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53
3부 271화
장조 때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미안한 것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혜원이를 다이샨에게 시집보냈던 일이다. 혜연이는 자기 스스로 홍타이지를 배필로 선택했으니 미안하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혜원이는 달랐다. 본인이 혼인에 관해서 지각하기는커녕 아직 어린아이일 때부터 ‘장래의 청나라 황후’로 찍어 놓고 상희를 설득하고 앞길을 살폈다. 그래서 성공시켰다.
혜원이와 다이샨의 혼인은 순전히 내가 설계한 거였다. 혜연이가 홍타이지를 배필로 택한 것도 그 근원을 따져 보면 언니의 혼인에서 영향을 받은 일이었으니, 따지고 들자면 이것도 내가 만들어낸 혼인인 셈이다.
두 혼인의 결과 두 건주 황실은 우리 대한과 단단하게 결속될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유효한 결속 수단이었고, 효과도 좋았다. 그 뒤로 4대, 백여 년에 걸쳐서 건주 양국을 우리 울타리 안에 둘 수 있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두 딸과 헤어진 상희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내 딸들도 고향을 다시 밟지 못했다. 슬프게도 말이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보니 이번 생에서는 내 자식들은 되도록 국제결혼으로 내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쪽에서 오는 혼인이라면야 못할 것도 없지만, 이쪽에서 내보내야 하는 혼인이라면 안 하겠다고 말이다. 상희에게도 그렇게 약속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시아의 친어머니인 올렝카가 루시아한테 국제결혼을 시키고 싶다고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게 당최 무슨 영문인지.
“순비. 루시아는 이제 겨우 8살이오. 아직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밝게 자라야 할 어린 것을 두고 벌써 무슨 혼인을 생각하시오?”
황자, 황녀라고 해도 10살은 되어야 봉작을 받는 게 지금 대한의 법도다. 그 나이를 넘겨 봉작을 받은 내 자식은 아직 황태자로 봉해진 은이 하나뿐이다. 그래서 나머지 애들은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혼인하려면, 적어도 13세는 넘겨야 하는 법이오. 고작 8세밖에 안 된 아이가 어찌 남녀 사이의 정을 알겠으며, 아내로서 남편을 섬기는 도리를 알겠소? 물론 신랑이 될 차레비치도 불과 13세이긴 하나, 8세는 어려도 너무 어리오.”
나이만 문제가 아니다. 거리도 문제다.
“과거 장조께서 재위하시던 시절, 건주 왕자들과 혼인한 두 왕녀도 일단 혼인해서 떠나간 뒤에는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소. 하물며 러시아는 건주보다 훨씬 더 멀단 말이오. 떠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텐데, 그대는 그래도 괜찮단 말이오?”
성이가 특별히 배려한 덕분에, 상희는 그래도 심양까지 가서 두 딸과 외손자, 외손녀들을 만나고 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올렝카가 루시아나 외손자들을 만나러 모스크바···아니,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하다.
“폐하, 저도 고향에 가지 못합니다. 저도 1685년에 폐하를 따라나선 뒤로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살고 있어요.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에요.”
올렝카의 친모는 아직 벨라루스에 살아있다. 가끔 뱃길로 편지가 오기는 하지만, 연락은 그게 전부다. 올렝카를 낳은 뒤 새로 결혼해서 떠났기 때문에, 그쪽 가정에 충실하여지려면 자주 연락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만날 수 없는 건 괜찮아요. 그것보다는 그 아이가 군주의 딸로서 그 격에 맞는 배우자를 얻는 게 더 중요합니다. 폐하, 제발 루시아를 신하의 아내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그 아이는 ‘공주’입니다. 그 아이의 격에 맞는, 훌륭한 군주의 아내로 만들어주세요.”
대한의 ‘서자’는 유럽의 ‘사생아’와는 다르다. 분명히 공인받은 친자고, 우선권이 좀 밀릴 뿐이지 부친의 지위와 신분, 재산을 세습한다.- 올렝카는 자신에게 확신을 주듯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루시아는 공주예요, 폐하. 제발 그 아이의 격에 맞는 남편을 맞이하게 해주세요. 폐하는 그 아이가 8살이라 너무 어리다고 하시지만, 우리 왕비님께서는 불과 5살밖에 안 된 나이에 폴란드에 오셨어요. 결혼할 나라에 미리 오시느라고요.”
올렝카가 말하는 ‘왕비님’은 당연히 상희가 아니다.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왕비였던 프랑스 귀족 ‘마리 카시미르 루이스 드 라 그랑주 다르퀴앙’을 말한다. 얀 소비에스키는 죽었지만, 마리 왕비는 아직 살아있다. 지금은 로마에서 지내고 있다던가.
“왕실의 혼인이잖아요. 다른 나라로 시집간 공주가 평생 집에 올 수 없는 것 정도는 전혀 대단할 게 없는 일이에요. 8살이라 어리다고 생각하신다면, 일단 약혼부터 한 뒤에 몇 년쯤 데리고 있다가 보내셔도 돼요.”
하지만 자기는 되도록 일찍 보내서 자기가 왕비로 있을 나라에 빨리 적응하게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연히 시간을 끌다가 저쪽에서 파혼하고 다른 여자에 눈독을 들이기라도 하면 곤란하다면서 말이다.
올렝카한테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사벨만 봐도 그렇다. 아들까지 낳았는데 ‘추방된 대공 따위’에게는 관심 없다면서 나한테는 신경을 끊고 마음껏 편히 살지 않았는가. 하지만 올렝카는 절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후비 자리를 얻었다.
물론 자기를 찾아 폴란드까지 찾아오고, 결투까지 벌여 가며 부왕에게 승인을 받고자 한 내 노력 ?올렝카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 이 낭만적으로 비치기는 했을 거다. 하지만 신분 상승을 향한 욕구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거다. 그녀 자신이 사생아였으니까.
하지만 루시아는 공인된 ‘공주’다. 그렇다면 그 격에 맞는 남편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할 거긴 하다. 그리고 올렝카로서는 청나라나 후금, 일본 왕족보다는 아무래도 자기와 같은 유럽 출신 왕족에게 루시아를 시집보내고 싶겠지.
그런데···나로서는 걸리는 점이 하나 있다. 원래 세계에서의 폴란드와 러시아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순비. 루시아가 차레비치와 혼인하여 러시아 황후가 되면, 그 후계자는 그대의 부친이신 얀 3세의 혈손이 되오. 이를 명분으로 해서 러시아가 폴란드를 합병하려고 들면 어쩌겠소?”
폴란드, 아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선거제 왕정 국가이므로 소비에스키의 손자라고 해서 자동으로 계승권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소비에스키의 혈통을 받은 사람이 차르 자리에 앉는다면, 폴란드를 자기 영토로 만들 명분으로 삼으려 할 공산은 충분하다.
하지만 올렝카는 이 문제에 관해 나와 생각이 달랐다.
“그게 왜 문제가 되나요, 폐하? 러시아 차르라고 해도, 그의 몸에 얀 소비에스키의 피가 흐른다면 그는 폴란드인이에요. 폴란드인이 모스크바를 지배하는 거고, 그건 폴란드 국왕인 얀 소비에스키의 후손으로서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 될 거예요.”
올렝카는 아주 단호한 태도였다. 러시아가 폴란드를 먹는 게 아니고 폴란드인이 러시아 군주 자리를 차지하는 거라는 올렝카의 말을 들으니, 이 시대 기준으로는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시아에게는 의견을 들어보았소?”
“루시아는 아직 자기에게 무엇이 좋은지 모를 나이입니다. 그러니 아이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해주어야 하는 법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좋은 혼사입니다.”
올렝카는 가톨릭이지만 러시아는 정교회를 믿고 있으니 종교상의 문제가 있지 않으냐고 한 번 더 말려 보았다. 하지만 올렝카는 그 문제도 괜찮다고 했다. 내가 부탁하면 표트르도 루시아가 개인적으로 가톨릭을 믿는 정도는 허락할 거라면서 말이다.
이런 유연한 태도를 보니, 올렝카가 절반은 벨라루스 혈통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순수한 폴란드 귀족이라면 이렇게 쉽게 러시아 황실에 피를 섞느니, 종교가 달라도 상관없느니 같은 소리를 못 할 테니까 말이다. 벨라루스 쪽이 이런 면에서 훨씬 유연하다.
“알겠소. 생각해보지. 차레비치는 내년에 러시아로 돌아갈 테니, 여유가 있소. 시간을 좀 두고 생각해보겠소. 피곤하니 어서 잡시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올렝카는 여기서 조르기를 그치지 않았다. 옷을 벗는 동안에도, 그녀를 품에 안는 동안에도, 관계를 끝낸 다음에도 올렝카는 내 품에서 끈덕지게 졸랐다. 루시아를 알렉세이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거, 보위에 세 번 오르는 동안 이렇게 베갯머리 송사를 하는 후궁은 처음이로구나.
?
?7.
연합함대는 천천히 북상해서 대남도 인근까지 올라왔다. 전열함들은 따로 떨어지지 않고 한 덩어리로 움직였고, 프리깃함과 갈레온들은 주변 해역을 돌며 조선 상선을 찾다가 다시 모였다. 그동안 이들이 격침?나포한 조선 상선은 총 18척이었다.
북상한 연합함대에서는 다시 수뇌부가 모여 회견을 열었다. 장소는 알몬데 제독의 기함 그로테 아에올루스였다. 다만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참석자가 세 사람뿐이었다. 아우토른 총독이 배 세 척만 보내고 자기는 바타비아에 남았기 때문이다.
“몇 달에 걸쳐 그렇게 싸웠는데 전과가 이거밖에 안 된다는 건 말도 안 되오. 당신들 두 사람, 정말 싸울 의사가 있는 거요?”
?스페인 함대 사령관, 후안 마르틴 제독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동안 잡은 조선 상선 18척 중 스페인 함대가 잡은 배가 11척, 잉글랜드 함대가 잡은 배는 4척, 네덜란드 함대가 잡은 배는 3척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모인 함대는 네덜란드 함대 6척에 잉글랜드 함대 10척, 스페인 함대 4척이다. 현재로서는 이들이 연합군이 투입할 수 있는 함대 전부였다.
“우리는 그대들보다 훨씬 수가 적소! 전열함을 빼도, 비슷한 정도밖에 안 되오. 그런데도 대부분의 전과가 우리가 올린 거라니? 이게 말이 되는 거요?”
후안 마르틴 제독은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함대가 제대로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분노를 터트렸다. 하지만 알몬데 제독은 무표정한 얼굴로 못 들은 척했고, 페어본 제독은 대놓고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투로 딴청을 피웠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도 마찬가지요! 수백 척이나 되는 배를 가지고 있으면서 보낸 배가 겨우 세 척이라니! 너무 태만한 것 아니오?”
아우토른 총독이 보낸 동인도회사 함선들은 3백 톤에서 5백 톤의 소형선으로, 전투보다는 주변 상황을 살피는 정찰대 역할을 맡았다. 대형선은 한 척도 보내지 않았다. 후안 마르틴 제독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후안 마르틴 제독, 동인도회사로서는 회사 운영을 위해 조선과의 전쟁보다는 현지에서의 교역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 세 척을 제공한 것만 해도 동인도회사로서는 충분한 성의를 보인 셈입니다. 대신 우리 함대가 있지 않습니까.”
알몬데 제독이 나서서 대신 사정을 설명했다. 일단은 부재중인 아우토른 총독을 대신해서 동인도회사 편 입장을 대변할 필요가 있었다. 스페인 함대도 명색이 동맹군이니만큼 닥치고 따라오기나 하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바타비아에서는 이런 쪽으로 부담이 조금 덜했다. 아우토른 총독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은 하지 않았지만, 현지 사정에 밝은 연장자로서 어느 정도 양 진영의 갈등을 완화하는 중재자 역할을 했었다. 그런 그가 오지 않으니 스페인 측과의 사이가 예전보다 더 껄끄러워졌다.
두 제독 중에 페어본 제독이 특히 더 후안 마르틴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알몬데 제독은 총사령관이라 화가 나도 드러내지 않고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페어본 제독은 나이도 젊고 그보다 성격도 급했다. 화가 나면 오래 참지 않았다. 비아냥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해서 동맹군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누구만 아니었으면 동인도회사 상선을 전함으로 차출하네, 마네 할 필요도 없었지요.”
페어본 제독이 얼굴에다 비웃음을 띄우면서 빈정대는 말을 던졌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후안 마르틴 제독이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며 허리에 찬 칼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날 모욕하는 거요!”
페어본 제독은 일어나지도 않고 자리에 앉은 채 아무 말 없이 스페인인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알몬데 제독이 한숨을 쉬며 탁자를 두드렸다.
“진정들 하시오. 우리끼리 싸우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잖소. 프랑스 놈들이 도대체 어디쯤 있을지나 계속 논의해 봅시다.”
연합함대는 보르네오 북부에서 천천히 북상했다. 대남도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항로를 봉쇄하면서 프랑스 함대가 나타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나타나면 곧바로 영격하여 섬멸하고 유럽으로 돌아갈 셈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함대는 8월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동인도 어디에서도 프랑스 함대를 목격했다는 보고는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알몬데 제독과 페어본 제독은 프랑스 함대가 조선 영해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 직접 다녀온 퍼시는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약탈을 미끼로 모집한 선원들을 놀릴 수 없을 거라는 게 이유였지만, 놀리면 또 어떻단 말인가.
“굳이 새로 약탈하지 않아도 선원들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는 있지요. 작년에 신대륙에서 빼앗은 재물을 조금만 헐어 쓰면 되니까 말입니다.”
놀고먹는 게 싫다는 사람은 없다. 위험한 싸움을 안 해도 돈을 준다면 더더욱 좋다. 처음 계약할 때 약속한 대로 보수를 지급하기만 하면 배가 어디 정박하건 선원들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알몬데 제독이 한숨을 쉬며 결론을 냈다.
“하려고만 하면 프랑스 함대는 30년이라도 조선에서 빈둥거리면서 버틸 수 있을 거요.”
그 말을 들은 후안 마르틴이 또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조선에 대한 강경한 군사행동을 재촉했다.
“그럼 당장 배를 몰아서 북쪽으로 올라갑시다. 가서 조선 해역을 뒤져서 프랑스 함대를 찾아내는 거요. 그리고 얼른 일을 끝냅시다!”
후안 마르틴 제독은 어서 프랑스 함대를 섬멸하러 가자고 두 사람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선임인 알몬데 제독은 눈을 살짝 감으면서 신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하오. 조선 본국에 얼마나 많은 함대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진입하다가는 우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소.”
알몬데 제독이 망설이는 태도를 본 후안 마르틴이 버럭 화를 냈다.
“마닐라 탈환도 못 하겠다! 조선 본토에 대한 공격도 못 하겠다! 그대들은 우리 동맹국이 아니오? 그대들이 우리 스페인의 동맹으로서 해준 일이 도대체 뭐요? 우리가 필리핀을 도로 찾게 해줄 의사가 있기는 한 거요?”
마닐라는 거북선이 지키고 있다. 스페인 함선들은 마닐라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 남쪽에 있는 다른 섬에는 가보았다. 그리고 마닐라에 있는 조선 함대 규모를 파악했다. 조선인들은 마닐라에 적어도 40척은 되는 함선을 모아놓고 있었다.
“그대들은 마닐라만 입구가 좁아서 진입하기 어렵다고 했소! 그럼 넓은 바다에 면한 조선 본국이나 대남도는 왜 안 치는 거요? 어디라도 쳐서 함락해야 나중에라도 필리핀과 교환할 수 있을 게 아니오!”
얼굴을 볼 때마다 이렇게 다툼이 벌어진다. 알몬데 제독은 한숨을 쉬었고, 페어본 제독은 비웃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쨌건 이들 두 사람은 스페인 제독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 움직여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쩔 거요? 이 바다 위에서, 아무 계획 없이 멍하니 서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만 기다릴 거요?”
후안 마르틴 제독이 신나게 퍼부어대자 한숨을 쉰 알몬데 제독이 입을 열어 뭐라고 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노크 소리가 나더니 사관후보생 한 사람이 급히 사령관실로 들어와서 제독에게 경례했다.
“각하! 남쪽에서 조선 함대가 나타났습니다! 22척이나 됩니다!”
“적이 먼저 나타나 주다니! 좋소, 격멸합시다!”
일어서 있던 후안 마르틴 제독이 환호하더니 당장 갑판으로 달려 나갔다. 다른 두 사람은 눈길을 마주하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왜 하필이면 지금 조선 함대가 나타났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