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81
3부 299화
– 1 –
이번에 출발하는 누에바 에스파냐 원정군의 정식 명칭은 ‘미주원정군(美洲遠征軍)’이다. 여기서 미주는 북아메리카를 뜻하는 대미주(大美洲)에서 나온 표현으로, 우리 영토인 남?중?북미주를 뜻하는 미주(美州)와는 한자가 다르다.
이는 우리 원정군의 주된 타격 목표인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이 멕시코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메리카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앙아메리카도 일단은 파나마 지협 이북, 아메리카를 딱 둘로 나눈다면 북아메리카에 속한다.
여러 달에 걸쳐 준비한 끝에 출정하는 이번 원정에서는 거창한 출정식을 열지 않았다. 말 그대로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섰던 경인왜란 때나,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을미동정 때와는 상황이 상당히 달라서 그렇다.
그 두 차례 전쟁을 치르던 시절은 전 군민(軍民)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사기를 고취하기 위한 매체로서 출정식이 정말로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원정은 스페인 정부를 크게 몰아쳐 강화협상을 시작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벌이는 거다. 백성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동기다.
하지만 이들 역시 내 명에 따라 바다를 건너가 이국에 원정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래서 필리핀 원정군이 출발할 때의 예에 따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을 내려 군사들 앞에서 군관들이 대독하게 했다. 그리고 항구에 나와 저들이 가는 길을 전송했다.
“귀중한 군사들이다. 이역만리에서 개죽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용병하도록 하라.”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원정군 지휘부에게 마지막 다짐을 받는 배경에는 전선과 수송선을 합쳐서 40척에 달하는 대함대가 위풍당당하게 인천 앞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신서반아에 파견할 원정군 제1진과 이들이 쓸 무기, 탄약, 마필 등을 만재한 선단이다.
“이번 원정은 될 수 있으면 보내지 않고 싶었다만…방법이 없구나.”
내게 인사를 올린 뒤, 단정을 타고 좌선을 향해 가는 원정군 지휘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전쟁을 조속히 끝내고픈 욕심에, 겨울을 보내는 동안에 이홍원에게 밀지를 내려 한 번 더 바타비아에 사절을 보내라고도 했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마다구 해적들을 본래 본거지로 돌려보내라. 그리고 적대행위를 멈춘다면 런던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임시 휴전 협정을 맺을 의사가 있다.’
이 정도까지 양보했건만 바타비아 측의 대응은 변함이 없었다. 자기들이 일전에 제시했던 조건에 따라서 스페인 측에 필리핀을 돌려주거나,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이상 평화는 없다는 태도였다. 필리핀에서 흘린 우리 피를 생각하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그렇게 되었으니 신서반아 원정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누에바 에스파냐가 위태로워지면 스페인 쪽에서는 필리핀 탈환 따위는 입 밖에도 낼 수 없게 될 거다. 스페인 정부가 강화를 청하게 되면 영란 양국이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지속할 이유도 사라진다.
‘애초에 우리가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서로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었으니까.’
스페인 때문에 말려들었을 뿐이지, 영국이나 네덜란드가 우리와 싸워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아…아니다. 이홍권이 바타비아를 봉쇄하면서 먼저 도발했었지. 그건 영란군 쪽에서 충분히 분개할 만한 짓이었다.
그 문제에 관해서도 나는 나름대로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 겨울에 다시 보낸 사자 편으로 이홍권이 처벌받았다는 사실도 은연중에 전하게 했다. 영란군 쪽의 적대감이 좀 잦아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계속 전쟁이 이어져도 귀군이 바타비아를 봉쇄했던 우리 제독에게 설욕하실 기회는 없을 겁니다. 황명도 없는데 독단으로 바타비아를 봉쇄한 일로 인해 탄광에서 노동형에 처하는 처분을 받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놈들 반응은 저게 전부였다. 그거 잘 됐다고 하거나 고소해하는 반응이라도 보였으면 저놈들이 기분을 조금 풀었다고 판단했을 텐데, 이렇게 시큰둥한 태도로 나왔으니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거 말고는 딱히 영란인들을 만족시킬 미끼도 없으니, 신서반아 원정을 결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스페인 정부가 체념하고 전쟁을 포기할 테고, 계속 싸울 명분이 사라진 영란 양국의 통치자 윌리엄 3세도 선선히 손을 들고 떨어져 나갈 테니까.
“어쨌든, 시작한 싸움은 이기고 볼 일이다.”
아무리 원하지 않던 싸움이라고 해도, 기왕 시작했으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잠시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떼어내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병부, 다시 한번 묻는다. 미주에는 충분한 식량을 준비하게 해두었겠지?”
송재권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폐하. 2만 명이 5개월 동안 먹을 분량을 준비하라고 분명히 일러두었습니다.”
함대에는 식량을 많이 싣지 않았다. 가뭄 때문에 본국에는 식량이 넉넉하지 않을뿐더러, 식량 정도는 미주에서 풍족하게 조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본국에서 싣고 가는 양은 당장 항해 중에 먹을 만큼에다가 약간의 예비를 덧붙인 만큼이면 족하다.
오늘은 양력 1706년 3월 7일이다. 바다를 건너 목적지에 닿는데 3개월, 그리고 현지에서 작전할 기간을 5개월로 잡으면 11월이 된다. 그때쯤이면 미주에서 올해분 곡물을 수확한 뒤일 테니까 군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우리 원정군은 사기도 높다. 경인왜란이나 을미동정을 벌일 때처럼 나라가 절박한 상황은 아니지만, 전공을 세워 출세하고 전리품으로 한밑천 잡겠다는 욕심도 싸움에 나서는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다. 후자는 바르 함대와 안용복이 거둬온 막대한 전리품이 있다. 그 내용이 보도된 조보 기사가 나가자 미주원정군 모집 지원이 폭주했다. 계획한 인원이던 2만 명을 훌쩍 넘어서, 심사관들이 지원서를 쌓아놓고 선별해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 사기가 높으니, 원정군으로서 부담해야 할 핸디캡을 감안하더라도 취약한 스페인 식민지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이번에 누에바 에스파냐를 몽땅 뺏으려는 것도 아니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 2 –
함대가 남쪽으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부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도선(御渡船)에 올랐다. 요즘은 인천에 올 일이 있으면 웬만하면 이 배를 이용한다. 일부 조정 중신들과 간관들은 배를 타고 다니다 흉사라도 일어나면 어쩌냐고 난리지만, 귓등으로 넘기고 있다.
애초에 사고가 날 위험이 전혀 없는 교통수단은 없다. 내가 말 타다 땅바닥에 나뒹굴었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 세 번 생에서 한 번도 목이 안 부러진 게 신기할 지경이지 ? 마차 같은 것도 사고는 언제든 난다. 하다못해 멀쩡하던 가마도 부서질 수 있다. 장영실이 인생 망친 이유가 세종대왕이 타는 가마가 부서져서 아니었던가.
게다가 내가 도로를 이용해서 도성과 인천을 오가면 경인가도가 완전히 마비된다. 마차를 타고 가더라도 안전 문제 때문에 속도를 마음껏 낼 수도 없고, 호위대가 수백 명은 붙어야 하니까 도로를 완전히 막아버린다. 몇 시간 동안 말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이동하면 훨씬 민폐가 적다. 물론 한강을 이용하는 잡다한 민간 선박이 항행을 멈추고 어도선이 통과하기를 기다려야 하긴 하지만, 도로를 통째로 막는 데 비하면 훨씬 적은 피해다. 어도선은 한 척뿐이니까. 게다가 필요하면 속도를 내기도 더 좋다.
어차피 얼마나 빠른지 다 아는 육지의 탈것으로 속도를 내면 임금이 조급해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냐는 소리나 듣게 된다. 게다가 사고가 날 위험도 크다. 수레바퀴나 말발굽에 치이는 백성이라도 나오면 큰일이다.
그런데 배를 타면 그런 위험이 없다. 빠르고 호화스러운 어도선은 민간에서는 아예 넘볼 수 없는 임금의 전용물이고, 경탄과 선망의 대상이다. 게다가 3백 톤급인 어도선의 선실은 마차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크고 화려하다. 편의성에서 상대가 안 된다.
“어서 운하를 완성해야 더 빨리 오갈 수 있을 텐데.”
제물포에 따라갔던 은이를 포함한 네 태자는 뒷갑판에 나가서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놀고 있다. 준이도 한몫 끼었다. 배를 타니 이런 면도 좋다. 승객들이 선내에서 무슨 장난을 쳐도 이동 속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폐하, 신서반아를 점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진심이시겠지요?”
“물론이오. 내 그대에게 무엇을 숨기겠소.”
나와 동승한 민성윤은 다소 불안한 티를 냈다. 이번 제물포행에 동참한 다른 중신들은 배 타기를 무서워하기에 그냥 궤도마차를 타고 도성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민성윤만은 나를 따르는 게 자기 의무라며 어도선에 탔다.
어쩌면 임금과 태자가 한배에 타고 움직이는 게 불안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도선이 마포와 인천을 오가면서 사고를 일으킨 사례가 한 번도 없고, 호위군도 넉넉히 타고 있다. 사고건 습격이건 염려할 필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변 정벌까지는 우리 백성들을 지키고 임금의 위패를 불태운 악행을 징벌한다는 명분이 있었소. 하지만 신서반아 원정은 서반아 조정이 강화협상에 나서게 하려는 압력일 뿐이오. 우리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을 빼앗아서 무엇을 하겠소.”
유럽에서도 땅뺏기 전쟁을 할 때 최소한의 명분은 갖춘다. 거기가 원래는 우리 할아버지 때 다스리던 영토라거나, 내 아들이 계승자의 조카와 결혼했으니 우리나라로 합치겠다거나, 그쪽 왕이 내게 선물한다고 약속했다거나.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명분이 전혀 없잖은가.
누에바 에스파냐 영토를 빼앗으면, 필리핀 영유권 인정에 덧붙여서 현금 보상이나 받고 돌려준다. 미주도 아직 사방에 빈 땅이 널려 있고, 필리핀도 이제 막 소화를 시작할 참인데 멕시코까지 빼앗아서 뭣에 쓴단 말인가. 외교가에서 욕이나 먹으려고?
“학질 문제도 신경이 쓰이오. 신서반아도 분명 학질을 비롯하여 갖가지 풍토병이 만연한 곳인데, 그 대비가 충분하지 못하니.”
디에고가 가져온 친초목 묘목과 씨앗은 일단 대남도 고산지대에서 시험 재배에 들어갔다. 필리핀에도 심을 예정이지만, 시험농장을 두 곳에 만들어서 안 될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가 제대로 나오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고로 키니네 공급은 아직 없는 상태다.
민성윤과 함께 신서반아 원정에 관해 염려되는 점들을 이야기하는데, 뒷갑판 쪽에서 마구 떠들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민성윤이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걱정하는 말을 건넸다. 어쩌면 이게 어도선에 동승한 진짜 이유였을 수도 있겠다.
“폐하, 저러지 말라고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저러다 혹시 한 분이라도 물에 빠지기라도 하신다면….”
“외손자가 물귀신이 될까 봐 걱정되시오, 승상?”
“아, 아닙니다.”
민성윤이 급히 부정했다. 하지만 그 속이 빤하기에 웃음으로 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대동양에 빠졌다가도 무사히 살아난 아이가 아니오? 그에 비하면 샛강이나 다름없는 이 한강 따위에 빠져 죽을 리가 없소. 그래도 혹시 빠진다면 충성스러운 태자 익위사 양소목이 당장 뛰어들어 구할 테니 염려 마시오.”
어도선에는 굵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구생죽(求生竹), 즉 구명대도 쉰 개나 비치해뒀다. 작은 뗏목 형태로, 사람 하나가 매달려서 떠 있기에는 충분하다. 혹시 누가 떨어지면 일단 이걸 던져주고, 묶어둔 끈으로 끌어당기거나 배를 멈추고 단정을 내려 건지면 된다.
다만 모든 선박에 이 구생죽을 의무적으로 싣고 다니게 하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조정에 있는 중신들에서부터 말단 선원이나 수졸에 이르기까지, ‘뱃놈이 그냥 헤엄이나 치면 되지 그따위 도구가 왜 필요하냐?’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던 탓이다.
게다가 배 자체가 목선이고, 배에 실은 나무 물통이나 상자 따위를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구명대를 따로 실을 필요가 없다는 반박도 있었다. 법으로 비치하게 하더라도 그게 제대로 관리가 되겠냐는 지적도 있었다.
‘선상에서 오래 방치되면서 햇빛과 바람을 맞아 쪼개지고, 쥐가 갉아서 구멍을 내면 어찌 대나무가 물에 뜨겠습니까? 별로 효과도 없이, 검사관이 부실한 상태를 눈감아주고 뇌물을 받아먹는 명분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도선을 비롯해 한강을 건너는 나룻배에만 몇 개씩 비치하게 했다. 이쪽은 내가 가끔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관리하기도 쉬우니 말이다. 이걸 보고 구명대가 쓸만하다고 판단하면 선주나 선장들이 알아서 구해다 싣겠지. 재료가 뭐든.
“기우는 그만두고 창문 밖이나 보시구려. 승상의 외손이 앞으로 다스릴 나라요. 전쟁이 곧 끝나면 승상도 쉬게 해드릴 테니, 태자가 자라는 모습이나 천천히 보시면 될게요.”
선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한강 풍경이 아름답다. 남아있는 숲과 습지, 경작지가 조화롭게 섞여 있다. 태평양과 비교해서 샛강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한강이 통제하기 전혀 쉽지 않은 강이고 보니 범람원 상당 부분은 개간하지 못하고 습지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농경지 확대를 위한 간척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한강처럼 다루기 힘든 장애물이 없는 충청도나 전라도 해안 쪽에서 주로 진행하고 있다. 벌목 금지를 통해 삼림을 보존하듯, 한강의 흐름을 핑계로 삼아 강변 습지를 좀 남겨두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지만, 폐하. 아무리 그래도….”
민성윤이 한숨을 쉬었다. 무사히 자란 친손자가 이미 일곱 명이나 있건만, 고명딸이 낳은 외손자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하기야 그 외손자가 바로 다음 대의 지존이 될 사람이니 어련하겠냐만.
“괜찮다니까. 전부 갑판에 있다가 물에 빠지면 위험하겠지만, 후부 갑판이니 괜찮소.”
앞갑판에서 떨어져서 물에 빠지면 배 밑에 깔리거나 수차에 치여 으스러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배 뒤쪽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스크루가 없는 외륜선이니까 말이다. 물에 잠기기 전에 얼른 건지기만 하면 된다.
“며칠 뒤에는 다들 떠나잖소. 그러기 전에 마지막으로 추억을 쌓고자 하는 중이니, 눈감아 주시구려. 그동안 장난질이 무척 심하긴 했지만.”
알렉세이와 루시아, 박화탁과 파포태는 모두 나흘 뒤에 도성을 떠난다. 심양까지는 모두 동행하다가 거기서 갈라져서 서로 갈 길을 간다. 알렉세이는 바이칼호로, 파포태는 상도로, 박화탁은 북경으로 말이다.
네 나라 태자에 곁다리(준이)까지, 다섯 소년은 지나간 겨울 동안 무척 친밀하고 즐거운 사이가 되었다. 전원이 핏줄로 얽혔기에 더 쉽게 가까워졌다.
알렉세이는 한 핏줄이 아니지 않냐고? 아니다. 알렉세이도 루시아와 약혼했잖은가. 고로 알렉세이 역시 이들 모두와 피로 맺어진 사이가 됐다. 준이도 조만간 청나라 황실과 혼담이 정식으로 오갈 거고 말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장난꾸러기 소년이 다섯 명이나 뭉쳤다. 여기에 은이의 카자크 동무들도 어울렸다. 이들이 무리를 지어 함께 돌아다니니 내가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한 것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내가 그 점을 들어 참아주느라 힘들었다고 한마디 하자 민성윤이 곧바로 받아쳤다.
“괜찮습니다, 폐하. 폐하의 소싯적과 비교하자면 그 정도는 애들 장난….”
“승상, 짐이 잘못했소. 제발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 주시오.”
아마 어린 성친왕을 직접 체험한 세대가 다 늙어 죽을 때까지는 이 비교를 모면하지 못할 모양이다. 속으로 한숨을 쉬는데 갑자기 뒷갑판 쪽에서 풍덩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급하게 지르는 고함과 비명이 들렸다.
“전하, 전하!”
“전하, 안 됩니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구생죽을 던져라! 배를 멈춰라!”
젠장, 설마 했는데. 가봐야겠다 싶어 급히 선실을 나섰다. 그런데 대체 어느 놈이 실수를 저질러 물에 빠진 거지? 그냥 ‘전하’라고만 하니 그게 누군지 알 수가 있나. 발길을 서둘러 뒷갑판을 향하는데 풍덩 소리가 또 들렸다. 선원이 빠진 놈을 건지러 뛰어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