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51
3부 2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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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정말 옳은 말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있는 법이다.
권력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세상을 쥔 권력자라고 해도 권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내가 이제껏 살아온 세월이 87년이다. 네 번 인생에 걸쳐서 말이다. 그렇게 살면서 보니 돈과 권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 말이 옳다는 걸 절감할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내가 현대에서 정말 좋아한 소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자 주인공 레트 버틀러는 여주인공 스칼렛과 대화를 나누며 이 문제에 관해 조금 다른 견해를 펼쳤다. 나는 레트 버틀러의 주장에도 완벽하게 동의했다.
「버틀러 선장님, 당신은 돈이 많으시죠. 하지만 우정이나 사랑 같은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지 않은가요?」
「대체로 살 수 있습니다. 간혹 살 수 없더라도 멋진 대용품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그야 간단하다. 내가 지금 처한 난감한 상황을 ‘대용품을 돈으로 사서’ 일부 해결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미 쇠락하여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우리 유구국의 국운이 부활한 연유를 소인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폐하를 비롯하여 대한의 역대 임금들께서 하해와 같은 은혜로 품어 주셨기에 지난 백여 년의 융성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대가 잘 알고 있구나. 짐으로서도 그대들이 늘 보이는 정성을 늘 대견하게 여기고 있노라.”
올해 또 상절사로 찾아온 유구국 세자 상순(?純)이 내 앞에 엎드려서 고개를 조아렸다. 용상에서 이 친구를 맞이하는 것도 올해로 벌써 6년째로구나.
상대가 해상봉쇄를 걸었을 때, 이걸 뚫기 위해서 꼭 무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뚫고 나가기 힘든 장애물이 있으면 마땅히 우회로를 찾아보고 수고를 줄일 노력을 하는 게 인간으로서 해야 할 합리적인 행동이다.
지금 연합국 함대가 우리 국적 상선들을 골라 덮친다고? 그럼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면서 뒤통수를 칠 염려가 없는 ‘독립국’의 배를 이용해서 우리한테 필요한 물품을 운반하게 하면 그만이다. 유구는 그런 면에서 지금 활용하기 딱 좋은 존재였다.
실질적으로야 유구는 우리 속국이 된 지 오래다. 유구군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유구 방위를 담당하는 건 우리 수군이다. 여기에 저탄소까지 설치하면서 여차하면 기갑선도 파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독립성은 무슨 개뿔인가.
경제적으로도 유구는 대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유구에서 경작하는 설탕과 목화를 주로 소비하는 고객이 대한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포경기지까지 들어섰다. 잡은 고래를 가공해서 기름은 대한으로 보내고 고기는 현지에서 처분한다.
농장도, 포경기지도 모두 우리 자본이 투자된 경우가 많다. 인부들은 현지 유구인이지만 자본을 대고 시설을 관리하는 건 우리 인력이다. 사실상 우리 기업이다.
상업에서는 조금 다르다. 유구인들은 겨우 되살린 해외 교역만은 자기들 자본으로 하려고 애를 썼다. 선박도 자기들이 직접 소유하고 말이다. 누가 돈을 댔든지 농장이나 포경기지는 자기들 땅에 있지만, 상업자본은 어디든 자유롭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에게 배를 제공하는 게 우리다. 유구는 자체적으로 근대 조선업까지 육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우리가 배를 팔지 않으면 유구는 새 배를 조달할 수 없다.
어쨌든 명목상으로 유구는 분명 독립국이다. 대한 태황이 ‘유구의 보호자’를 자처하기는 하나, 유구가 대한에 정식으로 칭신하지는 않는다. 유럽에서 온 놈들은 그 사정을 확실하게 모를 수도 있지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놈들은 그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다.
그 차이를 안다면 저들은 유구 상선에는 손을 대지 않으리라. 알고도 손을 댄다면 저들이 전쟁이 아니라 약탈을 하러 동방까지 왔다는 말밖에 안 된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중립국인 유구를 건드린 잘못이 있으니 강화조약에서 더 큰 양보를 하게 만들고야 말리라.
“만적(蠻狄)이 감히 남방을 침범하여 함부로 행하니, 심기가 크게 불편하실 줄로 압니다. 마땅히 군사를 내어 대방(大邦)을 도와야 하겠으나, 저희 소방(小邦)에 넉넉한 군사가 없어 가세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유구는 매년 상절사, 하절사 두 차례 사신을 보낸다. 유구왕 상정은 이 2번 보내는 사신 중 1번은 꼭 상순을 보낸다. 세자가 사신으로 오는 건 분명 체면이 상하는 일일 텐데, 그건 신경 안 쓰는 모양이다.
내가 즉위하기 전부터 상순과 친분이 있었으니, 아마 그걸 노린 인선이겠구나 싶다. 나도 아무래도 안면 있는 사람을 더 좋게 대하는 게 사실이긴 하니 말이다.
“그대들의 성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한에는 산과 들을 메울 만큼 많은 정병이 있고, 유구가 보유한 상선보다 더 많은 전선이 있으니 굳이 그대들에게 원병을 받지 않아도 된다. 정 성의를 보이고 싶다면, 유구 상선이 상선 본연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남만에서 오는 소식과 물자를 운반하는 역할만 충실히 하라는 이야기다. 우리한테 필요한 전량을 조달하기야 물론 어렵지만, 초석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남만 쪽 사정을 살피는 정보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저희 유구가 사직을 유지함이 모두 대방이신 대한의 덕인데, 어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꺼리겠습니까. 성심껏 행하겠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상순에게서 내 호의를 이용해서 불손하게 굴려는 태도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흡족하다.
“그대들을 믿겠다.”
유구가 우리한테 칭신하지 않은 게 이런 식으로 써먹을 만한 명분이 되어 돌아오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정말 앞으로 일어날 일은 모르는 거다.
다만 유구 상선단에 요구하는 건 초석과 정보뿐이다. 쌀은 필요 없다. 주산진을 거쳐서 강남을 오가는 쌀 수송로는 아직 건재하고, 그쪽 말고도 안전한 쌀 공급원이 따로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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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에 식량을 공급하는 외부 지역은 크게 다섯이다. 우리 ‘내부’라고 할 수 있는 미주를 제외하고, 이제는 ‘내부’에 편입된 필리핀까지 제외한 나머지다. 건주(청+후금), 후송, 안남, 일본, 유구다.
청과 후금에서는 주로 밀과 생축(生畜)이 들어온다. 한반도에서 밀농사가 잘 안되는 거야 저쪽 세상이나 이쪽 세상이나 다를 게 없다. 물론 밀 생산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생산보다 수요가 더 많아서 그 차이를 메우느라 화북에서 배로 실어 온다. 매년 삼십만 석쯤 된다.
가축은 자기 발로 걸어온다. 초원에서 수입한 소와 양을 요동에서 옥수수와 감자로 잠시 살찌운 뒤 도축해서 고기로 만든다. 납육이나 순대(소시지)로 만들어서는 수레나 배에 실어 남쪽으로 보낸다.
후송은 굳이 설명할 것 없는 우리 쌀통이다. 화의를 맺어 대립 상태를 끝낸 만큼 별다른 위협 없이 식량을 수송할 수 있다. 두 항구 모두 주산군도가 보호하고 있으니 통상파괴를 시도하는 적에게 노출될 위험도 낮다.
안남과 유구는 순위가 훨씬 밀린다. 유구는 인구가 적어서 잉여 곡물도 적고 농업 자체가 상품작물 중심으로 기울어져서, 안남은 멀어서 그렇다. 그렇다 보니 두 나라 모두 기근이 심하다거나 해서 급하게 식량이 필요해졌을 때나 찾는 곳이 되었다.
마지막이 일본이다. 일본과는 평소 작황에 따라 서로 곡식을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사이다. 그런데…여기서 뜻밖의 연락이 왔다. 곡식을 팔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내 뒤통수를 치려는 게 아니었다. ‘공짜로’ 보내겠다는 제안이었다.
“예, 폐하. 지금 드린 서한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저희 대군께서 명하시기를, ‘우리 우방인 대한이 지금 양이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어찌 우리가 보고만 있겠느냐? 회답을 기다릴 것 없이 우리가 먼저 보낼 수 있는 것을 보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대군’은 일본국 대군, 즉 쇼군 요시무네를 말한다. 요시무네는 대략 4개월쯤 전에 친서를 보내 ‘군량이든, 선박이든, 군병이든’ 보내 돕겠으니 말만 하라고 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조정 중신들 역시 그 제안을 체면치레라고 생각하고 의례적으로 답했는데, 이렇게 온 거다.
그러고 보니 대한에서는 칭제건원 이후로 대군은 쓰지 않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대군’이 일본의 군주를 가리키는 말로 정착하는 거 아니려나 모르겠다.
“그래서 30만 석이나 되는 곡식을 우리한테 보내겠다고?”
일본 석으로 30만 석이라서 우리 석으로 바꾸면 60만 석 가까이 된다. 이런 막대한 양을 한꺼번에 운반할 수 없으니, 1차분으로 2만 석을 먼저 보내고 그 뒤로 꾸준히 보내겠다고 되어있었다. 대가를 한 푼도 받지 않고 말이다.
“고맙기는 하다. 헌데 대군은 어찌하여 그 막대한 쌀을 거저 내겠다는 것이냐?”
동평관에 주재하는 주재원들의 우두머리를 관수(館首)라고 한다. 지금 관수는 ‘진과(眞鍋, 마나베)’라고 하는 자인데, 막부의 직속 무사인 하타모토 출신으로 쇼군에게 상당한 신뢰를 받는 자라고 했다. 관수가 요시무네의 뜻을 열심히 전했다.
“대군께서는 청한 뒤에야 도움을 제공한다면 때에 늦을 수도 있다며, 미리 준비해야만 꼭 필요할 때 적절히 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생각 같아서야 군사를 보내서 싸움에 동참하고 싶으나, 공연히 한군(韓軍)의 방해가 될까 저어되어 곡식으로 대신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존심이 상해서 거부할까 봐 그랬는지, 관수는 이번에 보내는 쌀이 ‘가뭄 구제’를 위한 구휼곡이 아니라 ‘양이들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의미로 보내는 군량미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했다.
“저들은 불적(佛敵)입니다. 태황께서는 저 불적들에게 맞서 정의로운 싸움을 하고 계시니, 어찌 대군께서 열과 성을 다해 돕지 않으시겠습니까? 고작 쌀 몇 톨로 그 도움을 갈음함이 죄송할 뿐입니다.”
일본 측이 영란함대를 가리켜 ‘불교의 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나도 알 것 같다. 3년 전에 착안한 불교 성지 순례단 계획을 작년부터 외수사 주관으로 실행에 옮겼다. 일본에서도 꽤 많은 신청자가 몰렸지만, 해상봉쇄로 올해 봄부터 그 길이 막혀 버렸다.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된 사업이 외부 요인으로 엎어졌으니 무탈할 리 없다. 대한통보 80냥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뱃삯과 식대로 내고 순례선에 자리를 예약한 사람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접수를 맡은 외수사 상관은 한일 양국에서 모두 난리가 났다.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에게는 모두 환불해줬다. 하지만 돈을 돌려받았다고 모든 불만이 사라질 리는 없다. 드디어 성지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한껏 부풀어 있던 꿈과 희망을 빼앗긴 이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 방향은 당연히 해로를 막은 영란함대를 향했다.
대한에서야 성리학이 주류고 불교도가 많지 않으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불교가 말 그대로 유럽의 기독교 같은 위치에 있다. 난리가 나는 게 당연하다.
“그렇습니다. 당장 원정에 나서야 한다는 이들이 수천 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대군께서 이 문제에 관해 판단하시기를, 지난 백여 년 동안 전쟁을 모르고 살았던 우리 일본군은 제대로 싸울 줄 모르는 오합지졸이니 싸움터에서 방해가 되기보다 군량을 보내자 하셨습니다.”
“알겠다.”
일본군이 전쟁을 잊은 군대가 된 건 사실이다. 용병업도 송출만 하지 국내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하니, 훈련은 열심히 할지 몰라도 실전경험이 없는 건 분명하다.
여기에 출국자의 귀환을 금지하는 일본 현행법과 충돌하는 문제도 있겠지 싶다. 개인적인 출세를 위해 용병이 되러 나가는 것도 아니고, 성전을 수행하러 나간 성전사보고 집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될 테니까.
“그 뜻은 고맙다. 그러나 이웃의 도리로 볼 때, 가치가 백만 냥은 족히 될 쌀을 받으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 호부에서 대금을 지불하도록 하겠다.”
“아닙니다, 폐하. 대군께서는 폐하께서 분명 돈을 내려고 하실 것 같다면서 분부하시기를, ‘돈을 받으면 우리는 일개 장사치가 된다’라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 일본국이 동맹으로서 보이는 성의라고 보시고 받아주소서.”
관수는 정 쌀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싶다면 나중에 일본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하고 돌아갔다. 일본이 전쟁을 벌일 일은 없을 테니 기근이 왔을 때 구휼곡을 보내 달라는 의미겠지 싶다. 그러고 보니 텐메이 대기근이 18세기 말이었던가…? 아직 한참 남았구나.
“그대들의 생각은 어떤가. 대군의 청을 그대로 받아들임이 옳겠는가?”
중신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특히 호부대신 황재선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본국에서 평년에 거두는 곡식이 8천만 석인데, 올해 줄어든 수확이 대략 1할입니다. 그 60만 석으로 부족분을 모두 메울 수는 없으나, 여축(餘蓄)은 한 톨이라도 귀한 법입니다. 일단 받아두시고, 후일 때를 보아 그 값을 상환하시면 될 듯합니다.”
“알겠다.”
다른 신하들도 별 차이 없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일본이 신뢰할 수 있는 이웃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말이라, 기분이 참 묘하다.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때도 그랬다지만 그때는 내가 여기 없었으니까 말이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신하들이 모두 일본을 신뢰하고 있는데 나만 경인왜란 때를 떠올리면서 혹시 이놈들한테 뒤통수라도 맞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것도 기우가 될 것 같다. 어차피 지금 이 세계는 내가 알던 역사와 달라도 한참 달라졌으니, 신하들을 믿고 따라가 보자.
– 4 –
페어본 제독은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독으로 출격했다가 돌아온 퍼시 함장으로부터 전과 보고를 받으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은 티가 선명하게 났다.
“조선 상선 한 척을 나포하고 두 척은 겁을 줘서 쫓았다고?”
“그렇습니다, 각하.”
“잘했네. 수병들이 보수가 없다고 불평할 테니 나포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잡지 않고 쫓아버린 배가 많을수록 좋아.”
연합함대는 지금 보르네오섬 북부 해안에 닻을 내리고 있다. 스페인인들의 강력한 요구에 지친 두 제독이 결국 조선에 대한 통상파괴전을 벌이는 데 동의한 때문이었다.
“마닐라를 정면으로 공격하자는 헛소리에 응해주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동안 유럽에서 온 증원은 네덜란드군 보병 1천 명뿐이다. 그나마 이 병력은 원래 매년 질병 등으로 손실하는 병력을 보충하러 오는 것이고, 함대 수뇌부에서 보낸 증원 요청과는 별개였다. 알몬데와 페어본 두 제독이 보낸 증원 요청 편지는 아직 닿지도 않았으리라.
“우리 목적은 조선을 휴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거다. 귀관이 보고하기를, 조선인들도 확전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지? 그럼 이 정도면 충분할 거다.”
연합함대를 이끄는 두 제독은 조선 정부와 어서 강화를 맺고 프랑스 함대를 찾으러 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몇 달째 소식이 없는 그 프랑스인들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 문제야말로 이들이 진짜 풀고 싶은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