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64
3부 282화
– 1 –
“폐하, 옥체 무탈하시온지요.”
“그래. 그대들도 다들 평안한가.”
자리에 앉았다. 정무를 볼 시간이다.
“비가 내린다는 소식은 좀 있는가.”
지금은 을유년, 1705년 봄이다.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필리핀 총독부에서 저지른 조선인 이주민 학살 때문에 시작된 이번 전쟁도 벌써 3년 차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올해도 작년에 이어 또 가뭄이 들 조짐이 보인다.
“비가 내릴 기색은 아직 별로 없사옵니다. 송구하오나 관상감에서 말하기를, 아무래도 또 가뭄이 들 듯하고 피해도 상당하리라 하옵니다.”
“하아, 참으로 안타깝구나. 다 내가 부덕한 탓이로다.”
무종 때부터 전력을 다해 가뭄 대책을 마련했다. 최대한 많은 보와 저수지를 쌓고, 물을 퍼 올릴 인력?축력?증기력 수차(양수기)를 제작해서 설치하고, 우물을 다수 파서 지하수를 확보했다. 모은 물을 흘려보낼 도수로도 만들었다.
이제는 북도, 만주에도 이와 같은 수리시설을 갖추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본국에서 2백 년 동안 쌓아 올린 것과 같은 수준으로 기반시설을 구축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현재 대한의 기술 수준을 생각하자면 최선을 다한 대비다. 하지만 비가 아예 안 와버리면 이런 대비도 충분한 게 못 된다. 지금 팔당댐이나 소양강댐을 쌓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건 2백 년은 지나야 가능할 일이다.
시간만 문제인 게 아니다. 전쟁 때문에 전비가 막대하게 들다 보니, 수리시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넉넉하지가 못하다. 예상 밖으로 길어진 전쟁을 어서 끝내야 할 필요가 자꾸 커진다.
“그렇다고 하여 본국의 농사를 폐농할 수는 없는 일이니, 댈 수 있는 물은 최대한 농지에 대도록 하라. 올해도 작년 수준으로 가뭄이 든다면, 농사에서도 작년 정도 수확은 내야 할 게 아니겠느냐.”
작년 농사는 결국 평년보다 10% 정도 수확이 줄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선방한 셈이다. 줄어든 10% 정도는 일본이나 후송에서 곡식을 수입해서 보충할 수 있고, 을병대기근 이후 교통망도 많이 보완했으니 이 정도라면 아사하는 백성들이 나올 만큼 큰 피해는 아니다.
“기우제를 올려도 좋겠냐는 장계를 올린 지방관들이 여럿 있다 하였는가? 올려도 좋으니 제물을 조달한다는 핑계로 백성들에게 과도한 재물을 걷지만 말라고 주의를 시켜라. 옛날에 장조께서도 철저히 강조하신 바가 아니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기우제 따위 아무리 지내봐야 소용이 없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하지만 기우제라도 안 지내면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백성들이,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다는데 그걸 못 지내게 할 필요도 없다.
“남쪽에서는 별 소식이 없는가?”
“예, 폐하. 양군 주력은 서로의 위치를 탐색하며 대치한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작은 배들이 서로의 틈을 노리며 유격전을 감행하는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사옵니다.”
작년 양력 9월에 이홍원이 거둔 대승리는 조야를 기쁨 속에 빠트렸다. 첫 승전이던 루손 해전에서보다도 훨씬 큰 전과를 거뒀으니 실로 대승리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적 사상자는 미상이다. 하지만 적선 1척을 격침하면서 1척을 대파했고, 추가로 4척을 더 나포했다. 포로는 5백 명에 달한다. 이 소식이 조보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으니, 온 조야가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그 이후로 큰 싸움은 없었다. 이홍원은 ‘나포한 적선은 모두 서반아 함선으로, 정식 전선이 아니라 무장상선이므로 잉내 양국 전선은 대부분 온전’하다는 점을 명시한 장계를 올려 아직 우리가 저들보다 우세하다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저들도 언제까지나 대신기전 몇 발을 두려워하여 싸움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맞대결하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하니 장차 우리가 전선을 더 확보하여 저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기 전까지는 결전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되도록 빨리 적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스페인과의 전쟁은 완전하게 승리로 끝났고 잉내 양국과는 꼭 싸워야 할 이해관계도 없는데, 굳이 전쟁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당연하지만 그 화평 교섭은 조정이 맡아야 할 몫이다. 일선 사령관에 불과한 이홍원이나 장희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바타비아에서 패한 직후였다면 강화 주장에 대한 반발이 컸으리라. 그건 굴욕적인 항복과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승전으로 그때 입은 충격을 충분히 설욕하고도 남았으니, 조정에서도 지금 시점에서 강화를 고려할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그래서 해전 이후 바타비아로 물러난 영란함대가 통상파괴전을 재개했음에도 바로 보복을 개시하지 않았다. 대신 강화협상을 시도하러 간 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양력 10월 13일에 제물포를 떠난 우리 사자는 4개월 만에 강화를 거절하는 답을 받아 돌아왔다.
사자가 받아온 영란함대 사령관, 알몬데 제독이 보낸 답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개전 전에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 화전 선택에 관한 재량권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다’라고 말이다. 해전에서 함선 손실까지 입었으니, 이대로 전투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었다.
“저들은 런던에 있는 국왕의 허락 없이는 강화를 맺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우리 상선과 항구를 덮치는 일도 멈추지 않고 있으니, 강화 의사는 없다고 보아야 할 듯합니다.”
“우리도 전선을 내보내서 저들의 항구와 상선을 습격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저들이 먼저 시작하고 그치지 않으니 우리도 따라갔을 뿐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유격전’이 통상파괴전을 뜻한다. 영란함대는 아직 남은 프리깃함 일부를, 우리는 빠른 갈레온을 내보내 공공연하게 서로의 통상로를 공격하고 있다. 호송대를 배치한 덕분에 큰 피해는 없으나, 신경을 건드리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저들이 마음을 돌린다면 강화는 언제든 가능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잡아놓은 포로들을 대우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
지금 우리가 잡아둔 포로는 3천 명쯤이다. 당연하지만 모두 스페인군이다. 5백 명은 저번 해전에서 사로잡은 수병들이고 나머지는 마닐라에서 잡은 육군이다.
육군 포로는 전원 스페인인과 메스티소다. 일본인 포로는 우리 쪽으로 전향했고, 원주민 포로는 장희재의 건의에 따라 모두 석방했다. 원래는 민다나오 같은 남부 토벌에 투입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럴 사정이 아니다 보니 민심이나 얻자고 충성 서약을 받고 풀어주었다.
건기를 맞아 강력한 토벌을 전개하면서 포로를 석방하는 화전 양면 전술을 편 결과, 루손 중부 및 북부 지방에서는 반항하는 원주민들이 거의 소멸했다. 안정기에 접어든 셈이다.
다만 필리핀이 아닌 대남도에 있는 수병 포로들은 구성이 육군과 좀 다르다. 절반 이상이 스페인 측이 바타비아에서 고용한 동남아 원주민과 중국인 해적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문제, 스페인 해군 포로들의 출신이 각기 다르다는 문제 때문에 조정 내에서 그 처우를 두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지금 그 문제가 다시 거론되는 참이다.
“폐하. 왕명을 받고 싸움에 나선 서반아인 선원들은 마땅히 포로 대우를 해야 하겠으나, 금전을 노리고 참전한 묘인이나 오인들은 도적이나 마찬가지니 굳이 포로로 대우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라도 모조리 참하거나, 노비로 삼아 노역에 투입하소서.”
대한에서는 중국인, 특히 후송인들을 통상적으로 지칭할 때는 한인(漢人)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노비나 포로처럼 그 격이 떨어졌을 때는 가차 없이 묘노(苗奴), 묘인(苗人) 등으로 바꿔 부른다. 배필로 삼으려 사들이는 여자들은 당녀(唐女)라고 해서 또 격에 차이를 둔다.
오인(烏人) 역시 마찬가지다. 동남아시아 원주민을 비롯한 흑인 전반을 가리키는 비칭이 ‘오인’이다. 현대 속칭과 비교하면 ‘깜둥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래도 사람 취급은 해주니 ‘오귀자(烏鬼子)’라고 부르며 귀신 취급하던 원래 조선보다는 낫다고 봐야 하는 건지.
“남변에서 잡은 총독부 예하 토인 포로들이야, 서반아 국왕의 이름으로 소집한 관군이니 당연히 포로로 대우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대남에 있는 자들은 본래 해적으로, 우리 백성을 노략질하려는 욕심 때문에 나섰습니다. 그러니 어찌 같은 열에 두어 포로로 삼겠습니까?”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설치는 중국계 해적들에 관한 대한에서의 인식은 매우 나쁘다. 오직 하나의 예외가 정가군인데, 그것도 ‘해적치고는 기특하게’ 봐주는 정도지 절대로 좋게 보는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마땅히 군병이 아니라 도적으로 간주하여 모두 참하거나 노비로 삼아야 합니다. 어찌 잠시 노역하는 것으로 그 죄를 모두 씻겠습니까?”
필리핀과 대남도에 있는 스페인군 포로들은 도로 정비나 저수지 건설 같은 잡다한 노역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밥값 대신이라는 의미인지라 진짜 노비를 대하듯이 채찍을 휘두르며 중노동을 시키지는 않는다. 유럽에서도 포로를 그렇게 대우하는 시대가 아니기도 하고.
조정 일각에서는 이런 대우에 불만이 있다. 과거 경인왜란 때 왜군 포로들을 모두 노비로 삼았듯이, 스페인군에 속한 중국인과 말레이인 포로들도 노비로 삼자는 거다.
“쉽게 말할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편에도 우리가 고용한 왜병이 있고 정가군이 동원하는 해적들이 있는데, 그들이 적에게 붙잡혔을 때 도적 취급을 받아서 처형당하게 해야겠는가? 후자야 그렇다 해도 전자는 왜인일 뿐이지 명백한 우리 군사가 아닌가.”
소문이 과장될 위험도 있다. 내가 스페인인 포로들도 노예로 삼는다는 잘못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연합군 쪽에서 앞으로 우리 포로를 어떻게 취급할지 모른다. 저쪽은 ‘개전 전’에 붙잡았다는 이유로 우리 수졸들을 별 조건도 없이 석방해주지 않았던가.
물론 바타비아 항구 봉쇄에 따른 배상금을 받고 나서 석방하긴 했지만, 어쨌든 연합군이 포로를 온당하게 대우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 먼저 포로를 처형하거나 노비로 삼을 수는 없다. 그것도 직접적인 범죄가 아니라 용병이라는 신분을 이유로 삼아서 말이다.
“그보다, 군기시에서 이번에 실어 보낸 물건들은 무사히 도착하였느냐?”
화제를 바꾸려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병부대신 송재권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예, 폐하. 도중에 적선을 만나기는 하였으나, 호송을 든든하게 붙인 덕에 기갑선과 함께 도중에 해를 입지 않고 남중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고생이 컸다. 요소(要所)에 설치하여 적을 막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 애초 설계와는 다르게 쓰게 되었으나, 이번에야말로 도움이 되겠구나.”
이번에 새로 건조한 기갑선 2척을 마닐라에 증파하면서 함께 보낸 지원물자는 탄약이나 식량만 있는 게 아니다. 군기시 창고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귀차를 드디어 보내버렸다.
김지가 만든 귀차는 그 덩치 때문에 도저히 원래 설계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오직 한 번 있었던 실전 투입 기회인 경인왜란 때도 전차가 아니라 조립식 보루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기껏 설치한 길목에 왜군이 나타나지 않아 포 한 발 쏘지 못했고 말이다.
성이 시절에 증기기관을 실어서 움직여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너무 무거워져 실패했다. 내가 즉위한 뒤에 다시 살펴봤지만, 역시 캐터필러를 쓰지 않고는 답이 안 나온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끝내 관리는 하되 창고를 떠날 일이 없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렇게 백 년 전부터 재물로 잡혀 군기시 창고 안에서 터줏대감이 되어있던 물건이 이번 전쟁으로 드디어 용처를 찾았다. 마닐라만 방어를 위해 필리핀에 보내서 만 입구 주변에다 설치하게 한 거다. 이름도 바꿨다. 귀소(龜巢, 거북이집)라고 말이다.
‘귀차’가 지금 장갑차를 가리키는 별칭이 되었듯, ‘귀소’는 앞으로 이런 소규모 방어거점을 가리키는 별칭이 될 듯하다. 이를테면 토치카와 같은 의미가 되겠다.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논의를 진행하다 보니 문득 마음 한쪽에 허전함이 밀려왔다. 이쪽 세상에서 내 반쪽이나 다름없는 사람, 지난 20년 동안 내 곁을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던 사람이 이제 조정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이형준이 죽었다.
“폐하, 우승상이 고뿔에 걸려 등청하지 못한다고 하옵니다.”
“요즘 업무가 지나치게 많았으니 몸이 좋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내의원에서 고뿔에 좋은 보약을 내리고, 수라간에서는 보양이 될 음식을 내리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형준은 나와 함께 미주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도 중병을 앓은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건강했다. 그래도 워낙 나이가 많다 보니 조만간 퇴임하고 기로소에서 여생을 편히 보내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이놈의 전쟁이 끝나지 않는 바람에 자꾸 그 시점이 늦어졌다.
그러던 참에 병이 났다고 하기에 마침 잘 되었구나 싶어서 집에서 몸을 추스르라고 하고, 후임자 인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형준의 상태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좋지 않았다. 가벼운 감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폐렴이 되고 말았다.
태의를 보내 돌보게 했지만 이미 늦었다. 증세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고 고열과 기침이 심해져 의식도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우승상, 눈을 뜨시오! 늘 내 앞길을 인도해주던 그대가 세상에 없으면 어찌 짐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겠소?”
나에게 있어서 이형준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었다. 진짜 나이야 내가 조금 더 살았다지만, 이 세상을 살고 적응하게 해준 사람이 이형준이었다. 사실상 이번 생에서 실질적으로 내게 아버지 역할을 해준 사람이 바로 이형준이다.
그런 사람이 숨이 끊어지려고 한다. 그런데 조정 신하 A가 죽을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소리치자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던 이형준이 가까스로 눈을 떴다.
“우승상, 정신이 드오? 나요! 짐이오!”
“폐하….”
이형준이 조심스레 미소를 지었다. 고통을 잊은 듯,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신은 바라는 게 없습니다…. 폐하, 부디 성군이 되시옵소서….”
내 성품상 ‘성군’이 되기는 글러 먹었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 이형준이다. 하지만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성군이 되라’라는 한마디였다.
그 한 마디야말로 사대부로서, 스승으로서 이형준이 내게 끝까지 품고 있던 소망이리라. 나도 뭐라고 답을 하고 싶었지만, 울음이 북받쳐서 뭐라고 대답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이형준은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뜨지 않았다.
“아버지!”
이형준의 다른 일가는 어전이라 울음소리를 자제했다. 하지만 보리스는 그런 건 상관없이 황소울음으로 통곡했다. 그 통곡을 들으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내 의지와 별개로 내 목에서도 흐느낌이 악문 이 사이로 흘러나갔다.
향년 79세로 죽은 이형준에게는 할 수 있는 모든 예우를 해줬다. 장례 물품을 궁중에서 내주고,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제수했다. 스승을 기리는 의미에서 정무도 하루 쉬고 싶었으나, 전쟁 중이라 처리할 일이 많아 그건 어쩔 수 없었다.
20년간 함께 하던 이형준이 죽자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조 때도 주변 사람을 여럿 떠나보냈지만, 이형준처럼 나한테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공적 관계로만 얽혔고, 개인적으로 친하던 이들은 모두 나보다 나중에 죽었으니까.
이형준이 죽자 주변인을 떠나보낸다는 실감이 강하게 든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나보다 먼저 죽어서 내 곁을 떠나겠지. 과연 나는 얼마나 그 기분을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