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21
3부 2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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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뚫고 올라온 승전보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장계를 싣고 온 동현은 보급품을 싣고 수송선 임무를 맡아서 필리핀에 갔었는데, 돌아오는 도중에 태풍을 만났음에도 능숙한 항해술로 난관을 뚫고 제물포에 들어왔다. 마닐라를 출항한 지 겨우 21일 만에 말이다.
파발의 손으로 넘어간 장계는 당일로 도성에 들어왔다. 실로 풍악을 울릴 내용이었다.
“대업을 이룬 정남대장군 장희재와 총독을 사로잡고 항복을 받은 정남 2연대 2대대장은 훈 1등을 내림이 가할 듯하다. 그 외에 다른 장졸들에게도 그 공에 맞춰서 적절히 서훈함이 좋겠으니, 병부에서는 시급히 그 공적을 검토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비변사에 모여든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런 기쁜 소식이 왔으니, 마땅히 여기 관계된 모든 중신이 그 내용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남대장군이 장계를 올려 알리기를, 40여 일에 걸쳐 군사를 움직여 싸우면서 쏘아죽인 적의 수가 4천여, 포로로 잡은 적이 6천여 명에 달한다고 하였다. 그에 반해 우리 본군에서 전사한 이는 불과 475명, 부상한 이는 1,535명이라 하니 실로 압도적인 전과로구나.”
“이 모두가 폐하의 은덕이옵니다.”
내각승상 남구만이 허리를 굽혀 나를 칭송했다. 하지만 그게 그저 듣기에 좋으라고 하는 말임은 서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고, 필리핀 주둔 스페인군은 패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었다.
먼저, 우리 군대가 규모에서 압도적이었다. 질도 훨씬 뛰어났다. 우리 병사들은 스페인인 부대와 비슷한 수준인데, 스페인군의 수적 주력인 원주민 부대는 우리와 무장?훈련 등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스페인군은 외부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통치 대상인 원주민들의 충성심은 어느 정도 받고 있었지만, 그것도 스페인 총독부가 강력하게 군림하고 있을 때 이야기였다. ‘외적’의 침공을 받아 총독부가 무너지는 시점에서 이미 충성을 요구할 권위도 무너졌다.
“애초에 외인(外人)으로서 통치하던 땅 아닙니까? 진정 예와 덕으로 다스리며 백성들에게 신의를 얻었다면 수도를 잃더라도 산과 들을 전장으로 삼아 계속 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게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서반아 총독이 총독부를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대사헌 이세홍의 지적이 옳았다. 아마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이리라.
“필리핀 토인 태반은 서반아 백성이 된 지 이제 겨우 백 년도 안 되었지. 그런데 어찌 그 권위가 무너지는데도 충성하겠는가. 서반아에 무슨 의리가 있어서 의병을 일으켜 계속 우리 군사와 싸우려 하겠는가.”
수백 년에 걸쳐 맺어진 임금과 모든 백성 사이의 군신관계가 있는 대한과는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오직 힘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스페인의 필리핀 통치였다.
그런 상태에서 수도인 마닐라가 침략군에게 함락당했다. 총독은 검을 넘겨주고 항복한 뒤 권총으로 머리를 쏴서 자살했다. 마닐라를 지키던 스페인인 병사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이 상황에 원주민들을 통제할 권위가 어디에 남았겠는가.
“신은 서반아 총독이 자진한 일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그자를 심문하여 우리 백성을 해치게 된 확실한 연유와 일이 벌어진 그 양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터인데, 입을 닫은 채 죽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일입니다.”
“짐도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총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유를 생각해보자면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니, 크게 비난하기는 좀 어려울 듯하다.”
데 에체바리 총독은 자기 집무실에서 권훤에게 검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권훤이 장희재를 영접하러 나간 사이에 자기 머리에 총을 쐈다. 덕분에 총독부에서 일대 소란이 벌어졌지만, 필요한 지시는 사전에 다 내려놓은 뒤라 큰 혼란은 없었다.
“누가 잘못하여 비롯된 일이건, 임금이 시킨 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맡아 다스리던 땅을 외적에게 빼앗긴 격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죄를 죽음으로 갚고자 했다 해서 나무라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게 바람직한 행위라는 말은 아니니 혼동하지 말라.”
필리핀 총독의 심경이 이해는 간다. 패배한 것만 해도 속이 터질 일인데, 하필이면 적이 ‘이교도 야만인’이 아닌가. 대한이 아무리 백여 년 전부터 유럽과 교류하고 동등한 수준으로 외교를 맺고 있다고 해도 내심으로까지 완전히 동등하게 볼 리는 절대로 없다. 낮게 본다.
그런데 그 자기들보다 격이 떨어지는 이교도 국가한테 패했다. 변방의 작은 요새 정도도 아니고 필리핀 총독부 수도가 함락당했다. 총독 자신은 부하들의 생명이나마 건지기 위해서 검을 내놓고 항복하는 처지가 되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리라.
다만 그 심정을 이해는 해도 대놓고 칭찬하면 안 된다. 데 에체바리의 자살을 칭찬하면, 내 신하들한테도 ‘너희가 사고를 치거든 내가 까기 전에 알아서들 자살해라’라고 압력 넣는 짓밖에 안 된다. 그러니 공연히 자살하지 말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해줘야 한다.
“필리핀은 당분간 우리가 다스려야 할 터이다. 일단 정남대장군 장희재가 다스리게 함이 옳겠는가? 아니면 그동안 조정에서 논한 대로, 맡아 다스릴 관리를 바로 보냄이 옳겠는가.”
화교 학살 소식이 들어오기 전 같았으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기 힘들었으리라. 이 원정은 애초에 우리 백성들이 해를 입고 황실이 모욕을 당한 일을 응징하고자 벌인 거였지 필리핀을 빼앗자는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화교 학살 건으로 여론이 뒤집혔다. 엄밀하게 말하면 학살 자체는 수긍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당장 스페인 측이 우리 한인들에게 행한 일만 해도 월경민에 대한 단속 자체는 인정하지 않았던가? 관건은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는 데 있었다.
죽을 짓을 해서 죽였다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을미동정 당시 일본 해민들도 학살 수준으로 토벌당했지만, 당시 조선 조야에서 이를 잔혹하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해민들이 왜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번 학살에서도 화교들이 실제 우리와 내통했거나 자기들끼리 따로 반란을 모의하다가 들킨 거였다면 ‘서반아놈들 참 잔인하구먼’하고 그냥 넘어갔을 거다. 그런데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이들을 내통자라는 누명을 씌웠다. 그것도 우리랑 엮어서.
우리를 명분으로 삼아 무고한 백성을 학살했으니 당연히 분노가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런 짓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필리핀을 우리가 맡아 다스리면서 그 백성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관헌을 보내기는 하되, 서두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당분간은 목민관보다 장수가 훨씬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민성윤이 차분하게 지적했다. 지금 우리는 카가얀 지방 북쪽 절반, 그리고 마닐라 주변을 장악했을 뿐이고 나머지 필리핀 전역은 권력 공백 상태에 있다. 수많은 섬에 흩어져서 사는 원주민과 식민지 관리를 위해 파견된 스페인인 관리, 군대, 성직자들은 그대로다.
이들 중에는 총독의 항복 명령을 받고 순순히 따를 자들도 있겠지만, 거부할 자들도 많을 거다. 이들을 진압하고 우리 말을 듣게 하려면 당분간은 군정(軍政)이 필요하다.
“서반아인들만이 아닙니다. 여러 토인 부락 중에서도 죄를 지은 부락은 복속을 거부하고 맹렬히 저항할 것이니, 어찌 군사를 움직여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희재가 포로로 잡은 스페인군 6천여 명 중에서 한인 월경민 토벌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3백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장계 내용을 보면 그에 투입된 병력 대부분은 카가얀 지방에 수비대로 남았고, 마닐라로 돌아온 병력은 소수라고 했다.
그나마 지금 잡아둔 학살 참여 용의자들은 대부분 스페인인과 일본인뿐이다. 원주민들은 거의 도망간 탓에, 쫓아가서 토벌할 필요가 있다고 장계에서도 명시해 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장희재 이놈이 죄인들을 일부러 놓아준 게 아닐까?’
3진까지 건너간 병력만 합쳐도 2만 1천 명이다. 그런데 겨우 죄수 몇백 명을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할 여력이 없었을까? 나중에 토벌할 빌미로 삼아 그놈들 부락을 박살 낼 핑계로 삼을 심산으로 일부러 허술하게 관리한 건 아닐까?
확증은 없다만, 그랬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다. 반항하는 세력을 싹 제압하는 입장에서 그만한 명분도 없으니 말이다.
“좌승상의 말이 옳소. 그럼 당분간은 서반아 총독부 조직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겠구려. 그 뒤에 상황을 살펴서 우리 관원들을 보내 교체해 나가도록 합시다.”
필리핀이 대한처럼 중앙집권화된 지역이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실제 필리핀 행정은 총독부보다는 천주교 교구가 중심이 되고, 촌장을 중심으로 해서 각 마을이 자치적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총독부 조직을 활용한다고 해야 사실 크게 상관도 없다.
“우리가 필리핀을 통치한다고 해서 천주교를 금지할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다른 쪽에 있다. 물론 필리핀에도 예수회는 있지만, 도미니코회나 프란체스코회와 같은 다른 선교회가 이미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걸 몰아내겠다고 탄압을 시작하면 종교 탄압이라고 난리가 날 게 분명하다. 할 필요 없는 다툼을 겪게 된다.
“그 문제는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필리핀은 계속 천주교 신서반아 교구에 묶어두라고 하시고, 별개 교구인 우리 대한과 후금에는 여전히 예수회만 들어오라 하시면 될 것입니다.”
“예부대신의 말이 옳은 듯하다. 그 문제는 그러면 되겠구나.”
필리핀은 지금 신서반아 대주교, 그러니까 그 오르테가 놈의 관할구역에 속한다. 그러고 보니 그놈 지금 부왕 대리 자리를 내려놓았다던데, 뭐 하고 있을까. 자살한 데 에체바리가 아니라 그놈이 진짜 잡아다 족쳐야 할 놈인데.
그나저나 전략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전쟁을 끝낼 일이 걱정이다. 내가 계획했던 목표는 필리핀 획득이었고, 그 목표는 훌륭히 달성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스페인은 필리핀을 탈환할 능력이 없다. 고로 더 싸울 일도 없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정치적 행위를 완전히 끝내려면 그에 맞는 정치적 절차가 필요하다. 양쪽이 보낸 대표들이 종잇장을 놓고 마주 앉아 함께 서명하고 도장을 찍는 행사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걸 안 하면 ‘전쟁 상태’가 안 끝난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야 교역도 하고 외교도 한다. 하지만 지금 스페인 본국은 스페인 왕위를 내놓으라며 날뛰는 프랑스군과 싸우느라 주의를 돌릴 정신이 없다. 우리가 필리핀을 영유하겠다는 협상을 정식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기야 내가 그놈들이라 해도 필리핀은 일단 뺏겼다고 치고 프랑스랑 전쟁 끝날 때까지는 방치할 것 같다. 그 뒤에나 돌려달라느니 가져갈 거면 대가로 얼마를 내라느니 그런 협상을 시도하겠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원래 역사에서도 그런 적이 있지 않았던가?
“저들이 얼른 협상과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 편이 우리로서는 좋다고 생각되옵니다. 못된 도적들을 토벌하고 나면 남은 양민들은 폐하의 선정에 힘입어 우리 대한의 백성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터이니, 어찌 다시 서반아 통치하에 들어가고자 하겠습니까?”
“우승상의 말이 옳사옵니다.”
“신도 그리 생각합니다.”
“알겠다.”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피통치자인 원주민들의 의사 따위는 납탄 한 발 무게만 한 가치도 인정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스페인보다 우리 지배를 선호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손해를 볼 건 없으니, 노력은 할 일이다.
“더불어, 정남수군통제사가 서반아 함대를 쫓아 남방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바타비아로 도망친 서반아 함대를 쫓아 모두 포획하면 저들도 필리핀을 탈환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닫고 순순히 그 땅을 양보할 것입니다.”
이형준은 아주 희망적인 예측을 했다. 하지만 병부대신 송재권은 좀 불안한 듯했다.
“이미 필리핀을 획득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굳이 서반아 함대를 추적해야 하는지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듣자 하니 그 숫자도 우리 함대보다 적고 배 크기도 크지 않다고 하던데, 굳이 쫓아가야 하겠습니까?”
송재권은 우리 수군이 별로 활동해본 적이 없는 동남아시아 방면 ? 그쪽 바다를 가리켜서 남만해(南蠻海)라고 통칭한다 ? 까지 무리해서 나가는 게 불안하다고 했다.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클뿐더러, 혹시 네덜란드나 잉글랜드와 충돌할지 모른다고 말이다.
“잉글국과 내달국은 서반아와 맺은 동맹 때문에 우리와 교역도 중단한 상태입니다. 행여 저들이 군사를 내서 필리핀을 쳐 서반아에 땅을 되찾아주려 기도하리라 생각되지는 않으나, 잡을 가능성도 별로 없는 함대를 찾아 돌아다니다 쓸데없는 충돌이라도 벌어지면….”
물론 무장상선 정도밖에 없고, 한데 모이지도 않은 동인도회사 함대보다야 우리 함대가 강하다. 다만 안 해도 되는 싸움을 치르는 그 자체가 손해 아니냐는 게 송재권의 말이었다.
“신이 생각하기에도 서반아 함대를 붙잡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옵니다. 그동안 받은 장계를 보면 서반아 함대가 마닐라를 떠나 바타비아로 향한 때는 5월 초인데, 지금은 벌써 7월 중순이 아닙니까. 이미 바타비아에서 한숨을 돌린 뒤 서반아 본국으로 갔을 겁니다.”
오늘은 7월 15일, 양력으로는 8월 23일이다. 대한수군통제사 이세진은 이홍권의 추격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명하게 경고했다. 추격하려면 도망친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쫓았어야지, 마닐라 공방전을 치르는 동안 계속 함대를 묶어둔 건 실수였다며 말이다.
“하지만 육전을 도울 필요도 있었고, 후속 선단이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려면 함대를 옆에 두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 문제는 이미 지나갔으니 더 따지지 마라.”
“예, 폐하.”
내가 생각해도 이세진의 예상대로 이홍권은 자바해, 아니 남만해에서 발품만 실컷 팔다가 돌아올 공산이 크다. 하지만 뭐, 그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바타비아에 있는 내달인들에게 우리 함대의 위용을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을 하는 셈이다. 우리가 그만한 함대를 거기까지 보낼 능력이 있다고 공언하는 셈이 아니냐.”
이홍권은 마닐라만에 함대를 절반 정도 남겨두고 20척을 끌고 바타비아로 갔다. 그만한 숫자면 바타비아에 있을 동인도회사 함대 정도는 충분히 위압할 수 있으리라.
물론 기갑선은 두 척 다 마닐라에 두고 갔다. 저탄소도 없는 남양까지 끌고 가기는 너무 귀찮은 물건이니까.
“지금 양국이 우리와 교역을 끊었다 하나, 불랑국과 맞서는 서반아와의 동맹 때문이지 별 악의가 없음은 이홍권도 알 것이다. 그리고 정남대장군도 이홍권에게 내달국과 충돌하지는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하였으니, 필시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처럼 우리한테 대놓고 적대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이홍권이 아니라 이기빈이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네덜란드를 건드리지는 않을 거다. 그때 이기빈도 가만히 있는 모카 태수를 털지는 않았잖은가. 그놈이 먼저 불을 지르니 팬 거지.
아무튼, 올해는 날씨가 좋아서 농사도 풍년인데 전쟁도 잘 끝났다고 하니 뿌듯하기 짝이 없다. 이제 필리핀에서 반항적인 부락들 토벌하면서 정교분리 실시해서 우리식 통치 기반을 다지고, 유럽에서 전쟁 끝나기를 기다려서 스페인과 종전 협상 진행하면 되겠다.
‘그런데 협상문에 도장을 찍을 스페인 국왕은 호세 페르난도 1세일까, 펠리페 5세일까.’
어느 쪽이든 내게 별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국면은 이제 다 끝났으니 몇 가지 남은 사소한 골칫거리들을 처리하는 것 말고는 내정에나 신경 쓰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