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78
3부 2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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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청나라와 대한 사이에서 사신이 오가는 길은 해로다. 양국 사이 교류가 해로를 주로 사용하는 데다, 원래 역사보다 항해술이 훨씬 발달해서 해난사고도 줄어든 덕분이다.
사실 원래 역사에서 서해에서 해난사고가 자주 일어났던 이유 중 하나가 항해술 부족으로 연안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데 있었다. 이쪽에서도 처음 해로를 개척하던 무종 때는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위험한 연안을 따라 배를 몰지 않아도 된다. 배도 좋아졌고 항해술도 발달했다. 풍랑을 진정시킨답시고 인당수에 제물을 바칠 필요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제사를 지내러 오는 파사합의 태자, 박화탁(博和託, 보호토)은 통상적으로 오는 사절단과 다른 길을 택했다. 천진에서 배를 타는 대신 심양을 거쳐 육로를 통해 왔다. 함께 찾아오는 후금 대패륵(태자) 파포태(巴布泰, 바부타이)와 만나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대패륵은 열두 살이라 하였지?”
“그렇습니다, 폐하.”
청나라는 우리처럼 명나라 용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황위를 계승할 황자는 태자, 나머지 황자들은 친왕이라고 한다. 적서 구분을 굳이 따지지 않는 것도 명나라와 마찬가지라, 황후 소생이 아닌 황자도 모두 친왕으로 통칭한다.
다만 후금은 우리처럼 적서를 따진다. 홍타이지가 세례를 받은 이래 후금 황실은 나가리 신자이기는 해도 일단 명목상으로는 가톨릭인지라 정식 아내를 1명밖에 안 두기 때문이다. 후금 황후를 가리키는 칭호는 대복진(大福晉)이다.
게다가 후금의 첫 황후로서 황실 법도를 규정한 사람이 내 딸인 혜연이였다는 점이 컸다. 적서 차별이 중국보다 더 심한 조선, 그것도 왕실에서 태어나 자란 혜연이는 자신이 주인이 된 후금 황실에서 이를 철저하게 시행했다.
혜연이는 자기 남편인 홍타이지가 정부를 두고, 그 상대방을 측복진(側福晉)으로 봉하는 것까지는 눈감아주었다. 본래 건주에서 측복진은 양첩(良妾)을 뜻하는 말이나, 홍타이지는 이를 외명부 작위로 사용했다. 자기 정부들의 지위를 높이는 데도 쓰고 말이다.
하지만 이 측복진 소생 자녀들은 황족 지위에 오르지 못했고, 대칸 계승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오직 혜연이가 낳은 아이들만 공식적으로 대칸의 핏줄로 대우를 받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혜연이 자신이 서녀였으면서 저렇게 한 걸 알았을 때는 기분이 참 묘했다.
이게 전부 초대 황후가 확립한 제도다 보니, 뒤를 이은 계승자 중 누구도 뒤엎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홍타이지부터가 혜연이 말이라면 ‘하늘의 별을 따오라’라고 해도 따는 시늉을 할 정도였는데 감히 누가 그 말을 거스르겠는가.
그래도 측복진이 낳은 자녀들에게 아무 지위도 안 내리지는 않는다. 아들에게는 외척이나 공신들이 받는 작위 중 가장 높은 초품(初品)인 일등공(一等公)을 주고, 딸에게는 외명부에 있는 작위 중 가장 낮은 자리인 격격(格格)을 준다.
‘꼭 영국이나 프랑스 같단 말이지.’
서양 종교와 조선 풍습이 뒤섞이면서 여진족 왕실에서 묘하게 유럽 왕실과 흡사한 모습이 나타났다. 유럽 국왕들이 정부에게 후작부인이니, 백작부인이니 하는 작위를 내리고 이들이 낳은 서자들에게 귀족 작위를 내린 것과 똑같지 않은가.
“두 태자가 모두 혼인은 하였었지?”
“예, 폐하. 청국 태자는 3년 전에 만주 명가인 엽혁나랍씨와 혼인하였습니다. 후금 태자는 아직 혼인하지는 않았으나 패아지근씨와 혼약은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엽혁나랍(葉赫那拉)’은 해서부 출신 명가인 ‘예허나라’ 씨를 말한다. 태조 누르하치는 내 손으로 박살이 난 해서부를 갈등 없이 건주 세력으로 통합하기 위해 예허나라 씨를 극진히 우대해주었다. 그 덕분에 황후까지 내는 명가가 된 것이다.
‘패아지근(?兒只斤)’은 칭기즈칸의 성씨인 ‘보르지긴’ 씨다. 후금에서는 만주인 인구의 세 배나 되는 몽골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보르지긴 씨에서 황후를 이미 한 번 골랐다. 후금의 역대 황후 4명 중에 3대인 석새의 황후가 보르지긴 출신이었다.
청나라 황실은 혜원이와 후금 공주 출신인 파사합의 모후만 빼고 매번 만주 귀족 출신을 황후로 뽑았다. 하지만 후금에서는 황후의 출신이 조선 공주, 만주 귀족, 몽골 귀족, 청나라 공주 순으로 계속 바뀌었다. 소수인 만주인이 주도권을 유지하자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다음 6대째는 또 몽골 귀족인가.’
와극달이 분고의 황후를 물려받은 탓에 4대, 5대를 한 사람이 차지했으니 다음은 6대다. 인구나 제공하는 병력 숫자 등을 고려하면 후금 황실로서는 몽골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동맹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준가르로부터 몽골인들을 떼어놓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 후금에 있는 몽고인들 중 천주교도의 비중이 얼마쯤 되는가?”
“4할 정도 됩니다. 백 년 세월 동안 공을 들이고, 선대 태후가 노력한 결과지요.”
내 질문을 받은 정호찬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잠시지만 북방군에서 근무한 경력 덕분에, 익문사만은 못할지 몰라도 정호찬도 그쪽 사정을 꽤 잘 알았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몽고인들이 주로 신봉하는 불교는 토번종(吐蕃宗)입니다. 허나 그 본거지인 토번 땅과 우두머리인 토번 법왕은 모두 준가르가 차지하고 있으니, 독실하게 법왕을 따르는 몽고인들이 그편으로 넘어갈 위험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토번종’은 티베트 불교를, ‘토번 법왕’이란 티베트 불교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말한다. 다른 말로 ‘라마 법왕’이라고도 하는데, 로마 교황을 가리키는 ‘로마 법왕’과 발음상의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잘 쓰이지는 않는다. 한자는 확실히 다르다.
후금 황실에서는 준가르와 몽골인들 사이의 연계를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해 몽골인들에게 가톨릭을 전파했다. 이를 위해 몽골 제국 시절 수많은 몽골인이 천주교를 믿었다는 전설을 꾸며서 천주교를 조상의 종교로 포장하고, 개종하는 이들에게는 수많은 혜택을 안겨주었다.
국혼 역시 마찬가지다. 개종한 씨족 중에서 황후를 선발하고, 그 연줄을 역으로 활용해서 더 많은 씨족을 개종시켰다. 그리고 개종한 자들을 주로 준가르와의 국경에 배치해 방어를 맡겼다. 티베트 불교를 버리지 않은 자들은 대개 후송과의 싸움에 내보낸다.
“그러하다면 태자비로 우리 공주를 달라거나 하는 소리는 하지 않겠군. 나이가 맞는 애도 없긴 하지만.”
파사합이 공주를 우리 태자비로 보내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있다 보니, 저쪽에서 그런 제안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과연 정말 할지 안 할지 모르겠다만.
“폐하, 건주 태자들의 행렬이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오, 드디어 왔는가.”
불을 때서 따뜻하게 데워 놓은 장막 밖으로 나가니 싸늘한 추위가 엄습한다. 따뜻한 초피 외투 덕분에 크게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춥기는 추웠다.
“저기 보이는구나. 대열이 참으로 화려하군.”
가뭄과 전쟁 때문에 몇 년째 고생하는 우리 사정을 배려했는지, 양국 모두 엄청나게 많은 인원을 보내지는 않았다. 태자를 수행하는 인원치고는 절대 많다고 할 수 없는 3백 명씩을 보냈다는 보고가 이미 들어와 있다.
하지만 그 소수 인원이 갖춘 복장이나 기치 등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막 시야에 들어왔는데도 그 모습이 훤히 보일 만큼.
“타타르 황자들은 저런 행렬을 짓는군요, 폐하.”
은이와 함께 나온 알렉세이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후금은 짧기는 하지만 러시아와도 국경을 맞대는 상대인지라, 알렉세이는 후금에 관해 상당한 흥미를 품고 있었다. 준가르를 협공하는 동맹을 그들과 맺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아마 내년 봄까지는 저들이 여기 머무를 테니, 귀로에 한번 깊게 이야기해 보게나.”
봄이 되어 알렉세이가 귀국길에 오를 때 저 두 명도 아마 같이 돌아가겠지 싶다. 그러면 세 나라 태자가 심양까지 함께 여행하는,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지리라. 은이도 그 자리에 무척 끼고 싶어 할 텐데, 좀 아쉽다.
– 32 –
내가 천막을 치고 기다리던 서대문 밖에서 간단한 환영연이 열렸다. 하지만 이건 옛날에 명나라 칙사를 맞이할 때처럼 상국의 사신을 모시는 자리가 아니다. 멀리서 찾아온 손아래 친척을 환영하는 자리다.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
고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두 태자다. 박화탁과 파포태 두 태자는 내 앞에 오기 전에 말에서 내려 걸어온 다음에 내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집안 어른에게 예를 표하는 당연한 태도였다.
두 사람에게 따뜻한 술 한 잔씩을 내려서 여기까지 내려온 수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함께 말에 올라 서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서촌에 있는 서평관에 환영 잔치를 준비하라고 지시해 두었으니, 굳이 추운 밖에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
“심양에서는 복릉에 들렀는가?”
“그렇습니다, 폐하.”
박화탁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이들 숙질간은 심양에서 만나 누르하치의 무덤을 참배하고 왔다. 누르하치는 건주가 입관하기 전에 죽었고, 당시 수도였던 심양에 묻혔다. 이 무덤이 복릉(福陵)이다.
다만 지금 심양에 있는 그 무덤은 속이 빈 허묘(虛墓)다. 다이샨이 북경을 함락하고 요동 땅을 성이에게 넘기면서 부친의 무덤도 북경으로 이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만 파내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 두었다. 봉분조차 허물지 않았고 비석도 그대로 두었다.
누르하치의 무덤만 두고 간 게 아니다. 누르하치가 심양에 지어놓은 궁궐도 그대로 있다. 지금은 우리가 접수해서 심양행궁으로 부르고 있다.
“태조께서 장조 폐하의 도움을 받아 지으셨고 폐하께서 돌보아주신 고궁(古宮)의 모습과 복릉 앞의 전각을 보니, 우리 두 겨레 사이의 깊은 인연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도 우리 겨레를 위해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를 부탁드리나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조상을 둔 사이가 아닌가. 대한과 건주는 모두 같은 조상에게서 피를 받았으니, 서로 돕는 것이 마땅하도다.”
건주는 완안 씨가 세운 금나라를 자기들 조상으로 친다. 그리고 그 금나라 왕실의 시조는 신라 출신의 김함보라고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모든 여진족이 김함보의 피를 직접 물려받은 후예는 아니지만, 연결성은 충분하다.
“태조와 장조, 두 분께서 맺으신 인연 덕분에 오늘날 세 황실의 번영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모두 천주님의 은혜입니다.”
파포태가 조심스럽게 성호를 그었다. 과연 이 꼬마가 가슴 속에 얼마나 진실한 신앙심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옛날의 홍타이지를 비롯한 조상들처럼 겉으로만 신자인 척하는지, 개종한 지 5대나 되었으니 나름대로 독실한 진짜 천주교도로 자랐을지.
동양에서 손님을 환영하는 행사라고 하면 당연히 술과 사냥이다. 하지만 원래 역사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는 대규모 사냥 같은 행사는 하지 않았다. 비용도 비용이고, 물자와 사람을 동원하느라 민폐가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다르다. 상비군을 사냥에 투입하니 사람과 물자를 조달하느라고 백성들을 끌어내 괴롭힐 필요가 없다. 전시니까 군사훈련을 해야 할 충분한 당위성도 있다. 그리고 계절이 이미 겨울이니 들판에서 농작물을 짓밟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파주에서 두 태자를 환영하는 사냥을 벌였다. 동원한 인력은 총융청 군사 4천에다 금군 4백, 건주 태자들이 데려온 건주 기병 6백이다. 총 5천이면 상당한 대규모 사냥이다.
“그대들 모두 말 달리는 솜씨가 상당하구나. 당장이라도 일군(一軍)을 이끌 만하겠다.”
“과찬이시옵니다, 폐하.”
건주 태자 두 사람에 은이와 알렉세이까지, 제위 계승자 4명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정말 다시 보기 힘들 광경이리라. 저쪽 세계 20세기까지 가더라도, 차라리 군주 4명이 모인 적은 있을지 몰라도 황태자 4명이 모인 적은 없었겠지 싶다.
더구나 이 4명은 한국어로 왁자지껄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어가 4개국 황실에서 통용되는 국제어가 되다니, 정말 원래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박화탁은 아주 유창한 한국어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조상의 위업을 잊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태조께서는 말 등에서 제국을 수립하셨사오니, 그 고충을 잊지 않으려면 수련을 게을리할 수 없사옵니다.”
박화탁은 타고 있는 호마(胡馬)의 고삐를 잡은 채 크게 웃었다. 네 사람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탓도 있겠지만, 박화탁의 말 다루는 솜씨가 가장 뛰어났다. 은이도 제법 어릴 때부터 승마 조기교육을 받았지만, 박화탁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아바마마, 이대로 지고서 끝낼 수는 없사옵니다. 저희는 아직 말 다루는 솜씨를 겨루었을 뿐이지 활을 당겨 짐승을 잡지는 않았사오니, 사냥의 성과로 진짜 승부를 내게 하소서.”
“태자께서는 이 몸의 활솜씨는 두렵지 않으십니까? 제가 마술(馬術)을 3년 더 익힌 만큼 궁술도 3년 더 익혔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박화탁은 은이보다 나이는 3살 많으나 항렬은 한 대 아래, 11촌 조카다. 그래서 깍듯하게 존댓말을 쓴다. 후금 대패륵 파포태는 나이가 한 살 어린 10촌 동생이므로 당연히 은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은이는 건주 태자 두 사람에게 모두 존댓말을 듣는 셈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지. 여기 파주는 지형도, 짐승도 본인이 잘 아는 곳이니 쉽게 패하리라 생각하지 않네. 자, 시작해 보세나!”
은이와 박화탁이 서로 승리를 장담하며 말에 채찍을 가했다. 알렉세이와 파포태, 두 명은 걱정 반, 기대 반 섞인 표정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건주에서 두 태자를 따라온 호위병들과 은이의 동무들인 카자크 친구들이 뒤질세라 그 뒤를 쫓았다.
“아직 어린데도 말 타는 솜씨를 보면 지 애비들하고 아주 똑같습니다. 계집애들도 뒤섞여 왁자지껄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면, 꼭 옛날 백정들 같습니다.”
총융청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온 정호찬이 웃으며 한마디 꺼냈다. 그 말을 듣자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렇지. 옛날 백정들이 그랬지.”
무종 시절, 백정 여자 무사는 다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 이름은 모두 잊어버렸지만, 다지 외에도 무기를 다루고 사냥을 하는 여자 백정을 한두 명 본 게 아니다. 경성군 초기에 백정들을 탄압, 추방하는 바람에 지금은 본국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말이다.
북방에는 아직 백정들이 소수 있다. 하지만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흩어져 사는지라 옛날에 그랬듯이 데려다 병사로 쓰기는 힘들다.
“저렇게 저 아이들과 계속 어울리다가 태자께서 저들 중 여아 한둘과 눈이 맞아 측실로 들이시는 건 아닙니까?”
“그거야 태자가 선택할 일 아니겠는가.”
생각 같아서야 정호찬이나 권훤의 딸을 하나쯤 며느리로 들이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두 사람과 내 친분도 친분이고, 양쪽 다 엄마 닮았다고 하면 미모에 머리도 보장돼 있고….
하지만 권훤은 괜찮은데 정호찬 쪽은 좀 문제다. 본처는 아들만 낳았고, 딸은 이사벨라만 낳았다. 측실이라면 모를까, 친왕비로 서녀 출신 규수를 들여도 주변에서 가만히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건 어렵겠지, 아무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