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190
3부 308화
– 21 –
남만해 일대에서 해적이 아예 없었던 시기는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왕가군과 정가군으로 대표되는 중국 해적 ? 그 외에 군소 해적단도 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 많다 ? 들은 사방에 널려 있고, 필리핀, 말레이 등지에 수없이 많은 해적이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대한이나 일본, 유럽 상선 중에서도 상부에 들키지 않도록 몰래 해적질을 벌여서 짭짤한 부수입을 얻는 자들이 간혹 있을 정도다. 자위를 위해 무장을 갖춘 김에, 자기보다 작고 약하며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날름 털어먹고 가는 거다.
여기에 마다구까지 끼어들었으니 남만해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어민이나 상인들로서는 어떻게든 배를 띄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해적들은 이들을 노렸다.
“그리고 그 해적 놈들은 우리가 잡아야지.”
대남수사 홍하명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좌선 진명에 탄 군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속도를 내라! 저놈은 기필코 잡아야 한다!”
“예, 사또!”
눈앞에 있는 마다구 해적선은 대한과 유구, 일본 상선을 몇 척씩이나 연거푸 약탈했다고 알려져 있다. 붙잡혔다가 도망친 생존자가 없는 까닭으로 그 정확한 숫자는 알지 못하지만, 저 깃발을 휘날리는 해적선을 간신히 따돌리고 도망쳤다는 배만 해도 십여 척이 넘었다.
지금도 후송 상선을 약탈하여 짐을 뺏고 배를 불태우려다가 홍하명에게 포착당해서 급히 도망치는 참이었다. 홍하명은 이미 불길이 솟고 있는 후송 상선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적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홍하명의 좌선 진명은 5등 대선이다. 지금 도망치는 적선보다도 세 배나 크고 화력에서도 압도적이다. 본래대로라면 저런 작고 날쌘 해적선을 따라잡기는 좀 어렵지만, 바람을 잘 탄 덕분에 해적선과 비슷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따라잡아서 싸움을 시작하기만 하면 승리는 확실하다. 이미 전투 준비는 마쳤다. 대포에 화약도 장전했고, 뱃전에 침망(寢網)을 죽 둘러쳐서 적선에서 날아드는 탄환과 파편을 막을 준비도 마쳤다. 그 뒤에 몸을 숨긴 수졸들은 소총과 불화살을 준비했다.
“저놈들, 화물을 버리고 있습니다!”
도망치는 해적선에서 나무통, 상자, 자루 따위가 연달아 바다로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배를 가볍게 해서 진명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이 분명했다. 심지어 대포까지 버리고 있었다.
“저, 저 몹쓸 놈들이!”
천리경으로 적선을 쫓던 홍하명이 분노를 토했다. 해적들이 배에 싣고 있던 짐만 버리는 게 아니라, 태우고 있던 사람까지 바다에 던지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노예로 팔려고 잡아가던 포로들인 것 같습니다.”
선창에서 끌려 나온 남녀 포로들이 연달아 갑판에서 떨어져 허우적거렸다. 손목을 결박한 채로 빠졌기 때문에 제대로 헤엄도 치지 못하고 줄줄이 가라앉고 있었다.
“사또, 어떡하시겠습니까? 배를 세우고 저들을 건질까요?”
진명의 함장 이영진 정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임 함장 박종원 정령이 본국에서 새로 건조하는 3등 대선 함장으로 뽑혀 소환된 뒤에 새로 배속된 군관으로, 성격이 다소 모질지 못한 편이었다. 그래서 홍하명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언뜻 봐도 입수자가 백여 명은 됩니다. 당장 배를 세우고 단정을 내리면 거의 건져낼 수 있겠습니다만….”
“아니! 저 마다구 놈을 잡는 게 먼저다. 저놈을 놓치면 계속 저런 짓을 벌이며 돌아다닐 게 아닌가! 그리고 저기서 허우적거리는 게 우리 백성들도 아니지 않은가.”
복색이나 용모나, 물에 던져진 이들은 언뜻 봐도 모두 후송인이었다. 저 마다구들이 후송 해안이나 상선에서 납치한 게 분명했다. 악명 높은 마다구를 잡는 것과 물에 빠진 후송인을 건지는 것 중 뭐가 더 중요한지는 따질 필요도 없었다.
더구나 진명으로서는 저놈들이 처음 마주친 마다구였다. 정남수군통제사에게 출전 허락을 받기까지도 엄청나게 힘들었는데, 기껏 찾아온 기회를 후송 놈들 따위를 건지겠다고 내버릴 수는 없었다.
홍하명의 명에 따라 진명은 물 위에서 버둥거리는 후송인들을 외면하고 곧바로 적을 쫓아 멈추지 않고 배를 몰았다. 함수 방향에 탑재한, 도망치는 적의 후미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선수포가 불을 뿜었다. 날아간 철환이 적선에 명중하자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멈출 기색이 없습니다.”
“멈추게 만들어라!”
선수포 2문이 연달아 불을 뿜었다. 해적선은 연이어 날아드는 포탄을 몇 발 맞더니, 계속 맞으면서 버티기가 힘겨워졌는지 키를 돌려서 회피기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선수포에서 쏜 포탄은 거의 맞지 않고 빗나갔지만, 대신 적선도 빨리 도망치지 못하게 되었다.
“선방포수는 놈들의 타공을 노려 쏘아라!”
“예, 사또!”
돛대 꼭대기에 있는 장루(墻樓)에는 강선총을 장비한 선방포수들이 두 명씩 올라가 있다. 진명에서 강선총을 쓰는 군사는 이들 여섯 명이 다지만,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앞돛대 장루 위에 있는 선방포수들이 적선의 뒷갑판을 겨냥하고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강선이 없는 보통 조총을 사용해서는 절대로 목표를 맞힐 수 없는 거리지만, 강선총이라면 사람 정도는 쓰러트릴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적선이 포격을 피해 좌우로 움직이고 있는지라, 뒷갑판에 올라와 있는 사람 중에서 타공을 정확히 겨냥하기는 조금 더 어려웠다. 추격전이 한 시간 가까이 더 이어진 다음에야 남쪽을 향해서 계속 도망치던 해적선이 갑자기 키를 왼쪽으로 크게 꺾었다.
“타공을 맞혔습니다!”
해적선의 조타수가 쓰러지면서 키를 돌려버린 탓에 배가 휘청거린 게 분명했다. 홍하명이 때를 놓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배를 붙여라!”
거리가 좁혀지자 장루 위에 있는 선방포수들의 조준도 더 정확해졌다. 황급히 키에 붙어 방향을 바로잡으려던 해적 두 명이 연달아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자 해적선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포를 쏘아라!”
해적들이 항복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홍하명은 서슴없이 발포 명령을 내렸다. 우현 함포들이 9근, 12근짜리 쇳덩어리 20발을 일제히 날리자 해적선 측면에 구멍이 십여 개나 뚫리고, 물보라가 치솟아 적선을 가렸다.
“적이 쏩니다!”
해적들도 반격했다. 선체 안에서, 갑판 위에서 십여 문이 넘는 포가 불을 뿜고 뱃전에서 소총이 탄환을 날려댔다. 진명에서도 갑판에서 준비하고 있던 수졸들이 소총과 활로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주돛대와 뒷돛대 위에 올라가 있는 선방포수들도 전투에 가담했다.
그동안 뒤쪽의 두 돛대 위에서는 방향 때문에 적을 제대로 공격할 수 없었다. 이제 적이 총을 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들어오자, 장루 위에 있는 포수들은 갑판 위에 있는 해적들을 닥치는 대로 쏘아 쓰러트렸다.
선방포수들은 일반 소총보다 정확한 강선총을 쓴다. 게다가 위에서 적을 내려다보니 위치 면에서도 더 유리하고, 총을 쏠 때 나오는 화약 연기는 바람이 바로 날려 버리니까 이들은 갑판 위에 있는 사수들보다 훨씬 정확하게 총을 쏠 수 있었다.
그사이 두 번째 포격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적선을 멈추기 위해서 봉탄과 쇄탄을 쏘았다. 적선의 돛과 삭구가 부서지고 끊어졌다. 포탄에 제대로 맞은 뒷돛대가 쓰러지고, 거기 붙어 있던 활대와 선구가 갑판에 쏟아졌다. 등선대장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등선 준비!”
잡히면 죽는다는 걸 아는지, 마다구 해적들은 항복할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쪽 배로 넘어가 백병전을 벌여 나포하는 수밖에 없다. 등선하기 전에 해적들을 완전히 무력화하느라 함포가 세 번째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적선에 구멍이 뚫리고 해적들이 연달아 널브러졌다.
진명에 타고 있던 수졸들이 갈고리를 던져 두 배를 단단하게 연결했다. 그러자 아직 남은 마다구들이 지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자모포들이 일제히 방포하여 적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조란환이 갑판을 휩쓸자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살아남은 적들이 기가 꺾여서 지리멸렬하자 등선대장이 숨을 들이쉬더니 크게 호령했다.
“등선!”
흉갑과 투구를 착용한 등선군들이 환도와 권총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적선에 뛰어들었다. 총성과 칼 부딪는 소리, 비명이 바다 위를 흘렀다.
“꼴 좋다, 이 도적놈들. 이 바다가 누구 바다인지 제대로 알고 범접도 하지 말았어야지.”
결박한 포로들을 갑판에 꿇어 앉힌 홍하명이 적을 비웃었다. 이번 싸움에서 죽인 마다구 숫자는 대략 80여 명, 포로로 잡은 자는 84명이었다.
“우리 군사는 얼마나 상하였는가?”
“전사한 자가 7명, 부상자가 22명입니다.”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죽은 군사들을 수습하고, 남중성으로 귀환할 준비를 하라.”
객지에서 죽은 군사들은 장작을 모아 화장하고, 유골만 수습하여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만한 여유가 있는 육군 이야기다. 여건이 안 되는 수군에서는 시신을 수장하는 수밖에 없다.
수군에서는 유골 전체를 수습하는 대신에 죽은 군사의 상투만 잘라 단지에 넣어서 본가에 보낸다. 혹시 전투 중에 바다에 빠져서 수습하지 못한 시신의 경우에는 머리카락 대신 평소 입던 옷을 잘 정돈해서 보내게 되어있다.
“마다구 놈들은 제대로 수장할 필요도 없다. 침망으로 쌀 것도 없이, 수급만 베어낸 뒤에 그대로 바다에 던져라.”
마다구는 도적이다. 포로로 취급하지 말고 모조리 처형하라는 칙명이 이미 내려와 있다. 그런데 수장인들 제대로 격식을 갖춰 치러 줄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사또, 붙잡은 도적 중에서 곧 죽을 만큼 큰 상처를 입은 자가 20여 명인데 이런 자들은 어찌 처리할까요? 일단은 치료해주어야 하지 않을지….”
함장 이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홍하명은 가차 없이 답했다.
“그따위 놈들을 치료하느라 군의관을 수고롭게 할 필요 없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모조리 바다에 집어 던지라고 하고 싶다만, 산목숨을 수장하는 건 좀 잔인한 듯하니 그대로 활대에 매달아 교수형에 처하라. 숨이 끊어지면 수급을 베고 바다에 던져라.”
“…예, 사또.”
이영진은 별로 마땅치 않은 반응이었지만 홍하명은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이 도적놈들은 마닐라까지 데려가도 전부 참수형이다. 좀 일찍 죽고 나중에 죽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포한 해적선을 마닐라까지 몰고 갈 인원을 배치하면서 홍하명은 다시 한번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3년 전 바타비아에서 당한 패전을 제대로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건만, 통제사 이홍원은 아직 부족하다면서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대체 언제쯤에나 싸우러 내려갈 수 있을지….’
잉내군과 싸움을 시작하려면 본국에서 이홍원이 만족할 만큼 많은 전선을 내려보내거나, 통제사가 바뀌거나 둘 중 하나였다. 과연 어느 쪽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참, 마다구 두목은 생포했는가?”
“예, 사또. 상처도 크지 않아서 남중성으로 끌고 가 처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잉글국 출신이고, 이름은 존 할제라 하였습니다.”
“이름이 ‘할제(割臍)’라니, 그놈은 참수형이 아니라 요참형을 당할 팔자인 모양이구나.”
비웃듯이 중얼거린 홍하명이 지시를 내렸다.
“군기대장에게 맡겨서 남중성에 닿을 때까지 심문하라. 저놈들의 사정에 관해 뽑아낼 수 있을 만큼 뽑아내고, 남중성에 도착하면 통제사께 보고한 뒤 처형하리라.”
“예, 사또.”
홍하명은 마지막으로 아까 마다구들이 짐과 사람을 버린 쪽으로 가서 혹시 아직 살아있는 생존자가 있으면 건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그쯤은 해줄 수 있었다.
– 22 –
남방에서는 양쪽 전선 중 보조선과 여기 합세한 해적선들이 계속 통상파괴전과 유격전만 벌이고 있다. 저놈들도 전력이 부족하고 우리도 전력이 부족하다. 이홍원에게 내년까지는 3등 대선 15척을 마련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이미 완성한 7척도 전체적으로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신이 너무 서두르다가 소홀하게 관리한 탓이니, 소인에게 벌을 주시옵소서.”
“아니다. 어찌 나 총관 그대가 혼자 잘못했겠느냐. 이제까지의 일은 불문에 부칠 터이니, 남은 전선을 마저 건조하는 데 힘쓰도록 하라.”
알렉상드르의 한국 이름이 ‘나중현’이다. 지어주고 보니 형황 시절 금위사장이던 박중현과 같은 이름이더라. 하지만 뭐, 성이 다르고 한자도 다르니까 혼동할 일은 없다. 이름 독음이 같은 사람이 어디 드문 것도 아니고.
“우찬성에게 묻노라. 내년 봄까지 대선을 얼마나 준비할 수 있겠는가?”
중선이나 소선은 큰 의미가 없다. 잉내군 연합함대 주력과 싸우려면 우리도 그만한 급의 배를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프리깃함인 5등, 6등 대선 정도 되는 배들이 넉넉히 필요하다.
물론 프리깃함만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연합함대 주력은 전열함들이고, 여기 대적하려면 우리도 전열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알렉상드르가 끙끙거리며 배를 짓고 있지 않은가.
“계획했던 15척은 채울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3등 대선만으로 15척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5척은 5등이나 6등 대선으로 해야 합니다.”
우찬성 최석정은 공부 관련 업무를 묶어서 관장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양선 조선소 5곳 모두 담당하는 조선서가 공부 예하에 있다.
“그래도 괜찮을 듯하다. 어차피 잉내군도 15척 전부 1등 대선인 건 아니잖느냐.”
잘 조합하면 프리깃이 포함된 함대 15척으로도 적과 비등한 싸움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영국, 네덜란드 양국 함대는 본국에서 너무 멀리 나온지라 전력이 제대로 보충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으니까, 비등하게 싸워서 소모전을 이어나가기만 해도 결국에는 우리가 이긴다.
“아마 그전에 저들이 물러날 것입니다. 저들에게도 함대가 전멸하도록 우리와 싸워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짐도 그리 생각한다. 참, 예부. 후금에 보낸 코끼리는 잘 떠났느냐?”
“예, 폐하. 제물포에서 배에 실어 흥만성으로 보냈습니다. 흥만성부터는 육로로 상도까지 가야 합니다만, 쉬엄쉬엄 움직이면 괜찮을 겁니다.”
율리아의 약혼 예물로는 결국 파포태가 가지고 싶어 하던 코끼리에다 온갖 장식을 달아서 보냈다. 와극달이 코끼리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모르겠다. 뭐, 옛날 원나라 황제들도 코끼리를 가지고 위세를 부렸다고 했으니 와극달도 같은 용도로 쓰지 않으려나.
이번 달 안에 청나라 공주도 온다. 준이는 곧 혼인할 거라는 말을 듣고도 별생각이 없다. 역시 아직 나이가 많지 않다 보니 자기가 신랑이 된다는 인식이 없는 모양이다.