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86
3부 2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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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주 공작의 스페인 왕위 승계를 도와주면 필리핀을 주겠다는 약속은 정식으로 서명하는 동맹조약문 본문에는 없고 따로 은밀하게 전달된 별본(別本)에만 있었다. 이건 직무상 이를 꼭 살펴야 하는 일부 관원들만 확인하게 했고, 어전회의에는 내놓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땅도 아니고 남이 가진 땅을 빼앗아서 나눠주겠다는 도둑놈이나 다름없는 말을 했으니, 잘못 드러냈다가는 불랑국왕에 대한 평가만 나빠질 게 아닌가.”
지금의 대한이 아무리 옛날 조선과 다른 패권적이고 실리적인 나라가 되었다지만, 지켜야 할 예의와 도리를 아예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건 아니다. 루이 14세가 비도덕적인 행동을 또 벌인다고 국교를 끊자고 하지야 않겠지만, 이미지는 당연히 나빠질 수밖에 없다.
내각승상 남구만은 ‘폐하께서 불랑국왕과 정식으로 협약을 맺은 것도 아니시고, 선황께서 그 안을 접하시고 동참하겠다 정하신 것도 아닙니다. 도를 따르는 일도 아니고 원한을 갚는 일도 아니니 더더욱 동참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런 반응이 조정의 주류였다.
“그러나 저들의 청을 들어주고 그 대신 필리핀을 획득한다면 장차 우리 대한이 융성하는 데 크나큰 보탬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정 총관, 짐도 알고 있네. 필리핀을 얻고 싶은 마음은 짐에게도 굴뚝같네, 하지만 명분이 없지 않은가? 지금 불랑국왕 편에 서는 건 짐이 생각하기에도 다소 파렴치하다고 아니할 수 없으니.”
아쉽지만 프랑스 측에는 거절한다는 답을 보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문안이다.
“기근이 준 충격이 아직 다 해소되지 않았다거나,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 권력 기반이 아직 든든하지 않다거나 하는 핑계라도 대면 적당하겠나?”
“그건 우리 위신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보다는 미주에 있는 우리 군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해명 쪽이 더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무관인 정호찬은 자기 생각에 훨씬 적절해 보이는 핑계를 제시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성시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미주에 있는 우리 군사는 속오군을 제하면 둔전병 1만이 전부입니다. 긁어모은다면 10만 명쯤은 모을 수 있겠지만, 여기 계시는 분들은 모두 아시다시피 실제 원정에 나설 수 있는 병력은 수천 정도입니다.”
속오군은 공격전에는 별 쓸모가 없다. 밭과 가축을 돌보아야 할 시간에 원정에 끌려나가 싸워야 하니 사기가 높을 수 없어서다. 물론 복수나 약탈 같은 다른 동기가 있다면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만, 둘 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는 목적으로 제시하기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동변병마사 휘하에서 야인들을 억누르고 있는 둔전병을 빼내서 다시 남쪽으로 보낼 수도 없고 말입니다.”
“짐의 생각도 같다.”
동변병마사 휘하에 있는 둔전병이란 장희재가 데리고 미주로 건너갔던 퇴역병 1만 명을 가리킨다. 병마사는 바뀌었고 그들 중 상당수도 제대했지만, 나머지는 5년 계약을 채우고도 계약을 갱신해서 여전히 둔전병 노릇을 하고 있다.
“직접 농사를 짓기보다는 부재지주 노릇이 편하니 그러고들 있습니다만…우리로서야 그저 고마울 뿐이지요.”
이주한 둔전병에게는 5년 복무를 마치면 토지 2결을 주기로 약속했었다. 여기서 성시균이 추가로 복무를 연장하면 땅을 더 주겠다고 했고, 여기 혹한 병사 다수가 계약을 갱신했다. 여기에 본국에서 추가로 건너간 병사들도 있어서, 총병력 1만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둔전병들은 광대한 동변 각지에서 야인들을 억제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습니다. 신서반아를 공격하려고 저들을 임지에서 빼낸다면 동변, 더 나가서 원미주 일대 장악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원미주에 있는 수많은 인디언 부족과 교류하는 역할은 미주총관부에서 지원하는 상인들이 맡고 있다. 이들이 안전하게 원미주를 오가려면 우리 주둔군의 뒷배가 필수다. 혹시 한인을 하나라도 건드리면 불벼락이 떨어진다고, 확실히 알려둬야 한다.
이미 보복전이 몇 차례 있었다. 정호찬을 따라 내게 와서 선물을 받고 돌아간 부족들이야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우리와 직접 교류하지 않았던 일부 부족은 간이 부었다. 눈앞에 만만한 먹이가 나타나면 덮치고 보는 거다.
오도리와 왜인여진 같은 북변 출신 기병들은 이런 멍청이들을 상대로 단호하게 싸워 크게 용명을 떨쳤다. 성시균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우리 북방 출신 기병들을 가리켜 ‘말 탄 늑대들’이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한다고 했다.
“병력도 병력이지만, 불랑국이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발언에 나선 이형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성시균이 그 옆에서 차분하게 물었다.
“원미주는 불랑국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땅이기도 합니다. 원미주에 나가는 우리 상인과 군사들이 불랑국 상인이나 군사들과 마주친 사례가 꽤 잦은데, 이번에 온 특사는 그 문제로 폐하께 무슨 말을 올렸사옵니까?”
“당장 논할 말은 없다 하며, 국왕에게는 아무 말도 못 들었다 하였네. 불랑국왕의 친서나 조약문에도 그에 관한 말은 없었고.”
특사가 제출한 즉위 축하 서신과 동맹조약문은 어전회의에서 자구 하나까지 다 검토했다. 조정에서 공개하지 않은 별본도 승지들과 머리를 맞대고 꼼꼼하게 살폈다. 하지만 원미주, 루이지애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형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불랑국왕의 요구대로 하자면, 우리는 신서반아만 공격하고 필리핀은 놓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작 직접 빼앗은 신서반아 영토는 반환하고, 필리핀을 다시 넘겨받아야 하지요. 그 복잡한 과정을 완료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신으로서는 짐작도 안 갑니다.”
내가 신하들의 반대를 핑계로 삼아 참전을 미룰 수 있듯, 루이 역시 ‘스페인 측의 반대’를 핑계로 필리핀 양도를 미룰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미주에서 루이를 위해 전쟁을 치르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상은 보상대로 없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 문제는 나도 짐작하였다. 서반아 조신(朝臣)들이 무력으로 빼앗기지도 않은 필리핀을 내주자고 선뜻 나설 리가 없겠지.”
그렇게 되면 어차피 우리 손으로 필리핀을 빼앗는 수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프랑스는 스페인이 필리핀 탈환 시도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는 정도에서 도움을 그칠 공산이 크다. 민성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전쟁에 뛰어들 명분이 없으니 모두가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간주하고, 신이 생각하기에는…불랑국과 동맹을 맺지 말고, 우리는 별도로 싸우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옵니다.”
“어이 그러하오, 좌승상?”
민성윤은 프랑스와 정식 동맹을 맺지 말아야 할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우리가 끼어들든 말든, 유주 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결국 유주에서 결판이 납니다. 그리고 워낙 대국들이라 싸움 한두 번으로 끝나지도 않지요. 적어도 몇 년은 갈 테고, 우리는 유주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싸우게 됩니다.”
“맞는 말이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성윤이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 관한 설명을 계속했다.
“그 전쟁에 참전하려면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싸움을 시작하고,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일을 끝내고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불랑국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우리 대한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유주에는 이미 전례도 있지요.”
민성윤은 30년 전쟁을 예로 들었다. 당시 스웨덴과 프랑스는 한편이 되어 합스부르크와 싸우기는 했지만, 정식 동맹국은 아니었다. 그래서 합스부르크 측은 강화회담도 두 나라와 각기 진행하고, 강화조약 서명도 따로따로 했다고 말이다.
“우리도 그런 쪽으로 상황을 조성해야 합니다. 불랑국왕이 자기 둘째 손자를 위해 서반아 왕위를 손에 넣든지 말든지, 우리는 그와는 완전히 별개의 명분을 찾아 순전히 우리 힘으로 필리핀을 획득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신서반아는 공격할 필요도 없습니다.”
“좌승상 대감의 말씀이 옳습니다.”
“신도 좌승상 대감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정호찬과 이형준도 동의했다. 성시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쪽이 훨씬 성공률이 높았다.
태평양에 있는 스페인 해군력은 우리 수군과 비교가 안 된다. 남해수군통제영이 보유한 전력만 출동해도 필리핀과 누에바 에스파냐 사이를 연결하는 항로를 차단하는 건 간단하다. 그러면 필리핀은 고립되고, 우리 육군이 상륙하면 몇 달 안에는 함락할 수 있다.
“좋네. 그럼 명분이 생겨서 개전하게 되면 오늘 논한 대로 조정에서 방향을 잡아 보도록 하지. 신서반아보다는 필리핀을 얻자는 편이 조야에서도 동조를 얻기 쉬울 테고.”
우리 눈으로 보자면, 필리핀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막대한 목재와 금, 구리가 있고 다종다양한 열대산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벼농사도 1년에 3모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우리 사전에서 정말 기근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도 있을 거다.
프랑스 특사는 일단 적당히 잘 대접해서 봄에 돌려보내자. 스페인 쪽은 적당히 상대하다 보면 언젠가 선전포고할 만한 명분이 생기겠지. 원래 세계에서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14년이나 이어졌고, 여기라고 해서 설마 두서너 해 만에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 7 –
성시균을 뒤이어 동변관리사로 간 이완과 더불어, 이종덕의 후임 미주대총관으로 바다를 건너간 후임자는 이맹전이다. 미주 지역을 개발하고 개간하는 데는 호부대신으로 일하면서 나라 살림을 제대로 챙겨 본 이맹전이 적절한 재목이라고 보였다.
물론 이맹전은 형황 재위기에 미주 개발을 반대한 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당장 원미주를 정벌하여 우리 영토로 만들고 수많은 백성을 이주시켜서 논으로 만들자는 과격한 정복론에 반대한 거였지, 이미 확보한 우리 땅을 개발하지 말라는 게 아니었다.
“지금 미주 인구가 120만이라 하였던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지난번 대기근이 진정된 뒤에도 바다를 건너서 이주하려는 자들이 끊어지지 않은 덕분입니다.”
도승지 오영진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산더미 같은 서류 더미를 쌓아놓고 나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바로 승지들이다.
“그만한 인구라면 군사 1만이 확실히 많은 숫자는 아니구나.”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한다면…물론 주전선은 필리핀이 될 거다. 하지만 누에바 에스파냐 쪽에서 필리핀을 지원하거나 하와이를 공격하지 못하게 방해할 겸, 미주에서도 약간의 견제 작전 정도는 펼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성시균은 부정적으로 봤지만 말이다.
우리 둔전병들이 안 된다면, 인디언 보조부대를 써도 되지 않을까? 우리 군관들을 붙여서 보내면 마구잡이로 날뛰지 않고 적당히 자제해 가면서 군사활동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억족이나 올로내족 전사들 같으면 확실히 신뢰할 수 있고 말이다.
우리가 직접 싸우는 대신에 아파치나 코만치를 부추겨서 반스페인 봉기를 일으키게 하고, 그 뒤에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방법도 있다. 물론 누에바 에스파냐 당국과 우리 미주총관부 사이는 확실히 지금보다 나빠지겠지만, 필리핀까지 뺏을 참인데 그게 대수겠는가.
“폐하, 천축에서 장계가 올라왔사옵니다.”
이연성이 보낸 장계를 보니 우리 파천군이 슬슬 활약을 시작하고 있었다. 무굴 조정에서 지방 장악력이 약해지면서 도적 떼나 군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을 상대로 우리 권익을 지키는 싸움을 벌여 이미 몇 차례 소소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했다.
“무굴 조정에서는 우리 활동을 방관하고 있다 하니, 잘 되었구나. 묘당에 올려서 중신들이 이 내용을 알게 하라.”
“예, 폐하.”
인도에 상주하는 전력이 대규모로 자리를 잡은 만큼, 중간 거점을 확보할 필요성도 조금 더 커졌다. 필리핀 이후에는 역시 싱가포르쯤에는 추가로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중간에는 사이공 정도 이용할 수 있겠고. 사이공, 사이공이라.
“안남에서는 어떤 소식이 들어와 있느냐?”
“여전히 정주(鄭主)와 완주(阮主) 사이에 다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장조 시절, 베트남에서는 군주인 여씨에 맞서 보위를 찬탈했던 막씨와 막씨를 몰아내려 힘을 합친 다른 세력들 간에 격렬한 내전이 벌어졌었다. 그때 우리는 반막씨 진영에 있는 완씨를 도왔고, 이들이 이겨서 여씨가 군주 자리에 복위했다.
그런데 권신인 정씨가 여씨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막씨에게 맞서 함께 싸웠던 완씨와 다시 내분을 벌였다. 여기서 황제를 등에 업은 정씨 세력이 명분상으로 완씨보다 더 우위에 있지만, 우리 대한은 완씨와 가깝다.
“장조께서 완씨와 교류하기로 정하신 이래, 우리 대한은 꾸준히 완씨를 지원해 왔습니다. 근래에 기근이 계속 이어진 탓으로 철재를 공급하고 쌀을 사들이는 교역도 꾸준했습니다.”
“완씨가 후송에 접근할 조짐은 없는가?”
“아직은 없습니다, 폐하. 하지만 후송이 해금(海禁)을 풀고 자유롭게 바다로 나오게 되면, 분명 안남 전체를 자기 신하로 끌어들이려 시도하리라 사료됩니다.”
안남국, 베트남은 조선이 그랬듯이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았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칭하는 외왕내제(外王內帝)였다.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베트남 역시 우리처럼 한동안 조공 책봉 체제에서 벗어났고, 잠시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중국에서 삼국이 정립되고 어느 정도 안정이 이루어지자, 위신을 위해 후송과 서 두 나라가 모두 안남에 칙사를 보내 복속을 요구했다. 다만 청은 머나먼 남쪽 땅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복속을 요구하는 칙사를 보내지 않았다.
“안남에서는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서 서로 자기가 진짜라 하는데, 어느 쪽이 사실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지? 참으로 패기가 넘치는 놈들이로다.”
결국 안남은 인접한 서나라에 입조하기로 결정했고 서나라에서 책봉을 받았다. 조정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정씨 세력의 결정이었고, 완씨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자기 쪽에서 그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완주는 ‘대명은 망했고, 그 뒤를 이은 세력은 없으니 조선의 본을 따라 우리도 당당하게 칭제함이 옳다’라는 입장이라 합니다.”
“사내답구나. 만약 저들이 그 주장을 실행에 옮긴다면, 우리로서는 마땅히 일본국 대군을 대하는 예로 대할 일이다.”
이 복잡한 정치적 갈등에 후송도 끼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후송에 다녀온 탐송사가 이 문제에 관해 보고한 바에 따르면, 후송은 안남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게 된다면 안남 조정을 회유해서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일 계획이 있다고 했다.
“안남이 후송 조정에 입조하고 책봉을 받는다면, 당연히 서나라와는 적대관계가 되겠지요. 그러면 후송은 서를 양면에서 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후송 선박의 외해 항해를 풀어주면, 그게 이런 쪽으로도 나비효과를 불러오겠구나. 물론 그게 가능하게 되려면, 후송 배들은 서나라에 귀부해 수군 노릇을 하는 해적들을 피해 남쪽으로 한참 우회해야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 보면, 가끔은 나라 안 일에만 신경을 쓰면 되던 무종 시절이 조금은 그리워진다. 그때는 명나라 눈치 좀 살피는 것 빼면 외치에는 고민할 게 전혀 없었으니까.
한숨을 쉬면서 다음 서류를 집었다. 휴우, 지금 세상도 내가 만든 거니 누구를 탓하겠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낄 명분을 어떻게 만들지나 고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