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33
3부 2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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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처한 근본적인 문제는 영란함대의 전력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처음 장계를 받았을 때도 언급했지만, 장계를 쓴 이홍권 본인은 물론이고 전투일지 작성을 맡은 병부 기록관 역시 유럽 해군에 관해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 크다.
장계에 따르면 바타비아에 나타난 영란함대가 16척이고 그중 10척은 ‘전열함인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판별한 증거는 10여 년 전 대한에 다녀간 포르뱅 백작의 기함보다 ‘큰 것 같다고 한다’라는 전언에 기반한 판단뿐이다. 그러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냥 크다고만 적을 게 아니고 대포는 몇 문이나 실었는지, 포갑판은 몇 층이나 되는지 같은 걸 제대로 보고 알려야지….”
견서사가 중단되었다고 해서 유럽 해군에 대한 최신 정보가 아주 끊긴 건 아니다. 유럽에 주재하는 익문사가 있지 않은가. 익문사 첩보를 통해서 유럽 해군이 변모하는 방향 정도는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게 피상적으로 습득한 지식에 그칠 뿐이라는 게 문제다.
익문사 첩보는 병부 내 일부에서만 회람하고 그친다. 유럽 해군을 직접 보고 온 사람도 없다. 그러니 이번 사태 같은 경우를 겪었을 때 바로 적선이 어떤 급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현장에 하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다.
나나 정호찬이 배를 보면 알아보긴 한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국사를 팽개치고 남양으로 친정을 나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마침 필요한 인재들이 왔으니, 그들을 보낸다.
“불랑국에서 돌아온 정위 공현도 이하 22인 중 16명을 이홍원과 함께 내려가게 하였으니, 도착하는 즉시 잉내 양국 함대의 구성을 조사하여 보고하라 이르라. 그래야 본국에서 그에 맞서 어찌 대응할지 결정할 게 아니냐.”
공현도는 장 바르를 따라 프랑스에 갔던 선원 중에 가장 선임자다. 안용복처럼 본래 수군 군관 출신이라 귀환하면서 곧바로 정위 직급을 받았다.
본래 이들 일행은 30명이었다. 다만 7명은 장 바르를 따라다니다가 전투나 병으로 죽고, 23명만 살아서 돌아왔다. 대부분은 공현도와 달리 일반 선원 출신이지만, 10년에 걸쳐 쌓은 경험을 인정해서 전원에게 특별히 참위 벼슬을 주었다.
이들은 10년 동안 사략선을 타고 바다를 누빈 터라, 쓱 보기만 하면 함급 정도는 단숨에 파악할 정도로 배에 익숙하다. 이들을 보내 정찰하게 하면 영란함대의 상세한 구성 정도는 바로 확인할 수 있으리라.
“폐하, 이번 사태는 죄인 이홍권이 섣불리 망동을 벌임으로써 빚어진 것입니다. 잉내 양국 함대를 수군이 감당하기 어렵다면, 사자를 보내 조정에서 내달인들을 공격하라고 명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고, 교역을 방해하여 입은 손해를 보상할 테니 화의를 맺자고 하면 어떨지요.”
조정 안에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영란 양국과 전쟁을 치르기보다는 적당히 화의를 맺자는 주화파 인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사자를 보내서 화의를 제안하면 우리가 패했다고 천하에 공언하게 되는 게 아니냐? 그 굴욕을 어찌 감당하겠느냐? 굴욕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뒤이어 밀려들 뒷수습을 대체 어떻게 하려느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야 몇 주 동안 바타비아가 봉쇄되어 입은 손실에 대한 보상금만 받고 물러나 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유럽에서 건너온 본국 함대 사령관은? 자기네 ‘동맹국’인 스페인을 위해 필리핀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필리핀을 얻기 위해 우리 군사 수천이 죽고 다쳤다. 병으로 드러누운 이도 수천이다. 그 막대한 희생을 이홍권 한 놈의 허튼짓 때문에 무위로 돌리라는 말인가?
영란함대만 걱정거리인 게 아니다. 불패를 자랑하던 대한군이 일단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자마자 기어오를 놈들이 사방에 있지 않은가. 후송, 청, 후금, 일본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놈들을 앞서는 건 순전히 선발주자라서인데, 약해 보이는 순간 다 끝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숙이고 나갈 수는 없다. 저들과 강화를 맺는 때는 우리가 설욕전을 치러 이긴 다음, 그리고 필리핀을 우리가 갖는 것으로 확정된 뒤다! 그러지 않고는 강화를 맺을 수 없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최소한 한 번은 이겨야 한다. 우리 전선 두 척을 잃었다고 해서 영란함대 전함도 두 척을 빼앗거나 불태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 본토를 향해 올라오는 영란함대와 싸워서 격퇴하거나, 저들이 아예 올라오지 못하게 하거나 둘 중 하나는 이뤄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수군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투입할 필요가 있다. 전열함이 없어서 당장 바다 한가운데서 정면으로 맞붙을 수 없다면, 연안에서 기갑선과 해안포로 응전한다. 대포 사거리가 부족하다면 신기전을 쓴다.
“각 군영이 보관하고 있는 대신기전은 몇 발이나 되는가?”
병부대신 송재권이 내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병부에서 조사하니, 본국 각지의 창고에 쌓여 있는 대신기전 재고는 2천 발입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더 만들 수도 있습니다.”
“2천 발이라…그만하면 일단 필요한 양은 충당할 수 있을 듯하구나. 각 군영에 명을 내려 시급히 모아들여 경기수영과 충청수영으로 보내라 하라. 그리고 여차하면 창고에 쌓여 있는 묵은 중신기전과 소신기전을 몽땅 뜯어 그 화약으로 대신기전을 제조할 준비도 해두어라.”
함포는 의외로 사거리가 길다. 18근 포 같으면 3km까지도 포탄이 닿는다. 물론 3km라는 건 최대 사거리일 뿐이니까, 실전에서는 1km 정도를 최대로 잡고 쏜다. 현대식 강선포만한 명중률은 당연히 안 나오지만, 이 정도 거리만 돼도 꽤 위협적인 사격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멀리 쏴도 5백 보(600m)를 넘어가지 못하는 중신기전 같은 장비는 유럽 전열함이나 프리깃 따위를 상대로 싸우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 자칫하면 자함에다 불을 지르거나 바다에 떨어져 화약을 낭비할 뿐이다.
물론 대남수영이 서전에서 활용했듯이, 적선에 근접하여 기습적인 한 번의 일제사격으로 적선을 불덩이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때처럼 동인도회사 상선대도 아니고 정규 해군 상대라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신기전 발사틀이 대놓고 적의 눈에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대신기전은 다르다. 장조 때 대신기전은 1천 보(1.2km)를 날아갔지만 요즘 쓰는 대신기전은 24근짜리 탄두를 달고 2천 보(2.4km)를 날아간다. 적 함대 유효사거리 밖에서 불벼락을 퍼부을 수 있는 거다.
게다가 대신기전에는 파편탄두만 있는 게 아니다. 기름 먹인 천 조각을 채워 넣은 화공용 소이탄도 있다. 이런 게 한두 발만 제대로 맞아도 상부갑판은 불바다가 된다. 갑판에 불이 나면 전열함이고 프리깃이고 일격에 전열을 이탈할 수밖에 없다.
“하오나 폐하, 대신기전은 멀리 날아가는 것은 좋으나 표적을 정확히 맞히기는 좀 어렵지 않습니까? 게다가 화약도 지나치게 많이 소모하니, 그보다는 포대를 증설하고 전선을 조금 더 마련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대신기전은 명중률이 높지 않다. 쐈을 때 어디 떨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그동안 공성전과 일부 회전에서만 주로 썼다. 경인왜란과 을미동정, 건주위 토벌전에서도 그런 용도로 아주 잘 썼고, 이번 필리핀 원정에서도 마닐라 함락에 한몫 단단히 했다.
단일표적을 노리기 힘드니 대함용으로는 쓰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벵골 루트가 끊어져 화약 공급이 어려워진 사정도 있으니, 한 발 쏠 때 쓰는 추진 장약만 10근(6kg)이나 되는 대신기전이 마구 쏘기 부담스러운 장비인 건 맞다.
“하지만 그대들도 생각해보라. 우리 수군에는 잉내 양국 수군이 끌고 온 전열함이라 하는 대선과 바다 한가운데서 맞대결할 전선이 없다. 지금 당장 건조에 들어가더라도 1년 반이나 걸린다지 않느냐? 그럼 당연히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
영란군이 정확히 얼마나 큰 배를 가지고 왔는지 모르니 일단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끌고 나오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함대를 믿을 수도 없고 말이다. 그놈들도 전열함은 달랑 3등 전열함, 64문함 1척뿐이고 나머지 5척은 프리깃이다. 비빌 존재가 못 된다.
영란함대 전열함들과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 함선은 기갑선밖에 없다. 허나 기갑선도 밀리지 않는다는 거지 이기기는 어렵고, 저탄소가 있는 연안을 떠나 활동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를 지원할 화전선(火箭船) 투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화전선은 대신기전이 뿜는 화염 때문에 불이 붙을 수 있으므로 돛을 쓸 수 없다. 그러니 기선을 조달해서 갑판에 신기전 거치대를 세워 제작한다. 기선이 부족하면 얼마 남지 않은 노를 젓는 판옥선도 동원한다. 은폐한 해안포대도 구축한다.
“기존 포대는 그 형상이 확연히 드러나니 적이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기전 포대는 인적 없는 숲속에도 둘 수 있으니 적이 어떤 해안에도 다가오지 못하게 할 수 있으리라.”
해안포대가 없다고 마음 놓고 해안에 접근하다가 뜨거운 맛을 한번 보면 다시는 해안에 다가오지 못할 거다. 우리 연안에서는 물 한 방울도 마음 놓고 구할 수 없게 된다.
경기수영과 충청수영에 대신기전을 몰아주라고 한 건 그 두 곳이 가장 지켜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경기수영이야 그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고, 충청수영 권역에는 알렉상드르가 담당하는 아산 조선소가 있다. 신형 프리깃을 건조하고 앞으로 전열함을 건조할 곳이다.
만약에 영란함대가 이 조선소를 파괴하면 우리는 신형함을 조달하는데 치명적인 지장을 받는다. 그래서 기갑선도 4척 중 3백 톤급 2척은 충청수영으로 내려보내게 했다. 경기수영 예하에는 6백 톤급 2척만 남긴다.
“지나치게 수고가 많이 들지 않을까 걱정되옵니다.”
“수고스럽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병기라면 뭐든지 활용해야 한다. 대신기전이 비록 화약을 많이 소모하고 잘 맞지도 않는다고 하나, 일단 맞기만 하면 확실히 적선을 불덩이로 만들 수 있으니 어찌 쓰기를 꺼리겠느냐?”
생각 같아서는 잠수부라도 동원해야 한다면 동원하겠다. 제주도 출신 수군 중에는 전복을 따러 자맥질하는 게 업인 포작(匏作) 출신들이 많다. 적선이 우리 연안에 배를 세우고 우리 항구를 봉쇄한다면, 이들에게 밤을 틈타 배 바닥에 폭탄을 설치하게 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인들이 처음 만든 잠수함이 바로 그 용도로 만든 물건이었던가.’
현대에 있을 때 책에서 읽었다. 손발로 돌리는 스크루로 움직이는 1인용 잠수정, 항구를 봉쇄한 영국 군함을 격침하려고 독립전쟁 때 술통 모양으로 만든 나무 잠수정이었다. 그런 물건은 지금 우리 기술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다지 실용적일 것 같지는 않다만.
“남으로 간 이홍원이 잉내 양군 함대의 정상을 정확히 조사해 보내야 확실한 대처 방안이 나오겠지만, 그때까지는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두도록 하라. 수군 전선들도 싸울 태세를 갖추라. 우리 전선들이 전열함보다는 약하다 해도, 힘써 싸우면 어찌 지기만 하겠느냐!”
적이 코앞에 오기도 전부터 싸우면 진다고 기가 죽어 있을 필요는 없다. 눈앞에 나타나면 그때 가서 쫄더라도, 지금은 일단 기세를 올리고 볼 일이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여차하면 구형 갈레온을 연달아 들이밀어 수로 제압하는 방법도 있다. 영광이고 뭐고 없는 피투성이 피로스의 승리다. 이기더라도 막대한 희생 탓에 굴욕을 겪게 되리라.
“폐하, 남변 땅은 어찌하시겠사옵니까?”
육군 제조 김용상이 물었다. 그래, 챙겨야 할 세 번째 단계가 남아있었지.
“당연히 적습에 맞서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그 땅은 이제 하늘의 뜻에 따라 우리 대한이 맡아 다스릴 강역이니라.”
남변(南邊)은 필리핀을 말한다. 시베리아를 북변, 미주 동부에서 로키산맥까지 펼쳐지는 황야를 동변이라 부르듯 우리 제국의 남쪽 경계가 될 필리핀은 남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훗날 인구가 늘고 산업이 발달하면 다른 명칭이 붙을 수도 있겠지.
초대 남변관리사는 장희재가 맡아 겸임한다. 다만 아직은 제대로 통치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해서 원주민이나 한인, 중국인 마을은 전부 스페인 식민지 때처럼 자치상태로 돌아간다. 남변관리사의 역할은 아직 우리를 따르지 않는 반항적인 부락 토벌에 집중되고 있다.
필리핀에 투입한 우리 지상군은 5만이다. 하지만 그중에 1만 명은 이미 전사, 부상, 질병 때문에 전열에서 탈락했다. 남은 병력 중에도 마닐라나 우리 손에 있는 여러 마을을 지키는 수비대로 빠진 병력이 대부분이라, 직접 토벌에 종사하는 인원은 4천 정도밖에 안 된다.
우기가 끝나 전투에 적절한 계절이 되었지만, 병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게 장희재의 호소였다. 병력을 증파해 달라는 요청도 이미 들어와 있다. 규모와 시기를 가늠하던 차에 이번 사태가 터져 버려서 상황이 난감해졌고 말이다.
“그래도 마닐라를 지키는 두 성채는 수리를 마쳤고, 화포도 배치하여 방비 태세를 갖추어 두었습니다. 여기에 수군도 마닐라만을 지키고 있으니, 행여 두 나라 군대가 서반아를 도와 마닐라를 탈환하러 온다고 해도 쉽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닐라 방어를 맡은 함대는 전역 초기에 스페인 함대를 격파했던 대남수영이다. 그리고 기갑선 두 척이 만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다. 그 외에 정남수군 전체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이홍원에게 전권을 주었다.
“참으로 대견한 일이로다. 참, 포로들은 어쩌면 좋겠느냐?”
전투 중에 파괴된 요새와 시가지 복구는 거의 포로들 손으로 이루어졌다. 장희재로부터는 이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는 문의도 들어와 있었다.
“서반아군 소속 한병들이 이미 남부에서 모로족과 해적을 토벌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포로들도 남으로 보내 같은 일에 종사하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을 다시 무장하게 했다가 잉내 양군과 호응하여 반기를 들면 어찌하겠는가?”
“양국 함대가 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할 테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남쪽 섬으로 보내놓으면 반기를 든다 해도 우리가 점한 루손에는 손을 대지 못할 터이니 도리어 안전할 것입니다. 루손에 놓아두면 계속 먹이고 감시해야 하는 수고가 더해집니다.”
약간 솔깃한 제안이기는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불안했다.
“아니다. 정남대장군이 병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하나, 포로들은 루손 안에 두고 계속 감시하는 편이 낫겠다. 그대들은 남쪽 섬에서는 반기를 들어도 상관없다 하였으나, 저들이 그 반군들을 배에 태워서 루손에 내린다면 고스란히 우리 적이 되지 않겠느냐.”
영란함대가 내 추측대로 프랑스 함대를 쫓아온 거라면, 그놈들은 육군을 따로 데려오지는 않았을 거다. 전투함뿐인 함대로 필리핀 탈환을 시도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 필리핀 탈환에 나서더라도 봉쇄 이상은 시도하지 못할 거다.
하지만 우리가 포로들에게 무장까지 갖춰준 뒤에 남쪽 섬에 보내 자유를 준다면, 적에게 지상군 병력 수천 명을 그대로 헌납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영란함대가 나타나기 전이었다면 충분히 고를 수 있는 선택지였겠지만, 지금은 안 될 일이다.
“저들이 현재 상태를 인정하면서 화의를 제안할 때까지는 싸움을 멈출 수 없다. 그대들은 그 점을 명심하라.”
“예, 폐하.”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우리 역시 전열함대를 보유해야만 한다. 알렉상드르가 3급 함, 64문함 정도라면 건조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 성과가 어서 나오기만 기다리자.
“급하게 대선을 건조하면 선군(船軍)이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1년 반이면 숙련된 선군을 양성하기에는 상당히 촉박하니, 서둘러 필요한 인원을 뽑아 조련하겠습니다.”
수군 제조 이원기가 제안했다. 그것도 괜찮기는 하지만 내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보다는 외수사 상선에 타는 이들을 차출하면 어떨까 한다. 새로 뽑은 이들보다는 이미 바다에 익숙한 선인들을 배치하는 편이 나으리라.”
일종의 승선근무예비역인 셈이다. 외수사 선원들은 안남, 인도까지 수시로 왕복하며 남쪽 바다에 익숙한 이들이니 남양으로 가서 적과 싸우는 임무도 잘 수행하리라 믿는다.
1년 반 뒤에 완성되는 첫 전열함은 초도함일 뿐이다. 제대로 된 전열함대가 생기는 때는 적어도 3년 뒤다. 그때까지는 지금 있는 자산으로 어떻게든 해나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