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90
3부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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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필리핀 총독인 크루자트 이 곤고라는 필리핀에 15년이나 머무른 베테랑 군인이자 행정관이다. 을병대기근 기간에 곡물 수출을 통제하지 않는 등 형황 시절에도 우리와 제법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내가 즉위한 뒤에도 우호를 유지했다.
물론 대스페인 개전과 필리핀 획득을 준비하는 내 쪽에서야 그동안 친분을 다져온 상대를 갑자기 공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새로 바뀐 상대를 치는 쪽이 아무래도 가책이 덜하다.
“신임 총독의 이름은 도밍고 자발부루 드 에체바리(Domingo Zabalburu de Echevarri)라 합니다. 군인으로, 필리핀에 건너온 지는 7년이 좀 넘었습니다.”
예부대신 윤시현의 보고에 따르면 신임인 도밍고 총독은 그동안 필리핀 남부에 거주하는 무슬림 토착왕국들과 싸워 정복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었다. 전쟁과 개종, 선교가 그가 주로 수행한 임무였다.
이쪽 세계 필리핀에서도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 정복에 바쁘다. 전임자인 크루자트 총독도 군인 출신이지만, 행정관 경력이 더 길다 보니 우리를 대할 때 군인 티는 잘 내지 않았다.
“지금 필리핀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현안이 많이 얽혀 있습니다. 아마 공연히 우리에게 싸움을 걸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하지만, 필리핀에서 스페인인은 소수다. 정치와 군사는 스페인인들이 꽉 쥐고 있으나 경제는 중국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주로 광동 출신 화교들이다.
우리 수군이 구축한 봉쇄망 때문에 후송에서는 자유롭게 필리핀을 오갈 수 없다. 하지만 서나라 쪽에서는 상선과 밀수선, 해적선이 마닐라까지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다. 마닐라의 스페인 총독부는 이들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고 교역으로 이익을 얻는다.
이들은 이미 16세기부터 필리핀에 들어가 사는 터라, 이민의 역사로 따지면 조선인들보다 한참 선배다. 출신은 광동이지만 서나라와는 사업상 관계 외에는 연계가 없다. 대부분 루손 북부에서 벼농사에 종사하는 조선인들과는 거주지역은 물론 하는 일에서도 차이가 난다.
“신임 총독은 군인 출신이고 하니, 해적이나 잠상들과 얽힌 중국인들을 탄압할 수 있다는 예상이 익문사에서 들어와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죽여도 보복하겠다고 나설 상대가 없으니, 안심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원래 역사에서도 필리핀 총독부는 몇 번이나 화교 학살을 벌였지만, 중국 정부는 한 번도 보복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필리핀까지 거리도 거리지만, 중국 쪽이 명말과 명청 교체기의 혼란과 맞물려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사정도 있다.
지금 서나라도 마찬가지다. 서나라는 아예 자기들의 정체성을 대리국의 후계자로 두었고, 광동 일대를 손에 넣고서는 이곳 역시 남월(南越)의 옛땅이니 중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남에 대한 종주권 요구 역시 여기서 이어졌다.
“남월의 옛땅을 얻은 서나라가 옛날 그 땅에 살다가 남으로 내려간 안남에게 신하의 예를 요구하는 건, 과거 무종께서 일본 대내씨에게 신하의 예를 요구하셨던 일과 같은 격이지.”
그것도 벌써 내 기준으로 해서 근 50년이 된 일인가? 오우치 요시오키가 자기는 백제의 후손이라는 드립을 치면서 내 신하가 되겠다고 하던 때가.
그때 내가 종성순에게 당하지 않고, 좀 더 오래 살면서 오우치를 지원해서 세력을 키우게 도왔다면 과연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요시오키 그놈이 우리 원정군이 가져간 화약에다 불을 지른 건 알고 있지만, 그거야 어떻게든 응징할 수 있었을 테니까.
일본 전체를 통일하는 건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서일본을 장악하는 건 가능했겠지 싶다. 그 상태로 좀 더 나갔으면 동서 일본을 아예 갈라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확히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백제는 망했어도 대부분 백제 백성이 옛 백제 땅에 그대로 살았지만, 옛날 남월 땅에 살던 베트남인들은 남쪽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남월의 옛땅이라는 광동, 광서에 지금 사는 이들은 거의 한족이다.
지금 필리핀에 사는 수만 명이나 되는 중국인들도 대개 광동 출신이다. 하지만 그자들도 자기들이 서나라 백성이라는 자각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후송을 더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과 얽히든 돈만 뜯길 게 뻔하니, 어느 편에도 달라붙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서나라로서도 어차피 해외에 거주하는 화인(華人, 중국인)들이 자국 백성이라고 여기지 않으니, 피장파장인 셈입니다. 마닐라 총독부가 필리핀에 있는 화인들의 씨를 말려도 보복하지 않을 겁니다. 나설 힘도 없지만 말입니다.”
민성윤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나라는 제대로 된 수군이 없고, 대신 오스만이 하듯이 해적을 고용해서 수군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있다. 광서에 있는 해적들은 왕씨 성을 한 대두목이 통솔하고 있고, 광동 쪽은 바로 그 정씨 해적단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가가 명을 달리했다 하였지. 후계자는 어떤 놈인가?”
“아직 확실한 연락은 없사오나, 그 손자가 자리를 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서나라 조정에서 수군대도독 직위도 그대로 내려 주었다 합니다.”
정씨 일가가 가지고 있던 대중성주 직책을 회수하는 데 반발해서 홍콩으로 떠나 해적단을 조직한 정지룡은 작년, 1701년 겨울에 노환으로 죽었다. 그놈이 대남을 떠난 때가 1641년 신사년이었으니, 딱 60년 동안 해적 두목 노릇을 하다가 죽은 셈이다.
정지룡이 너무 장수하는 바람에 그동안 후계자로 거론되던 손위의 아들들이 먼저 죽었다. 그래서 두목 지위가 손자 중 하나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다만 그 손자가 어리고, 숙부들이 여럿 있으니 두목 자리를 두고 차후에 내분이 일어날 공산이 있습니다. 누가 정가군의 주도권을 잡게 될지는 아직 더 살펴야 할 듯합니다.”
“옳은 말이다.”
정가군, 정씨 해적단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전투원만 1만 명이 넘는다. 보유한 배 숫자만 해도 대소 3백 척은 된다. 그만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자리라면, 조카를 찔러 죽이고서라도 손에 넣고 싶을 놈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정가군이 그 꼴이니, 더더욱 서나라로서는 필리핀에서 화인들이 학살당하더라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서반아 당국에서도 알고 있을 테니, 서슴없이 해치울 수 있을 겁니다.”
스페인 당국의 화교 학살은 반란 방지, 해적 단속에 더해서 재정 확충을 목적으로 하기도 했다. 학살한 화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거다. 지금 스페인 본국은 전쟁 때문에 재정위기에 처해 있을 터, 필리핀 당국이 그런 상황을 타개하려고 학살을 벌일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서반아 총독이 중국인만 학살하고 그 재산을 빼앗는다면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겠으나, 혹시 그 과정에서 마닐라를 오가는 우리 상인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외수사에 은밀하게 명하여 안전에 유의하라고 이르라.”
필리핀은 외국이므로 외수사가 담당하는 구역이다. 남만, 인도네시아 쪽으로 가는 배들이 마닐라에 기항한다. 당연히 상주하는 인원들도 있다. 여기에 조림지로 임대한 섬과 항구에 머무르는 인원들도 백 단위다.
병부대신 송재권도 내게 동의했다. 아니, 한층 더 나갔다.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서반아가 자기네 왕위 다툼에서 우리가 불랑국왕 편에 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화인들을 치는 척하며 우리 백성들을 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가서 우리가 항의하면 실수였다고 둘러댈지도 모르지요.”
루이 14세가 파견한 몽페랑 남작이 배를 띄워서 프랑스로 돌아간 때가 지난달, 양력 2월 말이다. 삼군부에서 직접 선발한 관전무관단 6명이 내 답서를 휴대하고 함께 타고 갔다. 그 답서에는 당연히 ‘아쉽지만, 귀측의 동맹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라고 적혀 있다.
당당하게 프랑스 군함을 타고 온 데다 반년이나 머무르기까지 했으니, 루이 14세가 내게 특사를 보냈고 나도 답사를 보냈다는 사실은 마닐라에서 모를 수가 없다. 여기에 총독까지 바뀌었으니, 마닐라 당국이 우리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위험성은 있다.
“동맹 제안을 거절하는 답을 보냈다고 사자를 보내 설명하는 것도 구차하니, 서반아 측이 공연히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하자. 저들이 위협적으로 느낄 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취하지만 않으면 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한의 전통은 날 건드리는 놈은 그게 누구든지 반쯤 죽여 놓지만, 절대로 먼저 때리지는 않는다는 거다. 무종 이래로 벌어진 숱한 대외원정이 늘 그랬었으니, 지금에 와서 무턱대고 ‘땅을 뺏어야겠으니 필리핀을 치자!’고 할 수도 없다.
미주와도 경우가 다르다. 미주는 문명 수준이 우리보다 한참 뒤떨어진 토인들을 교화하러 간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 토인들은 스페인이 알아서 ‘교화’를 진행하고 있으니, 우리가 끼어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다.
이거 참, 어떻게든 개전할 명분을 스페인 쪽에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도 우리 쪽에서는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이것도 환장할 노릇이구먼. 명분을 얻으려다 왕위 계승 전쟁 다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려나 모르겠다.
– 16 –
“요즘도 일본에서는 승병이 성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야스 님께서 장조 폐하의 도움에 힘입어 전국을 평정하고 천하에 평화를 가져오신 이래로, 승려들은 자신이 처한 처지를 알아서 승려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 옛날 승병들과 같은 무도한 짓을 하겠습니까.”
다케오(建夫)라고 하는 동평관 주재원은 굽실거리며 내 질문에 답했다.
“무도하게 굴던 승병들은 이미 옛날에 다 토벌되어 잠잠해졌고, 지금은 진언종(眞言宗)에 속하는 일파가 좀 남아있을 뿐입니다. 다른 종파들은 대부분 백여 년 전 관군과 조선군에게 토벌당해서 없어졌습니다.”
일본 내에서 세력을 떨치던 승병집단 다수는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하던 때 궤멸당했다. 그 나머지 중 상당수는 경인왜란 때 병력을 뽑아 보냈다가 몰살당했고, 규슈와 혼슈 서부에 있는 사찰들은 을미동정 때 불벼락을 맞았다.
당시 방화를 금지한 내 명령 때문에 절 건물은 거의 불타지 않았다. 하지만 재물은 몽땅 털리고 저항하던 승려들은 참살당했다. 그로 인해 일본 서부 지역에 할거하던 승병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그래도 저항하지 않는 자들은 안 죽었으니 절 자체는 살아남았다.
“알겠다. 알려주어 고맙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물어보고 돌려보냈다. 지금 일본 불교계가 어떤 상황인지, 확실한 정보를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 승군이 싸움이 서툴어졌다 하면, 일본 승병을 천축에 보내도 좋을 듯하다.”
한국 불교나 일본 불교나 인도를 성지로 여기는 건 같다. 함께 순례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권하면 일본 불교계에서도 난리가 날 거다. 당연히 가고 싶어서.
“폐하, 내란이 끝난 지 백여 년이라고 하나, 일인들은 여전히 그 거친 성품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불승이라 해도 일인은 일인인데, 공연히 천축에 데려갔다가 혹시 시비에 휘말려 먼저 칼을 뽑기라도 하면 필요 없는 충돌을 일으키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부가 하는 걱정은 지극히 타당하다. 허나 좋은 뜻에서 가는 여행이고, 왜인들이라 해도 남의 나라에 가서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예의 정도는 알 것이니 그대들이 걱정하듯이 먼저 사고를 일으키지는 않으리라 본다.”
원래 역사에 비하면 일본은 지금 무척 개화된 상태다. 유럽과 중국에서 찾아온 상선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개항장으로는 오사카를 유지하고 있고, 요코하마는 우리 배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개항장이다.
일본 자체적으로도 배를 내보낸다. 다테 가문에서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외항선은 미주와 남만, 중국 등지를 오가며 교역품을 운반한다. 우리 상선단에 비하면 분명 미미한 규모지만,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닫아버린 원래 역사와 비교하면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다.
배가 오가는데 사람이 오가지 않을 리 없다. 에도 막부에서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사업은 아니지만, 은근슬쩍 배를 타고 나가서 동남아 일대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는 일본인의 숫자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대개 평생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터를 잡는다.
“그자들이 난폭하게 구는 건 본향에서 더 버틸 수가 없거나 정나미가 떨어져서 떠난 탓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그런 것 아니냐. 하지만 돌아가야 할 절과 가족이 있는 정규 승려라면, 함부로 무도하게 굴지는 않으리라. 큰 사고를 칠 우려는 안 해도 좋다.”
이쪽 세계에서도 일본 불교 승려 중 상당수가 대처승이다. 대한 불교계가 일본 불교계를 대놓고 이단시하지는 않아도, 은근히 깔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대처 풍습이다. 처와 가족을 거느리고 어찌 제대로 수양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이다.
이 쓸데없는 논쟁에 끼어들어 수양의 측면에서 대처가 갖는 의미를 신학적으로 따지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가족을 본국에 놔두고 외국에 ‘원정’을 가는 이들에게 무사히 돌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면 내게는 꽤 유리한 풍습인 셈이다.
“하오시면, 구주총관부에 명을 내려 천축에 보낼 일본 승병을 모집하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다. 구주총관부 관내에는 승병이 아예 없지 않으냐? 승병을 구하려면 일본 본주로 가야 하니, 이런 일은 마땅히 일본국 대군을 통해 실행함이 가하다.”
불교판 성지 순례를 사업으로 만들 거라면, 당연히 고객은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불교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성하다. 당연히 성지를 찾아갈 잠재고객들 규모는 일본에서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인구도 아직은 일본이 더 많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성리학이 사회 기간이다 보니 불교 신자 대부분이 평민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지배층인 사무라이들도 불교 신자가 많다. 승려도 천민이 아니라 상류 지배층 취급을 받는다. 어느 쪽에서 이 사업이 더 돈이 될지는 빤하지 않은가.
일본인 고객을 이 사업에 끌어들이려면 호송인력도 일본인으로 구성하는 게 편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내가 용병을 고용하면 비용이 들지만, 스스로 나선 일본 승병을 데려간다면 고용비를 안 써도 된다. 승병들 입장에서도 순례니까.
이 사업이 번성하게 되면 중국에서도 순례단을 모집할 수 있다. 인구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다르니까 잠재고객 숫자도 몇 배는 된다. 그럼 그쪽 호송인력도 중국인으로 구성하는 편이 좋기는 할 텐데…음, 소림사 승려들을 모집해서 보내면 웃기겠다.
베네치아에서도 전 유럽을 상대로 팔레스타인에 가는 성지 순례 관광상품을 팔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것도 수백 년 전부터 말이다. 잘만 되면 대한에서도 그런 관광사업으로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다.
‘갈 데가 인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인도는 불교 발상지기는 하지만 일단 거리가 제법 멀다. 게다가 지금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실상 완전히 망했다. 바로 인근에 있고 현재도 불교가 성한 실론, 즉 스리랑카 쪽이 훨씬 나은 순례지가 될 수도 있다.
순전히 볼거리를 찾는 관광지라면 더 가까운 곳에도 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자바 서부에 있는 보로부두르 불탑. 둘 다 정글 속에 묻혀 있다지만, 길을 내서 찾아가려고 들면 못 찾아갈 것도 없다. 딱 한 가지, 질병 문제만 어떻게 해결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