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94
3부 2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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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온 숨겨진 황자가 촉발한 소동은 삽시간에 경기 일대에 퍼졌다. 워낙 민감한 사건이다 보니 이를 정식으로 다룬 시보는 없었으나 ? 조보에서도 당연히 디에고의 ‘ㄷ’도 지면에 싣지 않았다 ? 참보는, 그리고 입소문은 돌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폐하의 용안을 쏙 빼닮았다던데!”
“역시, 역시! 들르는 고을마다 색을 탐하고 다녔다는 폐하께서 유주 땅에 씨 하나 남기지 않으셨을 리가 없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 않았는가!”
주상이 견서사로 떠나기 전, 성친왕으로 국내에 있을 때는 딱히 호색한으로서의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고부터는 한동안 주색에 빠져 망나니처럼 굴었었다는 사실을 웬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순비 소씨를 만난 불랑국에서부터는 무섭게 착실해져서 예전처럼 방탕하게 지내지 않게 되었다. 유주에서도, 미주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조보에서는 ‘성친왕이 충실히 책무를 다하고 있다’라는 소식을 하루가 멀다 하고 실었다.
귀국한 뒤에도 주상의 옆에는 황후와 순비 소씨뿐이었다. 제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측실을 더 들이지도 않았다. 과거처럼 방탕한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점잖게 지내니 옛 소문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10여 년이 넘게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태황 앞에서 옛 소문을 거론하면서 피식거릴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있다 해도 소싯적에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일탈 정도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숨겨진 아들이 모든 것을 뒤집어 버렸다.
도성 거리 곳곳의 술자리와 뒷골목, 방구석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수군거리는 귀엣말이 오갔다. 아무리 포교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돌아다녀도, 금위사 끄나풀들이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어도 이런 은밀한 대화까지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를 찾겠다고 세상 반대편에서 건너온 태황의 숨겨진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한 술자리 안주로 끝나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이런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럼 태자가 바뀌는 건가?”
“진짜 장남이 그 서반아 청년이라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서자잖은가. 그것도 양첩에게서 얻은 서자! 그런데 어찌 감히 태자에 오르고, 보위를 물려받을 수 있나?”
“아니, 그럼 기껏 바다를 건너온 보람이 없잖아?”
“네놈은 홍희동전도 안 봤냐? 후작이 희동이를 아들로 인정하든? 부정하고 쫓아냈잖아! 세상 법도는 동방이건 서방이건 똑같다고!”
“그래도 자기 자식인데 설마 대놓고 모른 척하지는 않으시겠지? 태자로 봉하지는 않아도, 군왕으로 봉해서 평생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정도는 쉽잖아?”
감히 민간에서 대놓고 황실의 후계를 논한다면 대역죄로 처분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정말 유례가 없는 사건이고 보니 수군대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적자인 황태자와 친왕들이 엄연히 있는데 출생도 확실하지 않은 서장자가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황태자가 될 리는 없다. 태어난 서열만으로 제위를 계승한다면, 진즉에 현왕이 옥좌에 올라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으리라.
서반아 청년은 절대 태황이 될 수 없다. 이를 잘 아는 사대부들은 무지한 백성들과 달리 다른 쪽에 관심을 쏟았다.
“폐하께서 과연 그 청년을 친자로 인정하실까요.”
“인정하신다면 어느 정도 직위를 내리실지….”
“자칫하면 서반아가 우리 내부에 손을 뻗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장조 시절에 이주해온 서반아인 무관들은 조상이 서반아인일 뿐, 이미 대한인이 되었다. 하지만 서반아인 황자가 유력자로 자리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기 세력을 만들기 위해 서반아에서 자기 친지들을 새로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타난 서자 황자, 신변이 불안할 수밖에 없소. 게다가 이 대한에는 그자의 편이 되어줄 유력자도 없지. 그렇다면 서반아에서 사람을 불러들여서 자기 측근으로 삼고 세력을 형성하려 드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소.”
새 황자가 보위를 노리려 한다면 세력을 구축하는 게 당연하고, 보위를 노리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 사람은 필요하다. 이방인인 자신을 경계하고 더 나가서 제거하려고 들 수 있는 적대자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부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방인인 새 황자는 대한에 연고가 없다. 그러니 고향 서반아에서 사람을 불러올 게 분명하다. 서반아 조정 중신들이 전부 멍청이가 아니라면 분명히 이 기회에 대한 황실에 자기네 세력을 밀어 넣어 발판으로 삼으리라. 아예 그 의도로 보냈을 수도 있다.
“자칫하면 또 한 번 내란을 촉발하고, 더 나가 이 나라를 서반아에 넘기는 단초가 될지도 모릅니다. 역시 정에 끌려서 그 청년을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국외로 추방하시라고 폐하께 상소를 올려야겠습니다.”
군왕 책봉만 받아도 황위를 계승할 자격이 생긴다. 만약 주상이 서장자에게 군왕 봉작을 내린다면, 그 총애를 보고 그쪽에 붙어 한몫 보려는 자들이 모여들어 상당한 세력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예왕이 난을 일으켜 도성 일각을 불태우는 내란이 벌어진 게 겨우 4년 전 일이다. 여기서 새로운 내란의 계기를 만들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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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위사장 박헌종의 보고를 받고 있으려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세상에서는 그런 소리가 돌고 있단 말이지.”
“예, 폐하.”
여기서 예왕을 한번 또 원망할 수밖에 없다. 성친왕이 벌인 난봉질에 관한 소문을 시중에 퍼뜨린 장본인이 예왕 그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는 나를 두둔하는 척하면서 늘 점잔을 빼고, 뒷전에서는 내 이미지를 실추시킬 소문을 퍼뜨렸다.
예왕을 죽이기 전에 내가 그 사실을 알았으면 과연 어땠을까 싶다. 아마 더 망설임 없이 죽였겠지? 더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하지는 않았겠지만, 동정심이나 애처로움 같은 부드러운 감정은 떠오르지 않았을 듯하다.
“세간에서 떠드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잡아넣을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어서 조치를 마무리하셔야 그 소문이 가라앉을 듯합니다.”
“빠르게 못 하니까 이러고 있지 않으냐.”
이 일을 순전한 가십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백성들의 반응이야 무시해도 된다. 중요한 건 양반, 사대부들의 여론이다. 그리고 금위사가 수집한 사대부들의 반응은 조정 중신들이 내 앞에서 떠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폐하, 제왕은 때에 따라서는 친자식이라도 쳐낼 수 있어야 하옵니다. 정에 쏠려서 그릇된 결정을 내리지 마시고, 가차 없이 내쫓도록 하시옵소서. 나라에 해로운 일이라고 알면서도 행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아닙니다, 폐하! 그 청년은 폐하의 핏줄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아비가 자식을 알면서도 쳐내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찌 사대부로서 행할 행동이라 하겠습니까? 옛날 무종께서 서얼금고법을 폐기할 때 남기신 말씀을 다시 떠올려 보시옵소서.”
덕분에 편전에서 옛날 내가 무종 시절에 뱉었던, ‘상께서 차마 기록에 남길 수 없는 격한 언사로 하신’ 비판이 다시 언급되었다. ‘싸질렀으면 책임을 져라, 이 새끼들아!’라고 내지른 내 발언을 내가 무시할 수도 없으니, 이것도 일종의 자승자박이 된 셈이다.
분명 디에고의 존재는 황실 내 권력투쟁이라는 면에서 보면 위험한 요소다. 곧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게 될 거라는 부분과는 도리어 별 연관이 없다. 스페인 쪽에서 디에고를 지원할 인원들을 보내 우리 내부에 내응할 만한 세력을 만들 여유가 없을 테니까.
위험한 부분은 이번 전쟁보다는 그 뒤다. 필리핀을 뺏기면서 대한을 확실히 적대세력으로 인식한 스페인이 디에고를 통해 우리 내부에서 소란을 일으키려고 획책할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디에고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 아이의 외가나 처가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
빌라다리아스 후작이나 칼레하 후작의 이름으로 누군가가 건너온다면 디에고로서는 쉽게 거절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면 그쪽에 붙은 세력이 커지고, 엉뚱한 사태가 벌어질 위험은 충분히 있다. 디에고가 헛바람이 들든, 주변에서 부추기든 말이다.
게다가 나는 디에고에게 아들로서 애정을 전혀 품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장조 때 성이처럼 시간을 두고 지내면서 애착이 생긴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지금 디에고를 대하는 건 그때 성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성이는 내 확실한 후계자였다. 그리고 그 모친 중전 김씨는 평생을 함께한 내 정처였다. 계승권을 받을 수도 없고, 내 머릿속에 그 모친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는 디에고를 성이에 비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일부 신하들이 바라는 대로 친자임을 부인하고 쫓아내자니…생물학적으로는 그 아이가 분명 내 아들이긴 한 것 같다는 점이 문제다. 주변에서는 내가 명백한 내 친자식을 내버리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거다. 인간적으로 불쌍한 건 내가 보기에도 사실이고.
더불어 내 주변에서 발언력이 가장 강한 세 여자 역시 디에고를 쫓아내는 데 호의적이지 않았다.
“주상, 그 서반아 청년은 주상의 아들이 분명하다 들었습니다. 비록 야합으로 생긴 아이라 하여도, 어쨌든 주상의 핏줄이라면 버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군왕으로 봉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작호를 내리고 종친으로서 살게 해주세요.”
“태황태후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부자간의 인연은 하늘이 내린 것이니, 어찌 소중한 자식을 장차 불미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만으로 내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세상 반대편까지 찾아온 애야. 아들로 인정한다고 해서 꼭 사랑해주고 보위를 물려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 걔도 그런 거 바라지는 않는다며. 스페인이 그 아이를 이용해서 수작을 부려봐야, 막는 건 어렵지 않아.”
모후, 태후, 상희 세 사람 모두 디에고를 받아들이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모후와 태후는 ‘어쨌거나 핏줄인데’라는 태도지만, 상희는 ‘애가 불쌍하잖아’라는 차이가 있기는 했다. 그래 봐야 결국 나타나는 결론은 같았고 말이다.
그래도 세 사람 모두 결정은 내게 맡겼다. 모후가 얼굴을 보겠다며 디에고를 태후전으로 불러들이기라도 했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디에고를 인정해야 했겠지만, 모후는 내가 결정할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인지 이 일에 더 깊게 개입하지는 않았다.
올렝카는 이 문제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후궁인 자기가 끼어들 계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사벨과 전혀 다른 대우를 받은 자기 입장에 대해 우월감도 좀 느끼는 듯하고. 그거야 내가 내가 아니었던 탓이지만 올렝카가 그걸 알 리 있나.
“알겠다. 물러가라.”
“예, 폐하.”
박헌종을 돌려보내고, 대전내관에게 술을 한 병 가져오라고 했다. 미주에서 즐겨 마시던 성모곡 산 주정 첨가 포도주, 일명 성모주다. 독한 성모주를 한 잔 원샷으로 들이켜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젠장, 이럴 때는 창밖에 전각밖에 없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낫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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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가 제물포에 들어온 지 한 달. 그동안 디에고를 받아들일지에 대해 사방에서 온갖 의견이 밀려왔다. 조정에서도 찬반이 갈렸고 재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별로 정확하지 않은 단편적인 사실만 접하고 올린 상소도 수백 통이었다.
‘폐하, 천륜을 어기셔서는 안 됩니다. 수륙만리 먼 길을 찾아온 폐하의 아드님이니 마땅히 황실에 받아들이소서.’
‘그자는 필시 협잡꾼일 것입니다. 붙잡아 서반아로 송환하여 재판을 받게 하소서.’
‘우리 황실을 해하려고 서반아 조정이 잠입시킨 간자가 분명합니다. 송환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우리 손으로 처형해야 합니다.’
‘그 죄인은 감히 황자를 참칭하였으니 마땅히 참하여 나라의 법도가 엄중함을 보이소서. 외인(外人)이라 하여도 법을 어긴 자는 마땅히 처형해야 할 것입니다.’
상소는 대체로 디에고를 부정하는 쪽이었다. 역시나 금위사가 수집한 사대부들의 동향과 일치했다.
궁궐로 들어오라는 호출을 받은 디에고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내가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이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느라 지난 한 달 동안 쌓인 고민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거야 다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대가 내 아들임을 인정하나, 정식 혼인으로 얻은 황자가 아니므로 군왕으로 봉할 수는 없다. 이에 그대에게 비수백의 작위를 내린다.”
비수백(沸水伯)의 비수는 졸본천 옆에 있는 지명으로, 주몽이 부여를 탈출해 처음 나라를 세운 곳이다. 그리고 디에고의 출생지인 비스카야(Vizcaya)를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덤으로 이진서(李秦誓)라는 한국식 이름도 내렸다.
“그대는 백작이므로 각하로 불릴 수 있으나, 전하로 불릴 수는 없다. 또한 보위를 계승할 권리도 없고, 호부호형을 자유롭게 행하도록 허락할 수도 없다. 짐에게는 폐하라는 호칭을 써야 하며, 태자를 비롯한 황자들을 아우로 대할 수도 없다.”
이건 내가 특별히 엄한 게 아니다. 유럽 왕실에서도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법도는 같다. 국왕의 사생아를 친자로 인정하고 작위는 내려줄 수 있지만, 적자인 왕자녀들과 친형제처럼 동등하게 지내게 해주지는 않는다. 작위를 받은 시점에서 이미 신하다.
‘같은 적자인 동복형제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지.’
군주제에서는 당연한 일이긴 하다. 임금, 그리고 그 정통 계승자와 동격인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만약 그대가 이 나라에 머물러 살고 싶다고 하면 적당한 집과 하인들을 내려 살게 해줄 것이지만, 스페인에 있는 외조부에게 돌아가고 싶다면 머물지 않고 떠나도 좋다. 떠난다고 해도 백작위는 박탈하지 않을 것이고, 상당한 액수의 전별금도 내줄 것이다.”
그래, 디에고가 작위를 받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것도 서로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나는 부친으로서 해야 하는 도리는 다한 거고, 디에고도 아버지에게 친자로 인정받는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거니까. 부자가 꼭 대한에서 같이 살아야 할 필요는 없잖은가.
그동안 서인혁을 몇 차례 보내 디에고의 생각을 알아보면서 그런 쪽으로도 은근히 암시를 주게 했다. 과연 얼마나 효과를 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짐의 아들로 인정받고, 백작위까지 받았다고 하면 칼레하 후작도 그대를 업신여기지는 못하리라. 어떠하냐. 남겠느냐, 돌아가겠느냐?”
정치적인 이유로 디에고를 친자로 인정하는데 반대하던 중신들도 입을 다물게 한 조건이 바로 여기, 귀국을 유도한다는 부분이었다. 사생아라 제위 계승권은 없다고 못을 박았으니 스페인이 디에고를 앞세워 쳐들어와 봐야 명분도 안 선다.
하지만 디에고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폐하, 저를 아들로 인정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시다면 제가, 아니 신이 대한에서 폐하의 신하로서 봉직하도록 허락해주소서. 신의 출신 때문에 신뢰하지 않으실까 걱정되긴 합니다만, 믿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니, 기왕 아들로 인정한 처지에 안된다고 쫓아낼 수도 없다. 기대가 빗나간 신하들이 술렁거리는 꼴은 못 본 체하고, 고개를 끄덕여 받아들였다.
“알겠다.”
격려하는 말을 몇 마디 건넨 뒤, 나중에 다시 불러들이겠다고 하고 디에고를 내보냈다. 몇몇 신하들이 이러시면 안 된다고, 어떤 핑계로든 서반아로 돌려보내시라고 진언했으나 그 청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대들은 짐을 일구이언하는 자로 만들 생각인가? 임금을 이부지자(二父之者)로 만들어 이 나라의 체통을 바다에 처박아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참아야 하는데 그만 쌍소리가 나갔다. 신하들이 움찔하더니 바로 조용해지는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렇게 또 내 이미지 개선을 위한 노력은 또 한 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이고, 어쨌거나 마무리를 지었으니 이 일이 또 불거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올해 안에는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또 안 생겼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