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29
3부 2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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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비아 앞바다에서는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포연 때문에 정확한 식별은 쉽지 않았지만, 바타비아를 봉쇄하던 조선 함대와 봉쇄를 뚫으려고 나선 네덜란드 함대가 싸우는 중일 게 분명했다.
“어쩌면 조선군이 바타비아를 대놓고 공격하는 중인지도 모르지.”
연합함대 사령관 필립스 판 알몬데(Philips van Almonde) 제독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알몬데 제독은 인도양 방면 프랑스 식민지를 제압하고, 대서양과 서인도제도에서 분탕질을 치고 도망친 프랑스 사략함대를 포착해 격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蝸르크에서 출항한 프랑스 사략함대는 마치 다람쥐처럼 날쌔게 움직였다. 무거운 배로 헉헉대며 그 뒤를 쫓아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물론 빠른 배로 뒤를 쫓을 필요도 있지만, 제대로 적을 포착해서 잡으려면 놈들이 움직이는 앞길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네덜란드, 잉글랜드 양국은 프랑스인들이 세계일주를 하리라 예상했다. 대서양을 건너는 스페인 보물선과 서인도제도 각지의 항구들을 약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과거 드레이크가 했듯이 태평양 연안을 습격하고 태평양을 건너 동인도까지 침입하리라고 본 것이다.
그 뒤를 추격하는 함대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오느라고 피로한 프랑스 함대를 맞이할 모루 역할을 할 함대도 필요하다. 움직임은 좀 느려도 포착한 적을 확실하게 끝장낼 수 있는 강력한 함대 말이다.
그래서 두 나라는 본국에 남아있는 주력 함선을 일부 차출해서 아시아에 보낼 연합함대를 편성하기로 했다. 프랑스 함대가 보급처로 쓸 수도 있는 항구를 제압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프랑스 함대가 바다를 건너 서태평양에 도착하면 곧바로 섬멸할 강력한 함대 말이다.
이 함대에 잉글랜드는 전열함 6척과 호위함 4척, 네덜란드는 전열함 4척에 호위함 2척을 제공했다. 배는 잉글랜드가 더 많이 내놓았지만, 지휘관은 동인도 일대 상황을 더 잘 아는 네덜란드 쪽에서 맡기로 했다.
더 많은 배를 내는 잉글랜드 해군 쪽에서 당연히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총독을 겸하고 있는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3세가 중간에서 잘 조율한 덕분에 잉글랜드 해군에서도 투덜거리기는 할지언정 그 조정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동안 윌리엄 3세는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서 두 나라 사이에 역할 분담을 추구해왔다. 해군은 잉글랜드가 주로 담당하고 육군은 네덜란드가 주로 담당하는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전 지역인 동인도가 네덜란드 세력권이니만큼 네덜란드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이 함대는 프랑스 함대가 신대륙에서 건너오는 스페인 보물선단을 약탈한 뒤 남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내려갔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애초 계획대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동쪽으로 횡단했다.
첫 목표는 아시아에 있는 유일한 프랑스령인 인도 남동부의 퐁디셰리였다. 이 항구도시를 수비하던 프랑스 동인도회사 소속 수비대는 연합함대가 나타나 포격을 가하자 딱 사흘 만에 백기를 올렸다. 첫 승리는 간단히 손에 들어왔다.
잠시 휴식을 취한 연합함대는 말라카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프랑스 고문단이 머무르며 영향을 크게 미쳤고 프랑스 동인도회사 상관이 있는 두 아시아 국가 중 하나인 시암 왕국 역시 유력한 프랑스 함대의 기항처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영향력이 제법 강한 다른 아시아 국가 하나는 당연히 조선이다. 하지만 프랑스 함대가 조선으로 향하리라는 추측은 없었다. 당연한 지리적인 여건 때문이다.
조선은 북방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 게다가 조선 주변에는 프랑스인들이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노릴 만한 큰 먹잇감이 없다. 신대륙을 휩쓸고 아시아로 온 프랑스인들이 생각할 가장 큰 목표라면 역시 필리핀이고 그다음이 동인도였다.
네덜란드, 잉글랜드 본국에서도 조선을 적대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요즘 들어서 프랑스가 조선에 영향을 끼쳤다지만, 그동안 조선이 유럽과 교류한 역사를 보면 그건 약과다. 조선은 차라리 스페인과 더 가까우면 가까웠지 프랑스를 더 가깝게 여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몬데 제독은 함대가 향할 다음 목적지를 시암으로 정했다. 프랑스 함대가 이미 시암에 도착했다면 바로 격멸하고, 아직 오지 않았다면 프랑스군에게 협력하지 말라고 시암 왕실을 압박한다. 그 뒤에 필리핀으로 가서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참이었다.
그런데 말라카를 통과하려는 참에 괴이한 소식을 접했다. 조선이 프랑스 편으로 참전해서 조선 함대가 필리핀을 정복한 뒤 바타비아를 봉쇄하고 있고, 포위당한 네덜란드인들이 심한 곤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끔찍한 소식을 접하고도 태평하게 시암으로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알몬데 제독은 당장에 바타비아로 목적지를 바꿨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큰일이었으므로, 영국인 함장들도 항로 변경에 반대하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줄이야.”
알몬데 제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봉쇄를 돌파하려는 네덜란드 함대가 먼저 덤벼들었든, 조선 함대가 요새를 함락하려고 먼저 발포했든 싸움의 원인은 같다. 조선군이 바타비아를 봉쇄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전 함대, 전투 깃발을 게양하라! 조선 함대를 쫓아내고 바타비아를 구원한다.”
알몬데 제독의 기함 그로테 아에올루스가 신호기를 올렸다. 전함 16척, 탑재한 대포 총합 894문에 달하는 강력한 함대가 순풍을 타고 밀려들며 포문을 열었다. 이제 곧 이중 절반이 적을 향해 불을 뿜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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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비아 요새 위에서도 포성이 울리고 신호기가 올라갔다. 정박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 함대에 출격 명령을 내리는 신호였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당연히 요새 위에 올라가서 자기 발밑에 펼쳐진 항구를 내려다보던 아우토른 총독이었다.
“지금부터 구원함대에 호응해서 조선군을 공격하라! 놈들을 몰아내고 봉쇄를 뚫는다!”
총독은 스페인 함대가 묵사발이 나는 광경을 보며 치미는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살아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고 확실한 죽음을 향해서 뛰어든 스페인인들에게 날리는 분노, 그리고 남의 영역에서 멋대로 구는 조선인들에게 향하는 분노였다.
물론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컸다. 직접 발포하지 않았다 뿐이지, 항구를 봉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조선 측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간주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아우토른 총독이 이를 도발로 받아들여 전투를 시작했어도 본국에서는 정당한 대응으로 인정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정당한 분노도 힘이 부족할 때는 의미가 없다. 지금 뛰쳐나가 스페인 함대 편에 가세한다고 해도 승리한다는, 아니 적을 몰아내기만 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보다는 저들에게 빌미를 주어 네덜란드 함대와 바타비아 자체까지 위태로워지게 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참았다. 일단 참으면, 그리고 조선 함대가 돌아가면 그 뒤에 외교로 항의를 하든 무력행사를 하든 복수할 방법은 있었다. 그래서 다른 항구에서 모을 수 있는 배들을 모조리 모으도록 육로를 통해 지시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조선 함대가 도발했고, 여기 걸려든 스페인 함대가 멋대로 출격해 버렸다는 데 있었다. 어떻게 도울 방법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총독은 스페인인들이 조선군에게 박살이 나는 광경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스페인 배들이 전투력을 잃고서 조선군에게 줄줄이 나포되기 직전,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북쪽 수평선에 수십 개나 되는 돛대가 보였다. 처음에는 조선군이 원군을 불러온 줄로만 알고 모두 기겁을 했다. 이제 전부 끝장이라고 여기며 절망했다.
그런데 더 가까워지고 보니 새로 나타난 함대는 조선 쪽 원군이 아니라 이쪽 원군이었다! 돛대 위에 매달린 잉글랜드, 네덜란드 국기를 확인한 수비병들은 격렬하게 환호했다. 요새 전체가, 함대 전체가 흥분으로 미쳐 날뛰었다.
총독 역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동인도 각지에 흩어진 상선 중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배들이라도 무장시켜 모으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난데없이 본국에나 배치돼 있을 대형 전열함들이 십여 척이나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 신의 선물이다. 37일 동안 조선인들의 도발을 참으면서 굳게 기다린 보상으로 하느님이 천사들을 보내주신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기회를 잡았으니 당연히 투입 가능한 전력을 몽땅 퍼부어 반격해야 했다.
“각하, 우리 쪽에서 조선과 전쟁을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 선제공격은 삼가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옆에 선 보좌관이 주저하는 태도로 물었다. 하지만 아우토른 총독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하던 행동과 완전히 반대되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별다른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그야 우리 함대가 없을 때 이야기지. 도대체 어떻게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으나 본국에서 함대가 왔는데, 저들이 걸어온 도발에 응답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제까지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 부족해서 계속 참았을 뿐이다. 조선군이 항구를 봉쇄한 일만 해도 당장 포를 쏘고도 남을 도발이었다. 이제 전력도 갖춰졌으니 참을 이유가 없다. 조선 함대를 몰아내고 한양에 가서 항구 봉쇄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물에 뛰어든 스페인인들을 구하러 나섰던 거룻배와 보트들 쪽에서 물기둥이 이는 장면도 보았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유탄에 맞아 일부 사상자가 났을 공산이 있다. 이쯤 되면 응전에 나설 명분은 충분하다.
“두말할 것 없다. 뒷일은 일단 조선군을 몰아낸 뒤에 논의하겠다.”
아우토른 총독은 두 팔로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으로 조선 함대를 노려보았다. 저놈들은 아시아에서 자기들한테 덤빌 함대가 없다고 그동안 방자하게 굴었다. 유럽 해군이 여기까지 오지 않은 건 그저 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모르고서 말이다.
이제 저들에게 진짜 전함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줄 때가 되었다. 더 큰 1급 전열함이 오지 못한 건 약간 유감스럽지만, 그놈들은 애초에 본국을 떠날 수가 없다. 2급 전열함만 되어도 조선인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니 괜찮으리라.
– 12 –
이홍권이 필사적으로 고함을 쳤다. 얼굴에는 낭패감과 분노가 흘렀다. 차분하게 지시를 내릴 여유가 없었다.
“서반아 함대 따위는 버려라!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동쪽으로 빠져나가라! 뱃길이 열려 있는 동안 빠져나가야 한다!”
불과 1각 전까지만 해도 만사가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지금 시도할 수 있는 건 오직 최대한 많은 배를 건져내어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뿐이었다.
이홍권은 느긋한 마음으로 천리경을 들고 북쪽에서 다가오는 함대를 살폈다. 이미 싸움은 다 끝나가고 있었다. 스페인 함대를 상대하기는 어린애 팔 비틀기처럼 쉬웠다. 8척 중 아직 포격전을 벌이며 싸우는 건 대선 1척, 중선 2척뿐이었다. 소선 5척은 이미 무력화됐다.
그중 3척은 포격만으로 제압했다. 1천 톤급 대선이 퍼붓는 포화 세례를 더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겠다면서 백기를 올렸다. 다른 2척은 접현한 아군이 등선군을 보내 갑판 위에서 한참 혼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갈 상황이었다.
소선 5척을 완전히 나포하고 나면 그쪽을 공격하던 1천 톤급 대선 5척이 이쪽에 붙는다. 저항하는 적의 잔존 대선, 중선 우측에 이들이 붙어서 협공하면 싸움은 순식간에 끝나고 적 함대는 전멸할 터였다.
네덜란드 함대는 싸움을 방관하고 있다. 지금 북쪽에서 동인도회사 소속 2천 톤급 대선이 한두 척 정도 더 나타난다고 해도 끼어들지는 않을 거다. 지금 대한 수군이 확보한 우위는 전혀 흔들릴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 상황이 이상했다. 나타난 배가 너무 많았다.
“아군은 확실히 아니고, 동인도회사 상선단이 모조리 집결했나?”
이홍권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봉쇄를 뚫으려고 저들이 배를 더 모아왔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만 일대를 다니는 상선치고는 배가 너무 컸다. 네덜란드 본국과 남만 사이를 오가는 대선보다 더 큰 배까지 여럿 있었다.
“저건…잉글국과 내달국 군기가 아닌가!”
북쪽에서 나타난 배들의 돛대 위에서 나부끼는 깃발은 눈에 익은 두 나라 동인도회사기가 아니었다. 군선(軍船)임을 명확히 드러내는 깃발이 국기와 더불어 나부끼고 있었다.
심지어 저들은 이미 전투 깃발을 내걸기까지 했다. 분명한 적대 표시였다.
“교전을 중단하고 당장 바타비아를 떠난다! 서둘러라!”
이홍권의 낯빛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철수 명령은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 내려졌다. 정박지 안에서 멀거니 전투를 구경하고만 있던 네덜란드 함대까지 전투 깃발을 올리면서 기세등등하게 출격했기 때문이다. 지원군과 협력해서 아군을 몰아붙이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새로 나타난 함대만 해도 아군의 전력을 압도하는데, 항구에서 나온 네덜란드 함대까지 달라붙어 협공을 가한다면 감당이 안 된다. 저들을 상대로 만용을 부리려다간 조금 전까지 스페인 함대가 처해 있던 상황보다 더한 꼴을 보게 될 게 분명했다.
이홍권은 탐욕스럽기는 해도 절대 바보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싸우라고 외칠 만큼 어리석은 장수였다면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을 거다. 살 수 있는 길이 남았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거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바였다.
“모두 돛에 달라붙어라! 당장 빠져나간다!”
다행히 적의 증원 함대는 전투 현장으로 직행하느라 만 입구를 바짝 틀어막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전투를 중단하고 만 동쪽으로 이탈하면 붙잡히지 않고 탈출할 수 있다.
항구에 있는 네덜란드 함대를 견제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중선들은 아직 전투에 돌입하지 않았으니 바로 빠지면 된다. 좌선 혜원과 그 뒤를 따르던 배 2척은 포격만 주고받았을 뿐 접현하지 않았기에 이탈하기 쉽다. 포격으로만 적을 제압한 3척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적선을 나포하기 위해 뱃전을 맞대고 한참 백병전을 벌이던 2척이었다. 몇십 명은 되는 등선군과 수졸들이 적선에 옮겨탄 상태다. 두 배를 연결한 밧줄은 도끼로 쳐서 끊으면 되지만, 사람은 당장 되돌릴 수가 없다.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상황을 눈치챈 적군은 악착같이 아군을 붙들고 늘어졌다. 도리어 이쪽 갑판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이홍권은 구원 요청을 받자 단호하게 물리쳤다.
“지원은 할 수 없다! 수졸 몇을 기다리느라 함대 전체를 불구덩이에 처넣을 수는 없어. 타공! 당장 퇴로를 잡아라!”
마침 방향이 바뀐 바람에 돛을 활짝 부풀린 혜원은 숙련된 타공의 솜씨에 힘입어 잽싸게 전장을 이탈했다. 나머지 배들도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