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68
3부 2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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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대한에서 코카인이 생산되어 중독자를 양산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상희는 안돈이가 가져온 코카나무 종자는 실질적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했다.
“심으면 싹이야 트겠지.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된 코카나무로 자라지를 못할걸.”
한약에는 당연히 코카인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한의대 교수 중에는 한방으로 마약 중독을 치료하겠다며 코카인에 관해서 연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밑에서 심부름을 하느라 상희도 코카인에 대해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식물은 동물보다 환경에 더 민감해. 토양, 기후, 고도…다 적당히 맞아야 제대로 자라지. 코카나무는 원래 안데스산맥 일대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야.”
상희는 한반도에서 코카나무를 재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예 싹도 안 돋을 수도 있고, 돋아도 제대로 안 자랄 거라면서 말이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필리핀이나 대남도 산악지대에서는 재배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 영토는 이제 한반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남아메리카처럼 열대에 속하는 필리핀과 아열대 지방인 대남도가 있다. 상희 역시 남아메리카 밖에서는 절대 코카나무를 재배할 수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대만이나 필리핀이라면 가능하긴 해. 20세기에는 실제로 재배하기도 했고. 필리핀에서는 밀재배 농장 만들었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있고, 대만에서는 일본 식민지 시절에 일본 회사들이 코카 농장을 만들어서 아시아 마약 시장에서 상당히 재미를 보기도 했거든.”
“그놈들, 필로폰만 만들어서 판 게 아니고 코카인도 팔았었어?”
제국주의 시대 일본이 국가적으로 아편에 모르핀에 필로폰까지 만들어서 판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본국에서는 마약이라고 아편 흡연을 금지했으면서 중국에서는 아편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번 놈들이 일본이다. 그런데 코카인까지 만들었었다니, 진짜 기가 막힌 노릇이구먼.
“코카 잎에서 코카인을 뽑는 정제기술이 발명됐으니까 그럴 가치가 있었지. 지금은 잎을 석회랑 같이 생으로 씹거나 고작해야 차를 끓여서 마시는 정도일 텐데, 그 정도로는 효과도 별로 강하지 않고 중독성도 거의 없어.”
원래 역사에서도 코카인을 제대로 정제할 수 있으려면 화학이 한참 발전한 1860년대까지 가야 했다고 했다. 상희는 지금 기술 수준으로 코카나무 잎을 아무리 갈고 달이고 해 봐야 코카인을 추출할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과연 디에고가 가져온 씨가 제대로 자랄지도 의문이지만, 성공해도 강장제 노릇밖에 못 해. 강장제로는 커피 쪽이 차라리 훨씬 나을 거고. 애초에 남미에서는 고산병 때문에 코카 잎이 필요한 건데, 고산병도 없는 대한에서 기분 좀 좋겠다고 굳이 그런 걸 먹겠어.”
마약 중독을 막고 싶으면 아편 유통에 대한 감시에나 신경을 쓰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아편은 한반도에서도 재배할 수 있고, 그냥 진액을 말려 굳힌 생아편만 해도 충분히 마약이 되니까 말이다.
다만 아직은 아편을 마약으로 흡연하는 풍속이 생기지 않았다. 의료용 마취제로 생아편을 쓰는 외에 민간에서 잎이나 줄기를 우려내서 진통제나 해열제로 쓸 뿐이다. 당연히 양귀비 재배도 불법이 아니다. 대체할 약품이 나올 때까지는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려나. 그럼 코카나무 재배도 법으로 금지할 필요까지는 없을까?”
미래지식의 딜레마다. ‘왜’ 그러면 안 되는지를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좋은 거라면야 일단 닥치고 따라오라고 한 뒤에 결과를 보여주며 ‘아 임금님 말씀이 옳았구나!’하고 받아들이게 이끌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든 넘어간다.
하지만 안 되는 일은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하기가 참 곤란하다. 코카인을 직접 만들어서 이게 이렇게 나쁜 마약이라고 보여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내버려 둬. 안돈이가 지금 코카인과 고산병에 관한 논문을 써서 대한의보에 발표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라며? 그러면 의학계에서 갑론을박하다가 실제로 기대한 만큼 효과가 안 나는 거 보면 천천히 수그러들 거야. 학계라는 게 늘 그래.”
효능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시장에 충분한 양을 공급하는 것도 문제다. 농장을 차릴 토지를 마련하고 나무를 심고 수확할 만큼 자랄 때까지 키워내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당연히 개인이 조달하기 힘든 막대한 규모의 비용이 든다. 새 작물을 도입할 때면 늘 그렇다.
나라에서 자금을 대주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한테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효과도 분명하지 않은 나무를 심는 데 돈을 댈 물주는 없을 거다. 차라리 그 돈으로 사탕수수나 커피농장에 투자하는 쪽이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수그러들 거야. 키우지도 말고 억누르지도 말고 안돈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냥 놔둬. 그러면 의원들끼리 한참 떠들다가 조용해질 테니까. 약재로 써보려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 거고, 약전에도 추가되긴 하겠지만.”
혹시 코카나무 재배에 성공하더라도 정제를 못 하니 코카인이 퍼질 일은 없다. 실패해도 약재로 쓸 잎을 조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남미에서 수입해오면 되니까. 인도와 아랍에서도 약재를 수입하는데 남미에서라고 못할 건 뭔가.
잠시 더 코카인 이야기를 나누는데 흔들림이 멈췄다. 그리고 우리 뒤를 따라오는 두 번째 코끼리에 타고 있던 준이의 기운찬 외침이 가마 밖에서 들렸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도착했사옵니다! 홍제원이옵니다!”
“여전히 홍제원만 오면 좋아한다니까.”
웃으며 가마 옆을 가린 드림천을 들췄다. 시종하는 선전관이 나무 사다리를 이미 가져다 놓았고, 그 옆에는 준이가 서서 우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바마마! 그 알파카라 하는 짐승이 어서 보고 싶사옵니다!”
준이도 올해 열 살에 접어든다. 반년 늦게 태어난 루시아에게 봉작을 내리면서 준이한테 봉작을 안 내리는 것도 말이 안 되기에, 준이에게도 왕호를 내렸다. 준이는 완친왕(完親王)이라는 봉작을 받았다.
“알겠다. 가자꾸나.”
디에고는 알파카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수컷 한 마리가 더 있었는데, 항해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했다고 했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고기는 선원들과 나눠 먹었는데, 역시나 들은바 대로 맛은 없었다고 했다.
기니피그는 달랐다. 쥐라서 그런지 배 위에서도 계속 새끼를 쳐서 마구 늘어나는 바람에 엄청나게 먹어 치워야 했다고 했다. 너무 많다고 바다에 던지기는 아깝지 않은가.
귀항 길에는 함선 수리와 휴식을 겸해 하와이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렀는데, 그때 하와이 원주민들한테도 나누어줬다고 했다. 아무래도 하와이 전통요리에 기니피그 통구이가 추가될 모양이다.
“중전, 알파카 앞에 가거든 조심하시오. 언제 침을 뱉을지 모르니.”
“폐하께서도 조심하시옵소서.”
낙타 종자들은 하나같이 안심하고 대할 수 없다. 사복시에 있는 쌍봉낙타한테 침 세례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 알파카한테까지 침을 맞고 싶지는 않다. 준이에게도 방심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켜야겠다.
– 10 –
우리 손으로 건조한 첫 전열함이 1년 반 만에 마침내 완성됐다. 아산 조선소에서 진수와 의장까지 모두 마친 배가 드디어 제물포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당장에 군무를 맡은 내 보좌관 격인 비변사 육군 제조 김용상과 수군 제조 이원형을 데리고 보러 내려갔다.
다만 이번에 인천에 가는 건 그 고을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궤도마차 대신에 마포나루에서 하릴없이 대기하고 있는 황실 전용 증기선을 타고 제물포로 직행하기로 했다. 그러면 귀찮은 것들을 많이 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갑판에서 풍광을 살피고 있으려니 문득 이 배를 타고 외국으로 도망가려다가 나루터에서 덫을 놓고 기다리던 포도청 군사들에게 잡힌 예왕 생각이 났다.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정말 세월 참 빠르구나.
“이름이 청해(淸海)라. 신라 때 청해진이 생각나는군.”
“그 청해진에서 따온 것이 맞사옵니다, 폐하.”
배에서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대한수군통제사 이세진이 뒤를 따르며 설명했다. 잠시 위태해지기는 했으나, 우리 대한이 다시 서대동양 제일의 패권을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보고가 이끌던 옛 청해진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초도함은 실수가 없도록 공들여 짓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렸사오나, 2번 함부터는 더 빨리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올해 안에 4척이 더 나올 것이고, 내년에는 8척이 완성될 것입니다.”
함께 따라오는 알렉상드르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리 3급 전열함이라지만 숫자가 13척이나 되면 영란함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으리라. 그쪽이 보유한 전열함은 총 10척, 그나마 상대가 안 되는 1급과 2급 전열함은 2척뿐이니까 말이다.
정말 제대로 되어야 한다. 함대 건설에 돈을 퍼붓느라 용산 별궁에 경인운하, 증기기관차 개발까지 당장 급하지 않은 사업들을 모조리 중단했단 말이다. 이렇게 비싸게 먹힌 함대가 바닷속에 가라앉기라도 하면 난 울고 말 거다.
사실 내가 기대한 건 프랑스 함대가 신대륙에 나타났다는 통보를 받고 영란함대가 태평양 건너로 가버리는 거였다. 하지만 필리핀도 찾아주지 않는 영란인들이 누에바 에스파냐라고 해서 도와주러 갈 리가 없을 것 같다. 놈들은 필시 동인도를 계속 지키고 있으리라.
“이 3등 대선에는 신기전을 싣지 않기로 하였다고 했던가?”
“예, 폐하.”
새로 건조하는 함선의 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도 삼군부에서 상당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다만 우리 해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 프랑스 해군이다 보니 결국 분류 방식도 프랑스식이 되어 1등부터 6등까지 급을 나누고 대선이라고 덧붙여 칭하게 되었다.
청해와 같은 3등 대선은 60문 내외의 포를 싣는다. 계획만 하고 아직 건조하지 않은 4등 대선은 50문 내외, 동현을 본뜬 5등 대선 ? 기존 1천 톤급 신형 대선 ? 은 40문 내외, 6등 대선은 30문 내외다. 5등과 6등 대선이 프리깃에 해당하는 셈이다.
아직은 건조가 어렵지만, 대략적인 계획만 잡아둔 1등 대선은 화포 100문 내외를 싣는다. 2등 대선은 함포 80문으로 잡았다. 어디까지나 프랑스 해군 분류기준을 참고만 한 것이지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라서 스펙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다.
“남변에 있는 정남수군통제사가 글을 보내 건의하기를, 대선이 신기전을 잘못 운용한다면 도리어 득보다 해가 더 많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삼군부에서 논의하니 실로 옳은 말인지라, 신기전은 화전선(火箭船)을 따로 만들어 집중하게 하였습니다.”
이홍원이 올린 장계는 간결하면서도 로켓 병기 운용에 관한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 그 내용을 생각하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였지. 짐도 들은 기억이 나는구나.”
신기전은 범선에서는 정말 쓰기 고약한 무기다. 상갑판에서는 돛이나 삭구에 불을 붙일 우려가 있고, 포갑판에 놓고 쓰면 대포에 쓸 화약을 터트릴 위험성이 있다. 신기전을 싣고 싸우려면 돛과 대포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다.
방어력 면에서도 신기전은 취약하다. 한두 발만 실어서는 제대로 성과를 올릴 수가 없고, 잔뜩 싣고 나갔다가 실화 때문이든, 적의 공격을 받아서든 싣고 있는 신기전이 유폭한다면 한 방에 배가 날아간다.
게다가 명중률도 나쁘다. 이홍원은 대신기전을 쓸데없이 마구 쏴대면 명중률이 형편없는 무기라는 사실을 적에게 알려줄 뿐이라며, 매우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니 신기전은 움직임이 빨라서 적의 포화를 피하며 정확히 맞힐 수 있을 만큼 다가갈 수 있는 소선에 싣게 하고, 상갑판이 아닌 포갑판에서 발사하게 하여 화재를 일으킬 위험을 줄이자 하였습니다. 앞으로 대선은 신기전을 무장으로 쓰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대남도 해전에서 대신기전으로 영란함대를 쫓아버린 뒤에 수군 일각에서 대신기전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실제로 나왔었다. 어뢰정 10척이면 전함을 이길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과 같은 급이라 짜증이 솟았지만, 다행히 군부 내에서 알아서 진압했다.
“수졸들은 모두 잘 적응하였는가?”
이세진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제 조련에 들어갈 참입니다.”
첫 승무원은 원양 항해 경험이 풍부한 외수사 선원들을 중심으로 모았다. 이제 이 청해를 훈련함으로 삼아 전열함에 태울 승무원을 양성한다. 처음 장비하는 종류의 배니까 훈련함이 꼭 필요하다.
“올해 안에 완성되는 배들은 남방으로 보내지 말고 모두 훈련에 투입하라. 전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적을 설건드리면 저들의 대비만 강화할 뿐이다.”
나를 따르던 장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진실로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영란함대는 우리에게 전열함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더 얕보고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3급일지언정 전열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면 분명히 강공으로 나올 거다.
아산으로 달려와서 조선소를 파괴할 수도 있다. 유럽에 원군을 요청할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할 거다. 어느 쪽이든 우리에게는 난감하다.
더구나 연합군은 원래 역사에서보다 해군 전력이 넉넉할 거다. 원래 역사에서는 스페인이 프랑스 편이었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잉글랜드-네덜란드 편에 붙었기 때문이다. 질적으로는 좀 떨어져도 엄연히 해군 강국인 스페인이 넘어갔으니 전력비가 뒤집힐 수밖에 없다.
고로 연합군은 마음만 먹으면 아시아에 함대를 증파할 여유가 있다. 우리가 3급 전열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면 1급은 아니라도 2급 전열함은 서너 척쯤 보낼지 모른다. 그럼 또 전력비가 뒤집히는 거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전력을 절대 노출하지 말라. 충분한 숫자를 갖출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예, 폐하. 정남수군통제사는 현명한 장수이니 폐하의 뜻을 이해하고 현재 거느린 전선만 사용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전함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선저 쪽 선창까지 들여다보고 다시 증기선으로 옮겨탄 뒤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조수를 거스르는 외륜선 선실에서 함께 따라온 두 제조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용복이 올린 장계를 그대들도 읽었으리라. 어떤가. 일전에 좌승상이 비변사에서 제안한 신서반아 원정 계획이 실제로 가능할 것 같은가?”
재정 문제는 당연히 해결이 안 됐다. 양면전선 문제도 그대로다. 하지만 안용복이 보고한 바에 따르자면 스페인 측의 방어태세는 별로 견고한 게 못 됐다. 적어도 해안은 말이다.
두 노장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군사를 파견한다면 해안에서는 이길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신서반아 내륙으로 간다면 어찌 될지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