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08
3부 226화
– 3 –
홍하명은 함대를 반전시켰다. 병력을 가득 실은 수송선들은 계속 루손으로 가고, 거리를 두고 서쪽에 떨어져 있던 대남수영 전선들은 지시에 따라 방향을 틀었다. 선두에 있던 배가 후미에 서게 되었지만, 진형 중간에 있던 좌선 진명은 여전히 중간에 있었다.
“1열 종진을 구성하라!”
과거 판옥선이 주력이던 시절, 조선 수군이 펼치는 진형은 종진(縱陣)보다는 횡진(橫陣)이었다. 그래야 탑재하고 있는 화포를 보다 효율적으로 적에게 퍼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진을 펼치면 선두에 있는 1척만 포를 제대로 쏠 수 있다.
하지만 판옥선은 구조와 성능 때문에 연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수군이 관리해야 하는 해역이 본국 근해를 벗어나서 북대동양 전체, 그리고 서대동양 거의 전역에 이른 시점에서 주력으로 쓰는 전선은 양선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아군만 배가 달라진 게 아니다. 상대해야 할 적선도 달라졌다. 장조 시절 주된 적이었던 왜선은 구조가 약해서 포환 한두 발만 제대로 맞아도 쪼개져 가라앉기 일쑤였다. 하지만 더 두꺼운 목재를 써서 튼튼하게 만든 양선은 포환 몇 발 정도로는 가라앉지 않는다.
그리고 양선은 모든 화포를 선체 측면에 배치한다. 고로 적에게 최대한으로 포환을 쏘아 제압하고 싶다면 종진을 형성해야만 한다. 상대편도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므로, 양선끼리 벌이는 수전은 종진 두 개가 나란히 항진하면서 서로 포화를 퍼붓는 형태가 된다.
다만 대한 수군에서 그런 식으로 실제 싸워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전혀 없다. 프랑스에서 온 고문관들에게 교육을 받은 장수들도 이론만 익혔을 뿐이다. 대남수영은 그래도 양선과의 전투 경험이 좀 있지만, 상대는 늘 홀로 돌아다니는 해적선이었다. 함대전 경험은 없었다.
“배운 대로, 훈련한 대로만 하면 된다. 내 지시가 정확히 전달되도록 기라졸들은 신호기를 절대 소홀히 다루지 말라.”
“예, 사또.”
급하게 싸움을 바라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홍하명은 침착하게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기다리던 적이 드디어 나타났으니 어서 돌진하라거나 하는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장수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수전에서 기책 따위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런 싸움에서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하다. 괜히 서두르다가는 실수만 늘어난다.
“우리보다 저놈들이 사정이 더 급하다! 마침 바람 부는 방향도 우리가 불리할 게 없으니, 놈들이 다가오기를 천천히 기다려라.”
홍하명의 전공 욕심과는 별개로, 대남수영으로서는 싸우지 않고 적이 그냥 물러나더라도 나쁠 게 없었다. 호송하고 있는 육군 5천 명만 무사히 건너가면 임무를 완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 해군은 대남수영을 격파하고 수송선들까지 잡아야만 한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싸우지 않고 물러난다면, 스페인 수군 장수는 상관으로부터 문책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소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돌진할 게 분명했다.
홍하명은 스페인 함대 선두에 있는 대선을 보면서 한껏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명보다 두 배나 큰 덩치를 보니, 신서반아와 필리핀 사이를 주기적으로 왕복하는 마닐라 갈레온이 분명했다. 무사히 나포하기만 한다면 정말 엄청난 노획물이 되리라.
– 4 –
조선 함대가 대형을 유지해서 반전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함선이 그 자리에서 선회하는 모습은 로스 앙헬레스 호에서도 분명히 보였다. 망원경을 내린 곤살레스 선장이 조심스럽게 진언했다.
“조선 함대가 대열을 흐트러뜨리면서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혹시 순풍을 타고 이대로 포모사로 도망칠 셈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자기도 망원경을 들고 직접 상황을 살핀 후안 마르틴 제독은 눈앞에 보이는 조선 함대가 조선 육군을 루손으로 수송하려고 내려오던 수송함대라는 판단을 내렸다. 몇 번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카가얀을 점령할 증원군을 싣고 왔을 것이다.
만약 저들이 스페인 함대와 해전을 치를 목적으로 이 일대에서 움직이는 전투함대였다면, 기다리던 표적이 나타났는데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릴 이유가 없다. 적군이 다가오는 방향인 서쪽을 향해 배를 돌리고 전진하다가 마주치기 직전에 방향을 틀어 포격을 시작했을 거다.
“적에게는 로스 앙헬레스만큼 큰 배가 없소. 하지만 다른 배들은 그래도 크기가 비슷하고, 전체적인 숫자도 한 척 많으니 용감한 제독이라면 전투를 꺼리지 않을 거요. 하지만 우리 함대를 보자마자 뱃머리를 돌려 도망치는 건 저들이 수송선이라는 증거요.”
수송선은 병력과 물자를 실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장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러므로 위험한 해역에 들어갈 때는 호위함대를 꼭 동반해야만 한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면 호위함대 없이 수송선단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도 흔한 일이다.
“저들이 북으로 방향을 돌리는 건 귀관의 말대로 도주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오. 병력과 물자를 가득 실은 수송선으로 전투를 치를 수 없어서겠지. 남쪽으로 도망쳐 봐야 피할 곳도 없으니, 포모사로 도망칠 수밖에 없을 거요.”
조선군이 그사이 루손 북부에 포대까지 갖춘 항구를 만들었을 리 없다. 그러니 남쪽으로 도망쳐 봐야 도망도 못 가고 해안에서 불태워질 뿐이다. 싣고 있는 병력과 물자를 내려놓을 시간도 없을 거다. 하지만 포모사로 가면 항구에 들어가 포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아니면 다른 함대가 지원하러 나올 수도 있겠지.”
후안 마르틴 제독은 함대 전체에 최대한으로 속력을 내서 조선 함대를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함인 로스 앙헬레스 호를 선두로 해서 적과 교전할 생각이었다.
“조선 함대에서 가장 큰 배도 우리 절반밖에 안 된다. 간단히 제압하고, 다른 작은 배들도 잡는다. 육지에서의 패전을 우리 손으로 설욕할 기회다.”
로스 앙헬레스에는 각종 화포 60문이 실려 있다. 한쪽으로 30문이 한꺼번에 불을 뿜어낼 수 있다. 1천 톤급인 조선군 대형함은 기껏해야 30문 정도 실었을 테니,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거다.
“각하. 적의 병력 수송을 방해했으니 굳이 추격해서 교전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대로 해안을 따라 동진해서 조선군이 구축한 보급거점을 찾아 파괴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조선 함대를 추격하다가 덫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조선군이 해안에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을 리는 없다. 요새화된 항구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배에서 내린 물자를 쌓아두는 정박지 정도는 있을 게 분명하다. 카가얀강을 진격로로 쓰고 있다면, 카가얀강 하구에 조선군이 거점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적 함대를 빨리 따라잡아 싸움을 끝내지 못하면 포모사에서 출격한 다른 함대가 나타나서 아군이 열세에 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지금은 순풍인 남풍이 포모사에서 돌아올 때는 역풍으로 바뀐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조선인들은 이미 교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 뒤를 쫓지 마시고 육지 쪽으로 붙어서 카가얀강으로 동진하시지요. 그편이 훨씬 안전하고, 전과도 확실합니다.”
만약 조선군이 상륙지를 지키기 위해서 돌아온다고 해도 상관없다. 스페인 함대는 바람을 등지고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싸울 수 있다. 도리어 더 좋은 일이다.
“아니, 그런 작전은 적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없네. 함대와 병력을 잡아야 해.”
조선군이 해안에 쌓아둔 물자를 모조리 불태운다고 해도 치명타는 줄 수 없다. 마르틴도 나름대로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였다.
군대가 움직일 때 가장 중요한 물자는 식량이다. 하지만 루손 북부에는 10만 명이나 되는 조선인이 이미 거주하고 있다. 그들이 협력한다면 조선군은 간단하게 필요한 식량을 조달할 수 있다. 게다가 조선군은 용병이 아니므로 스페인군만큼 급여가 중요하지도 않다.
아직 배 위에 있는 조선군 병력, 그리고 배 자체야말로 타격해야 할 목표물이다. 스페인 함대가 이대로 동쪽으로 가버리면 조선 함대는 다시 돌아와서 다른 해안에다가 병력을 내릴 것이고, 저들은 육지에서 다른 조선군 부대와 합류하리라.
“그러니 놈들이 더 도망치기 전에 함대를 추격해야 하네.”
조선 함대는 일렬로 북쪽을 향하긴 했으나 그 속도는 별로 빠르지 않았다. 후안 마르틴은 조선인들이 배 다루는 솜씨가 미흡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수송선단이라고 가볍게 보고 우수한 선원을 배치하지 않은 게 분명하네! 이대로 들이쳐 섬멸해야 해.”
“알겠습니다, 각하.”
사실 곤살레스가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함대는 이미 후안 마르틴의 지휘에 따라 조선 함대를 쫓아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고 있었다. 곤살레스는 그 방향을 돌려볼 수 없을까 하고 시도했을 뿐이다.
– 5 –
스페인 함대는 돛을 한껏 달고 속도를 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조선인들도 이제는 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전투 준비를 하는 기색이 보였다. 돛대 위에 소총수가 올라가고 수병들이 갑판 위를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로스 앙헬레스 호를 선두에 세운 스페인 함대는 조선 함대의 함열 가운데에 있는 조선군 기함을 노리고서 접근했다. 조함술에 서투른 조선 함대의 함열을 중간에서 자르고, 가장 큰 배를 제압하면 나머지 배들은 쉽게 무너질 게 분명했다.
그런데 조선 함대가 상식과는 벗어난 기동을 했다. 선두에 있는 배들이 줄을 지어 방향을 바꿨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더니, 마치 낚싯바늘과 같은 형태로 선두에 있는 로스 앙헬레스호를 반포위 상태로 둘러싸려고 했다.
“흠, 귀여운 짓을 하는군.”
이대로 직진해서 덫으로 들어갈 만큼 이쪽이 멍청이로 보였단 말인가. 마르틴은 곤살레스 선장에게 지시를 내려 키를 왼쪽으로 꺾도록 했다. 그러면 상대가 판 함정에 끌려 들어가지 않고 단종진을 유지한 상태로 포격전을 벌일 수 있다.
마르틴은 확신했다. 조선 해군은 제대로 된 함대전 경험이 없고, 모두 수송선이라 무장이 빈약하며, 조함술도 뒤떨어진다. 상선을 긁어모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두 가지는 이쪽이 확실히 우월했다.
“포문을 열어라!”
포격을 가해 조선 함대를 혼란에 빠트린다. 함열이 무너지면 그때 돌입해서 조선 함대를 분단하고 하나하나 격파한다. 아직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지금 뛰어들면 적에게 포위당하게 되겠지만, 흐트러진 뒤라면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전투를 중단하고 도망칠 수도 없을 만큼 가까이 접근한 뒤에 일어났다. 조선군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던 마르틴과 달리, 의심을 풀지 않고 있던 곤살레스가 당황하며 크게 외쳤다.
“각하! 놈들은 보통 수송선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대포 10문쯤 싣고 있겠지 했던 1천 톤급 함선의 측면에서 20개가 넘는 포문이 열렸다. 해전에 쓸만한 포는 많아야 5문쯤 되리라고 생각했던 3백 톤급 배조차 10개 이상 되는 포문을 열었다. 마르틴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발포하라!”
적이 수송선이 아니라 전함이라고 해도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찬가지다. 포를 쏘고 적선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인다. 적이 생각보다 화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더더욱 후자의 방법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포격! 접근하라!”
조선군을 가볍게 보고 직진해서 곧바로 반포위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면, 세 방향에서 쏟아지는 맹렬한 포격을 뒤집어쓰고 바로 무력화됐을지도 모른다. 돛이 찢어지고 아딧줄이 끊어지며 돛대가 꺾인다면 아무리 크고 튼튼한 배도 움직이거나 싸울 수 없다.
지금은 오른쪽으로만 포화를 받고 있으니 그나마 좀 낫다. 마구 날아드는 포탄이 선체에 구멍을 뚫고, 삭구가 끊어지며 갑판 위에 있는 수병들을 토막 냈어도 아직은 견딜 만했다. 이쪽에서 날리는 포탄 역시 적에게 비슷한 피해를 주고 있으니, 이길 수 있다.
다만 대등하게 버티고 있는 건 로스 앙헬레스 한 척뿐이다. 다른 배들은 대치하고 있는 조선 배들보다 화포 숫자가 적었다. 덩치는 비슷한데 화포 숫자는 적으니, 포격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선군의 조함술도 딱히 부족하지 않았다.
화력이 부족하다면 몸으로 보완하는 수밖에 없다. 마르틴의 명령에 따라 스페인 함대는 적과의 거리를 급격하게 좁혔다. 포격전에 쓸 시간을 줄이고 조선군 함선에 올라타서 배를 빼앗기 위해서다. 조선군 함선들도 이를 눈치채고 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큰 화포 외에 소구경 산탄포나 소총도 서로를 향해 불을 뿜었다. 돛대 위에 올라간 저격수들도 서로의 갑판을 향해 발포했다.
이제 적선에 올라탈 차례다. 쉴 사이 없이 지시를 내리고 전투를 지휘하던 마르틴 제독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조선인들이 화살이 잔뜩 꽂힌 상자 같은 것을 선체 측면으로 내밀었다. 혹시 과거에는 저런 게 무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뱃전에서 적에게 떨어트리는.
그 괴상한 물건이 충격을 준 건 다음 순간이었다. 갑자기 확 불길을 뿜나 싶더니, 수백 개나 되는 화살이 불꽃과 연기를 뿜으며 이쪽으로 날아왔다. 조선 전선 전부가 일제히 그 불화살을 쏘아댔으니, 적어도 수천 개가 날아든 셈이었다.
“저, 저게 뭐야?!”
발사할 때만 불꽃을 뿜은 게 아니었다. 날아오면서도 불꽃과 연기가 뒤로 구름처럼 길게 이어졌다. 이 광경을 본 이상, 지금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물건이 화약을 단 불화살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되고 말았다.
“후퇴, 후퇴한다! 마닐라로 돌…으윽!”
어느새 날아든 눈먼 소총탄 한 발이 마르틴의 어깻죽지를 맞혔다. 사령관이 갑판 위에서 쓰러져서 신음하자 선의가 달려왔다. 기함 선장인 곤살레스가 곧바로 지휘권을 이어받았다.
“서쪽으로 곧바로 달려라! 전장에서 빠져나간다!”
불화살이 뿜어낸 연기 때문에 뒤따르는 아군 함대의 사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혹시 불화살 세례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침몰하는 중만 아니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