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97
3부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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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1701) 봄부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막을 올렸다는 소식은 올해 여름 제물포에 들어온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교역선을 통해 전해졌다. 역시나 루이 14세의 선공이었다.
‘예상했던 결과긴 하지만, 그 양상은 내가 예상한 바와 달랐었지.’
원래 역사에서는 루이 14세의 손자 앙주공 필립이 카를로스 2세의 후계자가 되었으므로, 스페인과 프랑스가 같은 편이었다. 고로 양국은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그런 게 없다. 서로가 적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카를로스 2세는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후계자로 공인해 발표하고, 스페인 제국의 영토는 분할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압스부르고 왕가’를 이은 ‘바비에라 왕가’의 첫 국왕 ‘호세 페르난도 1세’로서 즉위했다.
다른 후보를 내세워 밀고 있던 루이 14세와 레오폴트 1세는 당연히 반발했다. 자기 손자, 아들이 정당한 계승자라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그리고 잘못된 계승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며 루이가 먼저 전쟁을 선언했다.
레오폴트 1세는 1699년까지 이어진 대 튀르크 전쟁 뒷수습 때문인지 당장 군대를 움직여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개전을 망설이지 않았다. 팔츠 계승 전쟁을 끝낸 지 이미 4년인 데다, 동원할 수 있는 국력에서 차원이 다른 까닭이다.
여기까지는 나도 예상했다. 하지만 그 뒤는 생각 밖이었다. 루이 14세가 북쪽의 스페인령 네덜란드, 새 왕의 본향인 동쪽의 바이에른, 그리고 남쪽의 스페인령 이탈리아를 한꺼번에 공격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짜 목표인 스페인 본토에는 병사 한 명 진군시키지 않았다.
내가 지금 루이 14세 입장이라면, 왕좌가 있는 마드리드로 군대를 보내서 꼬맹이 왕 호세 페르난도 1세를 축출한다. 그리고 내 손자 필립을 왕위에 앉힌다. 그 뒤에 아라곤, 카스티야 등 스페인을 구성하는 각 지방 의회에서 새 국왕을 승인받는다.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내 목적이 손자를 위해 스페인의 왕좌를 얻는 것이라면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플랑드르니 바이에른이니 하는 부수적인 방면으로 군대를 보내서 전력을 분산하고 일부러 전선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진격 방향은 남프랑스에서 지중해 연안 카탈루냐, 즉 아라곤 방향으로 잡는다. 해군으로 물자를 수송하고 진격을 보조할 수 있는 길이고, 영국과 네덜란드의 방해도 피할 수 있다. 대서양 연안으로 진군하면 저들이 방해하고 나서기 더 쉽다.
물론 마드리드까지 진격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스페인에 침입한 프랑스군으로 인해 스페인이 전장이 되고, 약탈과 파괴로 피해를 보게 되면 전쟁에 지친 스페인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꼬맹이 왕을 축출하고 앙주공 필립을 맞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서반아 본국이 아니고 주변부를 쳤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이겠지.”
루이 14세는 자기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내게 알리지 않았다. 몽페랑 남작이 가져온 국서에서도 동맹을 맺자고만 했지, 동맹을 맺고 나서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나를 못 믿어서인지, 중도에 유출될 우려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손자를 서반아 왕으로 세우기를 포기하고, 다른 이득을 얻고자 함일 수도 있습니다.”
예부대신 윤시현이 냉정하게 분석했다. 유럽에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정보만 가지고도 충분히 현지 사정을 분석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계승자를 선택하는 것이야 죽은 전왕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불랑국왕으로서도 그 사실을 아예 부정할 수는 없으니, 이를 인정하는 대신 보상을 얻고자 하여 협상할 목적으로 방어가 약하고 가볍게 공격할 수 있는 지역만 골랐을 수도 있습니다.”
스페인령 네덜란드는 현대의 벨기에에 해당한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스페인이 지킨 영토로, 프랑스 이외에도 네덜란드, 잉글랜드, 오스트리아 등 주변국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따지고 보면 이 땅의 원래 주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 사연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옛날에 잡다한 영지의 집합체였던 네덜란드를 통합한 게 부르고뉴 공국이었다. 그리고 합스부르크가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부르고뉴 공국 상속녀 마리와 결혼해서 그 영토를 물려받았고, 거기서 다시 스페인 왕가로 넘어갔다.
“바이에른이야 서반아 신왕의 본가이니 압박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으나, 신왕이 어차피 이제는 내 나라가 아니라 하며 눈을 감아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방면도 그렇지요.”
물론 루이 14세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쟁이 잘 풀렸을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우리가 접한 정보는 프랑스군이 진격을 시작했다는 것뿐이지, 그 뒤에 어떻게 됐나 하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국외자인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도 아직 모른다.
원래 역사에서 두 나라는 초기에 프랑스에 우호적인 중립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한 루이 14세 때문에 두 나라 모두 합스부르크 진영에 붙어 참전해버렸다.
과연 이쪽 세계에서는 그 두 나라가 어떤 선택을 할까. 프랑스가 커지지 못하게 하려고 스페인 편에 붙을까, 스페인을 함께 뜯어먹기 위해 프랑스 편에 붙을까.
어느 쪽이든 스페인으로서는 다른 데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다. 후자라면 당연히 저들의 공격에서 흩어진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하고, 전자라고 해도 동맹을 계속 유지하려면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어느 쪽이든, 서반아로서는 적을 늘릴 여유가 없지 않으냐?”
좌승상 민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그런데 왜 우리 백성들을 해치면서 감히 우리를 도발한다는 말인가!”
그래, 지금 스페인은 도저히 다른 쪽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대남주 도독이 급하게 장계를 보내 알리기를, 필리핀에서 스페인 총독부가 불법 이주한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대량학살을 벌였다고 했다. 난데없이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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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주 도독이 써 보낸 장계에 따르면, 우리 이주민에 대한 학살이 시작된 건 윤달이었던 지난 6월 말이다. 이를 양력으로 하면 8월 중순이 된다. 오늘이 양력으로 10월 4일이니, 두 달이 좀 안 된 일이다.
『…구사일생으로 바다를 건너와서 대남에 당도한 생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호소하기를, 서반아인과 토인, 왜인이 섞인 서반아군이 마을을 공격하여 사내들을 몰살하고 남은 여인과 아이들을 잡아 강제로 노비로 만들었다 하였습니다.
대남으로 도망해온 백성의 수가 벌써 수십에 이르는데, 이들이 입을 모아서 말하는 바를 들으니 그저 이제껏 하던 대로 땅을 갈고 조상을 섬기며 살고 있었는데 경고도 없이 서반아 군대가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난민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서반아군이 범한 마을은 적어도 수십 곳에 달한다고 합니다. 백주에 정면으로 진공하기도 하고 밤중에 기습하기도 하였습니다. 해를 입은 백성의 숫자는 최소 수천은 넘으며, 어쩌면 만을 넘을지도 모릅니다. 이 어찌 큰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백성들이 불법으로 월경하여 누손(루손)에서 땅을 갈고 지낸 것은 사실이나, 필리핀을 관할하는 서반아 총독부는 그동안 이 문제로 항의하거나 단속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문제 삼지 않던 일을 공연히 트집 잡아 만행을 벌이니 실로 분노할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 백성들이 대남주로 도주하지 못하게 서반아 함대가 두 땅 사이 바다를 돌며 해로를 막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천신만고 끝에 배를 타고 나온 이들 중에도 열에 아홉은 서반아 함대에 잡혀, 도로 끌려가거나 바다에 던져졌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서반아 측에서 생각하기에 우리 백성들이 월경함이 꺼려졌다면, 마땅히 사신을 보내서 항의하고 몰래 넘어간 백성들을 잡아 압송할 일이지, 무턱대고 방화와 살상을 일삼다니 이것이 무슨 도리에 속하겠습니까?
너무도 큰일을 접하고 보니 혹시 서반아가 대남주를 노리려는 생각으로 미리 사전준비를 하는 게 아닌가 하여 일단 병마절도사와 수사에게 군사를 동원할 준비를 하라고 일렀으나, 아직 저들이 대남을 넘보려는 기미는 없사옵니다.
폐하, 부디 일을 상세히 살피시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우리 백성들의 한을 갚아주시고 천하에 바른 도리가 다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장계를 쓴 날짜는 음력 7월 29일, 양력으로 9월 20일이다. 대남에서 여기까지 2주 만에 왔으니, 바람은 꽤 잘 만났다.
“승상, 루손에 있는 우리 백성 숫자가 몇 명이고 마을 숫자가 몇 개나 되는지를 조정에서 파악하고 있는가?”
“수만 명 이상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숫자는 모르옵니다. 우리 백성들이 가서 살고 있다고는 해도 엄연히 타국령인지라, 호구를 조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정의 중론은 5만은 넘을 것이지만, 그 이상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는 거였다. 확실히 조사한 적이 없으니 조정 중신들이라고 해서 알 도리가 없다.
정확한 인구 규모를 모르니 피해 규모도 산출할 수가 없다. 대남도에서 빠져나간 사람들 숫자만 가지고 추산할 수도 없는 게, 남자들만 건너간 뒤에 밀수업자나 해적들에게 여자를 사들여 데리고 사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건너갈 때 밀수업자들에게 여자를 값으로 치렀으면서 건너가서는 다시 데리고 살 여자를 산다는 게 모순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처음에 건너갈 때는 가진 게 없으니 딸이나 누이를 팔지만, 건너가서 재산을 일구면 여자를 새로 살 수 있는 거다.
그래서 필리핀에 건너간 이주민들이 데리고 사는 여자는 절반 이상이 밀수업자들에게 산 중국인이다. 개중에는 나중에 건너온 이들이 판 여자를 먼저 온 이들이 밀매꾼에게 사들여 배필로 삼기도 한다. 그 돈도 쓰기 싫은 자들은 토인 여자를 잡아다가 데리고 산다.
땅을 두고,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이런 싸움 때문에 우리 이주민들과 필리핀 원주민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일차적인 책임은 마닐라에서 져야 했고, 우리가 끼어들 수는 없었다. 필리핀은 걔들 땅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원주민들과 우리 이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아무리 조선인들이 허가도 없이 밀입국했다지만, 경고도 없이 공격해서 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었다고? 그것도 수천 명을?
“신들을 죽여 주시옵소서! 일전에 신들이 폐하께 고하기를, 서반아 총독부가 화인(華人)들을 학살할 기미가 있다 하였으나 막상 일이 벌어지고 보니 화인들이 아닌 우리 한인들이 큰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신들로 인해 방책을 준비하지 못하였으니 실로 죄를 지었습니다.”
예부대신 윤시현이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죄를 청했다.
“아니다. 그대만 그리 생각한 것도 아니지 않았느냐.”
정말이지 필리핀 총독이 이런 또라이 같은 짓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밀월여행 갔다 온 디에고 부부를 태황태후전으로 불러서 모처럼 가족 모임을 가지는 도중에 ? 현왕 외에도 내 누이인 장공주들, 선황의 딸인 영선공주, 의현옹주까지 들어왔다 ? 이런 연락을 받았으니 내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는가.
모후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빠져나와 경복궁으로 오면서 온갖 가능성을 다 생각했다. 칼레하 후작이 아무리 명문거족이라고 해도 필리핀 총독부까지 움직일 수 있을 리는 없으니 디에고랑 도로테아를 받아줬다고 보복한 것도 아닐 테고, 대체 이유가 뭐지?
편전에 와서 급히 불러모은 신하들과 의논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원인이 없었다. 우리가 대남도에 병력을 증원하거나 해서 필리핀을 위협한 것도 아니다. 스페인 당국이 불안감을 느낄 만한 조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폐하, 잠시 차분해지면 어떨까 하옵니다. 이주한 우리 백성 중 일부가 루손 토인들에게서 땅을 뺏고, 사람을 납치하는 악행을 저질렀음은 우리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서반아가 그런 이들을 도적으로 규정하여 토벌했다면 우리가 잘못이라 따지기는 곤란합니다.”
병부대신 송재권이 다소 주저하면서 나섰다. 다른 신하들은 스페인의 만행에 격노하면서 군사를 내어 응징해야 한다고 앞다투어 주장하고 있건만, 송재권은 병부대신이면서도 활을 들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닙니다. 바닷가에 자리를 잡은 마을 중에는 우리나 서반아 관헌이 모두 손대지 않는 틈을 타서 해적이나 잠상과 결탁한 이들도 있지 않습니까. 서반아 관헌이 그동안 보아 넘기던 그런 자들을 토벌했다면, 그리고 거기서 도망친 자들이 사태를 과장한 것이라면….”
자기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산적과 해적이 있다면, 그게 자국인이든 타국인이든 토벌하는 게 맞기는 하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붙잡은 해적선에 후송인이 타고 있다 해서 잡은 포로를 후송으로 송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우리가 처리한다.
“그럴 경우, 우리가 서반아에 항의한다면 우리가 도적을 두둔하는 것이 됩니다. 폐하께서 진노하셨을 것은 이해하나, 부디 잠시만 고정하시고 상황을 정확히 살펴본 뒤에 움직이도록 하소서.”
“병부의 말이 옳사옵니다. 폐하, 부디 상황을 정확히 살핀 뒤에 결정을 내리소서.”
호부대신 황재선도 침착하게 움직이자는 편에 섰다. 그래야 할 확실한 이유도 제시했다.
“대남에서 알린 대로라면, 서반아는 수천 군사를 동원한 대규모 출병을 하였습니다. 그에 맞서려면 우리도 그만한 준비를 해야 할 터, 본국에서 원군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그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니, 그동안 진상을 살피소서.”
대남도에 주둔한 우리 병력은 2만 7천이다. 여기서 1만 3천이 고병, 1만 4천은 징병이다. 그 외에 명부에 오른 속오군이 20만쯤 된다. 수군은 원양 전투용 양선 12척, 연안 순시용 당선 40척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필리핀 주둔 스페인군이 공격해온다면 방어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전력이다. 하지만 지금 전해진 소식이 사실이고, 정말로 스페인군이 우리 이주민을 상대로 대학살을 벌였다고 했을 때 응징하는 원정을 벌이기에는 부족하다. 본국에서 증원군이 가야 한다.
“그 준비야 소신보다는 병부가 더 잘 알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준비가 한두 순(旬)만에 다 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 준비를 하는 동안 필리핀에 사자를 보내시어 전해진 풍문의 진위를 확인하시고, 그 뒤에 조치를 행하소서.”
“그대의 말이 옳다.”
그래, 필리핀 총독이 미친놈인 것도 아닐진대 갑자기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특사를 보내서 진상을 파악한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다. 나는 조선 임금이고, 조선은 이럴 때 확인도 없이 대뜸 전쟁부터 선언하는 나라가 아니니까.
“예부에서는 당장 마닐라에 파견할 사자를 뽑도록 하라. 먼저 대남도에 가서 루손에서 온 난민들을 면담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짐에게 올린 뒤 필리핀으로 가서 총독을 만나 과연 그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라. 그 뒤에 우리 대응 방침을 정하겠다.”
스페인 측의 군사행동에 관한 소문이 과장되었고, 원인과 결과가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당장 전쟁을 선포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히 우리가 우위에 있어야 개전 명분이 되니까 말이다.
만약에 장계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면, 백 퍼센트 보복전 결행이다. 스페인 본국도 아니고 필리핀 따위에게 우리가 질 리는 없지만, 충분한 준비는 꼭 필요하다. 충분한 병력과 장비, 물자를 준비하려면 몇 달은 걸릴 거다.
‘그전에 불안한 요소는 없애는 편이 좋겠지.’
결심했다. 근래 조정에서 논의하던 문제 하나를 끝내기로 말이다.
“송주에게 답을 보내, 일전에 보낸 조건 그대로 국교를 맺겠다 하여라.”
“예, 폐하.”
후송 조정에서는 우리가 보낸 조건에서 개항장을 하나 추가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상해, 항주 두 곳에다가 복주(福州, 푸저우)를 추가하겠다는 거였다. 마카오하고 경쟁하는 항구를 열어서 더 많은 교역을 벌이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여기를 열면 후송이 유럽으로 비단이나 차를 수출하는 보다 편한 길이 열린다. 그 문제로 그동안 조정에서 논란이 좀 있었지만, 눈 딱 감고 허락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도 복주나 천주(泉州, 취안저우) 일대를 드나드는 밀수선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뭘 해도 못 막을 거라면, 양성화해서 통과세라도 걷는 게 낫다. 더불어서, 후송과 국교를 맺으면 후송 조정이 후원하는 해적들이 우리 뒤통수를 근지럽게 하는 일도 줄일 수 있다. 기껏 필리핀 원정을 시작했는데 그놈들이 우리 뒤를 건드린다면 얼마나 귀찮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