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44
3부 2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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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에서 각성하고서 크게 실감한 바지만, 이쪽 세계 유럽사는 원래 역사와 비교해서 바뀐 부분이 많지 않았다. 대한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의 변혁이 유럽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은 변화가 여럿 나타나고 있다. 원래 역사에서는 천연두에 걸려 죽은 그랑 도팽 루이가 종두를 맞았다거나, 카를로스 2세의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로 앙주공 필립이 아니라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뽑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양상이 달라졌다거나 말이다.
도팽 루이는 지금도 멀쩡히 잘 지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프랑수아 바르가 가져온 문서 중에는 어서 정식 동맹을 맺자고 채근하는 루이 14세의 공식 친서와 더불어서 도팽이 보낸 사적인 편지도 있었다. 답장은 아직 주지 않았다만.
하지만 북유럽 쪽은 아직 변화가 크지 않다. 표트르가 발트해로 나가는 출구를 얻기 위해 벌인 대북방전쟁만 해도 내가 알던 대로 1700년에 시작되었다. 재작년에 표트르가 편지를 보내 알렸다. 드디어 자기에게 바가지를 씌운 스웨덴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찬다면서 말이다.
그건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20여 년 전에 나랑 같이 서유럽으로 외유를 나갈 때, 스웨덴 놈들이 우리한테 짠돌이 짓을 했던 일을 가리킨다. 그때 스웨덴인들은 나와 표트르가 쓰는 체류비를 단 한 푼도 지원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바가지까지 씌웠다.
표트르는 그때 품은 악감정을 아직 잊지 않았다. 물론 스웨덴을 공격하는 원인이 순전히 20년 전에 쌓은 개인적인 감정뿐만인 건 아니다. 러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문이 필요했고, 그 문을 얻으려면 발트해의 패자 스웨덴을 물리쳐야만 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개전 시점이야 원래 역사랑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해도, 그 전쟁을 수행하는 표트르의 역량이 훨씬 조기에 개발됐기 때문이다. 실전은 그다지 치르지 못했지만, 전쟁에 관한 이론적인 지식은 충분히 익혔다. 나한테 말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국가적인 개혁 자체가 원래 역사보다 단 몇 년이라도 일찍 시작됐으니, 전쟁에 임하는 태세도 훨씬 나을 터였다. 그럼 당연히 원래 역사에서보다 전황이 유리하게 나와야 할 게 아니겠는가.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저희 차르께서는 폐하께서 일찍이 전수하신 바에 따라서 군대를 조련하고 병기를 넉넉히 준비하여 스웨덴을 치셨으나, 참으로 운이 없어 그만 적에게 크게 지고 마셨습니다.”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자로 온 귀족도 이름이 표트르였다. 표트르 미하일로비치 베스투제프 류민 공. 벼락출세한 촌뜨기 귀족도 아니고, 바이킹 시대까지 올라가는 족보를 가진 명문가 출신이다. 무려 류리크 왕가 방계 후손이란다.
이런 명문가 출신을 사자로 보낸 걸 봐도 표트르가 이번 사절단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선물 수량보다 사자의 신분이 사절단의 격을 규정하는 게 아니겠는가.
“차르께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장비를 갖추고 훈련한 정예군 5만을 동원하셨으나, 아직은 우리 러시아군이 스웨덴군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었습니다. 친정에 나선 스웨덴 국왕에게 연전연패, 그동안 모은 병력과 장비를 모조리 잃었습니다.”
주요 회전에서만 4연패를 당했고, 추가로 투입한 병력까지 총 7만 명을 잃었다. 대포 300문과 소총 6만 정은 덤이었다. 패인은 스웨덴군과 비교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는 러시아군의 숙련도와 전투 경험이었다. 이거, 원래 역사랑 다를 게 없잖아?
“마침 스웨덴 국왕은 폴란드를 공격하러 갔기에 군대를 다시 정비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차르께서는 전국에 명을 내려 병사와 무기를 모으고 계십니다.”
안타깝게도 러시아 국내에는 아직 저만한 양의 무기를 당장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그래서 주변국에서 모을 수 있는 무기라면 전부 모아들이는 중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기울이느라 교회의 종을 걷어다 대포를 주조하고 있고 말이다.
‘그거 원래 역사에서도 했던 일 같은데….’
같은 성격의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몰리니 역시 똑같은 짓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여기나 거기나 표트르는 표트르니까. 표트르가 독실한 정교회 신자이긴 하지만, 전쟁에 지면 망할 판인데 교회 종 따위를 대포보다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겠지.
그보다 무서운 쪽은, 원래 역사보다 조금이나마 더 강해진 러시아군을 원래 역사에서처럼 처발라버린 칼 12세 쪽이다. 정말이지 진짜 천재라는 건 약간의 변수 정도는 얼마든지 밟고 나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더럭 겁이 난다. 다음 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혹시 그때 나폴레옹 같은 사람과 같은 시대를 살게 되면 어쩌지? 나폴레옹한테 박살 나는 대한군을 봐야 하나? 아니, 역사가 바뀌었는데 나폴레옹이 존재할 수는 있을까?
대한에서도 장조 때는 원래 역사 인물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지 않다. 유럽에서도 아직은 원래 역사 인물이 많지만, 다음 생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주류가 될지 모른다. 나폴레옹이 삭제된 세계가 될지도 모르는 거다.
“상황이 그러한지라, 폐하께도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차르께서 군대를 재건하실 수 있도록 병기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거저 달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데려온 준마 1천 필이 모두 총값입니다. 병사 9백 명도, 미인 쉰 명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그러하였느냐.”
표트르가 보낸 병사 9백 명은 카자크가 4백 명, 바시키르인이 5백 명이었다. 당연히 전원 기병이고, 자기가 탄 말 외에 예비 말을 서너 마리씩 더 끌고 왔다. 여기에 표트르가 따로 내 선물로 보낸 말이 천 필이니, 정예 기병 9백 기와 준마 5천 필을 받은 셈이다.
내가 직접 겪어봤으니 알지만, 러시아산 말은 북방에서 쓰기에 최적이다. 장조 때 들어온 스페인계 말들은 추운 지방에서는 아무래도 좀 약했다. 그래서 본토나 대남도, 미주에 있는 남병(南兵) 부대는 스페인계 말을 쓰지만 북병(北兵)들은 북방산 말을 쓴다.
이런 말은 연해주에 있는 목장에서 직접 키우기도 하지만, 청이나 후금 쪽에서 들어오는 수도 많다. 그쪽에서 말을 살 때는 대개 소금이나 차로 값을 치르지만, 은으로 따지면 보통 30냥 정도 된다. 그러면 말값만 해도 15만 냥이다. 대한통보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군용으로 쓰는 수석식 활강총은 한 자루에 은 6냥이면 살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받은 말값만 따져도 소총 2만 5천 정 어치인 셈이다! 사람값은 안 치고도 말이다.
참고로 강선총은 20냥, 중절식인 후장 강선총은 한 자루에 50냥이다. 정말 비싸서 후장총 지급은 정말 그게 꼭 필요한 놈들에게만 한다.
“대포는 필요하지 않은가?”
“대포를 운반하기에는 길이 너무 험합니다. 대포는 본국에서 만들거나 유럽 쪽에서 구할 테니, 폐하께서는 소총만 제공해주셔도 지극히 고맙겠습니다.”
모스크바로 가는 길이 시베리아라지만, 그 여정 전부가 숲을 헤치며 움직이는 건 아니다. 강을 따라서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게 기본이고, 흐름이 끊어지거나 얼어붙었을 때만 육지에 올라 말과 썰매를 이용해 짐을 옮긴다. 무거운 대포를 나르기 어렵기는 하겠다.
“알겠다. 우리 신하들과 논의하여 총을 보낼 방안과 그 수량을 논의해야겠으니, 숙사에서 잠시 쉬면서 여독을 풀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폐하.”
문득 궁금한 점 하나가 떠올랐다. 류민이 인사를 올리고 나가려는 참에 불러세워서 방금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사자에게 묻고자 한다. 차르는 성당 건립을 위해서는 황금을 보냈으면서 내게 총을 얻기 위해서는 왜 말과 미녀를 보내었는가? 친서에도 그 이유는 적혀 있지 않은데.”
말 천 마리와 미녀 쉰 명보다는 황금 천 냥을 운반하는 게 쉽다는 건 따질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이런 귀찮은 거래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르께서 회상하시기를, 과거 폐하와 함께 세상을 유람하던 시절 폐하께서 공언하시기를 ‘사내다운 사내에게 필요한 건 명마와 미녀뿐이라’라고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 폐하께서 좋아하실 말과 미인을 황금 대신 보내신 것이지요.”
생각났다. 표트르하고 사냥 다니면서 내가 멋대로 지껄인 말 중 하나였다. 쥐구멍을 찾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혹시 저들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십니까? 그러시다면 제가 차르께….”
“아니다. 아주 마음에 든다. 얼른 가서 쉬도록 하라.”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지만, 그 긴장한 얼굴을 보고서도 차마 마음에 안 든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고 알현을 끝내버린 다음 밖으로 내보냈다. 나중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면 되니까.
알렉세이가 지내는 북평관 저택이 꽤 커서 객식구 백 명 정도는 추가로 수용할 수 있다. 그래서 류민이 데려온 ‘진짜 사절단’ 50여 명은 그리 가서 머물라고 했다.
카자크와 바시키르 ? 튀르크계 유목민이다 ? 기병 9백은 내가 선사 받은 이들이니 따로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도성 근교에서 갑자기 9백 기나 되는 기병들을 수용하기에는 적절한 장소가 없었다. 병부대신 송재권과 의논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안 되겠다. 적절한 땅이 없으니 공사를 중단하고 놓아둔 남궐 자리 일각에 군막을 치고 머물게 함이 낫겠다. 여분의 말은 마장동에 있는 목장에 두어 쉬게 하라. 수천 리를 걸어서 올라왔으니 쉬게 해주어야 하리라.”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용산별궁 한쪽에 근위대 막사를 따로 세울 예정이기는 했다. 건물은 아직 짓지 않았지만, 부지는 구획해 두었으니 밀어 넣기만 하면 된다.
계획한 건 아니지만, 기병이 잔뜩 생겼으니 겸사복과 별개로 친위기병대를 새로 편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기존 겸사복은 정원이 4백 명이니까 이쪽이 규모가 더 커서 겸사복에 넣으면 겸사복이 도리어 먹힌다. 따로 부대를 편성하는 게 낫다.
“루스 차르의 요청은 비변사에서 의논해야겠다. 병부의 생각은 어떠한가?”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준마 5천 필에 정예 기병 9백을 받았으니 이대로 입을 씻을 수는 없다. 얼마나 보내주면 좋을지, 신하들 의견을 좀 들어보자.
– 9 –
병부대신 송재권이 문서를 넘겼다. 탁자 주위에 빙 둘러앉은 중신들이 그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병부에서 만약을 위해 비축하고 있는 총은 16만 정입니다. 그중 북도에 모아둔 총이 6만 정이니, 루스에 보내줄 물량은 충분합니다.”
우리 조병창들은 그동안 1년에 총을 4천 정가량 생산했다. 전력으로 생산하면 1년에 3만 정을 뽑아낼 수 있지만, 그렇게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산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소량만 만들어도 족했다.
비축한 총은 전시에 소집한 속오군들에게 내줄 물량이다. 비상시에 동원할 속오군은 호왈 2백만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총을 2백만 정이나 쌓아둘 수는 없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 대한민국도 그렇게는 못 했을 거다.
그만큼 많은 소총을 모아둘 필요는 없으므로, 저율 생산으로 생산력을 유지하면서 파손이 심한 것들만 골라 교체한다. 비축해둔 총은 잘 닦고 기름을 발라 기름종이로 다시 포장해둔 터라, 혹시 삭았을지 모른다는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당장 우리가 전쟁을 치르는 판입니다. 언제 병기가 부족해질지 알 수 없는데 총을 수천 정이나 외국에 넘길 수 있겠습니까?”
예상대로 반대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루스와 사이가 좋은 만큼 이웃이 힘든 상황이라면 마땅히 도울 의무가 있지만, 당장 우리가 급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이에 대한 반박을 주도한 사람은 이번에도 이형준이었다.
“신은 그리 보지 않습니다. 지금 도성에는 루스 태자가 와서 태자 전하와 함께 수학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라 기둥인 태자를 맡길 정도로 우리를 믿는 이웃에게, 어찌 총 한 자루를 아낀단 말입니까? 게다가 거저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미녀야 임금이 받은 개인적인 선물이니 총값으로 치기 어렵다. 하지만 준마 5천 필, 정예 기병 9백은 분명 귀중한 존재였다. 호부대신 황재선은 그 값어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군마는 중요한 물자입니다. 신이 마장동에 직접 다녀왔는데, 이번에 루스에서 보낸 말은 우리 병부가 평소 후금에서 사들이는 말보다 훨씬 튼튼하고 좋은 말이었습니다. 마치 옛날 무종께서 타셨다던 한혈마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습니다.”
아, 폴쇄 말이군. 그놈 정말 좋은 말이었는데. 요즘은 딱히 정해 놓고 타는 애마가 없다. 승마 때마다 사복시에서 적당히 골라 보내는 말을 적당히 타고 치운다. 정든 말과 헤어지는 것도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라서 말이다.
“그런 좋은 군마를 5천 필이나 받았는데,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고 이대로 입을 닫는다면 우리 대한은 천하에 둘도 없는 도둑의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마땅히 적당한 양의 총을 주어 답례해야 합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표트르의 편지에는 이번 사절을 통해 보낸 말은 1차고, 다음 사절단 편으로 두 번째 말떼를 보내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같은 규모라고 하면 적어도 1천 필이 더 온다는 이야기다.
말이 또 온다는 이야기에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러시아에 총을 보내주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이 갑자기 확 늘었고, 반대파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계속 논쟁을 벌였다.
반대하는 이들도 말값을 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우리도 전쟁을 치르는 중이니 무기를 내줄 수 없다는 주장을 주로 내세웠는데, 그건 삼군부 도총사 김원중이 나서서 좌중을 설득했다.
“본국에 있는 총만 해도 충분합니다. 어차피 잉내 양국이나 서반아나 우리 본국에 군사를 내릴 능력은 없습니다. 주된 싸움은 바다에서 수군이 치를 것이고, 그 전장도 남쪽 바다가 될 터이니 북도에 있는 재고 총기를 좀 뺀다고 하여 탈이 날 것도 없습니다.”
덤으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조총 수만 장을 한꺼번에 보낼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재고 총기 일부를 보내고, 나머지는 조병창에서 생산 속도를 올려 새로 제작한 소총을 창고에 보충함과 동시에 루스에 보낼 물량을 따로 생산하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이 옳다.”
논의 끝에 러시아에 보내기로 된 물량은 일단 2만 정으로 결정됐다. 단순히 총값만 따진 게 아니라 운반에 필요한 낙타 마련 등 갖은 비용을 공제한 결과다. 물론 2만 정을 한 번에 보내는 건 아니고, 3천 정씩 나눠서 보낸다. 그 정도가 편리하니까.
정말 표트르가 두 번째 말 떼를 보낸다면 우리도 두 번째로 제공할 총기 물량을 준비해야 하리라. 그래도 총을 주고 말을 받는 건 우리한테는 확실히 남는 장사다.
휴우, 일단 한 가지 일은 마무리됐다. 이제 러시아에서 들어온 또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아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