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0
1부 110화
– 3 –
먼저 손을 댈 부분은 군대 편제. 여기 온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게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이거부터라도 좀 바꿔야겠다.
일단 5각 편제 자체는 조선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오행사상에 따른 거라 함부로 손대기 뭐하니 그냥 둘까 싶다. 오방색 좋아하던 누가 자꾸 떠올라서 별로 마음에는 안 들지만.
먼저 바꿀 건 편제에 따른 명칭. 지금 조선군은 문종 때 채용한 진법에 따라 오(5명) – 대(25명) – 여(125명) – 통(4개 여) ? 부(4개 통) ? 위(5개 부)로 올라가는 편제를 가지고 있다. 이중에서 통은 4통으로 확실히 정해져 있다. 인원이 적건 많건 부를 구성하는 통은 4개다.
오는 좋다. 오(伍)라는 글자 자체가 조를 짜서 줄을 선다는 의미도 있고, 구성 인원이 5명이니까 어감도 딱 맞는다. 그런데 그 위는…확실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어느 쪽이 상급부대인지 도무지 종잡기가 힘들다. 대가 큰지, 여가 큰지, 통이 큰지….
조정 관리들은 그게 얼마나 큰 부대인지 설명을 따로 안 해도 다들 알아듣는 모양이지만, 난 아직도 영 익숙하지 않다. 나 말고 다른, 처음 이런 체계를 접하는 사람들도 다 알아듣지 못할 거다. 이건 뭔가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이제부터 군사를 나누어 배치할 때 대는 소대(小隊)로, 여는 중대(中隊)로, 통은 대대(大隊)로 호칭하려고 한다. 부는 대대를 여럿 모아서 편성하니 호칭을 연대(聯隊)라 하고, 오와 위는 지금처럼 그대로 부르면 어떻겠느냐. 지휘자는 각기 ‘장(長)’으로 호칭하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대, 중대, 대대 이게 다 일본에서 나온 한자표기인 걸로 기억한다. 중국군만 해도 이런 용어를 쓰지 않는다. 중국군에서는 소대를 배, 중대를 연, 대대를 영, 연대를 단, 사단을 사라고 부른다고 기억한다.
가능하면 이 시대에서 일본식 한자말을 안 쓰고 싶다. 하지만 딱히 대체할만한 용어도 없고 이렇게 확실하게 뜻이 통하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아닌 말로, 내가 먼저 쓰면 이 세계에서는 일본식 어휘가 아니라 조선식 어휘 되는 거지 뭐.
내 첫 의논 대상인 승지들은 내 제안에 대해서 다소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전하. 문종대왕께서 진법서를 편찬하신지 이제 겨우 딱 50년이 되었사옵니다. 그동안 기존 편제에 따라 군을 움직이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사온데, 굳이 바꾸실 이유가 있으시옵니까?”
내가 보기에 아무래도 어색해서, 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지. 어떻게든 이 시대에서 통할 핑계를 대는 수밖에.
“학문에 있어서 소학을 가장 근본으로 삼고, 그 뒤에 대학을 공부하며, 그 뒤에야 한층 더 높은 경지로 공부를 해 나가지 않느냐. 그러니 군사를 편제함에 있어서도 소대를 기본으로 하고 중간에 중대를 넣으며 그 위에 대대를 놓음이 학문을 닦아나가는 길과 통하지 않겠느냐.”
내가 생각해도 억지로 붙인 궤변인데 승지들이라고 선뜻 동의할 리가 없다.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찬동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적극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기에, 다른 중신들과도 논의해 보자는 단계로 넘어갔다.
“틀린 말씀은 아니오나 문종대왕께서 진법에서 정하신 편제를 꼭 바꾸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사료되옵니다. 국가의 큰 틀이란 한번 정해지면 큰 탈이 없는 한 지속되어야 하는 법인데, 문종대왕께서 법을 정비하신지 이제 겨우 50년이옵니다.”
병조판서 이극돈이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말은 좀 달랐지만 승지들 사이에서 나온 의견과 별 차이는 없었다.
“문종대왕께서 만드신 틀을 바꾸려는 생각은 없다. 단지 군을 편제함에 있어서 상하를 누가 보아도 명백하도록 나누고자 할 뿐이다. 아무리 무지한 백성이라 해도, 여와 통은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대, 중, 소는 가릴 것이 아니냐?”
이런 것도 한참 논의를 거친 뒤에야 바꿀 수가 있으니, 조선 임금이 절대군주라고 하는 건 다 개소리다. 그나마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조치라, 대간들이 좀 투덜거린 걸 제외하면 별 트러블 없이 넘어갔다.
다음 과제로 내가 끄집어낸 건 참모부 설치의 법제화. 이 문제 역시 승지들과 먼저 논의를 거친 뒤에 조정으로 들고 나갔다. 그래야 나도 내 의견을 한번 다듬을 수 있으니까.
조선에서 참모 비슷한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막료(幕僚)라고 해서, 장수들이 휘하에 따로 거느린 무관이 있기는 하다. 사실 현대에서는 막료나 참모나 같은 뜻으로 쓴다.
문제는 이 막료가 인원이나 보직이 정식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아예 설치해서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거다. 그나마 있는 인원들도 참모직 수행을 위한 전문적인 군사교육 같은 건 받지 않았다. 이건 지휘관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조선군이 문민통제가 너무도 확고한 군대라는 데 있다. 교육시설을 만들고 싶어도 사회적 기반이 없으니까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참모 보직을 법제화하고 출정할 때에 적당한 인물을 골라 임명하는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원정에서는 다행히 이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극균은 자신이 그 능력을 확실히 알고 있는 문무관 여럿을 종사관으로 뽑아 데려갔다. 이들이 막료진 노릇을 하면서 이극균은 전투는 물론 여러 분야 업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 원정 때 대장을 맡은 이도 이극균처럼 현명하게 사람을 뽑아 일을 맡기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실패를 가능한 줄이려면, 장수가 거느리는 막료진의 숫자와 각자가 맡은 일을 가능한 세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자고로 군사를 낼 때는 주장을 보좌하는 유능한 막료가 필요한 법이다. 이제까지는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임의로 막료를 뽑아 상신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수나 맡기는 과업에 대하여 규정이 없었다. 지금 진법서에는 그러한 조항이 없으니, 이를 법제화하도록 하자.”
더 효율적인 군대를 만들고 싶다면 새 총을 들려주는 것보다 조직을 개편하고 싸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주는 쪽이 더 필요하다. 나도 일반인이다 보니 신무기만 지급하면 강한 군대가 될 줄 알았는데, 제대로 전쟁을 한 번 치러 보니 총보다는 조직 개편이 더 급했다.
지난번 여진 정벌? 그거야 작전 기간도 짧았고, 제대로 된 전쟁이 아니라 말 그대로 ‘토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작전이 단순해져서 참모진이 맡는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투만 두 달 가까이 끌면서 별 상황이 다 터졌고, 사령관의 부담도 컸다.
“전하. 군사도 이끌지 않는 장수들을 떼지어 출정시킬 필요가 있사옵니까? 이제까지 군사를 일으킬 때 군사 없는 장수를 내보낸 전례가 없사옵니다.”
이 문제에서는 대간들을 중심으로 한 문관들의 저항이 좀 더 강했다. 출전하는 장수가 늘어난다 함은 무관들이 차지하는 자리가 늘어난다는 뜻이고, 조정 내에서 무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것이기에 강하게 나오는 것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분명 조선은 문(文)이 중심이 되는 사회다. 임금이 무관들을 조금만 우대하는 기미가 보여도 조야가 난리가 났었다. 물론 고려 때처럼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삼별초가 정권을 잡으면 그건 곤란하지. 일본 무사정권보다는 조선 선비정권이 낫다고 나도 생각한다.
문제는 붓과 먹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는 없다는 데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그것도 펜을 쥘 손이 칼에 잘리지 않고 남아있을 때 이야기다. 척화를 부르짖으며 후금을 성토하던 조정 신하들 중에, 남한산성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
“주장이 보다 군사들을 잘 지휘할 수 있도록, 여러 사무를 보며 주장을 보좌하는 일은 실로 중요하다. 병력을 관리하고 물자를 조달하며, 병기를 점검하는 중요한 일을 지금은 아전들이 맡은 경우가 많지 않으냐?”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를 보면 병사가 도망쳤다고, 무기관리 상태가 나쁘다고, 각 고을 소속 아전들이 수시로 이순신 앞에 끌려와서 곤장을 맞거나 목이 달아난다. 처음 봤을 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알고 보니 조선에서는, 특히 남도에서는 그런 지원업무가 거의 아전들 몫이었다.
사정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는 수령이 군 지휘관을 겸하는데, 수시로 바뀌는 수령들 중 상당수는 본래 문관이다. 개중에는 성준이나 이극균, 그리고 세종 때 김종서처럼 문관이면서 군사 지휘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준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안 그런 이들도 많았다.
본래 수령들은 자기 임지에 연고가 없으므로 사정을 잘 모른다. 그런데 군무에 어둡기까지 하면, 그 고을 일을 잘 알고 있는 아전이 군무를 맡아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러한 사정은 알고 있으니, 타협안을 준비해서 내놓았다.
“과인이 하고자 하는 바는 긴급한 사태가 발생하여 대군을 편성할 때 군기, 군량, 군정 등을 관리하고, 주장을 보좌하여 결단을 돕고, 때로는 주장 대신에 군사를 지휘할 막료의 수와 역할을 법으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평시에는 각 고을과 군영에서 지금 하듯이 두도록 한다.”
내가 남도에서는 아전들이 군무를 맡는다고 했지만, 군사적인 필요가 큰 북방에서는 아전이 아닌 우후(虞候), 평사(評事)와 같은 막료들이 절도사 밑에서 전투 지휘나 군기, 군사 관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체계적이지 않은 게, 함경남도 절도사는 막료가 없었다! 아니, 왜?
내가 하려는 건, 이 막료제도를 지역에 따라 적용되는 특징적인 제도가 아니라 법제화해서전국에서 동일하게 운영하는 거다. 현대 군대에서처럼 인사참모, 작전참모, 군수참모 같은 걸 정식으로 규정해서 적임자를 뽑아 운영하자는 거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고을마다 이런 걸 설치하기에는 돈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전문 군영인 병영이나 수영, 그리고 관찰사가 있는 감영에는 제대로 된 막료진이 구축되어야 하지 않겠냐 이거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모든 군권이 언젠가 전문 무관에게 옮겨가야겠지만 말이다.
“전하, 말하는 이가 너무 많으면 과감하게 결단해야 할 때 주장이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릴 수 있사옵니다. 조언은 휘하 제장들에게 받으면 충분합니다.”
“그만한 결단력이 없는 자라면, 조언이 많건 적건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옛날 한고조가 초패왕을 쓰러트릴 때, 그 싸움을 혼자 치렀느냐? 장유후를 비롯한 수많은 모사와 장수들에게 보좌를 받았기에 이길 수 있었다.”
한고조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 장유후는 유방의 책사였던 장량이다. 장자방이라고도 한다.
“무능한 자는 애초에 대장으로 임명하지를 말아야 한다. 대간들이 할 일은 장재를 갖추지 못한 자를 걸러내는 것이지, 장수가 군사를 잘 이끌도록 조건을 갖추자는데 방해함이 아니다! 묘당에서는 막료를 몇 명으로 하고 어떤 임무를 맡기는 것이 가할지나 논의하도록 하라.”
그러니까 원균 따위를 장수로 임명하게 만들지 말란 말이지. 내가 조선 역사에서 알고 있는 최악의 장수가 원균인데, 조정 대신들이 지지하지 않았으면 원균이 통제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원균이 태어난 때가 대충 40년쯤 뒤지? 내가 이쪽 나이로 따져서 환갑을 넘을 때로구나. 내 기필코 그때까지 살아서 그놈 벼슬길은 꼭 끊어놓을 테다. 갓난애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원균 부친을 역모 혐의로 엮어서 자식이 과거를 못 보게 해버릴까?
음, 그것보다는 좋게 해결하자. 원균 부친이 자식을 낳기 전에 일찌감치 전사시킨 다음에 공신으로 봉해서 가문의 영광으로 만들어주는 편이 좋겠다. 그런데 그 양반 이름이 뭐였지…?
– 4 –
“책 쓰는 일은 잘 돼?”
“덕분에 매일 밤을 새고 있어. 일거리를 만들어 줘서 참, 고, 마, 워.”
자세는 공손하고 표정은 평온했지만 상희의 목소리에선 약간의 빡침(…)이 묻어났다. 하긴, 내가 시켜놓은 일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긴 했다. 겸연쩍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라는 건 너도 인정하지. 안 그래?”
상희는 결국 책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일전에 내가 제안했던 것처럼 현대 의학지식을 이 시대에 알리기 위한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 쓰지도 않았다.
지금 상희가 쓰고 있는 책은 기본적인 한의학 이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혜민서에서 직접 환자들을 상대로 사용해서 실제적으로 효험을 본 처방과 진료법에 대해서만 적고 있다. 상희뿐 아니라 다른 혜민서 의원들도 모두 참여하는 편찬 사업이다.
언뜻 생각하면 굳이 상희가 참여할 필요가 없는 사업 같지만, 분명한 의의는 있다. 상희는 개똥 따위를 약으로 처방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충치 속에 정말로 벌레가 살고 있어 그걸 잡아내면 고통이 멎는다고 믿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됐다. 이 시대 한의학은 나름 이론적인 토대를 단단히 구축했고, 그 역사가 수천 년(?)에 달한다는 걸 말이다. 일단은 정확한 집필 시기야 어쨌건 황제내경부터 시작된 셈이니까.
상희가 자기가 쓴 의서에서 현대적인 위생이론이나 세균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다면, 당장에 사방에서 그 주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실제적으로 증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허나 일전에 토로했듯, 그 결과만 배운 상희로서는 이론과 증거로 자기 견해를 입증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 논쟁은 순수한 의학계(?) 내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유학자들도 나름 의학이론에 대해서는 빠삭한 경우가 많다. 이건 내가 질리도록 겪고 있는데, 내가 몸이 좀 불편하다 하면 정승, 판서들이 나서서 그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인다. 아주 미칠 지경이다.
만약 상희가 쓴 책이 조정에서 거론된다면, 아주 조리돌림에 바닥까지 까인 다음 헛된 말을 지껄였다 하여 쫓겨날 공산이 거의 100%다. 그럴 바에야 안 쓰는 게 차라리 낫긴 낫다. 물론 상희가 그것까지 생각하고서 책을 안 쓰겠다고 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더구나 현대 의료인으로서 상희가 가지고 있는 의학지식은 아마 내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많을 거다. 과연 상희가 죽기 전에 그 책을 완성할 수 있을지, 그것부터 의문이긴 하다.
“《혜민서등록(惠民署謄錄)》, 아주 실제적인 의서가 될 거야. 정말 쓸모가 있는 내용만 들어갈 테니까. 네가 담당할 파트에 아주 기대를 갖고 있어.”
대마도 원정이 끝나고 처음으로 함께 나온 나들이다. 가능한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내가 계속 웃으며 이야기하자 상희도 조금씩 기분을 풀었다.
“필요한 일 맞지. 그래서 노력하고 있어. 근데….”
잠깐 멈칫거리던 상희가 질문을 던졌다. 아까부터 묻고 싶은데 참고 있었던 듯,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저 여자는 뭐야? 어떻게 여자가 저기 끼어 있어?”
상희가 가리킨 대상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말을 붙잡고 있는 다지였다. 비록 옷은 다른 겸사복들처럼 철릭을 입었지만, 다지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는 만큼 약간 화장도 하고 향내도 풍기고 있었다.
“조선에서 여자 무사가 있었다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 아니었어? 어쩐 일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상희는 다지를 처음 본다.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도성에 소문이 자자한 여자 백정 명사수 소문 못 들었어? 조총 한 방에 왜적을 하나씩 쏴 맞힌? 쟤가 바로 걔야. 본명은 다지인데, 고씨 성을 내려줘서 이제는 고다지라고 불러.”
여러 성씨가 있지만 굳이 고씨로 한 건 역사 속 명궁이었던 고주몽을 감안해서였다. 그리고 다지라는 이름에서 ‘꽃다지’가 연상되어서이기도 했다. 꽃다지, 고다지. 이름 예쁘지 않은가?
“어…그래….”
어째 상희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지? 무슨 기분 상하는 일이 있나?
나한테 벌써 중전에 후궁, 궁녀들까지 잔뜩 딸려 있는 거 빤히 아는 애가 설마 경호원한테 질투하는 건 아닐 텐데 갑자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차마 지금 이 자리에서 캐물을 수는 없으니 나중에 기분 좀 풀어진 것 같으면 그때 슬쩍 한번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