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09
3부 227화
– 6 –
장조 때 왜선과 싸울 때는 철환이나 장군전을 쏴서 선체를 직접 부수는 게 상당히 유효한 전법이었다. 하지만 양선을 상대로 싸울 때는 그것보다는 돛을 불태우고 삭구를 파괴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게 훨씬 효과가 좋다.
보통 철환은 이런 용도에 쓰기에는 애매하다. 확실하게 적선의 돛과 삭구를 망가뜨릴 수 있는 포탄은 근접한 상태에서 발포하는 쇄환(鎖丸, 쇠사슬로 연결한 철환 2개를 한꺼번에 쏘는 포탄)이나 봉환(棒丸, 철봉으로 연결한 철환 2개를 한꺼번에 쏘는 포탄)이다.
옛날에는 유효한 무기였던 장군전 종류는 이제 안 쓴다. 명중해도 두꺼운 선체에 통나무 하나가 꽂힐 뿐, 선체에 제대로 구멍을 뚫거나 아예 뚫고 들어가 선체 내부를 헤집어놓지는 못해서 양선에는 실제적인 효과가 별로 없다. 그래서 쓰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중신기전은 좀 애매하긴 하군.”
중신기전에 들어간 화약 정도로 선체에 바로 불을 붙이기는 무리다. 갑판에 있는 적병을 살상하고 역청을 먹인 밧줄과 돛에 화재를 일으키는 데는 그럭저럭 효과가 있지만, 장조 때 왜선들과 싸울 때만큼 효과가 좋지는 못했다.
일단 바람이 문제였다. 스페인 함대를 덫으로 끌어들이느라 맞바람을 맞는 자리로 움직인 탓에 신기전도 역풍을 맞으면서 쏴야 했다. 신기전도 근본은 화살이다 보니 역풍을 맞으며 쏘자 사거리가 확 줄어들었다.
옛날 왜선들과 싸우던 시절이라면 그 줄어든 사거리로도 충분했으리라. 그 시절 일본군은 대포 하나 없이 신기전보다 훨씬 사거리가 짧은 활강조총과 활만 가지고 싸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 신기전을 쏴야 한다. 자칫하면 적선에서 쏘는 포탄에 맞아 신기전기가 통째로 폭발하거나 불이 붙어 배를 불덩어리로 만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위험성 때문에 재장전도 하지 않는다. 딱 한 번 쏴서 제압하는 거다.
재장전을 하지 않는 데는 적선이 아니라 자함에 불을 지르게 될지 모른다는 고민도 있다. 처음 한 번이야 만전을 기한 상태에서 발사하니 괜찮지만, 두 번째 사격은 서둘러서 급하게 쏠 수밖에 없다. 무슨 실수를 저지를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얼간이들은 어디든 있는 법이지요. 우리 편에도 말입니다.”
“참모장 말이 맞네.”
맞든 안 맞든, 수백 개나 되는 신기전이 불꽃과 연기를 뿜으며 날아가는 광경은 장관이긴 하다. 진명보다 두 배나 큰 스페인 좌선도 그 위용을 보고는 지레 겁을 먹었는지 급히 키를 돌려 서쪽으로 도망쳤다.
“수사또 나리, 추격하시겠습니까?”
“붙잡고는 싶다만, 동쪽에 놓고 온 수송선들을 방치할 수는 없으니 추격은 그만두는 편이 좋겠네. 뒤처진 놈들이나 확실하게 잡도록 하지.”
스페인 함대도 아군과 마찬가지로 단종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선두에 있던 좌선은 적절히 거리를 유지한 덕분에 신기전을 정면으로 뒤집어쓰지는 않았지만, 그 뒤를 따라오던 배들은 달랐다. 화력에서 우세함을 깨달은 아군 함선들이 근접해서 공격을 퍼부은 덕분이다.
운이 없었던 소선 한 척은 중신기전을 집중적으로 뒤집어썼다. 돛과 삭구에 모조리 불이 붙어서 불덩어리가 되고, 화재를 진압하지 못한 선원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뱃전을 넘어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홍하명이 그 광경을 보며 간단한 감상을 남겼다.
“뭐, 그래도 신기전이 아직 그럭저럭 쓸 만은 하구먼.”
쇄탄과 봉탄에 제대로 맞아 움직이지 못하는 놈도 있다. 홍하명이 잇달아 지시를 내렸다.
“후미에 있는 4척은 뒤처진 적 중선과 소선을 제압, 나포하라! 본진은 적 대선을 포함한 잔여 함선이 되돌아와 덤빌 수도 있으니 대기하라.”
홍하명이 타고 있는 진명은 덩치가 두 배나 되는 적 좌선과 전혀 밀리지 않고 싸움으로서 그 가치를 입증했다. 태황께서 직접 데려오신, 프랑스인 선장(船匠)의 솜씨다.
“이런 배로만 함대를 꾸려서 바다를 휩쓸고 다니면 참으로 통쾌할 것인데.”
장조 시절, 왜군과 두 차례 전쟁을 치를 때 수군 장수들도 똑같은 푸념을 했다고 들었다. 대전선과 거북선만 가지고 함대를 편성했으면 참 좋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소망은 소망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말이다.
“저쪽에서는 잘들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사또.”
참모장 한명근 참령이 손을 들어 가리켰다. 삭구가 망가져 도망치지 못한 스페인 함선 두 척을 제압하기 위해 달라붙은 아군 함선들이 좌우 양현에 한 척씩 붙어 있었다.
아군 함선들은 먼저 양현에서 포격을 가해 적선의 갑판을 휩쓸었다.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아군의 포환에 맞지 않도록 시차를 두고 접근해 포를 쏘았다. 그리고 배를 붙여서 소총탄과 산탄을 근거리에서 퍼붓고, 마지막으로 밧줄을 던져 적선을 붙들고 등선군이 뛰어들었다.
“그러게나 말일세. 다들 잘해주고 있군.”
적선에 접현해서 등선, 백병전을 벌여 나포하는 건 대남수영 수졸들에게 익숙한 행사다. 해적선이나 밀수선을 붙잡으러 다니면서 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는 길지 않았다. 등선군이 뛰어들기도 전에 이미 화력에 밀려 제압된 스페인 함선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기를 놓았다. 중선 1척, 소선 1척을 나포했다. 먼저 불태운 소선까지 양선 3척을 잡았고, 아군은 1척도 잃지 않았다. 대승이었다.
승리에 취한 수졸들이 신나게 함성을 지르고, 홍하명이 만족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그는 이로써 이번 전쟁의 첫 승전을 이끈 장수가 되었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행장을 써서 대대로 기록하여 남길 일이었다.
– 7 –
3월 9일, 양력 4월 24일에 벌어진 스페인 함대와의 첫 해전 결과에 대한 장계가 내 앞에 도착한 날은 양력 5월 10일이었다. 6백 톤급 갈레온 1척과 3백 톤급 갈레온 1척을 나포한 외에 3백 톤급 갈레온 1척을 불태웠고, 포로 281명을 잡았다.
“여기에 10만 냥에 해당하는 금은까지 얻는 대승을 거두어 초전에서 아군의 사기를 크게 올린 대남수사 홍하명에게 훈2등을 내린다. 수하 장졸들도 공에 따라 적절히 포상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무공훈장 제도는 재작년, 신사년에 처음 제정했다. 전쟁 도중에 공 하나 세웠다고 계급을 막 올려주고 직책을 옮기는 것도 별로 합당하지 않은 듯해서 추진했는데, 이번에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1호 수훈자가 나오게 되었다.
무공훈장 이름은 ‘자응장(紫鷹章)’이다. 옛날 화령(和寧)에서 살던 시절의 어린 이성계를 두고 주변 사람들이 ‘매를 구할 때는 이성계처럼 뛰어나게 걸출한 매를 얻어야 한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1등부터 8등까지 있다.
다만 금속으로 된 번쩍이는 부착물은 아직 제정하지 않았다. 그런 걸 달고 다니는 문화가 없는 탓이다. 일단은 증서만 주고, 부착물은 천천히 상황 봐서 도안을 만들어 제작해야겠다. 역시 배지, 휘장 형태가 나을까? 아니면 목걸이? 모자에 붙일까?
무공훈장이니까, 관복이나 군복을 입었을 때 드러나게 하려면 목걸이 형태가 역시 낫겠지 싶다. 귀걸이는 해도 목걸이는 안 하는 게 조선 남자들이기는 하다만, 띠 재질을 부드럽게 해서 옷 위로 걸치면 크게 거북하지는 않겠지.
“개전한 지 근 47일 만인데 첫 승전보가 들어왔구나. 기쁘고도 기쁘다. 우리 수군이 유주 수군과 싸워도 뒤지지 않는 역량을 갖추었음이 입증된 셈이라, 참으로 흡족한 일이다. 허나 자만은 곧 패망이라, 경계를 풀어서는 아니 되리라.”
지금 시대 스페인 해군은 확실히 2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닥은 또 아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신하들에게 의례적으로 주의를 환기하고 홍하명이 올린 장계를 계속 읽고 있으니, 참으로 느긋한 기분이었다. 놀이처럼 벌이는 전쟁은 아니지만, 경인왜란이나 을미동정 때 그랬듯이 국운을 걸고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인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좋다.
물론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스페인이 그렇게까지 무능한 호구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전쟁은 우리가 전력(全力)이 아니라 여력(餘力)을 기울여 수행하는 전쟁이고,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그렇게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터였다.
‘실패할 리도 없지만.’
스페인이 무능한 호구는 아니라고 해도 ‘졌지만 잘 싸운’ 수준이리라. 절대 우리가 지지는 않을 거다. 아닌 말로 1진이 진다면 2진을, 2진이 또 지면 3진을 파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보내려고 작정하기만 한다면.
“폐하, 이는 하늘의 도리를 바로잡고자 시작한 싸움입니다. 어찌 약간의 난관이 있다 하여 쉽사리 포기하겠습니까?”
그러나 남구만의 후임인 중추원 영사 윤예성이 이렇게 성질을 내며 말하는 걸 보니, 혹시 병력을 더 동원해도 국내 여론이 반발할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이번에 스페인이 벌인 국사당(國師堂) 및 위패 소각 사건이 사대부들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으니 말이다.
장차 사회가 더 발전하고 일반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량이 발전한 뒤라면 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대한의 여론은 아무래도 조정과 재야에서 사대부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는 주로 상소와 중추원을 통해 조정에 반영된다.
“전국의 수천 시보도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사옵니다. 서반아 국왕이 사자를 보내 사과 의사를 전하고 합당한 보상을 제시하기 전에는 군사를 물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옵니다. 부디 폐하께서는 백성들의 그러한 뜻을 물리치지 마시옵소서.”
여론을 드러내는 두 번째 수단이 시보다. 수천이라는 거야 과장된 수사법이지만, 제대로 관아에 등록을 마치고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발행하는 시보 숫자만 해도 4백 개쯤은 확실히 된다. 1년 365일 날수를 넘는 언론이 존재하는 셈이다.
전에도 언급한 것 같은데, 돈 생각 안 하고 그저 발간에 의의를 두고 자기 돈을 들여가며 찍는 비상업적인 시보도 있다. 이것들은 일종의 공개 상소 모음집이다. 승정원에 들어오는 상소와 논조가 크게 다르지도 않다.
하지만 일반인을 상대하는 대중지들은 좀 다르다. 이런 종류는 자기네 주독자층의 여론을 반영한 시론(時論, 사설)과 기사를 싣는다. 양반사대부가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확실한 경로가 되어주고 있다. 국문 정도는 웬만하면 다 읽는 세상이니 말이다.
확실하게 조사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 대한에서 국문 문해율은 성인 남자 기준으로 70% 정도쯤 될 거다. 아무리 군대에서 초보적인 글자와 산술을 가르친다고 해도, 면제자도 있고 당최 그게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자들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라 그 정도다.
여자들은 문해율이 20% 정도다. 일단 여자들에게는 체계적인 교육 수단이 없고, 살림에 웬만큼 여유가 있거나 가장이 엄청나게 인식이 깨어 있지 않고서야 딸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사대부가 여식이나 의원 집안 딸들 정도나 제대로 글을 배운다.
여자들도 제대로 글을 배우게 하려면 역시 보통교육 제도가 뿌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 과연 언제쯤이나 그게 되려나. 19세기…에는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늦어도 20세기 초입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전국의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면 그때쯤에는 보통선거를 통한 의회 구성도 가능하지 않을까. 중추원은 임명제 상원 격으로 존속하고, 투표로 선출한 의원들은 하원을 구성하면 되겠지. 전제군주정으로 영원히 갈 수는 없으니까.
다만 그 입헌군주정에서 임금의 권한과 역할은 어디까지 가야 하려나. 군권하고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정도면 될까. 그럼 입헌주의 국가라는 허울만 쥐고 있던 독일 제2제국 같겠구나.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진짜 민주주의 국가 헌법은 시민들이 무력으로 군주를 꺾고 수립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대한에서는 그런 과거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게 하고 싶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내부에서 내란을 벌이는 사태는 단연코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명 없이는 진짜 민주화도 없다. 대한 황실이 이제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명군만 배출하리라는, 내 나라를 내가 바라듯 훌륭하게 통치해 나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언제 원래 역사의 연산군이나 고종 같은 임금이 즉위할지 알 수 없다.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다. 아직은 뭐 괜찮은 것 같지만, 몇 번에 걸쳐서 임금 자리에 계속 오르다 보면 어떤 식으로 맛이 갈지 알 수 없다. 만력제처럼 게으른 군주가 될지도 모르고, 권력을 놓기 싫어서 고종처럼 백성들을 학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꼴이 안 나게 하려면, 내가 정신이 나가기 전에 연산군이나 고종이 즉위해서 혁명을 유발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지만…왕당파와 혁명파 간에 내전이 벌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니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도 없다. 정말 곤란한 문제다.
‘그냥 되는 대로 놔둘까….’
다음번 각성이 언제쯤일지는 모르겠다만 그 중간에는 나도 손을 쓸 수 없다. 어떤 식으로 변화의 눈덩이가 굴러갈지 알 수 없으니, 그냥 대한 사회가 변하는 대로 놓아두고 다음번에 깨어났을 때 그때 상황을 보고 거기에 맞춰서 대처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병력을 무사히 루손으로 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오. 4월 안에 모든 병력을 배에 태워 남으로 보내야 하니, 관련된 업무를 맡은 관원들은 그 일에 지장이 없게 하시오.”
양력 6월이면 대남도에서 필리핀으로 건너가는 항로에, 그리고 양력 7월이 되면 본국에서 대남도로 가는 항로에 태풍이 분다. 올해 달력으로는 음력 4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가 가장 위험한 기간인 셈이다.
적어도 대남도까지 가는 병력 수송은 태풍이 오는 계절이 되기 전에 마쳐야 한다. 마닐라 공략에 나서는 시점은 현지 사정을 살펴서 사령관인 장희재가 결정한다.
“각 지방에서 보고하기를, 비와 바람이 적당하여 농사에 걱정이 없을 듯하다 하옵니다. 이 역시 이번 싸움이 정당함을 드러내는 하늘의 뜻이 아닌가 하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겠지. 허나 그런 데서 하늘의 뜻을 너무 찾지는 마시오.”
다행히 올해는 대규모 가뭄도 홍수도 나지 않았다. 작년에 이어 2년째 풍년이 들 조짐이 보이니 필리핀 원정에 대한 반감도 훨씬 적다. 또 흉년이었으면 분명히 원정을 중단하거나 축소하자는 소리가 나왔을 테니 말이다.
“짐은 잠시 뒤를 보고 와야겠소. 그대들은 논의를 계속하시오.”
“예, 폐하.”
예전에도 언급했지만…임금은 용변을 볼 때 변소에 가지 않는다. 이동식 변기인 매화틀을 방으로 가져오게 해서 그 위에서 일을 치른다. 매화틀에 올라앉은 임금의 주변을 궁인들이 지켜보는 건 안전을 위해서다.
몇십 년을 그렇게 지내고 보니 이젠 딱히 부끄럽지도 않다. 다만 지금의 내가 장조 때와 달라진 점이 한 가지는 있다.
“밑씻개를 내놓아라. 오늘은 내가 직접 닦겠다.”
“폐, 폐하. 이, 이런 일을 어찌….”
“어명이다!”
이번 생에 성친왕으로 처음 눈을 떴을 때, 뒤 닦는 법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아주 곤욕을 치렀다. 거의 38년 동안 내 손으로 뒤를 안 닦았더니 손을 어떻게 돌려서 밑씻개를 어떻게 갖다 대고 닦아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물론 박종선을 비롯한 시종들에게 시키면 와서 닦아주기는 했을 거다. 하지만 그 시커먼 사내놈들에게 내 뒤를 씻기고 싶지 않았다. 그중 누가 예왕의 첩자이자 암살자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 뒤를 맡긴단 말인가?
다행히 며칠 안 가서 다시 능숙해지긴 했지만, 그 뒤로도 예왕을 해치울 때까지 내 뒤는 내가 직접 닦았다. 누군가에게 맡기기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황 자리에 오른 뒤로도 가끔은 내 뒤를 직접 닦는다.
이제 궁녀들이 잘 닦아주는데도 내가 계속 닦는 이유? 간단하다. 혹시 다음 생에서는 더 나쁜 처지로 생을 시작할지도 모르는데, 또 뒤 닦는 법을 잊어버리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건 기우가 아니다. 상희는 처음에는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의 천민이었지만 두 번째에는 중인인 의원집 딸, 세 번째는 양반가 고명딸로 각성할 때마다 점점 신분이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적장자 임금, 양자 출신 임금, 적차자 황자로 매번 신분이 떨어지는 중이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생에서는 뭐가 될지 모른다. 아무리 천녀가 ‘질릴 때까지 왕 노릇’을 약속했다지만, 매번 생을 시작할 때 출발점이 어디라고는 약속하지 않았으니까. 과연 다음 생에는 무슨 고생을 하게 될까.
생각한다고 바로 답이 나오진 않는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상념은 잠시 접어두고 당면한 제일 과제, 필리핀 원정 문제를 지도하는데 열과 성을 쏟았다.
며칠 후, 전에 왔던 손님들이 또 찾아왔다. 잉글랜드 동인도회사 상관장 로버트 헌팅턴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관장 다니엘 판 헴스케르크였다.
※작가의 말: 네덜란드 상관장은 교체된 게 아니고 이름만 바뀐 겁니다. 저번에 나온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