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6
1부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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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위사는 별도로 관청 건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의금부 내에 있는 작은 기와집 하나가 금위사 건물이었다. 현판에도 그저 광명당(光明堂)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썩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임금이 내려준 어필(御筆)이다. 귀한 물건이었다.
“여러 중신들이 또 은밀하게 모였단 말이지.”
광명당 안에 있는 집무실에서 정호찬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화창한 가을에, 기분을 별로 좋지 않게 하는 보고였다.
“그래, 이번에는 어디인가?”
“이번에는 성 밖입니다. 파평부원군이 도성 바깥에 별서를 가지고 있는데, 이틀 전에 여러 중신들이 거기서 모였답니다. 그 인근에 살고 있는 내수사 노비가 알려왔고, 녀석이 적어서 보낸 명단도 여기 있습니다.”
부하인 도사 최신우가 긴장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전부 5명인 의금부 소속 도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금위사 전속으로 있으면서 정호찬에게 지시를 받는 이다.
“평소 파평부원군도 자주 찾지 않아 집 지키는 하인배들 말고는 인적이 없던 곳인데 갑자기 사람이 들끓어 수상했다 합니다. 마침 이 자가 한때 도성 안에서 일하며 고관들 얼굴을 익힌 터라, 드나든 이들 중 몇을 알아보고 이름을 적어서 보냈습니다.”
별서(別墅)는 동리 바깥, 농장이나 들판 근처에 한적하게 지은 별장을 가리킨다. 대토지를 보유한 권신들은 여러 채씩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 명단 이리 줘 보게.”
정호찬은 밀정으로부터 제출된 명단을 조심스럽게 받아 펼쳤다. 손바닥 만 한 작은 종이쪽 위에는 임금 모르게 비밀스러운 모임을 가진 조정 중신들 십여 명의 직책과 이름이 국문으로 적혀 있었다.
“파평부원군의 별서라더니 파평부원군은 왜 명단에 없는가?”
“소인도 그 연유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없었다 합니다.”
가능성은 두 가지일 것이다. 회동을 갖는 자들이 윤필상에게 장소만 빌렸거나, 아니면 윤필상도 일당이지만 사정이 있어 이번에는 참석하지 않았거나. 정호찬은 종이에 적힌 이름들을 위에서부터 다시 한 번 차례로 읽었다.
“저번 보고에는 없던 자들이 있는데…빠진 이들도 있으니 패거리가 늘어났는지는 판단하기 힘들군. 헌데 적혀 있는 직책과 이름이 안 맞는 이유는 뭔가? 죄다 2,3년 전에 지내던 벼슬로 적혀 있지 않나.”
“발고한 자가 도성을 떠난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된 탓에, 자기가 본 여러 고관들의 얼굴은 기억하나 현재 어떤 직책에 있는지는 다 알지 못하여 자기가 아는 대로 적었다 하옵니다.”
정호찬은 천천히 손가락 사이에 끼운 석묵필을 돌렸다. 내수사가 만들어 파는 이 석묵필은 심이 잘 부러지고 심이 짧아지면 칼로 깎아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먹물을 쓸 필요가 없고 휴대하기 편했다. 대나무로 된 뚜껑을 씌우면 심이 부러질 걱정도 줄일 수 있었다.
다만 손이나 옷에 잘 묻을뿐더러 묻으면 잘 안 지워지기는 하지만, 이건 그전에 쓰던 먹도 마찬가지였으니 별로 특별한 단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 어르신들이 언제부터 이리 모이기 시작했지?”
몰라서 묻는 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려면 남이 일러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작년 말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서너 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겨울을 지나면서 조금씩 숫자가 늘었습니다. 지금처럼 많아진 건 지난 대마도 정벌 때입니다.”
세조가 죽은 지 33년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조정 중신들 상당수는 세조 때부터 벼슬자리에 있던 이들이다. 그들이 특별한 연계를 가지고 모인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만약에 중신들이 욕심을 채우려고 붕당을 이룬다면 그건 엄청난 문제다. 하지만 그런 삿된 목적 없이 그저 만나서 얼굴이나 본다면 그건 양반들이 늘 하는 일이다. 뭐가 문제겠는가?
다만 지금 보고가 들어온 일은 그렇게 속편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차라리 잔치를 열거나 해서 공공연하게 대놓고 모인다면 도리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고관들은 다른 이의 시선을 피해서 남몰래, 그것도 여러 차례 계속해서 모이고 있었다.
“이번엔 저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알아냈는가?”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발고한 자는 별저 밖에서 동태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데다, 그 별저에 있는 파평부원군 댁 하인들 중에는 우리 끄나풀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알겠네. 가서 일 보도록 하게.”
보고를 마친 최신우가 예법대로 상관에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정호찬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조용히 고발장을 들어 다시 한 번 또 읽었다.
– 16 –
“포도대장 영감, 이상한 낌새가 있습니다.”
“이상한 낌새라니?”
포도대장 정유지가 깜짝 놀랐다. 흉년 때문에 지방에서는 난리라지만, 그래도 도성 안팎은 조용하다. 포도청에도 늘 잡혀오는 잡범들 뿐, 별다른 사건도 없는데 이상한 낌새라고?
하지만 그 앞에 서있는 종사관 박헌에게는 달랐다. 박헌에게는 분명히 정유지에게 보고해야 할 만큼 수상한 일이 있었다.
“요즘 조정 고관들, 특히 공신으로 훈위를 받은 이들이 가끔씩 따로 회동하는 모양입니다.”
“대신들이 모이는 게 뭐가 이상한가? 모여서 시도 읊고, 술도 나누면서 교제하는 건 누구나 다 하는 일이 아닌가. 나도 친우들과 어울려 모임을 갖네. 흉년이라 횟수는 줄였네만.”
정유지는 별일 아닌 걸 가지고 왜 난리를 피우냐는 듯 허탈해진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박헌에게는 지금 가지고 온 보고가 절대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예, 영감께서도 시회(詩會)를 종종 가지시지요. 하지만 영감께서는 출타 때 당당히 자태를 드러내고 벽제를 하면서 보교를 타고 가십니까? 아니면 몰래 나귀를 타고 가십니까?”
“그야 당연히 벽제를 하고, 보교를 타고 가지.”
보교(步轎)는 종2품 이상 관리가 타는 가마다. 벽제(?除)는 임금이나 정3품 이상 가는 관리가 길을 갈 때 앞을 막은 이들에게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포도대장은 종2품이므로 보교를 타고, 벽제를 할 수 있다.
“헌데 가마를 타고 벽제를 하며 편히 길을 갈 수 있는 대신이, 나귀를 타고 조용히 댁에서 나갔다고 하면 그게 당연한 일이겠습니까? 그것도 성 밖에 나가는데요?”
박헌이 자기 눈으로 분명히 보고 온 사실이었다. 처음에 도성 안에서 보았을 때는 보름쯤 전이었는데, 그다지 생각 없이 지나쳤다. 헌데 이틀 전 서대문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또 마주쳤다. 그것도 여러 명이 하나같이 조용히 성문을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어쩌다 한 명이 그러고 지나갔다면 그저 조용히 길을 지나가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시에 여러 명이? 이건 평범한 외출이 아니다. 이틀 동안 혼자서 고민했지만 이건 분명히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 그건 확실히 당연하지 않네.”
그제야 정유지도 문제가 심각함을 깨달은 듯했다. 상관이 사태가 심각함을 깨달았다고 여긴 박헌이 한숨을 쉬었다.
박헌은 지난번 숙의 홍씨 사건 이후 포도청 종사관으로 승진했다. 품계도 정5품을 받았다. 이로써 그는 명실상부한 포도청 2인자가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포도청 직제에는 종6품 관직인 종사관에서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었다. 바로 위가 포도대장이니 말이다.
설사 정유지가 퇴임한다 해도, 본래 중인인 박헌이 포도대장이 될 리는 없었다. 애초에 그 스스로도 그런 욕심은 갖지 않았다. 그저 직무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었다.
“분명히 뭔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도성 내에 별다른 소문은 퍼지지 않았습니다만, 대신들 저택 주변에 포교들을 깔아서 대비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혹시라도 어떤 불미스러운 일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닌지 미리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헌도 요즘 공신들이 동요한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주상이 공신전을 없앴다고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도성 안팎에 퍼졌고, 그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매우 고소해하고 있었다.
백성들에게 있어서 공신들이란 재산을 잔뜩 가지고 위세를 부리면서 세금도 잘 안 내는 고약한 존재들일 뿐, 존경이고 뭐고 없었다. 그런 얄미운 자들이 골탕을 먹는다면 백성들에겐 재미있는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설마 대감들이 뭔가 불측한 일을 꾸미는 건 아니겠지. 무오년에 배가놈 일도 있고, 지난번 홍씨네 일도 있어서 주상께서 역모라면 아주 진저리를 치시는데….”
정유지가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박헌 역시 식은땀이 흐르는 차가운 느낌에 등이 섬뜩했다. 진짜건 가짜건 역모가 적발되었을 때 관련자들이 무사했던 적은 없다. 다른 이도 아닌 조정 고관들이 역모 혐의로 걸려든다면, 무오년과 비교도 안 되는 피바람이 닥칠 게 분명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별 일…아니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자네가 포교들 몇을 뽑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게. 정말 만약의 경우…지만 혹시 다른 종친들과 그 대신들 사이에 연락이 있는지도 살피고.”
잠시 머뭇거리던 정유지가 단호하게 강조했다.
“포교들 중에서도 정말로 입이 무거운 이들을 골라 투입해야 할 것이야. 혹시 입을 함부로 놀리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터질 수 있으니 말일세.”
“여부가 있겠습니까, 영감.”
– 17 –
집으로 돌아온 정호찬은 사랑방에서 혼자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고관들, 대부분 공신들이라.”
저들은 그간 수많은 정치적 위기를 헤치고 나온 노신들인 만큼, 입조심이 생활화되어 있다. 주고받은 이야기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나쁜 일을 꾸민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공신들이 나눴다는 대화 주제는 요즘 주상이 자꾸 자기들 뜻에 어긋나게 움직이는데 대한 단순한 푸념일 수도 있고, 반역 모의일 수도 있다. 가능성은 어느 쪽으로든 열려 있다. 하지만 분명 뭔가 있음은 분명하다. 냄새가 풍긴다.
“아직 반역을 시도할 시점은 아니라고 보았는데.”
임금과 신하들이 중시하는 국정 운영 방침이야 서로 어긋날 수도 있다. 임금이 결정한 바에 대해 신하들이 반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신하들이 요구하는 바가 임금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서로 언쟁을 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저 생각이 다르다고 임금이 신하를 처형하거나 신하들이 군주에게 무기를 겨누는 상황이 발생할 때다. 전조인 고려에서는 그런 폭정도 반란도 드물지 않았지만, 이 조선왕조가 시작된 이래 그런 상상하기 힘든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신들이 절대 바라지 않을, 저들의 재산을 빼앗는 정책을 주상이 공표했기 때문이다. 바로 공신전 속공 정책이다.
지금 공신전을 가진 공신들은 대개 세조 때 계유정난과 금성대군 숙청, 이시애의 난 진압, 예종 때 남이의 난 진압 등에 참여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다. 여기에 성종을 즉위시킨 공으로 공신이 된 이들이 일부 추가된다.
세조도, 성종도 본래 정통성이 취약한 이들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임금이 될 수 없었던 이들 두 사람은 무력으로 상대를 배제하거나(세조) 대왕대비의 간택으로(성종) 보위에 올랐다.
이들은 부족한 정통성에 따른 취약한 기반을 보완하기 위해서 공신위를 남발했다. 그 결과 세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공신 출신들이 조정을 주름잡고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들은 그 힘으로 막대한 부도 쌓았다. 공신전 속공은 그 성에서 빠져나가는 첫 번째 초석인 셈이다.
“기싸움…아직은 기싸움이라 할 수 있겠지. 노신들 중 위협을 느낄 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반기를 들기에는 때가 일러.”
분명 권신들은 임금의 조치에 반발심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공신전 회수 조치는 공신전을 수여받은 당사자로부터 5대가 지났을 시점에야 실제로 시행된다. 적어도 백 년 이상 지난 뒤라는 이야기다.
과연 이 법안이 실시될 것인가? 4대 뒤라고 하면 먼 훗날이고, 임금도 최소한 서너 명은 바뀐 뒤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금상은 공신들에게 땅을 회수하려고 하지만 다음, 혹은 다다음 임금은 공신전을 계속 가지고 있으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설사 금상이 세운 공신전 속공 방침이 유지된다고 해도 공신들이 지금 가진 공신전을 계속 유지할 방법은 있다. 결코 속수무책으로 빼앗겨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과연 실행될지 안 될지도 알 수 없는 조치를 가지고 권신들이 반역을 도모할지는 미지수로 볼 수밖에 없다. 4대 뒤에 일어날 불확실한 손해를 위해 지금 당장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쓸까? 이미 많은 걸 가진 공신들이 말이다.
정호찬은 금상이 그저 조세 수입을 늘리려고 공신전 속공을 언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금상은 공신전을 미끼로 해서 공신들에게 ‘계속 능력을 보이며 충성하지 않으면’ 부와 명예를 계속해서 누릴 수 없다는 의도를 전달하려 했으리라.
이번 대마도 정벌이 좋은 사례다. 총지휘를 맡은 이극균과 왜 수군을 대파한 이양 등 주요 장수 13명, 그리고 전공을 세운 군관과 군사 52명이 1등부터 3등까지 공신 칭호를 받았다. 이들 중 공신전을 받은 이는 없지만 노비와 저화는 모두 풍족하게 받았다.
또한 금상은 앞으로도 외정을 벌일 계획임이 분명하고, 군공을 세운 이들에게 크게 포상을 내릴 생각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주기적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우기만 한다면, 공신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추후 재정이 호전되면 공신전을 다시 내릴 수도 있다.
전공을 세운 이들만 공신이 된다면 문관들에게 불리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정벌을 지휘한 우의정 이극균, 병조판서 이극돈, 군사에서 현재 최고의 발언권을 지닌 좌의정 성준부터가 다 문관 출신이다. 능력만 있다면, 문관도 얼마든지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