과 비슷할 거라는 게 호부 관리들의 추측이었다. 장신구로 사용하는 분량도 있지만, 금괴가 되어 재산 은닉의 수단으로 어딘가에 묻힌 양도 꽤 되리라면서 말이다.
‘남는 돈은 금으로 바꿔 비장(秘藏)할 게 아니라 은행에 예금해 주면 좋겠지만….’
돈이 돌아야 돈이지, 땅에 묻어두면 돌이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불신이건, 그 계좌를 들여다볼 수 있는 행정당국에 대한 불신이건 돈을 드러난 곳에다 두지 않고 자기 혼자 아는 곳에 묻어두는 사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예부 관리를 딸려줄 터이니, 태릉에 가서 선황께 절을 올리도록 하라. 그 뒤에 간단하게 연회를 열 테니, 부를 때 궁으로 오면 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문하러 온 인디언 대표단에서 경회루에 올라가 본 이는 하나도 없다. 안내역으로 함께 따라온 원준 역시 마찬가지다. 경회루에서 내게 술잔을 받은 기억은 저들이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자랑이 되리라. 이제 양력 10월이니, 봄이 올 때까지 편히 즐기다 가게 해줘야지.
덤으로, 이 미주 야인들이 조문하러 온 덕분에 이진원의 행방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김종건과 이진원은 모두 미주에서 실종된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다만 김종건은 예왕 일파에게 존재가 들키는 바람에 형황에게 기군망상을 저지른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 지위를 일찌감치 회복, 재편한 무위영 대대장으로 보임해 두었다.
하지만 이진원은 예왕의 난에서도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몇 달 동안 더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던 참에 인디언 조문단이 왔으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없었다. 황야에서 실종됐던 이진원이 극적으로 발견되어 정양하다가 본국으로 돌아왔다고 처리할 기회 말이다.
평소 미주발 본국행 선객은 별로 많지 않아서 실제로 배를 타지 않은 사람을 섞어 넣기가 좀 난감했다. 하지만 조문단에는 대표로 오는 추장들 외에 수행원까지 해서 백 명 이상이 와글거렸으니 명부를 조작해서 한 명 정도 집어넣는 건 쉬운 일이었다.
다만 가족들에게 환영받기만 했던 이진원과는 달리, 김종건의 결말은 완벽하지는 않았다. 동료였던 홍상훈은 예왕의 난을 진압하며 세운 공으로 연대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현금으로 준 보상도 있어서, 바가지를 긁었던 안사람의 불만은 쑥 들어갔다고 한다.
– 12 –
“미주 야인들이 늦게 도착한 이유는 산재한 각 부족에 연락을 돌리고 대표를 선출하느라 그런 거였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네놈은 왜 이제야 온 것이냐? 본국에서 너희 하와국까지 왕복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국장이 끝나기 전에 왔어야 할 게 아니냐?”
카우이는 내 앞에 바짝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본국에서 하와이까지 왕복하는 데 바람이 잘 불면 보통 4개월이 걸리므로, 한 달 정도 지체된다고 해도 카우이는 장례가 끝난 한 달 전에는 왔어야 했다.
“그런데 미주 야인들과 함께 찾아와? 장례가 다 끝나고 한 달이나 지나서? 그러고도 너희 하와국이 우리 번국이라 하겠느냐?”
마우이와 카우이, 이 부자는 세 차례에 걸친 내 생에서 나를 가장 완벽하게 호구로 만든 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놈들이 그런 행동을 한 데는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참고 넘어가기는 했다만, 감정이 좋을 수는 없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불쾌했던 옛 기억이 가라앉고 감정도 식으려는 참인데 이놈들이 비례(非禮)를 저질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내 추궁은 전적으로 합당했다.
“말에서 떨어져 그만 다리가 부러졌었다는 핑계 따위는 대지 말아라. 네놈의 아비에게는 열 명도 넘는 아들이 있지 않으냐? 게다가 사자로 보낼 이는 왕자가 아니어도 된다. 그러니 왜 조문이 늦었는지 잘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마우이 아들이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지금은 대여섯 명쯤 더 늘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카우이는 여덟 번째라고 했던가?
“그것이, 역모가 있었습니다. 그 반적들을 진압하느라….”
“너희 하와국에 역모가 있었다고?”
하와도첨사 이 빌어먹을 놈의 새끼, 그런 중대한 사태가 몇 달에 걸쳐 일어났는데 보고 한마디를 안 해? 갈데없는 근무 태만에 기군망상이다. 잡아다가 곤장을 쳐서 빙주로 유배를 보내야겠다.
이건 게을러도 되는 한계를 넘어섰다. 분명히 연락선이 형황의 부고를 전하러 갔는데, 그 소식조차 마우이에게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소리잖은가!
“자세한 사정을 말해 보아라!”
카우이에 따르면, 마우이의 넷째 아들인 하정위 ? 조선 이름 말고 하와이말로 된 본명은 도저히 말로 옮길 수가 없다 ? 일파가 대권을 노리고 음모를 꾸몄다고 했다. 내막을 들으니 이건 완벽한 아침드라마였다.
“무엇이? 사왕자(四王子) 하정위가 쿠아후이아의 딸인 부왕의 비와 사통하고 이를 통해서 옛 쿠아후이아 세력을 규합하여 난을 일으켰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이 어찌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공분할 만한 만행이 아니겠습니까?”
하정위 그놈 꼭 다윗을 몰아낸 압살롬 같은 놈이로군. 내 일이 아니니까 여기서 혀만 찰 뿐이다만, 참 기가 막힌 일이기는 하다. 조선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형태의 난이지만.
카우이에 따르면 양력으로 올해 2월에 반란이 터졌고, 워낙 반군의 기세가 흉흉하여 모두 진압하기까지 반년이나 걸릴 만큼 애를 먹었다고 했다.
“반적과 사통한 가비(可妃)가 부왕께 독을 먹이고 대궐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왕실과 조정 전체가 혼란에 빠지면서 초장에 더 큰 동요를 겪었습니다.”
“거참 독한 계집이었구나.”
만약 예왕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면 이쪽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 나 역시 이미 황천길을 갔거나, 동현을 타고 어딘가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겠지.
마우이 군은 국왕이 독을 먹고 중태에 빠지는 바람에 지리멸렬했고, 왕자들이 서로 반군 토벌 주도권을 잡겠다면서 다투기까지 했다. 심지어 몇몇 왕자는 하정위 편에 붙었다. 주변 섬을 지배하는 공들은 곧바로 군사를 내지 않고 눈치를 살폈다.
“반적들은 진주만에 있는 대한 수군에 구원을 청할 길도 막았습니다. 완전히 고립무원에 빠진 근왕군은 실로 역경을 겪었으나, 하지만 일찍이 폐하께서 하와도에 보내 살게 하셨던 용사들이 제 호소를 듣고 분기하여 근왕에 합세하니 적은 참패하였습니다.”
아내 손에 죽을 뻔했던 마우이는 열흘 만에 눈을 떴고, 한 달 뒤에는 싸움터에 나갈 만큼 회복했다. 하지만 이미 하와이섬 절반을 차지한 반란군은 기세가 등등했고, 투항 따위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혈전이 벌어졌고, 승리를 거두기까지 넉 달이 걸렸다.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아바마마를 독살하려 시도한 가비는 화산에 뛰어들어 자진하였고, 적괴 하정위는 상어가 들끓는 바다에 사지를 묶어 던져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놈과 내통하려 모의한 자, 부왕께서 병중이신 틈을 타 자신이 등극하려고 획책한 자 서른 명을 함께 바다에 던졌습니다.”
마우이의 수많은 아들 중에서 세자를 포함한 여섯 명은 양쪽 진영 중 한 편에서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암살당했고, 여덟 명은 난이 끝난 뒤에 붙잡혀 하정위와 합세했거나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손발이 묶여서 바다에 던져져 상어밥이 되었다. 덕분에 왕실이 깨끗해져 버렸다.
“다음 세자는 누구로 정하였는가?”
“폐하께서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리라 믿사옵니다.”
그러고 보니 카우이 이놈, 이야기하는 내내 자기가 세운 공적을 계속 과시했다. 일선에서 무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섬 곳곳을 종횡무진으로 다니며 병력을 규합하고 마침내 하정위가 친 봉쇄를 뚫고 마우이에서 구원군을 불러온 것도 자기였다면서 말이다.
‘수군에서 함께 올린 장계를 보니 완전한 거짓은 아닌 듯하고….’
자기를 세자로 해달라는 암묵적인 요구겠지. 그래, 이놈이 유능한 줄은 나도 안다. 겁나게 머리가 좋고 그걸 굴릴 줄 아는 놈이다. 하지만 내 손으로 세자로 ‘임명’하고 싶지는 않다.
본래 번국이란 내정에서는 자주권을 갖는다. 이번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어떤 귀찮은 일이 돌아오기 시작할지 모른다. 영 망할 선택이 아닌 이상 알아서 하라고 놔두는 편이 낫다.
“번국이라 하나, 하와국은 그 왕위를 물리는 데 있어서 자주권을 가지고 있다. 새 세자를 정하는 것은 그대의 부왕이 정할 일이니, 정한 뒤에 승인을 청하도록 하라.”
“예, 폐하.”
하와이에서 조문이 늦었던 데 대한 설명은 이걸로 됐다. 하지만 진주만에 주둔한 수군이 반군 진압을 돕지도 않고, 그 소식을 본국에 알리지도 않은 건 명백히 수상한 일이다.
“신이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혹시 첨사가 역당과 내통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알겠으니 그만 물러가라.”
카우이를 내보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도승지, 병부대신과 군기총관을 들라 이르라.”
“예, 폐하.”
하와이에 있는 첨사진을 털어야 한다는 강력한 확신이 치솟았다. 첨사는 물론이고 첨사진 관리를 맡은 군기담당관까지 털어서 그놈들이 대놓고 하정위 편에 붙었는지, 아니면 반정을 묵인하는 정도까지만 개입하기로 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 13 –
군기대는 기존에 금위사가 맡았던 국내 사찰 업무 중 군대 내 감시만 맡았다. 장조 때는 그저 헌병대 역할밖에 안 했는데, 금위사 영역이 좀 축소되면서 기무사 역할까지 군기대가 맡게 된 거다. 각 대대에 군기담당관이 하나씩 나가고, 헌병대장 겸 정치장교 노릇을 한다.
하지만 군기대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대체 밀정이 누군지 알 수 없는 금위사와 달리, 책임자가 명확해서 피감 대상인 해당 부대에서 누구를 회유해야 할지가 명확하다는 거다.
물론 군기담당관도 예하 부대에 끄나풀을 여럿 두고 첩보를 수집한다. 하지만 금위사는 그 첩보를 누가 받는지를 알 수가 없지만, 군기대에서는 누가 첩보를 모으고 예하 장졸들을 감시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 하와진첨사가 군기담당관과 결탁하여 뭔가 일을 꾸몄을 수 있다. 군기총관부에서 즉시 감찰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확인토록 하라.”
“예, 폐하.”
그저 첨사가 태만하게 진주만에서 극락 같은 삶을 만끽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면 가장 바람직한 결과겠지. 하지만 첨사가 하정위에게 뇌물을 받고 의도적으로 개입을 피했을 수도 있고, 뭔가 목줄이 걸려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심각한 문제다. 그러니 당장 배를 준비하여 어사를 보내라.”
어사(御史)는 황명으로 파견되는 감찰관의 통칭이다. 그 소속이 사헌부건, 군기대건 모두 어사라고 칭한다. 금위사는 애초에 몰래 보내기 때문에 어사라고 하지 않는다. 암행어사는 어떤 관청에도 속하지 않고 태황이 직접 선발하므로 또 다르다.
“폐하. 새로이 외관들의 기강을 다지는 의미에서, 하와도에만 어사를 보내실 것이 아니라 다른 지방에도 일제히 어사를 보내 그 태세를 감찰하심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병부대신의 말이 옳구나. 기안을 짜서 올리라.”
병부대신 송재권은 문관 출신이다. 향도로 군역을 수행하고 계속 군대에 눌러앉아 문관이 되었다. 그 뒤로 능력을 인정받아 출세한 끝에 대신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무장 출신인 전임자 이완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라, 전투를 지휘하라면 못 한다. 하지만 이 양반은 군대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행정업무에는 도가 텄다. 이를테면 장조 시절에 만년 병조판서로 지내던 김명원 같은 사람이다.
“하와도 외에 유구와 주산진, 골가타에도 우리 군사들이 나가 있고 군기담당관도 주재한 상태입니다. 이들도 얼마나 해이해졌을지 알 수 없으니, 어사를 보내 감찰하게 하소서.”
“옳은 말이다. 변방과 해외에 있는 모든 군영에 어사를 보내 태세를 감찰하고, 혹시 명을 거역하려들 수 있는 반적들을 찾아 벌하게 함이 좋겠다.”
밖에 나가 있는 장수 중에는 본래 예왕파였던 자들도 있을 거다. 그런 자들이 정치보복을 두려워해서 군선과 군사를 들고 탈영이라도 한다면 상당한 타격이 올 게 뻔하다.
형황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외지에 나간 장수나 관원들이 엉뚱한 궁리를 하는 건 꿈도 못 꿨다. 작년에 일어난 반란 사건으로 형황이 드러눕고 나니까 잠시 관리가 소홀해져서 이런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놈도 나오는 모양인데, 대대적으로 털어줄 테다. 어디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