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75
3부 193화
– 7 –
새 후궁들은 세 사람 다 괜찮은 아가씨들이었다. 전형적인 양갓집 규수들이라, 내 앞에서 보이는 언행도 방정하고 상희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는 태도도 예의 바르기 그지없었다.
“순비한테도 예의를 잘 갖추더이다.”
“당연히 갖춰야지요. 엄연히 먼저 폐하를 모신 순서가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품계에서도 차이가 있으니 분명히 서열이 다릅니다.”
그러고 보니 새 후궁들은 올렝카에게 거의 딸뻘이 된다. 지금이 1700년 5월이니까 내가 올렝카를 만난 게 벌써 18년 전이고, 그때 애가 바로 들어앉았다면 지금 그 세 명만큼 자란 딸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올렝카는 기죽지 않고 부드럽게 웃었다.
“신첩은 괜찮습니다. 중전마마 덕분에 루시아를 얻었고, 또 둘째도 생겼으니까요.”
겨울에 접어들기 전, 모후가 내게 후궁 타령을 했다는 사실을 들은 상희가 올렝카에게 또 보약을 지어주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좋은 약재들을 섞어 만든 그 약 덕분에 봄이 되기 전에 올렝카에게도 둘째가 생겼다.
둘째가 생긴 덕분에 올렝카도 마음 편히 후임(?)들을 맞을 수 있었다. 가장 오래 내 곁에 있던 올렝카가 딸 하나밖에 낳지 못한다면, 나중에 들어온 후궁들에게 자식 숫자로 서열이 밀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둘 다 딸이라도 좋으니 둘인 편이 훨씬 낫다.
“옹주면 또 어떻습니까. 순비는 이미 20여 년이나 폐하를 모신 몸입니다. 행여나 새로이 입궁한 이들 중에 군왕을 낳았다 하여 으스대거나 친가 배경을 믿고 내명부 질서를 흔드는 이가 있으면 신첩이 엄히 다스려 질서를 잡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심려치 마시옵소서.”
상희가 단호한 다짐을 내비쳤다. 올렝카를 대할 때보다 좀 더 엄한, 우리 가족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을 대하는 자세다. 새로 들어온 후궁 세 사람은 아직 가깝다고는 할 수 없으니, 상희로서는 이미 10년 가까이 함께 지낸 올렝카를 더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고맙소, 중전.”
상희가 보고 배운 ‘내명부를 주름잡는’ 중전은 장조 때 의인황후 김씨밖에 없었던지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은 좀 된다. 의인황후는 말 그대로 철의 여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한 여자였으니 말이다. 상희와는 성품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상희도 풋내기 후궁 따위에게 밀려 주도권을 잃는 따위의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백 년을 살며 쌓은 인생 경험이 있지 않은가.
“폐하께서 중심을 지켜 주시기만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어험, 험.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니겠소.”
하기야 후궁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은 결국 임금의 총애가 어디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결판이 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게 극단으로 가면 원래 정비가 쫓겨나고 측비가 정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숙종과 인현왕후가 좋은 사례다.
다만 상희가 진지하게 이런 말을 건넨 건 아니었다. 핀잔을 주듯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고, 나도 웃으면서 받았다. 아무려면 내가 모후 때문에 들인 후궁들에게 빠져서 상희나 올렝카를 후순위로 둘 리는 없지 않은가.
“이 참령, 그대는 어떤가. 새로 얻은 처와의 새살림 재미가 좋은가?”
“뭐 말씀드릴 게 있겠습니까, 폐하.”
보름쯤 전에 드디어 장옥정과 혼례를 치른 보리스가 겸연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세상에 겁날 게 없는 저 상남자 놈이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새로 맞은 아내와의 신혼이 즐겁기는 한 모양이다.
“안 정위, 이 참령은 요즘 근무를 잘 서느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지 못하고 종일 뻗어 있거나 하지는 않느냐?”
‘안 정위’라는 건 안드레이의 조선 이름이 ‘안대호’라서 붙은 호칭이다. 바실리는 ‘배실이’, 탈라스는 ‘단나수’, 이반은 ‘이반영’이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도리어 기운이 넘치는지 퇴청하면 집으로 달려가기 바쁩니다. 폐하 앞에서만 이렇게 조용하지, 폐하께서 전각 안으로 들어가시기만 하면 온종일 여편네 얘기만 합니다. 게다가, 밤에는 도대체 소리가 시끄러워서 옆집에 사는 소인이 잠을 잘 수가….”
“어허, 자네!”
보리스가 급히 안드레이의 입을 막으려고 들었다. 안드레이가 슬쩍 몸을 빼더니 보리스를 향해 놀리듯이 혀를 내밀어 보였다. 거참, 황궁 근위대 장교가 된 데다가 나이를 먹어서도 카자크들 저 품성은 변하지를 않는구나.
“다른 지붕 밑에서 사는데도 그리 시끄럽단 말이냐? 기껏 분가 밑천까지 내주면서 분가를 시켰건만 그 보람이 없구나.”
카자크들은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거의 15년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고, 그런 탓에 굳이 떨어져 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들 자식도 있는 데다가, 태황 밑에서 복무하는 무관이라는 공적 신분도 있으니 계속 내 집에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촌 재개발 때 궁궐에 특별히 가까운 집 여섯 채를 따로 준비해두었다가 내주어 올해 봄에 입주하게 했다. 분가라고는 해도 등을 대고 나란히 붙은 집 여섯 채를 준 거라, 같은 집에 살 때랑 그다지 달라진 것도 없기는 하다.
“이 참령, 무슨 일로 그리 소리를 크게 내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문과 창문을 꼭 닫아서 그 소리가 밖으로 좀 덜 나가게 하여라.”
“예, 폐하.”
내가 아무 눈치도 못 챈 척 점잖게 타이르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보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던 상희와 올렝카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 8 –
왕십리에 터를 닦은 새 원각사는 무학봉(舞鶴峯) 남쪽 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먼 옛날에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 봉우리에서 춤을 추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이름도 있다고 하였지?”
“예, 폐하. 무학대사가 서울에 땅을 보러 왔을 때 저 위에 올라가서 주변 지형을 살폈다 하는 전설이 있어, 이 산을 ‘무학봉(無學峯)’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름에 전설을 맞춰 넣은 것 같구나.”
예전에 왕십리라는 지명의 유래를 놓고 논의할 때도 언급했지만, 무학대사가 혼자 도읍을 정할 터를 살피러 다녔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닐 수밖에 없다. 아마 본래 있던 무학봉이라는 이름에 전설을 맞춰서 후대에 끼워 넣었겠지.
“어쨌든, 백성들이 기억하기는 좋겠구나. 무학대사의 전설이 있는 무학봉 밑에다 원각사를 지어 황실의 원찰로 삼고 무학대사를 기린다고 하니 말이다.”
원각사는 도성 재건사업이 마무리된 작년 가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에 필요한 각종 자재를 원활하게 구하려면 도성에서 벌어진 대규모 공사판이 끝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원각사 측은 새 부지에 터를 닦고 구획을 정하는 등 기반을 갖췄다.
원각사가 전국에 있는 토지와 자산에서 거두는 정기적인 수입이 1년에 20만 냥 정도다. 물론 그동안 불교 교단이 축적한 자금은 그보다 훨씬 많고, 원각사를 재건한다고 하니 전국 각지에서 시주가 답지했다. 이번 공사는 이런 자금을 총동원한 대역사로 진행되고 있다.
“종로에 있던 본래 터보다 더 넓은 터를 얻어 새로이 문을 여니 좋지 아니한가?”
내 질문을 받은 원각사 주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함께 있던 도사(都師) 현광(懸曠)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폐하께서 베푸신 은혜는 진실로 크고도 넓으오나, 소승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사옵니다. 세조께서 내리신 귀한 터를 버리고 오게 되었으니, 어찌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할 수 있겠습니까.”
도사(都師)는 대한 불교계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지도자다. 조선 초기까지 존재했던 국사(國師)나 왕사(王師)와 다른 점은, 임금의 스승이 아니라 그저 불교 교단을 이끄는 최고위 지도자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이 직위도 연이 시절에 설치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나라 불교계에는 전혀 권위가 없다. 그러니 교황 같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대한 내의 불교도들에게만 영향력이 있는, 이를테면 대한판 캔터베리 대주교 정도에 해당하는 지위인 셈이다.
다만 도사가 불교계와 관련된 전권을 갖는 건 아니다. 전국 13도에 있는 선종?교종 소속 36개 사찰을 총괄하고 그 사무를 맡을 뿐, 승병 지휘권은 없다. 승병을 지휘할 권한은 아직 도총섭에게 있다.
하지만 승병은 이제 군사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승병들이 담당하던 의무대나 공병대 등 특수병과가 이제는 정규군에 편제되었으므로, 승병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총섭이라는 직위도 형식상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일종의 명예직으로 말이다.
“폐하께서 명하심에 따라 도성 밖으로 나오기는 하였으나, 실로 슬프고도 아쉬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승의 이런 태도가 폐하를 원망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세조께서 남기신 뜻을 잃은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나타났음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현광은 본래 사대부 양반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임금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서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아주 경탄스러웠다. 꼭 무종 때 사림 대간들을 보는 기분이다.
“세종께서 불승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신 바 있음을 그대도 알지 않는가? 비록 세조께서 원각사를 세우신 뜻이 숭고하다 하나, 세종께서 정하신 바를 어길 수 없으니 진즉에 시행할 일이 이제야 이루어진 셈이로다.”
세종대왕은 부모를 방문하러 오거나 시장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올 때만 승려들이 도성에 드나들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금령은 존재하기는 하되 실행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도성 한복판에 있는 원각사부터가 그 금령을 정면으로 어기는 존재였다.
“그러하시다면 승니(僧尼)들이 도성에 출입하는 것도 막으실 생각이시옵니까?”
“아니다. 짐이 그대에게 약속하지 않았느냐? 일단 3백 년 가까이 용납되어 온 관습이니, 출입은 허용한다. 다만 사대문 안에는 절을 세울 수 없을 뿐이다.”
천주교와 같은 조건이다. 성직자가 드나들고 원하는 이는 자기 집에서 종교행사를 열 수 있지만, 사대문 안에는 사원을 둘 수 없다.
“약속한 바는 지키겠다는 짐의 말을 믿기 바란다. 세종께서 남기신 유지에 따라 원각사를 왕십리로 내보내기는 했으나, 이는 불도를 억압하고자 함이 아니다. 황실 원찰의 격에 맞게 짐이 직접 쓴 현판도 내려줄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현광이 고개를 숙였다. 새하얀 눈썹과 수염이 고승의 풍모를 북돋웠다.
“알겠사옵니다.”
– 9 –
우리 조정에서 화의 조건을 논하는 동안, 후송 사신들은 남평관에서 빈둥거리며 지냈다. 가끔은 우리 관원들에게 호송을 받으며 도성 안팎을 구경하기도 했다. 물론 군사시설 같은 곳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유람이나 다녔을 뿐이다.
그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서평관에 주재하는 후금과 청나라 관원들은 한껏 달아올라서 우리 예부 관원들과 접촉했다. 그야 당연히 우리와 후송 사이에서 교섭이 진행되는 상황을 알기 위해서다.
“북방으로 가는 파발도 두어 번 있었습니다.”
금위사장 박헌종의 보고가 이어졌다. 박헌종은 의금부 출신 전임자 김창균과 달리 포도청 출신으로, 본래 김창균의 부장으로 금위사장 대리를 맡고 있었다. 헌데 일하는 모습을 보니 제법 능력이 뛰어나기에 내가 즉위하면서 대리 꼬리를 떼고 정식 금위사장으로 올렸다.
“우리 우선(郵船)을 이용하는 편이 더 빠를 것인데.”
“북경으로 가는 파발은 우선을 이용했습니다만, 상도로 가는 파발은 말을 달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증기선이 유일하게 운항하는 외국이 청나라다. 요동반도 끝단, 금주위(金州衛) ? 고구려 때 비사성(卑沙城) ? 를 거쳐서 천진으로 간다. 금주위에서 실은 석탄만으로도 천진 정도는 왕복할 수 있다.
“저들이 본국에 보내기 전에 서한 내용을 확보한 바에 따르면, 양국 모두 우리가 후송과 결탁하지 않는지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후송이 폐하께 화번공주를 바쳐서 미인계를 쓰려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보고 내용에 내가 두 눈을 깜박거렸다.
“화번공주? 미인계?”
화번공주(花蕃公主)란 중원 왕조에서 주변 이민족의 왕에게 정략결혼으로 보내는 황실의 여인을 가리킨다. 고려 충자 돌림 왕들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한 게 그런 사례다. 다만 말이 공주지, 정말 황제의 친딸은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예, 폐하. 송주의 친누이가 올해 17세인데, 모후를 닮아 천하절색으로 유명하다 합니다. 청에서는 북정을 하겠다고 눈이 뒤집힌 송주가 누이를 폐하께 측비로 바쳐서라도 건주와의 우호를 깨게 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건 해외정보라서 그런지, 옆자리에 있던 익문사장 양대식이 이어받았다. 다만 박헌종도 미리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화번공주 이야기를 꺼냈겠지.
하지만 이번에 후송은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건주 놈들 기우가 심하구나.
“짐은 송주에게 누이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으며, 있다 한들 관심도 없다. 그리고 송주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대들 네 사람 모두 송주가 보낸 서한 내용을 잘 알지 않는가.”
“그렇사옵니다.”
좌승상 민성윤과 예부대신 윤시현까지 네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정보는 외교의 필수요소이니만큼, 내가 이들 두 정보기관장과 면담할 때는 되도록 이들도 동석하도록 하고 있다.
“건주 양국이 어떤 착각을 하건 신경 쓸 필요 없지만, 일단은 둘 다 형제나 마찬가지이니 예부대신은 서평관을 은밀히 찾아 안심하게 해주도록 하라. 행여라도 우리가 후송과 합세해 건주를 치거나, 후송 수군이 화북으로 향하게 놓아두지는 않으리라고 말이다.”
“예, 폐하.”
내 시각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중원 삼국이 끝없는 전쟁을 벌여 피폐해지면서 결정적인 승자가 통일을 이루지는 못하는 거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두 번째 시나리오로 솥발처럼 나눠진 천하를 인정하고 셋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중요한 건 어쨌건 중국이 분열을 유지하는 거다. 더 많아지면 더 좋겠지만, 세 조각으로 굳어진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그 상태로 오래오래 가기만 하면 된다.
“하온데 폐하, 송주는 사신들이 돌아가서 답을 전하기 전까지는 북정을 미를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화살 하나 쓰지 않고 건주를 도와 적의 출정을 막는 셈이니, 사자에게 아직 회답에 관한 논의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여 출발을 미루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오, 예부대신. 두어 달 더 있다가 가을에 답을 주어 보내도록 합시다. 그러면 후송군은 북정을 개시해도 북방의 추위에 제대로 기를 쓰지 못하다가 황급히 후퇴해야 할 거요.”
순 남방 출신들인 후송군 ? 붉은 전립을 써서 적모군(赤帽軍)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 병사들은 청나라 영토에서 겨울을 맞으면 제대로 활동하기 힘들 거다. 게다가 겨울은 본래 유목민의 기병이 활개 치는 계절, 청군 기병들이 후송군을 휩쓰는 데는 최적이다.
물론 윤시현의 예측이 틀렸을 수도 있고, 예측은 맞아도 사신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인내심이 바닥난 조형서가 그대로 진격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가 손해를 볼 일은 없으니, 되어가는 꼴을 한번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