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01
3부 219화
김만중은 받아든 문서를 차분히 읽어 나갔다. 그 위에는 스페인 측이 이번 사태에 관해서 취합한 조사 결과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중요한 부분을 골라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 개종, 납세, 징병 모두 거부한 촌락 11개소
? 개종은 받아들였으나 납세와 징병은 거부한 촌락 23개소
? 납세는 받아들였으나 개종과 징병은 거부한 촌락 16개소
? 개종과 납세는 받아들였으나 징병은 거부한 촌락 29개소
? 반기를 든 촌락 총 79개 중 68개에서 교전 발생. 11개는 스페인 군대가 무력을 사용해 진압할 태세를 갖추자 전투 없이 투항함.
? 완전히 파괴된 촌락 7개소. 부분적으로 파괴된 촌락 41개소.
? 전투에서 사망한 조선인 이주민은 3천 3백여 명. 전투가 끝나고 항복한 뒤에도 개종을 거부하여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수감자 782명.
? 반항한 주민들을 화형에 처한 촌락은 8개소. 여러 명목으로화형을 당한 조선인의 수는 218명.
? 해로를 봉쇄한 스페인 함대가 나포한 탈출선 76척, 체포한 인원은 2,349명.
? 해로를 봉쇄한 스페인 함대가 격침한 탈출선 21척, 익사한 인원은 미상.
반항 없이 스페인 당국의 명령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369개 마을에서도 무력으로 위압한 건 마찬가지였다. 처음 사자가 찾아왔을 때 바로 요구를 받아들인 마을은 거의 없었다.
이미 선교사를 맞아서 개종한 마을조차도 세금 납부와 병력 제공은 거부했다. 스페인군의 무력 위협을 받고 나서야 이들도 스페인 국왕의 신하가 되겠다고 동의했다.
싸우다 죽은 숫자만큼이나 대남도로 밀항하려는 이들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마을 자체는 스페인 당국의 통제에 따르기로 했어도, 주민들 개인 중에는 이를 원하지 않고 조선으로 도망가려는 이들이 숱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납치해서 윤간했다거나, 전투가 종료된 뒤에 포로들을 화형에 처했다거나 하는 부분은 우리 병사들이 적절하지 않게 행동한 게 맞습니다. 하지만 불법으로 거주하며 온갖 말썽을 일으킨 밀입국자들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건 우리 일입니다.”
드 에체바리는 스페인 측이 합당한 행정 조치를 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불미한 사건이 일부 있었음은 인정했으나,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결과 중 하나일 뿐이라는 태도였다.
“전투가 벌어지면 패한 쪽에서 흔하게 겪는 일이지요. 순순히 경고에 따라 개종과 충성을 서약한 이들에게는 어떤 피해도 없었습니다.”
“저들이 본래 스페인 국왕의 신하였으면서 반란을 일으켰다면야 그래도 싸다고 하겠으나, 그 백성들은 조선의, 우리 대한의 백성들이었소. 그들을 잡고 물어보시오. 자기가 한인이라 답하는지 스페인인이라 답하는지.”
김만중은 66세, 드 에체바리는 55세였다. 두 사람 모두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경험도 쌓을 만큼 쌓았다. 연륜 있는 관료이자 정치가인 두 사람의 대화는 누구 한 사람도 밀리지 않은 채로 팽팽하게 이어졌다.
“우리 국왕 폐하의 영토에 살고 싶다면 당연히 폐하의 신하가 되어야 합니다. 조선인들이 여기 필리핀에 이주한 지 이미 30여 년이지요? 그동안 귀국 정부가 그들에게 어떤 관심을 보였습니까? 방치하고 못 본 체하지 않았습니까?”
백성들이 그토록 귀중하다면 마땅히 그전부터 챙겼어야 하지 않느냐는 공박은 당연했다. 김만중으로서도 쉽게 받아칠 수는 없는 공격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조선인들은 루손 북부에 침투해 왔습니다. 대부분은 주인이 없이 비어있는 땅을 개간해서 터를 잡았지요. 하지만 일부는 이미 개간한 땅을 빼앗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조선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밀려난 토인 부락이 적어도 30개를 넘습니다.”
여기에 부녀자 납치까지 있었다. 사내들끼리 건너온 조선인들이 원주민 여자들을 납치해 자기네 마을에서 데리고 살거나 노예로 부렸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필리핀 총독부에서는 기근 때문에 잔뜩 독이 올라 있는 조선 정부와 이런 문제로 충돌하기를 좀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원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해서 상황을 파악한 뒤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이런 태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토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다행히 루손 북부에 빈 땅이 많은 탓에 조선인들에게 밀려난 토인들이 새로 정착할 땅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갈등은 계속됐다. 총독부에서 도와주지 않자 토인들은 자기들끼리 조선인 촌락을 습격해서 보복했고,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10만 조선인이 전부 그런 땅도둑, 살인자, 납치범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우리 쪽에서도 30년이나 참아넘기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더 놔두지 말라는 게 부왕청에서 내린 지시입니다. 국왕 폐하의 땅에서 살겠다면 폐하의 신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본국이 기근에 시달리고 정치적으로도 몇 가지 사건을 겪은 탓에 변방에서 멋대로 행동하는 백성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점은 인정하오. 하지만 루손에 이주한 우리 백성들은 스페인인이 될 의사가 전혀 없었소. 그저 어리석은 농군들일 뿐이오.”
루손으로 이주한 한인 농민들은 호부 농장에서 하는 부역을 피하려고 했을 뿐이다. 다른 나라 백성이 되어 조상을 버리겠다는 생각 같은 건 꿈에서도 한 적이 없다. 그 증거가 한인 동네마다 하나씩은 지어 놓은 마을 사당이다.
사당에는 본국에 있는 조상들을 상징하는 위패를 북쪽을 향해 놓고, 매년 마을 대표들이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 제사는 북쪽 도성에 계시는 임금을 기리는 의미이기도 하니, 이거야말로 이들이 여전히 자신을 한인으로 여긴다는 증거였다.
“특사께서 제시하신 논리대로라면 이제 조선인들은 우리 스페인 국왕께 충성하는 신하가 된 게 분명합니다.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우상을 섬기는 장소인 사당도, 위패도 모두 소각됐습니다.”
“뭐요! 우리 대한에서는 가톨릭 신자라고 해도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낼 수 있소. 이미 백여 년 전에 법왕청에서 허가를 받았단 말이오! 게다가 우리 임금께 경의를 표하는 장소를 불태우다니, 이는 임금께 대한 모욕이요!”
김만중이 분노했지만 드 에체바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거야 조선에서나 허용받은 특례겠지요. 이곳 필리핀에서는 주님을 모시는 자에게 그런 우상을 숭배하는 행사를 치르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고 십자가에 입을 맞춘 자가 나뭇조각 앞에 무릎을 꿇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루손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과연 어느 나라 백성으로 살기를 선택했는가를 두고 한참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이어졌다. 여기에 종교 문제까지 겹치자 토론이 더 격해졌다.
“벌써 달이 뜬지도 한참 지났습니다. 특사께서도 피로하실 텐데, 일단 좀 주무시고 내일 다시 회견을 이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침실을 마련해두었습니다.”
“뜻은 고마우나, 배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는 편이 좋을 듯하오. 그편이 훨씬 본인의 마음이 편하겠소.”
“제 성의를 받아주시지 않으셔서 유감입니다만, 좋은 대로 하십시오.”
단 하루 만에 마닐라에서의 용무가 끝나리라고는 김만중도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회견 상대인 드 에체바리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 12 –
회견은 며칠을 두고 이어졌다. 드 에체바리 총독이 사무를 처리하는 틈틈이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김만중은 매일 총독부에 사자를 보내서 오늘은 몇 시에 찾아가면 되는지 물었고, 그 답변에 따라 총독을 찾아가서 만났다.
회견 사이사이에는 재판을 받기 위해 마닐라로 끌려와 갇혀 있는 이주민들을 면담했다. 드 에체바리 총독은 한동안 망설이기는 했으나, 이들을 만나도록 해달라는 김만중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저희는 대한 백성입니다. 어찌 서반아인들이 칼을 들고 얼러댄다고 해서 저들의 백성이 되겠습니까?”
“먹고 살려고 바다를 건너왔지만, 저희 몸에 흐르는 피는 대한의 피입니다. 조상들의 뼈가 본국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몸을 팔아 타국의 백성이 되겠습니까?”
“나리께서 오셨으니 주상께서 저희를 잊지 않으셨음을 알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구하시어 조국의 땅을 다시 밟게 해주소서!”
끝까지 개종과 충성 서약을 거부하고 버틴 이들 중에는 나름대로 마을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던, 선비의 도리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만중은 이들을 만나면서 드 에체바리와 다툴 논리를 다듬을 수 있었다.
상관에 억류된 관리와 상인들도 만나봤지만, 이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상관 내부에 갇혀서 외부 정보를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도 스페인 측이 합법적으로 체류하던 이들은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조선인들을 복속하는 과정이 다소 거칠었고, 이로 인해 사상자 다수가 발생한 데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요. 하지만 저들은 이제는 모두 호세 페르난도 1세 폐하께 충성을 서약한 스페인 국민이 되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드 에체바리는 단호한 태도로 못을 박았다.
“그들이 스스로 조선인임을 자처하는 한 조선인이라고 특사께서는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그 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개종과 더불어 새로이 충성을 맹세한 이상 그들은 이제 스페인 국왕을 모시는 신하입니다. 조선은 고향일 뿐, 그들은 이제 조선 출신 스페인인입니다.”
총독의 답변은 확고했다. 충성을 서약한 조선인들은 이제 합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 원주민들이 공격하지 못하게 총독부에서 보호도 해줄 것이다. 조선과 스페인, 두 나라 중 어느 쪽도 보호해주지 않던 그간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다.
“귀국 정부는 30년 동안 저들을 방치했습니다. 그랬으면서 지금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대들은 무력으로 개종과 충성을 강요했소. 따르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무도하게도 총칼을 휘둘러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소. 무력으로 강요한 서약이 어찌 진실하다 하겠소?”
김만중의 항의는 초지일관으로 같은 논리였다. 드 에체바리 ?そ?같은 태도였다. 조선인 이주민들을 스페인 행정체계 내에 받아들이는 건 자기들 권리라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다.
“국왕 폐하의 땅에 살기를 선택한 이상, 저들은 이미 국왕 폐하의 신하로 살겠다고 정한 겁니다. 원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건너오지 말았어야지요. 다만 특사께서 이리 찾아오셨으니, 재판을 거쳐 추방할 계획이던 죄수 782명은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으로 데려가시지요.”
드디어 드 에체바리의 입에서 김만중이 기다리던 말이 흘러나왔다. 마음을 놓은 김만중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총독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스페인 국왕에게 충성 서약을 거부한 이들은 여전히 조선의 백성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아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우리 영토에 무단으로 들어와 터를 잡고 살던 주제에 죽어도 폐하의 신하가 되기는 싫다고 하니, 조선으로 다시 쫓아내는 외에 다른 선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들은 명백한 우리 백성 218명을 불태워 죽인 셈이구려.”
“그건….”
전투 중에 사망한 이들이나 싸움 뒤에 벌어진 약탈 과정에서 살해당한 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화형을 당한 이들은 스페인 측의 명백한 악의로 인해 처형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대한에 대한 분명한 적대행위다.
드 에체바리도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모양인지 낯빛이 굳어졌다. 하지만 김만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게 다가 아니오. 그대들은 우리 백성들이 세운 사당을 불태웠는데, 그때 사당에 모셔져 있던 우리 폐하의 위패까지 불태웠소. 이는 우리 황실에 대한 모욕이오. 만약 우리 대한이 스페인 국왕의 초상화를 모아서 십자가와 함께 불태운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소?”
드 에체바리 총독으로서도 이 말에는 반박이 궁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주저하던 총독이 반문했다.
“그럼 귀측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기를 바라십니까? 조선인 10만 명을 포모사로 모두 데려가시겠습니까?”
“그건 본국에 계시는 폐하께서 결정하실 문제요. 본관은 루손에 거주하는 우리 백성 10만 명의 운명을 결정하고자 온 것이 아니고, 그대들이 우리 백성을 겁박하면서 저지른 살상의 진상을 파악하고 항의하고자 온 거요.”
“그동안 진상은 파악하셨으니, 이제 결정을 내리셨겠군요. 어떤 요구를 할 생각이십니까?”
김만중은 보름 가까운 시간을 마닐라에서 보내며 증언을 수집하고 자료를 정리했다. 감옥 안에 있는 조선인 죄수들 외에 마닐라에 있는 스페인군 장교나 병사들 일부도 만나 진술을 받았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였고, 이제 충분히 알았다.
“재판 중인 우리 백성들 전원을 데려가겠소. 그리고 우리 백성들이 화형을 당한, 그 8개 마을을 공격한 스페인군 중에서 장교와 성직자 전원을 인도하기를 요구하오. 우리 백성들을 끔찍하게 살해한 죄로 재판에 회부하겠소.”
전투원이 아닌 여자나 아이들을 학살한 병사들도 모조리 내놓으라고 하고 싶지만, 신원을 일일이 추적할 수가 없으니 지금은 일단 뒤로 미룬다는 말이 덧붙었다. 김만중의 말을 듣고 표정이 일그러진 드 에체바리가 딱 잘라 거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포로로 잡은 조선인들을 화형에 처한 건 유감이라고 이미 특사께도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필리핀 총독이자 그들의 상급자인 제가 유감을 표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한 사과라고 봅니다만.”
“죄를 지은 당사자가 벌을 받는 것이 신상필벌의 원칙이요. 총독께서도 충성을 서약하지 않은 자들은 우리 백성이라고 인정하셨잖소? 혹시 총독께서 직접 화형 지시를 내리셨소?”
“아닙니다.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그건 제가 내린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 문제 될 게 없지 않소. 그자들은 우리 백성들을 불태우면서 우리 임금님의 백성을 해쳤고, 한인들을 관대하게 대하라는 총독의 명령까지 어겼소.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니, 어서 넘겨주시오.”
드 에체바리는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떨어진 꼴이 되었다. 부왕 오르테가 주교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다 빠진 궁지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군사들이 제 명령을 위반한 데 대한 처벌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현장에서 화형을 주도한 수도사들의 행동에 관해서는 부왕청에 상신해서 회신을 받은 뒤 처벌해야 할 일이고요. 어느 쪽이건, 저들을 귀측에 넘길 수는 없습니다.”
단호한 거절이 이어졌다. 드 에체바리가 해당 사건의 범인들을 넘길 의사가 전혀 없음을 명확히 하자 김만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섭은 결렬되었구려. 그럼 당장 데려갈 수 있는 우리 백성들부터 데리고 돌아가야겠소.”
김만중은 상관에 억류된 285명,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 중에 100여 명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김만중이 타고 온 전선은 5백 톤급인지라, 1천 명에 달하는 인원을 한 번에 대남도까지 싣고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드 에체바리가 고개를 저었다.
“관리와 상인 285명은 보내드리겠으나, 재판소에 있는 죄수들은 석방하지 못하겠습니다. 특사께서 무리한 요구를 하신 이상, 우리로서도 먼저 한 제안을 유지할 의무가 없지요.”
“좋소. 그대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우리 임금께 전하리다.”
양측은 서로의 입장이 타협 불가능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다음번에는 더 험악한 형태로 얼굴을 맞대게 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