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45
3부 2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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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보니 상희와 데이트를 할 여유도 별로 없다. 지난 4월 2일, 그러니까 양력 5월 5일에 상희가 다섯째를 낳으면서는 상희도 움직이기 힘들어서 한 번도 둘이서 따로 만나지 못했다.
시간을 내서 찾아가도 중궁전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다. 상희 옆에서 시중을 드는 상궁과 나인들은 물론이고 모후와 태후도 수시로 찾아왔다. 올렝카를 비롯한 후궁들도 누구 하나는 꼭 와 있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불러낼 수도 없었다. 아무리 이번이 상희가 다섯 번째 하는 출산이라고 해도 주변에서 삼칠일(三七日)도 안 지난 산모가 어디 바깥출입을 하느냐고 난리가 날 게 뻔했으니까.
“삼칠일 안 지났어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들 누워있으라고 하니 나올 수가 있어야지. 어제 삼칠일 지난 덕분에 겨우 나왔지 뭐야.”
궁궐 법도로는, 삼칠일이 지나면 중전은 육아에서 손을 뗀다. 봉보부인(奉保夫人)이라고 하는 유모가 육아를 책임진다. 젖을 먹일 뿐 아니라 다른 육아도 모두 유모가 책임진다.
이건 딱히 황실 여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중전이 수행해야만 하는 공무를 처리하려면 육아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맡을 수밖에 없다. 한가하게 아기 젖 먹이고 기저귀나 갈아주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다는 거다.
“방에 누워있다고 정말로 편히 쉬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몸은 멀쩡하니까 좀은 쑤시고, 혹시라도 어마마마나 태후마마 오실까 봐 긴장하고 있어야만 하고, 자기 애 낳고 누워있는 아내한테 계속 일거리를 떠넘기는 누구도 있고.”
매번 그랬다. 원래의 몸 주인이 원체 건강한 체질이었던데다, 상희가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한 덕분에 상희는 서른이 되도록 ? 올해가 만 30세다 ? 별다른 큰 병을 앓지 않았다. 출산 역시 어렵…아니, 이 얘기는 잘못 꺼내면 등짝 맞겠지.
“미안, 미안. 그래도 그게 내 마음대로 정리하기 좀 골치 아픈 문제였거든.”
표트르가 보낸 미녀 50명의 처분 문제는 나로서는 정말 까다로운 일이었다. 물론 저들이 도성에 도착했을 때 언뜻 훑어보니 다들 상당한 미인들이긴 했다. 나이는 모두 스물을 넘지 않는다고들 했고, 표트르가 내 취향을 잘 기억해뒀는지 시베리아를 건너오는 동안 고생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체형도 다들 늘씬했다.
하지만 미녀가 무더기로 들어왔다고 해도 별로 의미가 없다. 애초에 나는 지금 있는 후궁 세 명도 딱히 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나한테 여자를 보냈으니, 이게 애물단지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래서 눈 딱 감고 상희한테 이 문제 처리를 맡겼다.
“내가 안 가질 거라면 자기들한테나 한 명씩 나눠줬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은근히 바라는 놈들도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너한테 대놓고 그런 소리를 해?”
“설마 그럴 리 있겠어. 그런데 보면 눈치가 빤해. 러시아 미녀에 환장한 속이 다 보여.”
양첩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다. 그런 놈들은 원래도 있었지만, 올렝카를 보고 더 늘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얼핏 생각하면 혼혈까지 포함한 유럽계 인구가 만여 명은 족히 되니 양첩을 구하기도 쉬울 것 같지만, 실제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첫 번째 장벽은 종교다. 내가 그쪽으로 가려 받은 탓이지만 거의 모든 유럽계 이주민들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비신자인 한인들과는 정식 혼인도 잘 하지 않는데 첩이 되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쪽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이쪽이 첩을 들일 수 없다는 계율에 걸린다. 고로 어떻게 해도 양첩은 들이기 힘들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은 망한 집안 딸을 돈으로 데려오는 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은 게, 딸을 팔아야 할 만큼 가세가 어려워진 집안 자체가 거의 없다.
장조 때 들어온 서유럽계 양인들은 관직이든 자기 사업이든 자리가 확고하다. 웬만하면 안 망한다. 어쩌다 운이 없어 망하는 집이 생기면 같은 혈통인 동료들이 도와준다. 그러니 딸을 첩으로 팔아야 할 만큼 영락하는 일은 드물다.
다만 정교도인 우크라이나계 – 일명 백룡인 ? 혼혈 집단은 애초에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서유럽계만큼 안정된 사회적?재정적 기반이 없다. 그래서 이쪽에서는 딸을 첩으로 보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 외에는 어쩌다 태어나는 혼혈아 출신 사생아들 정도다.
세 번째이자 결정적인 이유는 혼인 적령기 여성 자체가 애초에 많지 않다는 거다. 유럽계 인구가 만여 명이라고 하지만, 그건 ‘고작’ 만여 명이다. 거기서 특정 시점에 ‘적당한 나이의 예쁜 처녀’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사람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엄연히 수요가 있는데 공급은 적으니까 가치는 더 오른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피가 섞이지 않은 진짜 슬라브 미인이 수십 명이나 왔으니 탐을 내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더구나 이들은 표트르가 내게 선물한, 사실상 내 노비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사자의 의사 따위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첩으로 나눠줄 수 있다.
“러시아인? 아냐. 대부분이긴 해도 전부 러시아인은 아니던데? 다양하게 섞였더라.”
“러시아인이 아닌 애들이 있다고?”
표트르는 정치, 군사, 경제 등 꼼꼼하게 굴어야 하는 일에서는 무섭도록 꼼꼼한 성격이다. 하지만 자기가 선물하는 미녀들의 고향 따위는 꼼꼼하게 따져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친서에는 그 내용은 한 마디도 없었고, 나는 당연히 다 러시아인인 줄 알았다.
“응, 대부분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 온 애들 맞았어. 그런데 그중 열 명은 다른 나라 출신이었어. 폴란드인이 넷, 스웨덴인이 셋, 독일인도 셋.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러시아군이 자기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를 공격해서 포로로 잡혀 왔대.”
“표트르가 내게 전리품을 나눠준 셈이었군.”
그러고 보니 표트르 새 애인도 그렇게 포로로 잡은 폴란드 여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첫 애인이었던 마르타는 향수병에 걸려서 네덜란드로 돌아갔다고 했다. 물론 표트르는 마르타 말고도 정부를 한 다스는 거느리고 있으니 마르타가 떠났다고 절망하거나 하진 않았다.
“너한테 얘기 듣고 사흘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향원정에는 의자와 탁자가 여럿 놓여 있다. 비단과 가죽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은 상희가 자기 생각을 차분히 설명했다.
“자기 뜻으로 오지도 않은 애들을 대신들 첩으로 나눠주는 건 반대야. 그렇다고 극단에 사람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리로 보내서 전부 배우로 쓸 수도 없고. 일단은 궁녀로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혹시 눈에 든 애 있어? 제일 예쁜 애들 골라서 대전에 넣어줄까?”
“아니, 필요 없어.”
내가 고개를 젓자 상희가 피식 웃었다.
“옛날에 셀린 들어왔을 때처럼…일단 궁에서 말이랑 예법 가르친 다음 시녀로 쓰는 거야. 대전이랑 중궁전에만 둘 게 아니라 두 분 태후전, 동궁전, 순비를 비롯한 후궁들 쪽도 몇 명씩 주는 거지. 순비한테는 폴란드 애들 몰아주면 될 것 같고.”
외금위의 시초가 이기빈이 데려온 이국적인 외모의 흑인과 백인들을 활용해서 내 위세를 강조하려는 거였다. 반촌극단 무대에 서는 백인 배우들이 ‘백면나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도 원래 대궐에서 나인으로 쓰려다 중전이 상희네 극단하고 경쟁하느라 극장에 보낸 탓이었고.
상희 역시 마찬가지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50명 전부 중궁전에다 두고 자기 수족으로 부리는 편이 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해. 좋은 게 들어왔으면 당연히 주변이랑 나눠야지.”
그건 그렇긴 한데…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걔들 활용해서 궁궐 안에 정보 수집 라인 추가하려고?”
상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살짝 웃으면서 말을 돌렸을 뿐이다.
“각 전에 속한 궁인들끼리는 은근히 대립도 있고 적대시하기도 해. 하지만 그 아이들은 고생하면서 함께 건너온 자매 같은 애들이니까,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눌 거야. 그게 나쁠 건 없잖아.”
그게 나쁜 일은 분명 아니다. 단지 그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모두 수집되어 상희한테 보고될 뿐이겠지.
상희가 궁인들 사이에 정보망이 전혀 없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정보를 모을 라인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기는 하다. 국내 기반이 없는 외국인 용병이 내 친위대로 유용하듯 국내 기반이 없는 외국인 궁녀도 상희의 수족으로 유용하리라.
“정 궁에서 못 써먹겠다 싶은 애들은 적당히 내보내야지. 지금도 25세 넘었는데도 제대로 일 못 하는 애들은 궁에서 내보내고 새로 뽑잖아.”
궁녀 봉급도 상당한 액수다. 그래서 그 돈값을 제대로 못 하는 애들은 일찌감치 해고해서 궁에서 내보낸다. 25세면 궁궐 밖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지는 않은 나이다.
궁녀들을 일찍 출궁시키는 건 가뭄이 심할 때면 종종 있었던 일이다. 평생 혼인하지 못한 궁녀들의 원한이 가뭄을 초래한다고 믿었던 탓인데, 부황은 경신대기근 때 이를 적극적으로 풀었다. 출궁한 궁녀들이 자유롭게 혼인할 수 있게 허락한 거다.
무종 때 세운 법에 따라서 과부나 이혼녀도 자유롭게 혼인할 수 있고 그 자손도 출사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궁녀 역시 일단 임금의 여인이기는 하나, 출궁한 시점에서 ‘이혼’한 것으로 취급하여 그 뒤의 혼인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이다.
궁녀의 혼인을 허용한 건 분명히 처음에는 가뭄 대책의 일환인 임시 방책이었다. 하지만 일단 허용하고 보니 이런저런 제한은 슬금슬금 허물어졌고, 지금은 혼인할 상대가 누구인지 관에 고하기만 하면 출궁한 궁녀도 자유롭게 혼인할 수 있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네. 그때 가서 적당한 혼처를 주선해주면서 살길을 찾아줘도 되고, 혹시 혼자 살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그쪽으로 지원해줘도 되고.”
기왕 상희에게 맡기기로 했으니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더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화제를 바꿔 예왕의 딸 이야기로 넘어가자 상희는 뜻밖에도 표트르의 대처를 환영했다.
“그게 상식적이지. 도리어 잘 됐어. 너, 알렉세이가 연수 좋아한다는 데만 신경 썼지 정작 연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거의 관심 안 가졌잖아. 내가 자혜원 통해서 알아보니까 걔는 알렉세이한테 별다른 관심도 없더라. 진짜 짝사랑이던데.”
“그랬어? 얘기해주지. 그랬으면 나도 굳이 표트르한테 안 알렸을 텐데.”
“얘기했었어. 표트르한테 편지 보낸 다음이긴 했지만. 그런데 네가 전쟁 치른다고 말끔히 잊어버렸지.”
그러고 보니 들은 것도 같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상희가 쐐기를 박았다.
“다른 조카 소개해달라는 걸 보면 혼인할 의사는 있나 보네. 현왕 서녀 중에 올해 열넷이 되는 애가 있는데, 걔는 어때? 연수만은 못할지 몰라도 걔도 상당한 미인이야. 성격도 제법 괜찮고. 그리고 말도 통하고, 종교도 같고.”
“음, 그건 확실히 네 말이 맞네.”
양첩을 얻는 건 매우 어렵다고 내가 언급했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이뤄낸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현왕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반촌극장에 나가는 주연 여배우 중 하나를 자기 양첩으로 들이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
심지어 돈으로 꼬드긴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자기 노력으로 열과 성을 다해서 유혹하여 자기 네 번째 첩으로 들이는 데 성공했다. 도대체 무슨 재주로 그걸 이뤄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상희가 언급한 서녀는 현왕의 양첩이 낳은 세 딸 중 막내였다.
“지금 영국, 네덜란드랑 전쟁하면서 유럽으로 가는 해로 막혔잖아. 러시아랑 관계를 계속 좋게 유지해야 우리가 국제적으로 고립이 안 되지. 총도 보내준다면서.”
“응. 그런데 총만 보내는 건 좀 아쉬워서 사람도 좀 보낼까 생각하는 중이야.”
지금 러시아군에는 독일인, 프랑스인 등 외국 군사고문 다수가 있다. 그 고문관들 지시를 제대로 안 들어서 더 망하기도 했지만.
내가 또 고문단을 보내서 혼란한 러시아군 상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생각은 없다. 내가 보내려고 생각하는 건 고문단이 아니라 러시아군 진영의 핵이 되어줄 정예부대다.
“오합지졸들 사이에서 굳건하게 버티는 부대 하나만 있어도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거든. 퇴역하는 고병 중에 2천 명 정도만 모집해서 보내도 표트르한테 큰 도움이 되지 싶어.”
저쪽에서 먼저 정예 기병 9백 기를 보냈으니 보병 2천 명 정도는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하지만 저쪽으로 건너간 뒤의 봉급은 당연히 표트르가 줘야 한다. 이쪽으로 온 기병들 봉급 역시 내가 주지 않는가.
“난 군대는 잘 모르지만, 괜찮은 생각 같아. 머나먼 동방에서 원군이 왔다고 하면 러시아 사람들도 좋아하겠지. 친한파도 더 생길 거고.”
동의를 표한 상희가 다시 현왕의 서녀 쪽으로 대화 주제를 돌렸다.
“성당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쪽으로 연출하든, 대놓고 소개해주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해. 난 걔는 후보로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뿐이니까. 그래도 기왕이면 본인 의사를 알아는 보고 진행했으면 좋겠어.”
“고려해 볼게. 현왕이랑 한번 의논해 보고.”
상희는 이번에 낳은 막내딸은 물론이고 올렝카의 딸들인 루시아나 율리아도 절대 해외로 내보내서 본인의 의사와 다른 혼인을 시킬 의향이 없었다. 다른 집(현왕네) 딸에 대한 태도 역시 기본적으로는 같았다.
물론 그 아이는 부친인 현왕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고 현왕은 임금인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지금 정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진해야 하는 혼인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고 싶다는 게 상희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 아들 말고, 우리 아들 혼사는 어쩔 거야? 난 상관없기는 한데, 정말 청나라 공주를 태자비로 데려올 거야?”
“글쎄. 저쪽에서 이야기가 없네.”
삭액도에게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사인을 주기는 했다. 삭액도가 분명히 내 반응에 관해 본국에 이야기를 전했을 텐데 몇 달이 지나도 추가 소식이 없다. 저쪽에서 이 혼사를 더 추진하지 않고 접기로 한 거려나.
“청나라도 바보가 아니니까, 혹시라도 조정에서 들고 일어나서 무산될까 봐 망설이는지도 모르지. 네 말 한마디만 듣고 공주를 보냈는데 일이 엎어지면 그게 무슨 망신이겠어.”
지난번에 조정에서 시큰둥하게 넘긴 것도 아직 진짜 진행되는 일도 아니니까 그냥 넘어간 거 아니겠냐는 상희 말도 설득력이 있다. 사실 나도 그때 강력하게 혼인하자고 말한 것도 아니고 이러면 어떻겠냐고 신하들을 슬쩍 떠보기만 했으니까.
“황태자비로 청나라 공주가 들어오면 다음 태황은 건주 혼혈이 돼. 나야 은이만 좋다면 상관없지만, 조선 사람들은 그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걸. 당장 어마마마만 해도 별로 좋게 말씀은 안 하셨잖아.”
모후는 올해 만으로 68세다. 곧 칠순이지만 아직도 정정하다. 내가 임금으로서 할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고 판단하면 지금도 엄한 태도로 꾸짖는다.
은이는 모후에게 세상 누구보다 귀한 황태자다. 청나라 쪽에서 혼사를 맺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막연하게 말했더니, ‘그놈들은 과거 충무대왕께서 짓밟으셨던 놈들’이라며 인상을 좀 찌푸리고 더 언급하지 않았었다.
“청나라 쪽에서도 이쪽 상황을 아예 모르지 않으니까 좀 더 고민하는 중일 거야. 은이는 그냥 포기하고, 차라리 준이를 그쪽이랑 맺어주는 건 어때? 둘째니까 훨씬 부담이 덜한데. 권이나 홍이는 아직 너무 어리고.”
정말 복잡한 이야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피로감이 와서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이렇게 편하게 모든 걸 공유할 수 있는 내 유일한 사람이 너니까.”
“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 혼자 이렇게 몇 번씩 전생했으면 아마 미쳐 버렸을걸.”
상희가 웃었다. 나도 마주 웃으면서 꼭 끌어안았더니 몇 달 동안 느끼지 못했던 흥분이 몸을 달구는 듯했다. 상희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날 밀어냈다.
“그건 아직 안되옵니다, 폐하. 소첩의 침소에 드시려면 아직 한 달은 더 참으시옵소서.”
“그런…가? 아직 어렵지?”
멋쩍게 웃으면서 몸을 뗐다. 하기야 예전에도 출산하고 2달 정도는 부부생활을 쉬었었다. 뭐, 조금만 참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